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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의 은혜 (요 14: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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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안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문 27절을 보겠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화평이라는 말과 평안, 평강, 평화라는 말은 다 같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첫 인사로 '샬롬(shalom)'이라고 합니다.  평화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피스(peace)'라고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부터 시작된 인류의 역사는 투쟁과 갈등과 죄악의 역사입니다.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은 자기 잘못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인데 그 분풀이를 자기 동생 아벨에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물으시니까 "제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핑계입니다.  가인의 이 핑계는 오늘 날까지 내려왔습니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남에게 책임전가합니다.  그러기에 화평이 없어집니다. 
  이러한 인간의 역사 속에 그리스도는 평화를 주시려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양을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로마병정들이 무서워 문을 닫고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주신 말씀도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신 최고의 복은 평강입니다.  평강의 반대는 전쟁입니다.  불안입니다.  현재도 세계 도처에서 전쟁의 위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안의 요소가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휴전선을 비롯하여 중동서에는 지금 이라크가 수년 동안 계속해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말씀하실 때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생각하면 불안케 하는 자는 마귀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슨 일이 있던지 화평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첫째, 세계에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일의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스탈린이나 김일성, 모택동도 같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국가에도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독재자가 정권을 잡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산주의를 이겨야 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공산당 주장을 옳게 여기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이는 더 큰 불안을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근간에 강걖씨가 '6.25사변은 통일전쟁이고 맥아더가 참전하지 않았으면 한 달 이내에 통일되었을 것이다'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주장입니다.  그는 공산통일 환영자입니다.  현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통일은 오직 민주통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강이 있습니다.  교회 공동기도제목을 갖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노이 리터가 쓴 '소련 여자수용소'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녀는 스위스에서 출생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소련이 지상의 낙원인 줄 착각하고 소련에 유학을 갔다가 이유없이 체포되어 11년간 시베리아 북부에서 감옥과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책 내용은 그곳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짐승과도 같은 사내들에게 끊임없이 육체를 먹이로 제공하여 여자로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치욕을 겪으면서 견디다가 고국 스위스로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소련에는 세 계급이 있는데 1)수인(죄수)  2)이전에 수인이었던 사람  3)미래에 수인이 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산국가의 세계입니다.  사람이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사회와 국가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 가정에도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시편 133편 1절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평화의 모습입니다.  형제가 동거할 때 가정에 평화가 있습니다. 
  시편 128편 1-4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습니다.  평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정의 평화를 말합니다.  한 없는 복을 받아 살아갈 가정의 모습입니다. 

  넷째, 개인에게도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가 평화하고, 국가가 평화하고, 사회에 평화가 깃든다 해도 그것이 내 개인과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내 가정과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필요한 것이 참 많습니다.  학력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하고, 직장, 직위, 돈도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길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번은 갈 수 밖에 없는 세상을 사는데 마지막 시간에 무엇이 필요할 것 같습니까?  학력, 지식, 경험, 직장, 직위, 돈, 재물도 다 필요없고 오직 건강일 것입니다.  내가 평강해야 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평강의 출발은 나입니다.  나부터 건강할 때, 내 가정이 평강하고, 사회가, 국가가, 온 세계에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불안의 요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내가 불화의 요소가 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잘못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던 평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평강과 평화가 주어질 수 있습니까?
  첫째, 화평은 성령의 열매인 것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갈라디아서 5:22-23)  어떤 정치적인것,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육체대로 살면 화평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악령이 장난하기 때문에 불화만 있고, 불안만 있고, 문제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육체의 일을 버리게 되며 화평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찬송가 455장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1절)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2절)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3절)
  주님을 찬송 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후렴)

  화평의 열매는 주 안에서 느끼는 열매입니다.  성령충만할 때 나의 존재의 위치를 알게 됩니다.  나는 세상에 살지만 '예수님 안에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거기에서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라는 찬송이 나오며 화평의 열매가 나에게서부터 맺어지는 것입니다. 

  둘째, 화평은 기도할 때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는 허공을 치는 독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내 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내 사정을 아뢰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크게 닥치면 기도하고, 작은 일은 기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기도 드릴 때 우리는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못나고,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가를 알게 됩니다.  내가 죄인인것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성도는 생활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의 기도, 취침 전의 기도, 식사기도 등등 모든 것이 기도입니다.  교회의 모든 공식 행사도 기도 후에 시작합니다.  예배도 사실 기도회라 이름 붙인 것이 많습니다.  새벽기도회도 365일 계속됩니다.  철야기도회도 52주 계속 됩니다. 
  염려, 근심을 버리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염려는 어떤 문제가 자기 힘으로 안될 때 하게 됩니다.  인간에게 아무리 큰 일이라도 하나님께는 작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을 주십니다.  인간의 계획과 노력으로 얻지 못하는 꿈에도 상상 못할 평강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기도했나요(1절)     
  맘에 분이 가득 찰때 기도했나요 
  나의 앞길 막는 친구 용서했나요(2절)
  어려운 시험 닥칠 때 기도했나요
  주가 함께 당하시면 능히 이기리(3절)
  나의 일생 다가도록 기도하리라
  주께 맡긴 나의 생애 영원하리라(4절)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시오(후렴)

  셋째, 평강은 사랑할 때 주어지는 복입니다.(고린도전서 13:4-7)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있는 곳에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있기에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그 사랑을 믿을 때 우리는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기쁨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이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모시리'  그 기쁨은 평안으로 나타납니다.  세상이 주는 평강이 아니라 하늘이 주는 평강입니다.  믿음으로 얻어지는 평강입니다.  사랑은 기쁨을 주고 그 기쁨은 평강과 연결됩니다.  도움을 받아서 느끼는 것 보다, 남에게 도움을 주어서 느끼는 것, 이것이 사랑이라면 이 사랑은 기쁨을 주고 그 기쁨은 평강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워하면 불안해집니다.  왜? 거기에는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없는 곳에는 평화가 주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가정에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는 가정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의 장소가 됩니다.  거기에 평화가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평화는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하지 맙시다.  내가 먼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됩시다.  그럴려면 내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는 곳곳이 웃음이 깃들고 평화로운 복이 넘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거기가 가정이던, 교회이던, 직장이던, 어느 장소라도 평강을 심어주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넷째, 내가 겸손할 때 내가 가는 곳은 평화가 심어집니다.  빌립보서 2:5-11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나를 낮출 때 평화가 주어집니다.  나를 낮춘다는 말은 겸손을 말합니다.  겸손할 때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토마스 아킴티스는 평화를 가져오는 네 가지 비결을,  1)네 자신 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  2)많은 소유의 욕망을 포기하고 현재를 자족하라.  3)항상 자신을 낮추라.  4)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교만할 때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겸손은 분쟁을 그치고 평화가 주어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내가 남보다, 이웃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은 내 권리를 보류하고 양보할 때 주어집니다.  거기에 평화가 있습니다.  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면 충돌이 생기고 분쟁이 발생합니다.  찬송가 469장 1절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인생의 최고의 복은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성령충만으로 주어지는 평화입니다. 
  1)하늘에서 주시는 평강입니다.
  2)이는 기도할 때 얻어지는 복입니다.
  3)내가 사랑할 때 이 평강은 얻어집니다.
  4)겸손한 삶을 살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성도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평강을 심어주는 -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김 찬 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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