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 번째 프로포즈 (요 21:15-17)

  • 잡초 잡초
  • 311
  • 0

첨부 1


  햇빛이 부서지는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제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염치로 무슨 말을 한단 말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아픔을 아신 듯 그들의 아픔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기쁨도, 밤이 맟도록 고생한 지난밤의 피곤을 싹 가시게 만든 153(백 쉰 세)마리의 고기도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그 무거운 침묵을 깨드리지 못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생선을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 어색한 분위기에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주님은 그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모인 베드로에게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순간 베드로는 당황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면서 아가페의 사랑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가페의 그 사랑, 조건 없는 그 사랑, 하나님 아버지가 너희들을 사랑한 그 사랑, 내가 십자가에서 너희를 위해 죽은 그 사랑(아가페의 사랑)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한 사랑은 친구간의 우정을 뜻하는 필레오의 사랑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님, 저를 잘 아시잖아요? 제가 주님을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는지. 저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듯 그 조건 없는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놈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주님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주님은 다시 “네가 나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 물으셨고, 베드로는 똑같이 “내가 주님을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다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먼저 두 번과 다른 점은 세 번째 물으실 때는 예수님께서 아가페의 사랑이 아닌 필레오의 사랑으로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아가파스 메”라고 물으십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필레이스 메”로 물으십니다. 왜 였을까요?

  아가페의 사랑 앞에 한 없이 부족함을 느낀 베드로가 “저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저는 저의 부족한 이 사랑을 드립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주님은 그것을 용납했습니다. 예수님은 “아가페의 사랑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은 아가페의 사랑이었는데 너는 왜 나를 그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그 등급 낮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려느냐?”고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신 주님은 한 발 자욱 내려 앉아 베드로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의 사랑을 그대로 용납하시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의 사랑을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유치한지요?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생각하고, 앞뒤 재고 하는 계산적인 사랑입니까?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많이 더러워진 사랑입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그 고백을 진실된 것으로 받아주십니다.

  생선을 굽고 있었던 모닥불 앞에 앉아있는 베드로를 한 번 바라보십시오. 그의 얼굴이 보입니까? 그의 얼굴은 어떻습니까?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까? 근심에 눌려있습니까? 그의 눈이 보입니까? 그의 눈이 어디를 주시합니까? 그의 몸은 어떻습니까? 자연스럽습니까?

  그의 앞에 피어오르다 사그라진 그 모닥불은 며칠 전의 그 악몽 같은 그 날 밤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찮은 계집종의 위협에 놀라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자신의 모습. 그것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던 모습. 그리고 마침내 닭 우는 소리에 영혼이 깨어나 통곡했던 그 슬픈 밤이 베드로의 뇌리에 스쳐 지나갑니다. 근심에 눌린 흙빛 얼굴, 예수님을 똑바로 주시하지 못한 채 꺼져가는 불꽃을 주시하는 힘없는 눈빛, 축 처진 그의 어깨, 돌멩이만 만지작거리는 그의 부끄러운 손... 거기에다가 주님은 세 번씩이나 “사랑하느냐?”고 물어봅니다. (우리 주님이 그럴 리가 없지만)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듯 주님은 세 번씩이나 베드로에게 물어봅니다. 베드로는 이 세 번의 질문을 받으면서 그의 아픈 상처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 모두는 그가 지금 병자임을 말해줍니다. 베드로는 영적인 병자입니다. 믿음도, 자신감도, 긍지도, 용기도 다 구멍 나 버렸습니다. 그는 영혼의 공황상태입니다. 그의 믿음은 몸체가 빠져나간 허물처럼 나뒹굴고 있습니다. 

  왜 우리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질문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질문하면서 베드로를 교활하게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겪고 있는 그 상처와 아픔, 죄책감, 그 영혼의 진공상태를 알고 계신 주님은 이 질문들을 통해서 그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사랑을 통해서요. 예수님 자신의 사랑을 통해서, 베드로의 사랑고백을 통해서 예수님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은 아픔과 눈물을 씻어주십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이렇게 부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왜일까요? 어쩌면 이 이름을 부르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 그러나 나는 안단다. 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믿음을 강력하게 고백했던 베드로가 아니고 너의 옛 자아 시몬이라는 것을. 자신만만하게 나를 사랑한다고,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린다고 해도 나는 결코 주님을 버리는 일이 없을 거라고 소리친 그 옛 자아가 나를 배반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맨 처음 만날 때 이름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부르며 그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야, 너 아직도 나를 사랑하니?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는데...너는 나를 모른다고 했지만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단다. 나는 너를 너무 너무 사랑하는데 너 그거 아니?”

  베드로는 눈물을 머금고 대답합니다. “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이 잘 아십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예, 이젠 자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젠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기에,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연약한지 잘 알기에 그는 그의 사랑마저도 이제는 주님께 맡겨 버립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와 같은 교만은 없습니다. 나의 이 부족한 사랑마저도 이제는 나의 모든 알고 계신 주님께 맡깁니다. 그의 안에 겸손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을 때만 나의 사랑도 비로소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랑의 대답을 세 번 반복하면서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면서 입었던 상처가 아물고 있었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새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지쳐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어린 새처럼 상처 입었고 끝없는 추락을 경험합니까?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고, 이래서는 안 되는데 느끼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실패의 경험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떤 곳, 어떤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 베드로에게 들려주신 그 음성을 우리가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 또한 그 주님 앞에 베드로와 같이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는 깨어날 수 있고, 일어설 수 있고, 치유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성입니까? 어떤 고백입니까?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

  “예, 주님. 많이 부끄럽지만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입니다.

여러분! 지칠 때 말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힘들 때 소리치십시오.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눈물이 날 때 외치십시오. “저는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여러분! 사랑을 말할 때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나의 사랑이 미약하다고 숨기지도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참 좋으신, 넓으신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음성은 그리고 고백은 고요할 때 들립니다. 제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실감나게 느낄 때는 잠자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볼 때입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봅니다. 낮에는 그렇게 장난치고, 소리치고, 싸우고, 아버지 노릇 못해먹을 만큼 말도 안 듣고 발발거리고 돌아다녔던 그 아이들이 조용히 쌔근쌔근 자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신기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저는 누구에게 말하듯 혼자 속삭입니다. “하이고, 이놈아! 이 발로 그렇게 발발거리고 돌아다녔냐?” 저는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늙어가지고 못 움직이면 너희들도 이렇게 나처럼 내 손을 잡아주고, 발도 어루만져 줄거냐?”

  아내의 얼굴을 봅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결혼했다가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을 그 얼굴을 봅니다. 아무것도 없이 지내던 가난한 신학생시절(어려운 시절)을 말없이 인내하며 살아준 그 고마운 마음에 짠한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밖에서는 괜찮은 목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아내에게 너무나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이젠 사랑하며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말, 둘이 살면서도 안 해 봤는데 설교시간에 말하게 되네요.)

  사랑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고요할 때 느낍니다. 사랑의 음성은 고독할 때 들립니다. 사랑의 음성은 침묵할 때 들립니다. 그리고 사랑의 음성은 아플 때 들립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사랑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강한 의지, 고요한 마음, 침묵하는 용기, 바로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우리들의 몸부림입니다. 바로 그렇게 할 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주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에게, 지쳐있는 제자들에게 프로포즈를 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충만한 사랑으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끄러워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알고 계신 주님은 “너 나 사랑하니? 나는 너를 너무 너무 사랑하는데...”라고 제자들의 향하여 사랑의 프로포즈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두 번째 프로포즈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첫 번째 프로포즈를 기억합니다. 이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예수님은 다가 오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지 않겠니? 나를 따르지 않겠니?”라고 프로포즈를 했었습니다. 이제 주님은 그 첫 번째처럼 다시 찾아와서 두 번째 프로포즈를 던집니다. 사랑을 말하며 사랑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서 사랑의 프로포즈를 받아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에게 프로포즈를 던질 때 여러분도 사랑으로 응답하십시오. 그 사랑의 프로포즈에 여러분도 주님께 사랑의 프로포즈를 하십시오.

  사람들은 프로포즈할 때 꽃을 들고 합니다. 장미 백송이를 들고요. 우리 주님은 장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에게는 장미보다 더 붉은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우리 주님의 가슴속에 있는 그 십자가는 장미보다 더 붉고 백합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장미 백송이보다 더 붉고 진한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의 프로포즈를 받으신 분은 주님을 향해서 프로포즈하십시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양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