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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생수가 흘러야!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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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말

전에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겔 1:3)에서 예언자로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파멸”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에스겔이 보는 환상은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놀라운 생명수가 솟아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 에스겔이 받은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소생이요, 만국의 소생이었습니다.  특히 “솟아나는 생수의 강”은 물이 귀한 팔레스틴에서는 그야말로 생명과 번영의 상징입니다. 중동의 전쟁은 석유 전쟁이라기보다는 물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나일 강,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인도의 인더스 강, 중국의 황하유역은 세계문명의 발상지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미시시피 강, 대영제국의 템스 강, 대한민국의 한강 등은 그 나라의 발전과 번영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그러한 큰 강이 없었습니다.  요단강이라고 있기는 있는데 우리나라의 개천에 불과한 실로 초라한 강이었습니다. 요단강의 기적이 이스라엘의 문명을 좌우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에스겔에게 “생수의 강”의 이상을 보여 주심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영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복과 번영의 소망은 이제까지 제국들이 누렸던 번영과는 그 질에 있어서 크게 다릅니다. 즉 이제까지 대제국들은 물질적인 번영만 누렸고, 그래서 결국에는 물질적 쇠퇴와 함께 역사에서 사라져 갔지만, 이스라엘은 영적인 번영을 이룸으로써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강수가 흐르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에는 새로운 천국 문명이 창조됩니다. 복음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번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생수와 같은 성령의 역사와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세계의 열방을 번영시키고 소생시키고도 그 여력이 남을 정도입니다. 

은혜의 생수는 !

1. 생수가 성전 문지방에서 스며 나옵니다.

에스겔은 47:1절에서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중에서 이 부분은 신비하고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라고 기록된 이사야의 예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사 2:3). 이 예언은 스가랴 14:8절의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는 말씀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사도 요한의 계시 중에 나오는 계시록 22:1-2절의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는 말씀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즉 성전의 우편으로부터 물이 나오는데 그곳은 제단의 남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14절에서  수가성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서, 즉 창에 찔린 그의 옆구리에서 생수가 흘러 나옵니다.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옴으로 인류가 그 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되고, 그 생수로 말미암아 인류가 갈증을 해소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로지 그를 믿음으로써 그에게서 나오는 생명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믿는 자의 받을 성령”(요 7:38,39)입니다.

이 물의 근원은 땅 위에 있지 않습니다. 이 물은 성전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생명의 근원은 신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였기 때문입니다(골 3:3).

사람이 사막에서 물을 얻기 위해서는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인생의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키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수가성 여인과 동네 여인들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게로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의 인생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시원함을 얻었습니다.

2. 생수는 흐를수록 불어납니다.

자연의 물은 흐를수록 줄어집니다. 자연의 물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계곡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시내가 모여 강을 이루고, 강이 모여 바다를 이룹니다. 흐를수록 불어나는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흐를수록 줄어드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성전문지방에서 스며 나온 생수는 동으로 진행되어 갔습니다(3절). 즉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갔습니다(8절). 선지자와 그를 인도하시는 자는 거룩한 산위에 세워진 성전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그 물줄기를 따라 갔습니다.  그들은 약 일천 척을 따라 내려간 후에 그 물줄기를 건너 깊이를 재어 보았습니다. 그때 물은 “발목에” 찼습니다(3절).  은혜의 생수에 들어서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건너편 둑을 따라 일천 척을 더 내려간 후에 다시 한 번 깊이를 재어 보았습니다. 두 번째에도 그들은 쉽게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그 물은 “무릎에” 찼습니다(4절). 은혜의 생수의 영향을 받는 정도입니다. 그들은 일천 척을 더 내려가서 건너보았습니다. 세 번째는 물이 그들의 “허리까지” 찼습니다(4절).  생수의 은혜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 정도를 말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일천 척을 더 내려가서 네 번째로 건너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불가능하였습니다.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5)고 했습니다. 헤엄할 정도의 은혜의 생수는 사람을 띄워주는 부력이 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영적인 생활을 말합니다.

1). 성소에서 나오는 물은 흐릅니다. 고여 있는 물은 산소가 공급이 되지 않아 죽은 물이 됩니다. 물이 흐를 때에 산소가 공급이 되어 생수가 됩니다. 영혼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강수는 성전에서 시작하여 계속 앞으로 흘러갑니다. 그것은 완전에 도달하기까지는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 

2). 그 물은 불어나는 물입니다. 이 물은 흐를수록 많아지고 증가하는 물이었습니다. 성전의 문지방에서 스며 나오는 물이 강을 이루고 바다를 덮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실 때와 같은 기적입니다. 떡을 떼어 줄 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떼어주면 떼어 줄수록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먹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적이 더 많이 일어났습니다.

생수의 강은 흐를 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흘러갈수록 더 불어납니다. 그렇다고 객수가 스며드는 것은 아닙니다. 순수한 생수의 물이 불어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이 없습니다. 은혜의 강수는 끝이 없습니다.

3). 이 강수는 점점 더 확장됩니다.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바다에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이 물의 흐르는 방향은 지리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역류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신학자 Mathew Henry 는 “이 물은 ❶사막으로 흘러 남동쪽에 있는 사해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고 ❷북동쪽에 있는 디베랴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며 ❸또 일부는 서쪽에 있는 대해로 흘러가기도 한다(8절)”고 말했습니다.

자연의 물길은 길이 있어야 흘러갑니다. 생수의 강은 하늘 높은데서 흐르기 때문에 물길이 따로 없습니다. 헐몬산, 히말라야, 알프스, 몽블랑, 로키 산맥, 백두산을 넘어 흘러 갈 수 있습니다.  생수의 강이 사방으로 흘러나가리라는 이 예언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의 온 지경에 널리 전파되었을 때 성취되었습니다.  그 후 복음은 주변의 나라들로 퍼졌고 심지어 이방의 섬들마저도 그 복음을 깨우쳤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흘러 들어왔습니다.

3.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생수의 강이 물이 흐르는 곳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 시들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 환경이 살아납니다. 환경자체가 치유를 받지 않고는 모든 것이 다시 살아 날 수 없습니다. 환경이 다시 살아나야 모든 것이 소생할 수 있습니다.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자연환경, 가정환경, 사회 환경, 교회환경이 치유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입지 조건이 좋아 질 수 있습니다.

2). 번성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염된 물에는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화된 물에는 번성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시냇가에는 피라미들이 저녁노을에 은빛을 자랑합니다. 강가에는 각종 고기들이 풍부합니다. 비로소 어부들이 그물을 치게 되는 삶의 풍요로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생활이 나아진다는 말입니다.

엔게디에서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엔게디는 사해 접경 유대 광야의 동쪽 끝에 위치한 성읍으로(수15:52) 지중해보다 200m 낮은 지역입니다.  엔게디와 같은 황무한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날마다, 달마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날마다 좋아지고, 달마다 달라지는 하나님의 은총이 일어납니다.  에네글라임도 사해에 접한 다른 지역입니다. 쓸모없는 불모지가 생명 강으로 변하여 어부들이 그물을 치는 곳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아골 골짜기 같은 죽음의 계곡이 소망의 강으로 변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4. 풍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 강가에는 각종 실과나무들이 자라납니다(7). 강둑에 선 나무들은 잡목이 아닌 유실수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먹을 수 있는 실과가 열릴 수 있는 나무였습니다.

2). 달마다 새로운 실과를 맺습니다(12). 실과를 맺되 야생 돌 실과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달마다 새로운 실과를 맺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에,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곳에는 날마다 좋은 일, 달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로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 이번 달은 무슨 좋은 일, 금년에는 무슨 좋은 일, 기대하는 대로, 희망하는 대로, 소망하는 대로 되어지는 일들이 있으시기를 ...

3). 잎사귀들은 약재료가 됩니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들은 약재료가 되리라”(12)고 했습니다.

본문의 환상은 계시록 22:2절에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는 사도 요한의 환상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의사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최고의 약으로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 강물은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들을 소성시킬 것입니다(9).  하나님의 은혜는 죽은 죄인들을 다시 살리시며, 살아있는 성도들로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시편92:12-15절에 “의인은 ❶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❷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❸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❹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❺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끝맺는 말

이 성령의 강수가 흘러 넘쳐서 성도들의 심령에 창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의 가정에도 창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직장과 생업에도 창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사역과 교회에도 창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 삼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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