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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과 그리스도 (요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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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관계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도 모두의 관계성 속에서 알아야지 나하나 홀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가령 피아노에 비유한다면 피아노 속에는 240개의 철사 줄이 4만 파운드, 약 20톤의 장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 줄이 피아노와는 상관없이 분리되어 있다면 단순한 철사 줄 외에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철사 줄이 피아노 속에서 한 부품이 되면 피아노와의 관계에서 이 줄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피아노 속에 있는 많은 줄 가운데 어느 한 줄이라도 늘어나거나 끊어지게 되면 피아노는 제 구실을 못하게 되므로 한줄 한 줄이 다 귀중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볼 때 나의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 단위로 볼 때에도 내가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부모와 형제와의 관계에서 나를 알아야지 나 혼자만을 놓고 본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족과 얽혀있는 인간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기쁨은 가족의 기쁨이요, 나의 슬픔은 가족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험악한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이 본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일까요?

1.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본문 10절에“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반드시 만들어진 목적이 있습니다. 만들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건물의 경우를 보더라도 지어진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성전 내의 모든 성물도 만들어진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은 있게 된 목적에 합당할 때에 한하여 가치가 있습니다. 만일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면 그것은 페기처분을 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성물이 아니라 쓰레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피조 된 목적에 합당할 때, 그에게 영생이 있고, 행복이 있고, 풍성한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에 합당하지 못했을 때 그에게는 하나님의 버림이 있고, 징계가 있고, 지옥의 형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창조의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1에“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하셨습니다.
또한 전도서 12:13에는“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내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 정욕, 쾌락 등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5에“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들림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은 다윗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큰 축복을 받은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22에“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쓰며 살아간 다윗은 양치기 소년이었습니다. 그가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왕이 되었습니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육상의 삼관왕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끈 여자 육상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라고 불리는 그리피스 조이너입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내자 많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였습니다. 그 가운데 미 NBC방송의 한 기자가“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하며 달립니다. 최선을 다함으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만큼 인생의 보람을 느껴 본 적은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년에 한번 들어볼까 말까한 유명한 흑인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n, 1902-1973)은 노래를 잘 부름으로 영광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취임 시에 미국 국가를 독창했고, 58년에는 아이젠하워가 유엔대표로 지명까지 했으며, 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훈장인“대통령자유상패”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가 40년 간 성악활동을 하고 은퇴할 때 하는 말이“나는 보잘것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으므로 유명해진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연설하여 미국 모든 시민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사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인간이 피조 된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그의 삶의 발자취는 아름답습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을 존경합니다. 우러러 봅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분만 아니라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넘치는 사랑과 보호와 축복이 있습니다. 내세의 영광된 상급이 있습니다.

둘째, 화목의 직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19에“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그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된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었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목 된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고린도후서 5:18의 말씀인“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화목 된 우리들은, 아직까지 하나님과 원수 된 불신 영혼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먼저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함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만드시고 부르신 목적입니다.

중국에 전도를 열심히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였는데 별명이‘송전도’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도를 많이 하고 예수님을 잘 믿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그만 3남매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저렇게 예수를 잘 믿고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왜 빨리 죽을까?”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의 자녀 3남매가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맏딸 송경량은 중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문의 아내가 되었고, 그의 아들 송자문은 경제학자로서 중국의 경제 장관이 되었고, 막내딸인 송미령은 장개석 총통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송전도의 3남매가 한때 중국 전 영토를 다 통치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현세와 내세에 큰 복과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29~30)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며, 헌신하는 사람들의 그 귀한 정성을 꼭 갚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마태복음 28:19~20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나를 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세상의 승리자가 됩니다. 성공자가 됩니다.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과 항상 함께 하실까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를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14~16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십니다.

본문 10절에“그가 세상에 계셨으며...”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말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말의 동사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분명합니다. 그래서“교회에 갔다.”하면 과거이고,“교회에 간다.”하면 그것은 현재입니다.“교회에 갈 것이다.”라고 하면 미래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언어인 헬라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헬라어 동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딱 한번의 일로 끝나는 동사가 있고, 또 하나는 계속적인, 연속적인 동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적이냐 아니면 일회적이냐 하는 두 가지로만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에“계셨으며...”하는 것은, 계속적으로 되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그가 세상에 계셨으며...”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때 오셨다가 33년 후에 가버리신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동작으로 계시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공기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곁에 계셔서 내 생각과 내 언어, 내 행동 하나하나를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사정, 내 처지를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매사에 조심하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어려움이 있어도 소망과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토록 성령 충만한 믿음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한 실패자가 되어 자신에 대한 깊은 좌절감으로 엎드러져 있었던 최용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젠 이런 가증스런 위선자에게서 주님께서도 떠나셨으리라 는 생각에 그는 더욱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83년 9월 어느 날 새벽, 하나님께서 그의 등 뒤에서 그를 밀고 계시는 주님의 환상과 함께 그가 만든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가 너를 도우리.

나의 등두위세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가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가 너를 도우리.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고, 귀에는 아무 음성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공기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험한 세파 헤치고 승리한 사람들은 모두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소년 다윗이 블레셋 명장 골리앗을 죽인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습니다.
전쟁경험이 전혀 없었던 아브라함 링컨이 북군의 사령관이 되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비결은 바로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패색이 짙었던 6.25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닫고, 힘차게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본문에“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창조된 넓은 땅에 오셨다는 뜻이 아니고, 불신하는 세계,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생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악의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무지와 인간의 죄성이 이 세상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죄악으로 우둔해진 인간은 하나님은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습니다. 영생의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니 참 만족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눈먼 장님이 길을 찾아 해매이듯 온갖 우상을 숭배하며, 그곳에서 복을 구하며 살아 왔습니다. 헛된 삶을 살아 왔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였으며, 이 지구상의 모두의 과거 역사였습니다.

영국 런던의 한 악기점에 남루한 복장을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그 남자는 낡은 바이올린 하나를 내밀며 부탁했습니다.“이 바이올린을 5달러에 사지 않겠습니까? 배가 너무 고파서요.”악기점 주인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돕는 셈치고 그 바이올린을 5달러에 샀습니다. 중년의 남자는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돌아갔습니다. 악기점 주인인 벤츠씨가 바이올린의 활을 당겨보니 깜짝 놀랄만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 나왔습니다. 가득한 먼지를 털어 내고 속을 들여다보았더니“1704년산 안토니오 스트라이바리”란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이올린 제작의 거장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 이었습니다. 벤츠씨는 급히 달려 나가 그 사람을 찾았으나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바이올린은 10만 달러(1억 2천만 원)를 호가하는 최고의 명품이었습니다.

무지함의 결과가 10만 달러나 되는 명품을 5달러에 팔았습니다. 바이올린의 가치에 대한 무지함도 이러할 진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몰랐으니 그 안타까움은 오죽 하겠습니까? 여기에 인간의 불행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빛의 사명을 받고 지음 받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인간 창조의 본분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화목의 직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창조주이시며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항상 내 곁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고, 나를 지키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차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셋째, 이 하나님을 우리는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본분을 다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익 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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