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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험한 기회를 지날 때 (삿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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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현실을 풍자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천재 6명을 한국 땅에 한꺼번에 보냈습니다. 이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최근에 점검해 보니까 이들의 현재 삶이 이러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가는 학원 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종래의 과학이론을 뒤집어엎을 만한 실력을 가지고 이론을 발표했지만 이를 시기한 학계와 선배 학자들로부터 건방지며 선배를 무시한다는 소리를 듣고 왕따를 당해서 굉장히 고심하다가 결국 머리가 좋은 이 사람은 어려운 길보다는 편한 길, 돈 버는 길을 선택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강남에 학원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을 찾았더니 중국 음식점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그는 수학과 물리학 밖에 모르기 때문에 내신성적에 걸려서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갈릴레오는 불쌍하게도 남한이 아니라 북한에서 태어났습니다. 북한에서 머리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은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일인데, 갈릴레오가 아무리 깊게 연구해 봐도 주체사상은 허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당국이 자아비판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자아비판의 자리에 서서 자기 마음과는 다른 주체사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고 내려오면서 그래도 주체사상은 허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들켜서 아오지 탄광에 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디슨은 예상대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는데, 까다로운 각종 규제와 급행료 등에 걸려서 빛도 보지 못하고 보따리 장사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은 사업에 부도가 나서 지금 어디 사는지 하나님도 그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퀴리부인은 라듐을 발견해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좋지만 얼굴이 받쳐주지 못해서 쓰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특유의 근면성을 살려서 지금 재봉사로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킹박사는 재주는 뛰어났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절망 속에 빠져 살다가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는 서울시내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위 이야기에서 우리나라는 아무리 세계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천재가 있다할지라도 그 천재를 쓰지 못하는 국가, 그리고 어떤 원칙이나 방향 없이 자기이익과 자기생각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기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글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TV가 미쳤다.’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이야기가 나온 배경은 얼마 전 KBS 공영방송국에서 가족들이 보는 시청시간대에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라는 드라마에서 맞벌이 아들 내외가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데, 그 손자를 어머니가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화장실 에 간 사이에 이 아이가 국을 쏟아서 약간의 화상을 입어 응급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온 며느리가 응급실 앞에서 어머니의 뺨을 때립니다. 아이를 어떻게 봤냐고 합니다. 자기 아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맞을 짓을 했다고 하며 외면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방송에 나왔다는 것뿐이지 사실상 우리 현실 속에서 이것이 드라마의 소재로 될 만큼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국대 모 교수는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며 내전이었는데 미국이 개입해서 이 땅이 통일 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인명살상도 없고 전쟁도 1달 내에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01년 8.15행사 때 북한 김일성 생가만경대를 방문해서 방명록에‘ 만경대정신 계승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적화통일이 안 된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는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분단이후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일입니다. 학자로서의 기본적인 객관성을 갖지 못한 일들이 대학에서도 일어납니다.

대통령은 연정을 주장해서 지금 문제의 초점이 어디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내용이 밝혀지면 우리나라 전체가 뒤집어질만한 도청테이프로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관행들이 이제는 전부 뒤집어 지고 있습니다. 자기기준을 절대시하고 싸우려고 들고 타협과 이해가 사라져가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갑니다. 시대가 미쳤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마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혼돈과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시대의 피해자이면서 시대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시대의 제물로 자기 시대를 끝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희생제물처럼 끌려가고 따라가는 종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가치를 찾아 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죄와 혼란이 가득한 이 땅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과 이 시대를 극복할 지혜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개인의 삶이나 가정 그리고 미래를 이 시대의 흐름대로가 아니라 때로는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대로 만들었던 신앙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를 분별하며 세상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으로 돌려놓았던 그들의 삶의 모습은 오늘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없는 환경의 흐름 앞에서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고 방황해 본적이 있습니까? 내가 이대로 가면 내 인생은 그대로 끝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까? 아니 지금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 시대를 극복할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끼신다면, 여러분의 삶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며 고통스러워하신다면 오늘 이 말씀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십시다. 나를 향해 우리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이 시대의 어두움을 헤쳐 나갈 지혜를 찾읍시다

오늘 본문에서는 가나안정복을 위해 앞장서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일어난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이후에 사랑과 지지를 받고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혼란가운데 빠졌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도 목표가 사라지고, 나를 지탱하고 이끌어주었던 것이 무너졌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위기를 극복할 지혜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1절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모세가 이스라엘백성의 지도자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그가 명하는 것을 행하며 요단강까지 왔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엔 여호수아를 따라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가나안 거민들과 싸우며 지금까지 많은 영토를 얻고 정착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있었고 가나안땅의 중심지에는 강력한 원주민이 여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을 주도하고 앞장섰던 여호수아가 죽은 것입니다. 지도자를 잃어버린 이스라엘백성은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상황 속에서 여호수아를 넘어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묻자와’ 라는 단어로 번역된 ‘샤알’은 단순히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강청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살길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라는 강한 의미입니다. 전환기의 혼란한 시기에 저들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중요한 분깃점에 있을 때 자신들의 경험이나 판단과 주관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사울과 다윗 이 두 사람을 보면  허물과 실수가 많고 실패도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버림받았고 다윗이 끝까지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끝까지 붙드시고 쓸 수있었던 이유는 다윗에게서 중요한 특징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삼상 23:2)입니다. 다윗은 반드시 그가 어려움과 곤고함이 있을 때, 그가 또 승리와 위대함이 있을 때, 그가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실수와 범죄도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불행과 실패로 끝나지 않았던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지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의 불행과 실패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던 이유는 실패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절망과 낙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그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역대하 16장에는 유대의 아사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신앙개혁을 통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 나갈 때 그의 길은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갔지만 그의 노년에 마지막으로 북쪽 이스라엘이 유다를 치러 올라왔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아람왕 벤하닷에게 도움을 청하여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16:7-10 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하나니를 유다왕 아사에게 보내어서 사람을 의지하는 아사왕의 앞에는 전쟁이 있으리라고 예언 합니다.

사람은 승리와 성공에 도취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만을 의지합니다. 돈과 사람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세상을 의지할 때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아 보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는 실패한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은 승리의 길이 된다는 것을 봅니다.

잠언3:5-6 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땅에 이르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의식주에 대한 훈련이 있었습니다. 전쟁도 있었습니다. 징계와 심판 등 너무나 많은 훈련을 치루었지만 그 모든 훈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는 것 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미래를 열어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의지하고 나를 지탱해주던 것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무엇부터 하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간구하는 것으로 시작하십시오. 지금까지 신앙생활에 있어서 수많은 성경공부와 설교, 그리고 영적전쟁과 다양한 경험들의 한 가지 목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따라가는 것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복된 길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영적인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간청하는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 찌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3절에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거의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 앞에 순종하며 전쟁에 나아갑니다. 안주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지속적으로 순종하며 따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유다지파에게 가라고 했을까요?

야곱의 아들들 중에 장자의 상징인 사람이 세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루우벤은 육적 장자이지만 그는 장자의 위치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육적으로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장자의 축복은 유다가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지파를 명하신 이유는 이 전쟁은 육적인 땅을 넓히는 싸움이 아니라 바로 영적싸움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일이며 가나안인을 심판하는 일입니다. 동시에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영적교훈을 전달하기위한 목적입니다.

창세기 49장 8-12절까지 보면 유다지파의 탁월함과 광야의 전쟁을 치루면서 가장 앞장서서 승리를 주도했던 지파이며 영적인 지경을 넓혀 가는데 가장 탁월한 지파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승리하더라도 단순히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정복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증거하고 나타낼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영적인 일과 중요한 일을 맡깁니다. 일을 해 나갈 때 자기이익과 관계를 중요시하고, 또 일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자기자랑과 그것으로 인한 육적인 유익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사역의 의미를 희석하며 오히려 사람들을 시험들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쓰시기를 원치 않습니다. 일을 행하고도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고 여전히 영적인 교훈과 유산을 남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사람을 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한 백성이 누렸던 축복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생각이란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이 일을 우리에게 왜 허락하셨는지를 하나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하는데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유형은 일을 좋아하며 잘 따라하지만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자기의 이익이 무엇인지 찾는 사람입니다. 돈, 명예, 이권을 생각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는 참 많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를 통해서 자신이 얻을 이익만을 생각하다 결국 은 삼십냥에 그는 망하지 않았습니까? 그 재물이 불탈 때 함께 불타는 겁니다.

둘째로 나타나는 유형은 심리적인 지지, 만족감, 내가 일을 했다는 성취감 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고, 주도권을 잡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겸손함이 없으니 교회 분란과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나머지 한 유형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헌신을 통해 주님의 이름과 영광돌리기를 기뻐합니다. 영적인 사역에 유익이 되는 사람을 뜻합니다. 가나안 정복의 의미는 하나님 중심의 삶에 있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신 이유와 주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일을 하고 나서 육적인것 즉 이 땅에 썩어질 것을 거두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보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왜 유다지파가 시므온지파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까?
영적전쟁은 연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유익해야 합니다. 서로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시므온지파인가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어머니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지파 중 가장 큰 지파가 유다지파입니다. 전쟁을 충분히 수행 할 수 있는 지파입니다. 그러나 시므온지파는 가장 약한 지파이며 하나님께서 흩으셨던 지파였습니다. 유다지파는 시므온지파의 도움도 필요했지만 가장 약한 지파가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하여서 자기 땅의 분깃을 차지하지 못할 위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유다지파는 시므온지파를 지명해서 함께 연합함으로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만 시므온지파를 생각함으로 더불어 승리하며 하나님의 분깃을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전쟁은 혼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철저히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연약한 지파를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목표와 목적을 나눌 수 있는 지파와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요즘 신앙생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믿음으로 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그런데 목적이 다르면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목적이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영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것 보다는 자기유익과 이익, 인간관계를 더 철저히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오히려 가리게 됩니다. 우리가 왜 같은 비전과 사명을 나눕니까? 같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하신 일들을 행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영적인 교훈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떠나 혼자서는 이 영적싸움에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셋째, 말씀을 배운 대로 적용하며 사는 것입니다.

4절에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모세나 여호수아가 함께 나갔을 때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에 승리를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여호수아 없이 어떻게 전쟁을 치를 것인지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말씀을 따라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와 시므온 지파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적용하며 나아갔을 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아도니 베섹을 체포합니다. 여호수아의 명단에 들지 않고 숨어있었던 사람입니다. 요즘 같으면 빈라덴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자기수하의 왕들의 엄지손가락 발가락을 잘라서 반항하지 못하게 만들고 개처럼 자기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게 했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악독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바로 이 사람의 엄지발가락과 손가락을 자릅니다. 그 이유는 다시 공격의지를 상실시키는 것과 이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이 없으면 가나안땅의 우상숭배에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헤브론을 점령하고 아낙의 세 아들을 죽입니다. 이전에 모세와 여호수아가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전에 주신 믿음의 경험과 의지를 가지고 온전히 순종하여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너무나 놀라운 기적과 이적을 베풀어주시고 영적인 회복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숨어있는 적장을 발견하고, 찾아야 할 그 땅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을 정복하고 승리의 땅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놀랍게 그들로 하여금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영적인 풍성함을 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제자들에게 경험하게 하시고 이들을 건너편 벳세다로 향하게 합니다. 이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를 타고 갔지만 거센 풍랑으로 파선되는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배위에 오르시자 풍랑은 잠잠해 집니다. 마가는 이 장면을 보며 ‘떡 떼시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마음이 둔하여 졌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풍랑가운데로 몰아 넣으셨을까요? 자신들이 경험하고 체험한 믿음을 다음 사건에 적용하여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떡 떼던 일을 통해서 능히 자연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믿고 저들이 담대하기를 원하셨지만 여전히 눈앞의 일 때문에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듣고 나면 그것을 가지고 그대로 한 번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겠다고 하면 그것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배운 말씀을 물질로 온전히 적용 해보는 것입니다. 그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내가 주일성수를 온전히 해보겠다고 결심할 때 부어지는 영적인 회복과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이 우리를 지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림으로 건강한 물질관을 갖게 하며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듣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나아가보십시오. 물론 전쟁이 있지만 승리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진정한 맛은 바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에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길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이끄는 삶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 합니까? 우리에게 철저하게 숨겨진 더 악한 것을 발견하여 결박하게 만듭니다. 두려워 떨던 아낙자손을 처형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영적인 예루살렘을 회복하게 됩니다

여러분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을 발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두려워서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일들을 극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내 삶에 회복해야할 영적인 예루살렘을 다시 찾기를 원한다면 바로 말씀을 따라 사는 적용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에 한 사람이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어떤 전기학자는 아브링컨을 지칭할 때 성경과 기도로 시작한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링컨은 아홉 살 때 자기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물려준 성경을 가보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어머니는 “이 성경은 12만평의 땅을 물려주는 것 보다 더욱 값진 것이다. 너는 성경을 읽고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다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다오.” 라고 유언했습니다. 이후로 링컨은 성경 속에 있는 보화를 캐기 위해 말씀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9살에 어머니 낸시를 잃습니다. 17살 때 누나 세라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첫사랑에 실패했습니다. 23세에는 주 의회 선거에 나갔지만 낙선했습니다. 29세에 의원지명권을 상실했습니다. 41세에 링컨의 둘째 아들 에드워드가 사망했습니다. 42세에 아버지 토머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45세 상원의원 낙선, 47세 부통령지명권 상실, 49세 상의 의원 재낙선, 51세 대통령에 취임, 52세 셋째아들 윌리엄 사망, 55세 대통령재선, 56세 1865년 4월 암살 등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그의 생애에 있었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고 위대한 영적유산을 발견하고 노예를 해방시키며 미국을 새롭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지금도 링컨박물관에 가보면 그가 어려울 때 가장 사랑했던 성경구절이 펼쳐 있습니다.

‘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도다(시편 34:4,6)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혼란한 시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에 내 삶의 운명 앞에 다시 한 번 도전하여 이 시대의 흐름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묻자와 가로되, 하나님께 물어보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인 의미를 되새겨 보십시다. 더 나가서 들은 말씀을 실천하는 삶, 적용하면서 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발견하며 그 삶을 살아가는 용기 있는 주님의 자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김 형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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