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판단보다 사랑과 격려를 (롬 2:1~8)

  • 잡초 잡초
  • 395
  • 0

첨부 1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같이 어울려 사는 법을 잘 배워야 합니다. 내가 제일인 줄 알면 결국 혼자가 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다 부족한 존재입니다. 다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인 줄 알고 서로 격려해주며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남을 격려하기보다는 남을 비판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어디 가도 비판하고, 칭찬할 것도 비판하고, 심지어 자기도 비판합니다. 그런 분들은 사랑과 격려가 넘쳐야 할 가정에서도 비판하고, 교회에 나오면서도 교회를 비판하고, 교인을 비판하고, 교회 일꾼과 중직들을 비판합니다.
그런 분들은 틀림없이 예수님도 비판할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있으면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냉랭해지고, 그곳을 멀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격려하고 칭찬하는 분들이 있으면 분위기는 밝아지고, 그곳을 가까이하고 싶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살맛을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살맛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 남을 판단하지 말라.

로마서 2장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에 1심에 승복하지 못하고 항소하는 피고인들을 앞에 세워 놓고 재판을 집행하시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이미 1장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사형에 해당하는 악을 범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판결에 승복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사형이라니 너무 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은 유대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헬라인이라고도 하는데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자기를 양심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으면서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가운데 의외로 죄인이라는 선언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보이는 예가 흔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누가 뭐래도 '나는 남보다 선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말해도 놀라지 않습니다. 또 지옥, 심판에 대해 말을 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그런 곳에 갈 이유가 도무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나는 괜찮겠지’라며 막연한 기대감으로 액셀레이터를 밟는 운전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선언에 대해 불만 가득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1) 남을 비판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결점에는 눈이 어둡고 그 대신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실수만이 클로즈업 되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니 자연히 남을 비판하게 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신의 의와 선을 드러내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는 그 눈으로 항상 나 자신을 먼저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에게 덕이 되고 좋게 말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2) 자기가 범하는 죄에 대해 둔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판은 잘하지만 자기도 똑같은 죄를 범하는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는 드러나는 대신 자기의 죄는 감추어지는 차이일 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자기는 죄가 없는 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은밀한 죄를 누가 지적합니까? 하나님입니다(2,3절). 간음한 자를 비판하면서 속으로 여인을 향해 음욕을 품습니다. 또 형제끼리 싸우는 자를 욕하면서도 자기가 형제를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눈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

3) 자신의 형통함이 자기의 선으로 얻은 복으로 착각합니다.

불행을 당하는 자를 보면서 ‘사람이 죄를 짓고는 못살지’. ‘양심을 바로 써야지’ 하며 남을 정죄하는 반면 자기의 무사함에 대해서는 선행에 따르는 결과로 여깁니다. 사실이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보시기에 똑 같은 죄인입니다. 이것은 죄인을 회개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 길이 참으심 때문인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한지 의식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판단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엄하게 질책하십니까? 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잘못에 대한 핑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꿈도 꾸지 말라고 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용서를 멸시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5절 말씀을 보면 판단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돌아온 탕자를 정죄하는 맏형의 죄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령께서 가슴을 노크할 때 ‘그래 바로 그게 나야’ 하면서 회개의 기회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2. 판단의 기준

우리는 자기 생각만으로 교만한 모습으로 잘 알지 못하면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판단해야 할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력과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더 알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열을 알면서 하나를 말하면 바른 충고가 되지만, 하나를 알면서 열을 말하면 판단이 됩니다.
판단 자체가 죄악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7장 24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판단할 때는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지 말고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알지 못하면 판단을 최대한 유보하고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섣부른 판단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면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따라 판단해야 합니까?

1) 진리를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2절 말씀에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여기서 진리는 하나님 말씀이고, 조금 확대 해석하면 성실함과 진실함도 진리입니다.
우리는 진리대로 판단해야지 자기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기도를 많이 하면 기도로 판단하고, 자기가 봉사를 많이 하면 봉사로 판단하고, 그처럼 자기 잘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남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입니다.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요즘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보다 진실해야 하고, 보다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판단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2) 행동을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판단하실 때에 행한대로 판단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갈라디아 6장 7절의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가 말씀을 많이 듣고 아느냐?’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가 듣고 깨달은 말씀을 많이 행하느냐?’를 보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행동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빨리 선행을 결단하고 행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인생 낭비요 죄입니다.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그 인생에 담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선을 행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선행을 할 때 조용히 해야 합니다. 선행이 자랑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은 사라집니다. 바리새인의 잘못은 선행을 한 것에 있지 않고, 자기들의 선행을 자랑한 것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갈무리하려면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고 은근히 과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도로 가져가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봉사하고, 선행을 하고, 특별 헌금을 내면 그 봉사와 선행 자체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예비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3) 판단하기보다 사랑과 격려를 주십시오.

사랑하는 후암의 성도 여러분! 가만히 앉아서 판단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선행을 베풀려고 노력합시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입시다. 그들을 사랑하고 격려합시다. 남을 판단하는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남을 실제적으로 돕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우리는 판단하는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사랑 없이 판단만 하면 어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부요를 남을 축복하는데 쓰지 않고 내 맘대로 쓰면 그것은 복된 삶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의 축복을 내 맘대로 쓰는 것은 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호 4:6)" 라고 말씀하신 것은 못 배워 무식해서 망한다는 말이 아니라 죄를 죄로 인식 못하는 무식으로 망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다음 막이 펼쳐질 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더욱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해서 진노를 쌓기보다 남을 사랑하고 격려하여 축복을 쌓아야 합니다. 내가 남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나에게 축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나 내가 남을 판단하면 그 판단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옵니다. 판단은 반드시 판단을 낳고, 격려는 반드시 격려를 낳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나를 판단하십시오.

우리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에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의 판단과 정반대로, 세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행한 대로, 그리고 은밀한 것까지도 판단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판단의 기준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남을 정죄했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향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죄 된 모습을 돌아보면 볼수록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 앞에 노출되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죄 지은 모습 그대로 오셔도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용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죄 지은 모습을 하나님 앞에 내 보이면 보일수록,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축복의 비결이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자연의 파괴범은 산불이나 홍수가 아니라 작은 해충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나 가정은 산불이나 홍수와 같은 눈에 보이는 큰 어려움으로 파괴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 즉 판단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등으로 인해서 파괴됩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단점을 덮어주고 격려하면 그 교회와 가정은 반드시 살아나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겸허하게 서서 남을 판단하기보다 나 자신부터 성찰하고, 사랑과 격려로 서로를 세워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후암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명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