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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들으소서 (삼상 15:1-9, 롬 10:16-21, 마 7: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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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긍정의 힘」이라는 책에 “세 나무 이야기(The Tale of Three Trees)"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올리브 나무와 떡갈나무,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들은 모두 특별한 존재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올리브 나무는 정교하고 화려한 보석상자가 되어서 그 안에 온갖 보물을 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무꾼이 숲의 수많은 나무 중에서 하필이면 그 올리브 나무를 베었습니다. 정교하고 화려한 보석상자가 되려던 올리브나무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나무꾼은 올리브 나무를 베어서 더럽고 냄새나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떡갈나무의 꿈은 위대한 왕을 싣고 바다를 건널 거대한 배의 일부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무꾼이 와서 자기를 벨 때 떡갈나무는 자기 꿈이 이루어지려니 생각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나무꾼은 자신을 조그만 낚시 배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떡갈나무는 부서진 꿈을 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높은 산꼭대기에 살고 있는 소나무의 유일한 꿈은 언제까지나 높은 곳에 버티어 서서 사람들에게 위대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일깨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순식간에 번개가 치더니 소나무를 쓰러뜨리면서 그 꿈을 빼앗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나무꾼이 쓰러진 소나무를 끌어다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하루는 요셉과 마리아가 고향에 호적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가 해산에 임박해서 해산할 집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헤매던 중 어느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기 예수가 눕게 된 그 구유가 저 화려한 보석 상자가 되려던 꿈을 가지고 있던 그 올리브 나무였습니다. 올리브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인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구유에 누였던 예수는 이제 12제자를 거느린 선생으로 갈릴리 온 땅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가 택한 배는 아주 작은 낚시 배였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바로 위대한 왕을 모시고 바다를 건너겠다는 꿈을 가졌던 그 떡갈나무로 만든 배였습니다. 그 떡갈나무는 위대한 왕을 모시는 것이 꿈이었으나 세상의 위대한 왕이 아니라 만왕의 왕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또 몇 년이 흘렀습니다. 몇몇 군인들이 번개에 쓰러진 그 소나무를 버렸던 곳에 와서 바로 그 소나무를 가지고 갔습니다. 소나무는 이제 땔감이 되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군인들은 바로 그 소나무를 둘로 쪼개어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소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시게 되었습니다. 높은 곳에 버티어 서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섭리를 일깨워주는 것이 꿈이었던 이 소나무는 오늘까지 아니 영원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비록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더 크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한 오늘 나의 실패는 결코 실패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만세전에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 그 독생자를 날 위하여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현실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절대로 스스로 포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마침내 합력하여 선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왕정(王政)의 역사는 사울의 화려한 출발과 달리 벌써 사울 당대에 엄청난 실패가 나타나게 됩니다. 사무엘은 이 일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습니다. 국민들도 일찌감치 사울에게 실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출발부터 실패로 얼룩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서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게 됩니다. 그가 다윗입니다.

그렇다고 다윗 왕국이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다윗 사후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서 다윗의 손자 르호보암 때 벌써 남북이 갈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의 이스라엘 역사는 그야말로 만신창이로 이어지게 됩니다. 나중에는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세우시게 됩니다. 그 나라의 왕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 같이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면 결코 현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오늘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 힘써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오늘 사무엘서 본문 1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오늘은 이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2. 사울왕의 행복은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 선지자가 늘 가까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문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세월이 흐를수록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서 사무엘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점차 관심이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사울왕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기를 원했다는 뜻입니다. 사울왕의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사무엘의 말이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삼상15:23에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무엘서 본문에 나오는 사무엘의 말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한 것은 사울왕에게 다시 한번 새 출발의 기회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기 때 기독교가 타락하게 된 것은 당시 교회가 성경을 덮어놓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닫힌 성경을 여는 운동이었고,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도 역시 온 교회가 회개하고 겸허하게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말씀회복 운동, 말씀으로의 회귀(回歸)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어떤 젊은 그리스도인이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방문하여 당시 원장이었던 대천덕 신부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40년 이상 이 산속 공동체에서 영향력 있는 사역을 이끌어 오셨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대천덕 신부님은 생각할 것 없이 즉각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일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삶, 그 말씀에 뿌리를 둔 기도의 삶, 이것을 통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서 삶이 변화되고, 이런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누룩과 같은 사역을 감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그리고 세상을 살리는 비결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데서 시작하게 됩니다.

사무엘이 처음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어떠했습니까? 성소에서 자는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줄 몰랐습니다. 엘리제사장의 지도를 받고나서야 “주여 말씀 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셨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사무엘은 평생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만나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적이고 중요한 일이 됩니다.

3.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데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식적으로 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적으로 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성경 공부 많이 하는 교회로 소문 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공부해서 지식적으로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신앙과 인격이 어떠냐 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 서울 K교회 사건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잘 쪼개서 설교 잘하기로 유명한 목사님이 40여년을 가르쳤는데 오늘 그 교회 교인들은 열심히 교회를 쪼개버리고 있습니다. 불신자들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행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단지 지식 정도로만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영어로 정보를 information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에서 앞에 있는 in을 빼버리면 formation이 됩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접하는 것이 information입니다. 그 반대로 성경 말씀을 인격적으로 접하는 것이 바로 formation 즉 형성입니다. 그러면 formation 즉  형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나를 찾아오시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 거기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거기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저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처럼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이제까지 낯선 나그네로 알았던 그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영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 즉시 발걸음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부활의 증인 즉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우리 속사람과 삶을 새롭게 형성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말씀을 통하여 새창조라고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할 때 이것은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무엘이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고 하는 뜻을 여기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다 주님 앞에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복음성가에 “말씀을 들으세요 말씀을 들으세요 /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말씀 들으세요”라고 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처신했습니까?

사무엘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울은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9절에 보면 “좋은 것은 남기고.....가치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취사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요리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 우리 모습 아닙니까? 말씀을 듣고 “아멘”해야 하는데 내 구미에 따라 골라서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에게 부탁한 말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듣기에 좋고 싫고를 가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들려주십시오”. 이것이 말씀 앞에서는 우리 자세여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하면 오늘 복음서의 말씀처럼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이 될 것입니다.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창수가 내리쳐도 흔들리지 않고 마침내 승리하고 복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김 오 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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