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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사 4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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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이미 충분히 배웠으니 하산해도 되겠습니까?"
  "충분하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스승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습니다.
  "꽉 차서 더 이상 담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그릇에 돌을 담아 오너라."
  제자는 스승이 시키는 대로했습니다.
  "꽉 찼느냐?"
  스승이 물었습니다.
  "찼습니다."
  스승은 돌가루를 몇 줌 집어 그릇에 부었습니다. 그러나 그릇은 넘치지 않았습니다.
  "꽉 찼느냐?"
  스승이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꽉 찼습니다."
  스승은 다시 모래를 한 움큼 집어 그릇에 부었습니다. 그래도 그릇은 넘치지 않았습니다.
  "꽉 찼느냐?"
  "이번에야말로 꽉 찼습니다."
  스승이 이번에는 물을 한 잔 따랐습니다. 여전히 넘치지 않았습니다.
  "꽉 찼느냐?"
  제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지식은 영원히 끝이 없고, 공부를 할 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늦어도 늦은 것이 아닙니다. 늘 겸손하게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사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시고 영원히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유일성과 절대 주권을 기뻐하십니다.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지난 날 우리 모두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셨고 지금도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유익하고 좋은 일을 행하듯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하신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가장 축복된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 모두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굳게 믿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과 인생 가운데 크게 역사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전진하라
  본문 18절"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새로운 구원은 과거 출애굽 때 있었던 홍해 사건에 대한 기억을 말소시킬 만큼 놀라운 구원입니다. 사실 홍해 사건은 광야 시대와 왕국시대 동안 구원의 전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뇌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래의 구원은 홍해 사건조차 진부한 옛 일로 취급해 버릴 만큼 획기적이고 경이로운 성격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임할 새 구원은 오직 메시아를 통한 대속 사역을 의미합니다. 메시아를 통한 대속 사역이 홍해 사건에 비교할 수 없는 큰 구원의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바다는 온 이스라엘과 믿음의 백성들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 구원하고도 남은 구원의 바다인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진 홍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죽음에서 구원하신 구속 사건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1867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알래스카(한국의 7배 151만 8,717평방 킬로미터)를 재정이 약한 소련으로부터 720만 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헐값에 매입한 땅일지라도 미국 의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매입하였으므로 의회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미 의회에서 현지 답사를 한 후 "알래스카"는 쓸모 없는 얼음 창고가 아니라 금, 은, 보화, 그리고 엄청난 석유의 매장량과 많은 어류 등 값으로 산출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보고였으므로 미국 의회에서는 존슨 대통령의 "미래를 예견하는 안목"에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고 합니다.
  목화를 재배한 땅에는 질소가 없어져서 그 어떠한 작물도 재배가 불가능하여 유휴지로 놀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으나, 땅콩은 오히려 질소가 없는 토양을 좋아하여 목화농사의 후속 작물로 적합한 것처럼, 사람 역시 아무짝에 쓸모 없을 것만 같은 인물도 그 사람이 꼭 필요한 곳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아무 능력도 없고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나를 탄생시킨 하나님의 이유는 분명히 있을 거란 의미"를 확고히 감지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한 뜻이 있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여러분에게도 분명 "미래를 예견하는 안목"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수세기 전에는 통이 아닌 가죽부대에 포도주를 저장했습니다. 동물 가죽을 충분히 말리면 포도주 용기 모양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새 가죽부대는 부드럽고 유연성이 있지만 오래될수록 탄력이 사라져서 휘어지지 않고 딱딱하게 굳어서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모두 땅바닥에 쏟아집니다. 예수님은 가죽부대의 비유를 들어 제자들의 비전을 키워 주셨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마9:17). 좁은 생각으로는 폭넓은 삶을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옛 방식과 생각의 틀에 갇힙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원대한 비전을 품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과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인생은 바뀌지 않습니다. 과거에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낡은 가죽부대는 버립시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행하실 크신 일을 기대합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패배란 없습니다. 하나님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며 그분이 문을 여시면 아무도 닫을 수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여러 가지로 답답하고 어렵지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전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화목하라
  본문 20절"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미래에 행하실 일은 옛적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새 일에 대한 묘사입니다. 메말라 죽어있는 상태에 생명의 물이 쏟아짐으로 다시 생명이 회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 때에 광야와 사막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베풀어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자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베푸실 은혜의 생수는 심지어 들짐승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이는 구원의 은총이 택함받은 백성들뿐만 아니라 피조계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것임을 뜻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과 피조물까지도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갈등과 싸움의 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화목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화목은 선택이나 권면이 아닌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 부대가 숲 속에서 적군을 만났습니다.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병사가 낙오됐습니다. 두 병사는 부대를 다시 찾아가기 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서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마을 출신이었던 그들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10여 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걷는 것보다 참기 힘든 것은 배고픔이었습니다. 비상 식량은 떨어진지 오래였습니다. 며칠을 나무 뿌리로 연명하다가 사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사슴 고기 덕분에 며칠은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어떤 동물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사슴 고기는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젊은 병사가 고기를 배낭에 넣고 짊어졌습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갑자기 적군과 마주쳤습니다. 두 사람은 기지를 발휘해 교묘하게 적군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안전하겠지'하고 안심하는데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앞서 가던 젊은 병사가 총에 맞았습니다. 다행히 총알이 어깨에 스친 가벼운 부상이었습니다. 뒤에 있던 병사가 황급히 뛰어왔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횡설수설하면서 젊은 병사를 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옷을 찢어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밤이 찾아왔습니다. 부상당하지 않은 병사가 어머니를 부르며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총을 맞은 젊은 병사는 망연히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 지독한 상황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며 낙담했습니다. 배고픔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사슴 고기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그들은 다행히 아군에게 발견되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50년이 지났습니다. 총을 맞았던 젊은 병사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누가 나에게 통을 쐈는지 알고 있어요. 함께 가던 전우였습니다. 그가 나를 안았을 때, 그의 총구에서 화약 냄새가 났거든요. 그 당시에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왜 나에게 총을 쐈는지 아세요?"
  앞서 가던 젊은 병사를 쏜 것은 뒤에서 걷던 또 다른 병사였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사슴 고기를 혼자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병든 어머니를 위해 꼭 살아남고 싶어했어요. 그렇지만 어머니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죠. 고향에 돌아와서 그와 함께 묘지를 찾아가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더군요.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때 진심으로 용서했어요. 우리는 그 후로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죠. 50년 동안 지내면서 한 번도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그가 죽었고, 이제 내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털어 놓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셨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이 거져 용서받았습니다. 용서받은 우리들은 조건 없이 모두를 용서해야 합니다. 깨어진 화목을 회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소유했어도 하나님과 이웃과 불화하고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불화하고 싸우는 사람을 하나님은 쓰시지 않으십니다. 갈등과 싸움이 만연한 세상이지만 큰 구원받은 성도답게 화목한 삶을 누림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찬송하라
  본문 21절"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놀라운 새 일을 행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구원을 체험케 하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찬양을 기뻐하시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비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숙한 자녀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찬양할 때 인간과 하나님이 가장 행복합니다. 가장 기쁜 순간입니다. 찬양할 때 사탄이 떠나가고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죄사함, 치유, 기도, 헌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조건이나 이유가 먼저가 아니라 먼저, 무조건 먼저 찬양하면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한 황제가 하루는 평민 복장을 하고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려고 왕궁을 빠져 나왔습니다. 우연히 한 군인을 만나 길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군인은 어찌나 거만한 자세로 대답을 하는지 황제는 그 군인에게 계급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군인은 황제에게 "자네가 한 번 맞춰보게나"라고 말했습니다. 황제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사관이신가요?"
  "아니야! 그 위일세!"
  "그러면 소위입니까?"
  "아니야. 그 위야."
  "그러면 대위십니까?"
  그때야 장교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평민 복장의 황제를 보고 장교는 물었습니다.
  "자네도 계급이 있나?"
  "네. 대위님! 한 번 맞춰보시지요."
  황제는 대답을 했습니다.
  "자네는 일등병인가?"
  "아니 그 위입니다."
  질문과 대답이 계속 진행되는 동안에 어느덧 대장까지 이르렀지만 황제는 "그 위"라고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장교는 "원수 각하십니까?"라고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황제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습니다. 원수 보다 위라면 니콜라이 황제뿐이라는 생각에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죽을 죄를 지었으니 죽여달라고 엎드려 울었습니다. 그때 니콜라이 황제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그 대위를 일으키면서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우리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황제인 나나 대위인 너나 그 분 앞에선 서로가 동등한 사람에 불과하다"라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고 합니다. 겸손해야 사람대접을 받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더욱 더 겸손하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찬송으로 믿음 충만, 기적을 체험하는 찬송의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됩시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인간은 약하고 미련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때입니다. 전진합시다. 화목합시다. 찬송합시다. 여러분들과 가정과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 김 정 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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