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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배나 얻게 하소서 (창 2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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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장성한 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이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창세기 26:12-18)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살고 있던 땅에 흉년이 들어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이삭은 '그랄'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랄'은 가데스 서남쪽 20Km 지점에 위치한 부족 국가였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그 해 농사를 짓고 100배의 소출을 거두웠는가 하면 그곳에서 창대하고 왕성했고 양과 소떼는 물론 많은 종들을 거느리게 됐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한마디로 이삭의 성공담입니다만 100배의 성공을 성취했다면 실로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삭이 100배의 수확을 거두고 복을 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금년이 자나가기 전에 이삭처럼 100배가 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백배의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이삭이 그토록 넘치는 복을 받게 된 비결을 찾아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1. 개척 정신입니다.

  당시는 목축시대였기 때문에 목축의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것은 우물과 초장입니다.
15절을 보면 그 동네 사람들이 이삭이 확보한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꾸어 버렸습니다.
18절을 보면 이삭이 그 메꾸어 버린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21절을 보면 다른 우물을 다시 팠고
22절을 보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가 계속 우물을 팠다는 것은 그의 끈기와 용기, 그리고 개척자적인 정신을 보여 줍니다.
쉽게 되는 것은 개척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그 땅을 개척하는데 얼마나 많은 땀과 피를 쏟았습니까? 역사가들은 미국 역사를 개척사(Frontier History)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서부 개척사를 보면 숱한 희생과 모험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중단하지 않고 개척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오늘의 미국을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약 25프로가 해면보다 낮은 나라입니다. 그들은 정부기구안에 수로청이라는 독립관청을 설치하고 바다를 메꾸어 육지를 만드는 공사를 추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힘으로 그 큰 하렘 호수를 메꾸어 육지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 격언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만들고, 네덜란드인은 육지를 만든다".
그들의 끈기와 도전과 노력을 짐작케 하는 격언인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한 우물을 팝니다.
이삭이 계속해서 위협과 대치 하면서도 우물을 판 것은 그의 용기와 도전, 그리고 신앙과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쉽게 물러서거나 포기하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던 리빙스턴에게 친구들이 보낸 편지가 우송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우리는 자네에게 몇 사람의 협력선교사를 더 보내고 싶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을 알아서 연락해 주기 바라네"라는 것이었습니다.

리빙스턴의 답장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곳까지 오는데 쉬운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사양하겠네. 나와 함께 일할 사람들은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들을 원하네".
이삭은 우물을 파는 개척자였습니다. 그것이 그의 성공을 보장해준 것입니다.
우리가 파야할 우물이 무엇인지를 성령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2 양보하는 생활입니다.

짤막한 본문 속에 이삭이 얼마나 많은 박해와 도전을 받았는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삭이 당면한 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들의 시기입니다.
14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였다고 했습니다.
시기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삭이 100배를 거두고 부자가 되고 살림이 불어 났다는 것 때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그것이 시기할 이유가 됩니까?
'시기'라는 헬라어 낱말 가운데 '젤로스'(zelo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분개, 질시'라는 뜻입니다.
'시기는 남의 일에 괜히 성내고 분개하는 것'입니다.
또 '프흐데이로'(Phtheiro)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그 의미는 '시들다, 상하게 되다, 타락하다, 멸망하다' 라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넘치면 자신의 영혼이 시들시들해 집니다. 그리고 심령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타락하고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그토록 나쁜 시기를 왜 일부러 해야 합니까?
그랄 사람들은 이삭이 백배의 복을 받고 창대하고 왕성하는 꼴이 보기 싫었습니다.
동서 고금에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팠습니다.
남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나 축복을 위해 써야 할 시간과 정력을 딴데 낭비해 버리기 때문에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약점만 들추려는 사람들은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이 하는 모두가 시원치 않습니다.
부부생활, 가정생활, 교회생활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선하고 아름다운 행동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 김현승집사 개인전 예배 인도차 광주에 내려갔다가 왔습니다. IMF 상황중에서 교회당을 건축한 두 친구 목사님과 신축한 교회당을 방문하고 기도해 주고 왔습니다만 저에게 희비가 갈리는 순간을 맛보았습니다.
이 교회는 이미 5년전에 사놓은 땅에다가 그간 모은 건축헌금에다가 한 번 더 헌금해서 짓기로 했는데 어느 평신도 한 분이 은혜를 받고 거금을 헌금해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미쳤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돈푼이나 번 모양이지, 보나마나 도둑질 해서 번돈이겠지. 아니면 사채놀이를 했거나, 그나 저나 그 돈가지고 구제사업이나 할 일이지 미쳐도 크게 미쳤어'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부부가 쌍나팔을 부는 바람에 건축도중 그 사람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고 결국 그들 일당 40여명도 헌금 한 푼 안하고 이미 건축된 교회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없어도 교회당은 완공되어졌으나 목사님과 성도들의 마음이 매우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생동안 주님 위해 원두막 하나도 못짓고 떠돌아만 다닐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또 한 교회는 땅을 사고 이어서 건축을 하게 되었는데 때가 때인 만큼 성도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되지않게 하려고 지하층과 지상 1층까지만 1차적으로 공사를 하고 2,3,4층은 한 3년후 2차 공사로 하려는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 집을 팔고 사재를 털어 바치면서 시작한 짐에 완공을 하자고 해서 그 어려운 때에 그렇게 훌륭한 건물로 완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런 소문을 들은 바로 이웃 교회에서 '부럽다, 위대하다, 어쩌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어떤 믿음일까? 우리도 그런 큰 일을 해 봐야지, 주님 우리도 그런 복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다가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교회당을 짓게 되었다는 근방의 후배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당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삭을 시기한 그랄 지방의 블레셋 사람들은 우상 섬기는 마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시기심은 누가 주었겠습니까?
시기하지 맙시다. 질투하지 맙시다. 좋게 말해 줍시다. 좋은 일을 부러워 합시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 줍시다. 그리고 좋은 일은 배워 실천합시다.

2) 그들의 도전입니다.
15절을 보면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고 했고
20절을 보면 다투었다고 했고
21절을 보면 또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고대 사회의 관행상 남의 우물에 흙을 집어 넣고 메꾸는 것은 선전포고였습니다.
아무리 인간성이 삐뚜러졌다고 한들 어떻게 남의 우물을 흙으로 메꿀 수가 있겠습니까?
이삭은 이럴때에도 정면 대응을 피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종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 것입니다.
둘째, 침묵하고 물러서는 것이 이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소중한 정열과 에너지를 거기에 낭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힘으로 우물을 하나 더 파는 것이었습니다.
넷째, 맞서면 싸워야하고 싸우면 득보다 실이 더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에 망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는 양보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이겼고 100배의 승리의 축복을 거둔 것이었습니다.
17절을 보면 "이삭이 그곳을 떠났다"고 했고
22절을 보면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참을 줄도 알고, 기다릴 줄도 알고, 양보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양보하고 물러서면 100보 전진할 수 있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참고, 다투지 않고 낙심하지 아니하면 100배로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그가 100배의 복을 받은 것은 외면적으로는 개척정신이나 양보심 탓이겠지만 그러나 결정적 원인은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22절 끝을 보면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다"고 했고
24절 끝을 보면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랄땅은 박토입니다. 그래서 보통 농사를 짓게 되면 풍작일 경우 25-50배의 수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삭은 100배를 거뒀습니다.
주경가 로빈슨(Robinson)은 "그 당시 블레셋 땅의 조건과 다른 사람들의 수확량에 비교해 볼때 이삭의 100배는 파격적인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파격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살 땅의 장소를 넓혀 주셨습니다. 그 땅에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서 짓는 농사는 100배의 수확고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은혜와 축복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고, 이삭처럼 100배가 넘는 복받으시기를 복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이토록 엄청난 축복을 받아드린 이삭의 신앙과 태도에 주목합시다.
25절을 보면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하여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받은 복과 은총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믿음과 그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우물을 팠습니다.
사람들은 좀 성공했다고 해서, 돈 좀 벌었다고 해서 지위가 조금 높아졌다고 해서 전에 하던 복받는 일을 팽개치지 말고 계속 합시다.

여러분, 금년 남은 기간도 복받을 일을 계속합시다. 그리고 남은 여생이 은혜와 복을 100배로 받기 위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합시다.
'주여, 100배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시고 이미 이 복을 받은 줄로 믿고 지금부터 이 은혜와 복을 누립시다. 그리고 서로 나눕시다. (박 광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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