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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 비유(2) (눅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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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에는 3가지 비유 즉,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잃은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들의 아주 중요한 공통점은 “잃은 것이 있다면 잃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99마리의 잃지 않은 양이 있다면 1마리의 잃은 양이 있고, 9개의 잃지 않은 드라크마가 있다면 1개의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있고, 집나간 아들이 있는가 하면, 집에 있는 아들도 있습니다. 이 둘의 양면 속에서 주인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은 잃지 않은 것 보다 오히려 잃어버린 것들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이 오늘날 우리입니다.  눅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의인도 사랑하지만 죄인을 더 사랑하십니다.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생각도 마음도 말도 행동도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그런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여기서 세 비유의 공통점을 살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셋 모두 다 잃어 버렸다가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잃어 버렸다가 찾은 존재로 보고 계십니다.  마10:5-6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눅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십니다.

2.양, 드라크마 비유는 비 인격체의 비유로 주인이 찾아야 되는 것인 반면에 탕자 비유는 인격체의 비유로 자기가 회개하고 돌아와야 된다는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찾아서 구원하는 구원이 있는가 하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고 자기가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는 구원도 있습니다.  신학은 크게 칼빈주의 장로교 신학과 알미니안 주의 감리교(성결교) 신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장로교 칼빈 신학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으로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잃은 양과 잃은 드라크마 비유는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주인이 찾아와서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 믿으면 구원,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것이 바로 알미니안 주의입니다. 이것은 탕자 비유에 관련된  신학적 사고입니다. 구원의 주권을 하나님께 둔 것이 장로교적 관점이고 구원의 주권을 사람에게 둔 것이 감리교적 사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유가 서로 보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도 이 두 가지 사상을 뒷받침해주는 성경구절들이 있습니다.  엡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마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즉,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은 하나님이 선택해야 하기도 하지만 구원은 자기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 옳습니다.  즉, 내가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3.찾는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회개하는 구원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누군가를 위해 전도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계속 기도가 된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전도대상자)을 구원할 계획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한편, 기도가 잘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뒤안길을 볼 때, 삶에서 구원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사람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딤후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서 험산준령 헤매는 주님의 심정을 안다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회개하게 하시지만 사람이 할 일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구원받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일 입니다.

4.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 찾을 때와 찾지 못 했을 때의 감정이 다릅니다.
  본문의 등장인물은 예수님을 제외하고  “모든 세리, 죄인들, 바리새인, 서기관”입니다.  눅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잘못된 사람에게 찾아오는 감정은 원망과 분노입니다.  눅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한편, 구원받은 사람의 감정은 기쁨입니다. 눅15: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5.구원받은 것과 구원받지 못한 것의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칼빈은 사도 바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이로라’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 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는 구원 받았기 때문에 구원에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회개는 “구원받은 증거를 삶 속에 표현하는 것”입니다.  딤전5: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눅19:1-2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는 부자의 모델입니다.  눅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주님을 만나면 기쁨이 있습니다.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 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니다’ 삭개오는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십니다.  눅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눅15: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잃은 자를 찾으면 즐거워하시고 잔치 하십니다.  눅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오늘 우리가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날, 주님은 하늘에서 잔치를 벌이십니다.
(장 경 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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