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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음성 (삼상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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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View :: 하나님의 음성(삼상 3:1-10절)
| Name : 관리자  | View : 1 | Vote : 0 | Date : am.8.26-08:39
   

* 제목 : 하나님의 음성(삼상 3:1-10절)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께서 세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성도 여러분, 이런 경우를 한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비행기가 공중을 날고 있는데 교신이 끊겼다고 가정해 봅니다.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비상 착륙한 차세대 한국 공군기 팬텀기인 F15-K 의 시험 비행의 경우는 브레이크 부분의 이상으로 타국에 착륙하였지만 대부분의 항공기 사고의 상당 부분이 우리가 상식적으로도 알고 있는 것처럼 교신이 잘못 된 경우입니다. 관제탑으로부터 정확한 정보와 지시를 받을 때 안전 운항과 착륙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교신이 끊어지는 것은 자칫하면 정말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망망한 하늘에서 항로가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당황스럽겠으며, 유사시에는 얼마나 위험할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이 우리 인생과도 같다고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인생 여정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내일 일을 알지못하는 ‘불확실성’ 혹은 ‘불가 예측성’ 이 아니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있게 내 인생이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미래를 알지 못하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목표 방향을 바로 설정하지 못하여 갈팡질팡 할 때가 얼마나 많이 않습니까?

결정해야 할 순간이 중요한 순간일수록 더욱 갈등이 심화됩니다. 내가 경헙해 보지 않았던 사건이라면 더욱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막막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이 사람과 해야 되는지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일생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인지?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중에 해야 하는지? 젊은 시절에 감기처럼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고민과 갈등의 시기입니다.

사실 경제적 위기가 닥쳐올지 모르고 사업을 시작하여 실패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어떤 업종을 택해야 하는지, 누구하고 손잡고 동업을 해야 하는지 혹은 혼자서 해야 하는지? 고민은 자본금이 많이 투자될 수록 갈등은 증폽됩니다.

자녀들은 대학에 진학을 해야 되는데 어느 대학에 가야 되는지, 전공은 무엇으로로 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이 됩니다. 미래를 위해 어떤 과를 선택하고, 어떤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지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여 졸업 후에 전혀 다른 분야에서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렇다고 침을 튀겨 가부 향방을 결정해 볼 수도 없고, 그러다가 답답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해 봅니다. 책임은 내가 져야하는데 따라한들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래서 운명적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너무 너무 답답하면 심한 경우 점쟁이한테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날 같은 문명사회에 무슨 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인간이 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합리적이라는 서양 사람들도 문명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점술에 빠지는 경향이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역설적인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납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영적으로 무지하고, 나약한 것이 인간인 것을 이러한 웃지못할 이야기와 근거를 뒷 받침하는 통계가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있을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길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면 얼마나 안심하고 평안히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가장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분께서 선한 목ㄱ자 되시어서 나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데 확실히 승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안타깝게도 죄를 지은 인간은 비유컨대 ‘하나님으로부터 교신이 끊어진 존재’인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한, 교제가 가능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단절된 것입니다. 이사야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시지만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단절되어 인간이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귀머거리가 되었고, 신령한 교신이 끊어진 상태로 전락되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마치 공중에서 교신이 끊긴 비행기처럼 허둥대다가 결국 날개가 부러져새 처럼,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 처럼 추락하며, 멸망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시간 은혜의 보좌에 달려나오신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는 참된 소망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죄의 문제가 십자가의 공로로 해결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십자가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는 신령한 교제가 가능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얻는 축복들이 바로 이것들인 것입니다.

장차 우리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큰 축복이지만, 이 세상 살 동안 하나님의 인도를 받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무엘이 바로 이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사무엘처럼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그렇게 인도 받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은 성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삼상 3:1절에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이상이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엘리의 시대는 종교적으로 캄캄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불행한 시대였습니다.

엘리는 15명 사사들 중 14번째 사사인 동시에 제사장이었습니다. 사사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종교 지도자요, 정치 지도자요,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이 시간 엘리의 죄악상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엘리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엘리는 그 당시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종교의 지도자였고, 정치와 군사의 지도자였는데 엘리는 그 당시 가정과 종교와 정치의 현주소를 나타내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엘리의 죄에 동참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엘리의 죄는 한 마디로 눈이 어두운 것이었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삼상3:2). 육체적인 눈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도 어두웠습니다. 엘리가 처음에 사사와 제사장이 되었을 때는 눈이 밝아서 잘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눈이 어두워졌고, 잘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일은 엘리의 죄로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잘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무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이는 약 12세 쯤 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 밑에서 성막의 일을 수종을 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무엘 3장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이 사무엘에게는 들렸지만 노인 엘리제사장에게는 들리지 않은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 사무엘은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는 음성을 네 번이나 들었지만 노인 엘리제사장은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엘리의 죄는 한 마디로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질 때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죄와 타협할 때 영혼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안일에 빠질 때 정신적인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종교적 형식과 의식에 빠질 때 영적인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세상 염려에 빠질 때 신령한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세상일에 바쁠 때 정신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자기의 소견과 고집이 강할 때 이성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영적인 암흑기가 올 수 있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의 찬송이 “구속한 주는 간 곳 없고 세상과 나만 보이도다” 란 가사로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도 주님을 만난 후 처음에는 눈이 밝아서 잘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눈이 어두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어 져서 그 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6).이라고 그 당시 영적 상태를 말해주고 잇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부자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자들도 눈이 멀어서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계3:17).고 주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미스바교회에 오신 모든 성도님들은 신령한 문이 열리고, 신령한 귀가 열려서 주님을 보고 듣게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하루는 한밤에 성막(교회)의 숙소에 누워있는데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입니다.(3절 참조) 그는 엘리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얼른 달려갑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세번째는 엘리제사장이 과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안내를 해 줍니다.

8절(하)~9절. “ ...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그 후 어떻게 됩니까? 네 번째 ...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 ” 즉, 하나님께서 가시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까? 삼부엘 처럼 하나님이 계신 교회에 달려 나오시고, 엘리 목사님의 신앙 지도를 받아 실천하고, 순종한 것처럼 신앙 지도에 따르시며, 설교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 당시는 사람은 다 죄인이므로 하나님이 직접 볼 수 없으니까 아마 천사를 보내심으로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무엘은 비로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또 하나님과 말씀으로 교제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사무엘의 생애는 승승장구하는 승리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기도생활로 태어났으며, 철저하게 구별된 삶을 살기위해 성전에 거하면서 철저한 경건훈련을 통해 성결한 삶을 살았고, 마음이 청결한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만나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입니까? 일개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인간끼리도 유명 인사, 유력 인사를 만나면 대단한 영광으로 아는 법인데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만나 대화할 수 있다면 세상에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힘들고,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니 얼마나 확실하겠습니까? 이 교회가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기 위해 구별되이 세우신 거루한 처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교회생활을 잘하는 성도는 아골 골짝 빈들이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요,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도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누구라도 이렇게 살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나도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만 나오는 옛날이야기 아니냐? 또 위대한 인물들, 특별한 인물들이나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 이런 의문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심령한 교재를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들에게 사무엘 처럼?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나타나시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회개하여 성결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만나 주시고, 은총을 풀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아이 사무엘도 아이 때부터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 거하면서 은혜의 눈이 열려있어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라고 응답받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나라와 민족이 처한 패망을 바로 불 수 있는 신령한 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모두 미스바 광장에 모이게 했습니다. 누구를 대적하고,??불레셋을 대적하고 타도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이 침공했지만 이스라엘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회개의 제사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모이게 헸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올바른 제사를 드리겠다고 서약하기 위해서 모이게 했습니다.

사무엘 상 7:6절에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 상 7:9절에는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였더라.” 고 말씀합니다.

그 이전에도 엘리제사장 때 이스라엘이 광장에 모여서 큰 소리로 외친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불레셋 원수를 갚자고 크게 소리를 지른 일이 있습니다. 법궤를 의지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크게 소리를 지른 일이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삼상4:5). 그러나 그 소리는 분노의 소리였지 회개의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엘리 시대의 소리는 분노와 타도의 소리였고, 사무엘 시대의 소리는 회개와 헌신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기록된 당시의 사무엘은 아직 대단한 위인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그에게도 나타났다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여전히 나를 만나주실 수 있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성전인 교회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성경을 통해, 설교말씀을 통해, 사건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기 원합니다. 그러나 어린 사무엘과 같은 순수하고, 성결하며, 철저한 헌신의 신앙생활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거룩한 하나님과 신령한 교재를 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회개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며, 더욱 은혜를 사모하여 열심을 내는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감으로 사무엘 처럼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라며, 기도에 응답받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2.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에게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말씀하시는 방법)

 계시의 과정으로 보아 대략 두 시대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 시대와 오늘 현대로 구분해 보아야 합니다.

1) 성경 시대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이 있습니다. 성경 시대란 구약 시대와 신약 성경시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성경 시대란 성경 기록이 완성되기 전 (A.D. 1세기 경)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말씀(계시)하시는 방법이 다양했습니다.(히1:1 참조)

본문에서처럼 청각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천사를 보내서 말씀하시고, 혹은 꿈으로, 환상으로, 직접 계시하셔서 다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8장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다가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잡니다. 그때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로 서 있는데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위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주었습니다.

에스겔 37장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마른 뼈의 환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른 뼈가 살아 있는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장차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보면, 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 잉태를 예고해 주었습니다. 성경 시대에 하나님이 음성, 꿈, 환상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신 것을 받은 사람들이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의 책임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조금의 오류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간섭하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오늘 현 시대에 말씀하시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① 그것은 오류가 없는 성경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기록되어서 완성된 것이 구약 39권, 신약 27권 도합 66권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성경을 가리켜 흔히 정경(正經)이라 부릅니다. 표준 성경이란 뜻입니다.

영어로는 캐논(Canon)이라 부르는데, 캐논은 본래 ‘갈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옛날에는 갈대를 자(ruler)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어원인 캐논은 표준, 규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신구약 66권의 성경에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당면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 문제, 인생의 각종 문제들 등등이 성경을 통해 해결 받을 수 있으am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성경만 잘 읽어 보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매개체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성경이 대체적인 원리야 제시해 주지만, 구체적으로 적용하도록 말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 때문에 의심이나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결혼 문제의 경우 믿는 자와 하라는 원리는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아무개 하고 결혼하라는 말씀은 나와 있지 않다는 겁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고 소리로 드려주시면 더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준다는 것을 기계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까 어디를 봐야 되나 생각하다가 아무렇게나 성경책 가운데를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가룟 유다가 ...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하는 구절이 나오더랍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 하면서 다른 데를 펼쳤더니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10:37)는 구절이 나왔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펼쳤더니 이번에는 “ ...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 ”(요13:27)는 구절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이렇게 성경을 운명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개개인의 구체적인 상황을 지적해서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할 때 영감을 불어넣으시고 기록하게 하신 성령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여전히 순간순간 역사하시고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성경말씀을 조명하여 깨닫게 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고,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우리 마음에 구체적인 뜻을 감동을 주어서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이 모든 사람을 위한 말씀이만 성경을 읽거나, 기도할 때, 사건을 만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바꾸어 깨닫게 하십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 공부를 할 때, 설교나 강의를 들을 때, 회의를 할 때, 사건을 만날 때 등 언제든지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과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심령한 지혜와 영분별의 은사를 사모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때든지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갖고 성경과 성경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토요일 저녁 내외분이 함께 어떤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에배 때 목사의 설교 중에 그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남편은 혹시 아내가 쓸데없이 그런 이야기 교회 가서 했나 오해를 했습니다. 아니라고 해도 부부는 계속 이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토요일과 주일 희한하게도 동일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서로 다그쳐 물었답니다. 하지만 부부가 전혀 그 내용을 목사님이나 심지어 가족들에도 알린 적이 없기에 성령의 역사임을 깨닫고 서로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목사가 그 문제에 대해 들었다면 오히려 그런 설교 못했을 것입니다. 시험 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오히려 설교를 못했을 수 잇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나를 위해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경우인 것입니다. 설교 듣는 분에게 하나님께서 설교로 말씀하셔서 깨닫게 하시려는 은혜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할렐루야!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이 ‘묵상’입니다. 특별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정규적으로 경건의 시간(Quiet Time)을 갖는 게 유익합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 지금 나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자 노력해야 영적인 성숙이 생깁니다.

이것은 ‘마음의 귀’로 듣는 것입니다. 폴 트루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경건의 시간을 꾸준히 가질 때 침묵 가운데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통해 읽고, 묵상하고 듣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② 그 다음 기도를 할 때 음성을??들려주십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처럼 기도할 때에도 우리 마음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이나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요.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불붙는 소원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확신하도록 하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때에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역사하십니다.

흔히 기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요청하고 부르짖는 것, 즉 ‘말하는 기도’만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반쪽에 불과합니다. 기도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요청하고 아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를 가리켜 ‘듣는 기도’라고 부릅니다.

이때 질문 식 기도가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며 좋을까요? 이런 경우 예수님이라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마음을 비우고 이렇게 여쭈어보면 고요한 중에 마음에 성령님께서 계속 불붙는 소원을 주시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하도록 기도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 깨달음과 확신을 주십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방법입니다. 물론 육신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로 듣는 음성인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모나미 볼펜 사장님이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됐답니다. 울면서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하나님이 책망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너 사업한답시고 주일 잘 지켰냐? 십일조는 제대로 했냐? 성경은 얼마나 읽었냐?” 정곡을 찌를 음성이었습니다. 한번만 살려 주시면 잘 하겠다고 고백하고 성경을 읽는데 요한복음 21장이 눈에 띄더랍니다.

거기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던지라고 명한 후 많은 고기가 잡힙니다. 그때 물고기 수가 153입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모나미 153 볼펜을 만든 겁니다. 한국 국민들, 더 나아가 세계인 전체가 1자루 이상 사도록 50억 개를 생산할 것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50억 개 목표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기도 가운데 확실한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과 기도가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된 방법(main method)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감동과 깨달음과 확신을 주심으로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확신하도록 역사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아멘>


③ 기타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 통해서, 목회자의 신앙 지도나 즉 상담이나 권면 등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 조심해야 합니다.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인도받는 사람이어야지 아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못하므로 예수님을 위한다고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요청하다가 예수님께로 부터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한다.”고 책망을 받은 경우가 그러합니다.

혹은 환경이나 사건 등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난을 당할 때 큰 깨달음이 오면 그게 곧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시대에 말씀하시던 방법(꿈, 환상, 천사 등)인 영적 체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가능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시대에 제한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꿈의 경우만 생각해 봐도 꿈이라는 것이 모두가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자기 마음속에 잠재된 생각이나 감정이 표출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혹은 개꿈일 수도 있고, 심한 경우 마귀가 시험하려고 주는 꿈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경우들은 성경의 정신과 일치하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어느 교회 집사님이 한번은 돼지꿈을 꾸었답니다. 좋아라고 돈을 다 털어 증권을 왕창 샀답니다. 그 후 왕창 망했답니다. 1992년도인가 이장림의 다미선교회가 예수님 재림 일자와 시간을 예언한다고 난리였습니다. 그때 무엇을 보았다느니 들었다느니 하면서 미혹할 때 많은 사람들을 미혹을 당했습니다. 성경과 불일치하는 내용을 보고 가짜임을 알아야 하는데 많은 교역자와 신자들과 지식층이 미혹과 거짓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 경우도 있습니다. 모 교회 권사님의 손녀 댁 이야기입니다. 밤에 내외가 자는데 어린 딸이 흔들어 깨우더랍니다. “아빠, 하나님이 아빠 깨우래.” 밖으로 나가봤더니 그 아파트에 불이 났습니다. 부리나케 대피해서 위험을 모면했다고 합니다.

저의 부친이 암에 걸려 수술을 받게 전에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날 퇴원을 했고, 회개하고 기도하다가 건강을 회복하는 치유의 은사를 경험했고, 결국 돌아가실 때도 천국과 지옥을 보았고, 마지막 유언은 예수 믿고 구원 받아 내가 가는 곳에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친척이 함께 오길 원한다고 했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벽 한시에 숨을 한번 몰아쉬지 않고, 눈을 뜬 채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마치 살아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돌아 가신지도 확인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정도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개인적인 체험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된 방법은 성령을 통해 성경 말씀과 기도를 사용하시고 사건을 만날 때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이런 방법들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 말씀 묵상 훈련이 되지 않아서, 기도 훈련이 되질 않아서 자급자족이 안 되니까 엉뚱하게 이런 보조 수단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객이 전도 되어버린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꿈이나 환상을 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성경의 원리와 일치하나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잘 배우셨으니 사무엘 처럼 영적으로 깨어있고, 먼저 죄를 회개 하여 영혼이 소생하고 살아야 합니다.

엘리제사장은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의 죄도 자녀들의 죄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제사장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2:29)고 책망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엘리제사장은 성소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했고, 아들들을 신앙으로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했습니다. 종교를 하나의 의식으로 직업으로 하나의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은 불량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제사를 멸시하였으며, 심지어 구약의 제사(신약의 예배) 때 사용하는 제물을 갈고리로 낚아채어 훔쳐가곤 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거하고 계신 성소에서 간음행위까지 자행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를 멸시하고, 주일 성수를 멸시하고, 하나님께 드린 또는 드려야 할 헌금을 자기 마음대로 착복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성전해서 부덕한 행동인 간음행위까지 자행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그런 악행을 금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저 이렇게 부드럽게 타이를 뿐이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삼상2:23,24). 그런 부드러운 책망에 불량배 아들들이 아비의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죄악 된 자리에서 강권하여 자녀들을 신앙으로 철저하게 지도해야 하며, 심지어 신앙생활은 강권해야 합니다. 그러나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은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상상2:25). 이와 같은 부드러운 책망을 한 엘리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들은 사무엘처럼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이런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인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뜻이 철저하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시켜 주시고, 불붙는 소원을 주시고 기도의 영을 부어 주시며, 확신을 주시며,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실 때에 순종하고 실천함으로 항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시고, 신령한 은혜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 선지자처럼 신령한 하나님의 음성을 말씀과 기도와 사건을 통해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 헌신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으시고, 능력있는 신앙생활로 승리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황 영 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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