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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 교회 순례(2) : 서머나 교회 (계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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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 「가난하나 부요한 교회」

<책망할 것이 없는 교회, 서머나 교회>
오늘은 소아시아의 7교회 중 두 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셨느냐 하는 점입니다.
서머나 교인들의 생각이나 세상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지요.

오늘 여러분은 서머나 교회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교회와 닮은 점은 무엇인지,
또 서머나 교회에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계 2-3장에 나오는 7교회는
대개 주님으로부터 책망과 칭찬을 동시에 받습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책망은 하나도 받지 않고 칭찬과 격려만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서머나 교회는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 에베소 교회와 대조가 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역사와 전통이 깊고 풍성하고 안정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안팎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까지 좋은데 아주 궁핍한 교회가 서머나 교회였던 것이지요.

서머나 교회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서머나'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많은 교회들이 그러하듯이 서머나 역시 바울이 개척한 교회로 추정됩니다.

서머나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50 마일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희랍의 대시인인 호머의 출생지로서 로마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서머나에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유대인들의 영향력이었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다음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서머나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서머나 지역의 경제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리하여 금융권을 잡은 유대인들의 위세가 유달리 강했던 지역이 서머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머나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로도 유명했습니다.
예수가 메시아, 구세주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독교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하고 경계한 나머지 어떻게 해서든지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에서 서머나 교회가 환난과 핍박을 당한다는 것은
주로 유대인들로부터였습니다.

주후 154년 2월 22일, 서머나 감독이었던 폴리캅(Polycarp)과
11명의 기독교인들이 화형을 당했는데, 이 때 로마 군인들을 배후에서
조종했던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폴리캅이 순교했을 때의 최후의 모습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폴리캅이 황제 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포한 뒤 심문했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작은 향을 피운다고 해서 네게 무슨 피해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폴리캅은 일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은 폴리캅을 끌고 원형 경기장으로 가, 로마의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나는 너를 놓아줄 권세가 있다. 내 앞에서 예수를 비방해라."
"저는 86년 동안 저의 주님을 섬겨왔는데 한번도 저에게 잘못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구해주신 저의 왕 예수님을 어떻게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총독이 목소리를 높여 고함을 질렀습니다.
"나에게는 사나운 들짐승들이 있다.
너의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너를 당장 들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그 짐승들을 제 앞으로 끌어오십시오."
"나는 너를 화형시켜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다."
"그래도 저의 마음은 추호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결국 총독은 폴리캅을 화형에 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폴리캅은 장작더미가 붉게 타오르는 화염 한 가운데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감사 드립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에게 주님을 위하여 죽을 자격이 있게 만들어 주시고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도록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영웅적인 최후를 마쳤던 폴리캅이 서머나의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세요!
유대인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해서 환난과 핍박이 끊어지지 않았던 곳이 서머나였다는 것이지요.

<작고 가난한 교회, 그러나 크고 부요한 교회>
이와 같이 유대인들로부터 환난을 받은 서머나 교회는 아주 궁핍했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왜 가난한 교회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교인들이 가난한 서민 출신들이 많아서 그런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그런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머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난한 교회인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칭찬하십니다.

9절 전반부를 보세요.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서머나 교회가 환난과 궁핍으로 가득찬 교회였지만 실제로는 부요하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계속되고 빈궁하기 이를 데 없는 작은 교회, 서머나 교회가 부자 교회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서머나 교회는 작은 교회였으며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교인 숫자도 많지 않았고 예산도 넉넉지 못했습니다.
늘 쪼들리며 근근히 유지되는 아주 곤궁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남이 보기에 보잘 것 없고 가난한 교회, 서머나 교회를 주님은 달리 보십니다.
풍성하고 부요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남이 보기에 화려하고 부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텅텅 빈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적으로는 굉장한 부자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 내면은 가난하기 짝이 없습니다.
돈만 있지 영혼이 없습니다.
삶의 만족이나 행복감이 없습니다.

미국이나 구라파 여러 나라들은 굉장히 부자 나라들임에도 자살율이 엄청 높습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같이 가난한 나라가 삶의 만족지수에서는 세계 제 1위라고 합니다.
겉이 부자고 화려하다고 해서 속까지 부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권세가 높고 부유해지면 부유해질수록 마음은 점점 더 곤궁해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수가 많고 헌금액수가 많고 웅장한 건물이 있다고 해서 속까지 부요한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 몇 만 명이 모이는 어떤 장로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굉장히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예산이 풍족해서 무슨 일이라도 척척 해낼 수 있는 큰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요즈음 교계는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분쟁과 분열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 교회는 겉만 부요했지 속알맹이는 형편없이 곤궁한 교회였습니다.
고난이 없이 쉽게 쉽게 교회가 성장하다보니 겉만 화려하고 부요했지 속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위기가 닥쳐올 때 맥없이 무너져 지금 사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교회가 진짜 내적으로 부요한 교회인지 아닌지를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을 당하고 궁핍한 교회였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행복한 교회요 가장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죽을 수 있는 믿음의 용기와 순수성이 살아 있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부요한 교회입니까?
교인 숫자가 많고 건물이 높고 예산이 풍족하다고 해서 부요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 속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순교자적인 신앙이 없는 교회는
겉보기에 아무리 화려하고 풍성해도 실상은 가난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작고 가난한 교회라고 할지라도 진리와 생명이 있는 교회는 부요합니다!
주님 한 분만이 진정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우리 내리 교회는 주님이 보시기에 부요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보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지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이 칭찬하시고 주님이 인정하시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굉장한 것 같은데 속은 텅텅 비어 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교회는 서머나 교회처럼 내적으로 부요한 교회, 풍성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헌신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교회가 부요한 교회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런데 서머나 교회가 진짜 부요한 교회라는 칭찬과 위로를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을 잘 참고 견디는 순교자적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9절 말씀을 보면 서머나 교회를 공격하는 무리들 중에
자칭 유대인이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이라 하면 세상에서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아닙니까?
자칭 유대인이라 자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스로 세상에서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사람들이었는데
바로 이들이 서머나 교회를 가장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칭 유대인이라 자랑은 하지만 그 실상은 '사탄의 회(會)'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에 대한 구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서머나 교회가 외적으로는 가난했지만 내적으로는 부요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유대인들의 경우에도 자칭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랑했지만
내적으로는 사탄이 모인 '사탄의 회'와 다를 바 없다고 꾸짖고 계십니다.

여러분, '사탄의 회'가 무엇입니까?
사탄이 모여서 온갖 더러운 음모와 흉계와 작전을 꾸미는 악한 모임의 온상이 아닙니까?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도무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탄의 뜻에 따라 모인 '사탄의 회'인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진리와 위선, 정의와 불의를 잘 분별해서 '사탄의 회'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10절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은 사탄의 무리들의 공격이 계속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 교회에 주신 예언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고난이 조만 간에 끝나고 부요해지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소식이 아닙니다.
정반대로 더 큰 고난이 계속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형제자매들 중에 몇 명이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는 등 큰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는 나쁜 소식입니다.
아마 틀림없이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라는 강요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10일 동안에 걸쳐서 큰 시험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묵시 문학에 있어서 '10'이라는 숫자는 '충만수'(full number)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10일은 신앙적으로 시험받고 연단받기에 충분한 기간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킬 수 있는
꼭 알맞은 기간이 10일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순교자적 신앙으로 믿음의 진리를 끝까지 지키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서머나 교회가 가난하지만 부요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순교자적인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자적인 신앙으로 똘똘 뭉친 교회, 이런 교회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교회보다 부요하고 풍성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의 성도들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 내리 교회도 주님의 진리와 의를 위해 순교자적인 신앙을 갖게 될 때
비로소 부요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자, 이제 우리 결론 삼아 8절과 11절 말씀을 주목해 봅시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제가 볼 때 이 두 구절은 모두 순교자적인 각오로 고난받는
서머나 교회의 현실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서머나 교회에 말씀을 하시는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
우주 역사의 처음과 마침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 역사를 심판하실 주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승리의 길로 이끌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주님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환난과 핍박을 당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친히 다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환난과 핍박을 당해 당장 죽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부활하신 주님과 더불어 반드시 부활해서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지금 당하는 환란과 핍박을 잘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
그냥 영적인 중생의 체험 없이 육체적인 탄생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육신의 사망과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
두 번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계 20: 14 참조).
그러나 육적인 탄생과 더불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한 번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순교자적 신앙으로 고난을 잘 견디어 내면
주님이 친히 승리하셨듯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얼음 연못 위의 순교성인 40>
어느 겨울날, 로마 황제 리시니우스(Licinius)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박멸하려고 했습니다.
'뇌성벽락 부대'(Thundering Legion)라고 불리는 최정예 부대가
세바스테(Sebaste)라고 하는 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리시니우스 황제는 자기 부하들 가운데 꼭 40명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이들을 발가벗겨 얼음이 꽁꽁 언 연못 한 가운데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런 뒤, 연못 근처에 집 한 채를 지어놓고서는 따뜻한 목욕물과
40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구비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인하는 사람은 즉각
그 집으로 들어가게 해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40명의 형제들 중 많은 사람들이
얼음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체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어떤 병사들은 그냥 얼음 위에 누워 잠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죽음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병사들은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40명의 용사들이 당신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받고자 합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 하셔서 끝까지 승리하도록 도와주소서!"

어두운 밤이 찾아왔을 때, 마침내 병사 한 사람이 살을 에는 추위를 참지 못해
예수의 이름을 부인한 채 연못 위의 얼음을 떠나 집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이 광경을 셈프로니우스(Sempronius)라는 백부장과 부하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수의 병사들이 얼음 위에서 나체로 얼어 죽어갔지만
남은 형제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40명의 용사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미 1명이 배교(背敎)를 해서 39명이 남았는데 이 기도가 응답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이튿날 아침이 되었을 때 그들의 기도는 이루어졌습니다!
중대장급 지휘관인 셈프로니우스가 장렬하게 죽어 가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예수를 믿겠다고 선언한 뒤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다 벗어 던지고
얼음 위에 서있는 형제들 사이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들이 기도한 그대로 셈프로니우스를 비롯한
정확히 40명의 형제들이 위대한 순교자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격을 얻은 것이지요!

오늘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내리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내적으로 부요하고 풍성한 교회라고
칭찬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김 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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