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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815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4)]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신 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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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주일 설교 말씀) 
금년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일본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1945년 8월 6일)되어 23만의 사상자가 난지 60년이 되었습니다. 8.15 민족해방은 체험적인 세대나 역사적인 세대를 막론하고 매우 뜻깊은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8.15 민족해방은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극한 환난 중에서도 의인을 보호하시기 위해 그 시기를 단축시키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8.15 민족해방을 통해 우리는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에게는 국가의 기본요소인 국토와 국민은 있었지만 주권이 일제에게 수탈당하였던 것입니다.

젊은 남자들은 징용과 징병이라는 명목아래 끌려가서 무참히 죽어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여자들이라기보다는 어린 소녀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정신대로 끌려가서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글도 사용하지 못했고 통탄할 일은 창씨개명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습니다. 저들은 조국의 명산(名山)과 기암괴석(奇巖怪石)을 비롯 조상적부터 전설같이 전해오던 백성들의 소망과 위로가 될 만한 곳이면 쇠말뚝을 박고 파괴시켰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극한 절망으로 인해 패배감에 빠지도록 한 것입니다.

일제의 한국기독교에 가한 박해는 초대교회 300년의 로마황제들이 가한 박해를 재현하는 듯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1931년의 일만(日滿)전쟁, 1937년 중일(中日)전쟁을 이끌었던 일본 군국주의자들이었습니다. 마침내 1941년 미국과의 전쟁 도발과 함께 한국교회를 향한 일제의 박해는 최소한의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자들과도 같았습니다.

Ⅰ. 8.15 민족해방 직전의 한국 기독교입니다.

한일합병 이후 백성들이 나라를 잃어버렸을 때 한국교회는 나라 잃은 백성들의 한을 달래주는 적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한이 민족독립으로 성화될 때 민족 교회로서의 그 산실 역할을 해 왔습니다. 8.15 해방 직전의 한국 기독교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야기된 일제의 탄압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저들은 신사참배가 국가의식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일본의 천조대신이 그리스도보다도 높다고 세뇌시켰습니다. 저들은 국가가 종교보다 우위에 있다고 모든 목사들에게 설교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군납을 위해 교회의 성종을 강제로 회수해 가기도 했습니다. 1942년 3월에는 강제로 일본기독교 조선혁신교단을 조직케 하고 모세오경, 요한계시록을 삭제하게 하는가 하면 찬송가까지 개편했습니다. 나중에는 구약과 신약 중에 4복음만을 강론토록 했습니다. 특별히 예수 영광이나 재림과 심판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우리의 구주라든지, 영원한 왕이시라든지 지도자라는 말들은 금하도록 했습니다.

1943년에는 강제로 교회 내 강단에 설치된 일장기 배례와 천황에 대한 배례가 시작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전장병의 무운을 위한 기원과 황국신민서사를 예배시간에 제창토록 했습니다.
주일학교는 일요수련회로 칭하고 수양회와 부흥회는 연성회(鍊成會)로 바꾸게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방해하기 위해서 1943년 9월부터는 마침내 주일 오후예배와 수요예배를 금지시켰습니다. 예배당은 갑자기 일제들의 세력 확장을 위한 요긴한 거점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일본어 강습장이나 군수공장으로 징발 당했습니다. 일제는 한국기독교를 통폐합하고 일본 기독교 조선교단 아래로 소속시켰습니다. 예배당이나 교단을 통폐합하는 과정에 불복하는 자는 함구령이나 금족령을 내리는가 하면 투옥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교회는 그 뿌리부터 절단이 나는 듯 했습니다.

200여 교회가 문을 닫고 2,000여 명의 성도들이 투옥되고 50여 명의 교직자들이 순교했습니다. 성도들은 일제의 폭정에 못 이겨 사생결단으로 유리방황하면서 예배의 처소를 찾아 유랑생활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을 향한 일제의 탄압은 전국에 걸쳐 자행되었습니다. 수많은 지도자와 성도들이 일제의 고문에 불구가 되는가 하면 죽인 다음에 불을 질러서 흔적조차 없이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Ⅱ. 8.15 민족해방과 한국 기독교입니다.

8.15 해방은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했습니다. 일제의 하인이나 종의 신분으로 전락한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해방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점을 정직하게 시인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일제는 포악하게도 1945년 8월 17일을 기해서 한국전역의 교회지도자들 중에서 사상이 불온한 자들을 색출하여 같은 날에 모두 죽이기로 결정하고 그 명단 작성을 완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난의 날을 감하시고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므로 일제의 폭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을 기하여 이 땅에 해방의 함성이 삼천리 반도를 진동하게 했습니다. 마침내 1945년 9월초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아베 누부유키(阿部信行) 조선 총독이 연합국 측에 제출할 항복문서에 서명하게 되었습니다.
8.15 해방의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우성(宇聲) 석원태 목사의 표현은 매우 명료하다고 하겠습니다.

첫째로 정치사적 입장에서 볼 때 일제의 군국주의 탄압에서 벗어나 왕정체제에서 민주주의 정치체제로 옮아가는 정치적인 출애굽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씨조선 5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주의 나라가 도래하고 새 역사의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사적 입장에서 볼 때 천조대신의 우상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영적인 새 출애굽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와 함께 8.15 해방의 종소리는 이 땅위에 무너진 제단의 수축을 알리는 회개와 소망의 종소리였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역사의 중심은 구속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환난 날을 감하시고 해방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Ⅲ. 8.15 민족해방과 한국교회의 과제입니다.

8.15 광복은 일본을 굴복시킨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정결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해방 후에도 한국교회는 여전히 일본 태양신 숭배자들에 의해 교권이 계승되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계속된 한국 기독교의 혼탁한 분위기는 남북 분단이라는 정치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해방 후 친일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이해관계 때문입니다. 해방이 되자 성급한 사람들은 일본 고등계 형사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친일파 역적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민족적 여론이 무시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정치, 경제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49년 친일 역적들을 재등장시켜야 했던 것은 민족 양심의 아이러니 입니다.
한 가지 예로 1919년 3.1 운동 이후 서울역에 도착한 사이또 총독에게 60세가 넘은 강의규 의사가 폭탄을 투척했는데 그분을 체포한 사람이 바로 한국인 고등계 형사였습니다.
여관에 피신해 있던 강의규 의사를 체포할 만큼 잔인한 친일파까지도 이승만 대통령은 모두 석방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친일파를 기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도 어쩔 수 없이 세상정치의 조류에 편승했던 것입니다. 대체로 친일파 목사들이 큰 교회를 시무하고 한국교회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식민성 사고를 탈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른바 문민정부 시절에 우리의 주권의 상징이 된 경복궁을 가리우고 일(日)자로 세워놓은 식민정치의 총본산인 총독부 건물을 부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미 사용되고 있는 활용적(活用的) 일본어 1,400여 단어를 우리말로 고치고 사용을 억제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우선해야 되는 것은 우리의 대중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식민잔재 정서의 청산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전반에 깔려있는 상대적 패배의식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것을 스스로 열등시하는 자멸의 사고방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멀리 삼국 시대 이후부터 있어온 사대주의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지만 이를 악용하여 심화시키고 대중화 시킨 장본인이 일제입니다.
우리의 것을 창조, 개선, 발전시켜 나가는 지혜와 함께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류 열풍은 백제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선 통신사들에 의해서 한류열풍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욘사마는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 욘사마가 끝이나니 또 뵨사마가 일본열도를 서서히 끓게 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라고 하면 무조건 선진자본주의 문화 쪽으로만 기우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이후에 세계문화는 획일화 되었습니다. 우리가 입는 양복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문화는 획일화 되면 발전하지 못합니다. 문화는 다양화되어야 합니다.
세계화는 획일적이고 통일적인 것이 세계화가 아닙니다. 경쟁력은 표준화, 규격화, 전문화와 같은 공산품 같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인도는 LG전자 제품과 삼성을 합치면 46%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쟁력은 사상적 경쟁력, 문화적 경쟁력이 우선되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고유의 전통에서 국가경쟁력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경쟁력있는 세계화(Global Standard)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서구인들이 불고기, 김치, 삼성, LG는 아는데 정작 한국을 모르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2) 일본과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중, 일 동양 3국은 오랫동안 같은 문화권에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격변하는 세계정세에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일본은 자본주의에 너무 빠져 있습니다.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사상은 이미 메이지 시대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언제나 세계재패라는 과제가 저들의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습니다. 한번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극동아시아 그 어느 국가에도 자신들이 도발한 전범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국제화는 세계 속에 한국 즉, 세계와 더불어 공존하는 한국이지만 일본이 말하는 국제화는 일본화입니다. 결국 경제대국에서 군사대국으로 이어지는 팽창주의인 것입니다. 일본인은 더불어가 안되는 민족입니다. ‘지배의식’이 저들의 국제적 관계에 국민적 의식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도덕과 법이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유일하게 한 가지 법이 있다면 힘의 균형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군사에 이르기까지 힘 있는 국가, 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다시는 그 어떤 나라에도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땅에 기독교인은 우리 자신이 먼저 바른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하고도 효과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바로 요나를 통하여 니느웨성에 복음을 전파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300여 년 동안 길들여온 복음 앞에 폐쇄적인 일본을 개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의 독선적인 우상 신사로부터 벗어나서 자신들만이 일등국민이라고 하는 자만의 논리가 복음 앞에서 깨어지도록 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3) 북한 주민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북한 주민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보다는 내가 북한 주민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북한 주민을 불쌍히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광복은 조국 통일과 함께하는 민족 복음화입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을 놓고 광복을 말한다는 것은 광복 당시부터 지금까지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통일조국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최우선의 과제가 분명합니다. 현실적으로 조국 통일을 이루는데 가장 거침돌이 있다면 남북한이 다같이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독일같은 경우에는 바이마르 공화국 때 자유민주주의를 같이 겪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 왕조체제와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을 뿐이었습니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것은 피차 식상해 있는 메뉴입니다. 우선 현실적으로 전쟁이 나면 둘 다 망한다고 하는 위기의식이 앞서야 합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공동대처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남북한이 다같이 절실해야 합니다. 동족의 가슴에 총칼로 서로 죽이기까지 해본 우리에게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것은 실로 서먹서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남북한은 매우 공개적이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상호 접촉할 것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침략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듯이 엄연히 존재하는 두 국가 두 정부를 정치적으로 합친다는 것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문화적 공동체, 경제적 공동체, 기술적 공동체로서 접근방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남한이 이렇게 부강하게 된 것과 한국 기독교의 부흥된 모습을 병행해서 보여 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주변 강대국에 의해서 통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방법을 사용할 차례입니다. 6자 회담이 무슨 큰 결론을 얻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아니했습니다.
환난의 날을 감하신 하나님께서 진정한 통일조국의 광복을 허락하실 것을 믿는 신앙을 우리 모두 가지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본 자민당은 11월 창당 50주년에 맞춰 최종안을 확정키로 했습니다. ① 군대 인정, ② 군대의 해외 파견 길 확대, ③ 헌법 해석으로 집단적 자위권 인정, ④ 정치 종교 분리 완화 등은 이미 예측가능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민당 초안은 ?사회적 의례의 범위내?에서는 국가나 지방 자치단체의 종교활동을 용인하고 종교단체에 대한 공금 지출도 허용했습니다. 이같은 조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로 생각됩니다.

이른바 일본 보통국가 개헌은 주변국을 불안케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력에 걸맞는 발언권을 군사분야에서도 갖겠다며 보통국가론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번 개헌안이 통과되면 그들의 숙원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해외에서의 무력행사도 사실상 가능해지고 동맹관계인 미국이 개입하는 전쟁에도 동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총리와 극우파들은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불필요하다는 노골적인 선언입니다. 동북아의 패권을 잡겠다는 일본의 생각이 현실화 될 때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팽창주의가 현실화 되면 한국교회가 받은 선교적 사명, 교회적 사명수행의 기회가 그만큼 축소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살길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불성곽이 되시고 화염검이 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앞길이 캄캄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친히 우리 앞에 불기둥이 되시고 구름기둥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아 멘 -
(강  구 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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