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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 양, 비둘기 그리고 고운 가루 (레 1:3 - 레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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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3-9)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레2:1-3)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소와 양과 비둘기와 고운 가루의 농산물을 드리라고 하나님이 정해주셨습니다. 이 제물들은 나름대로의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이 제물들이 우리의 마음과 몸으로 바꾸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려 예배하기 위하여 주님 전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이 시간 하나님께 참 예물이 되기를 우리 모두 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구약의 제물들의 영적인 의미를 먼저 우리가 알아야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내가 바로 이런 귀한 예물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복된 예배를 이루시는 만안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소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레1:3)

소에게는 위가 네게 있습니다. 소가 위가 네게 있는 것은 많이 먹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빨리 먹고 일하면서도 되새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소를 드리라고 하시는 영적인 의미는 소처럼 열심히 일하고 말씀을 새김질하며 살라는 영적 명령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소와 같은 열심과 헌신과 봉사의 자세를 가지면 우리는 하나님께 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참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를 돌아봅시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근면하고 성실하게 주의 일을 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 우리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를 우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법궤를 빼앗아서 자기들의 다곤 신당에 두었습니다. 그러자 다곤 신상이 넘어져서 목이 부러지고 몸체가 두동강이 났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아서 민심이 흉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 때문인 줄 알고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젖먹이는 암소 둘을 택하여 수레를 끌어 스스로 이스라엘 쪽으로 가게하고 새끼 송아지의 울음에도 자기들의 가야 할 길을 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하여 신상이 부서지고 전염병이 돌게 된 것이라고 인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과연 암소 두 마리는 새끼 송아지가 젖을 달라고 구슬프게 우는데도 새끼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벧세메스를 향하여 똑바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도착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레를 부숴서 제단을 삼고 끌고 온 소를 잡아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새끼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수레를 끌어야 할 사명을 잃지 않고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자 이번에는 자신이 죽어서 제사의 제물이 되는 두 마리의 암소의 귀중한 자세가 바로 소를 제물로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인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 여러분 !
이제 우리 모두 이 아침에 한 마리의 소와 같이 되어서 나를 헌신하고 빨리 먹고 되새김하면서 주의 일에 열심을 품는 성도들이 되어서 이 한 시간의 예배가 참 예물을 드리는 산 제사로 만드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양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레1:10)

양은 순종을 상징합니다. 양의 털을 깎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마치 죽은 것처럼 주인이 손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털을 다 깎을 때까지 순종하는 모습은 우리들이 보고 깨닫는 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양의 털 깎는 모습을 우리 예수님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따라서 하나님께 참 예물을 드리려면 양처럼 순종의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고 그럴 때에 구약의 양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이 양과 같은 순종의 모범이십니다.
그는 고난을 당해도 변명이나 궤사 한마디 없으시고 죽임을 당하시면 서도 하나님께 철저한 순종으로 우리에게 순종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아침에 양과 같은 순종으로 하나님께 참 예물을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라이프라는 잡지에 이런 얘기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후 각 나라 사람을 싣고 가던 비행기가 고장났습니다. 기장이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무서워서 못 뛰어내립니다. 이때 독일 사람에게 “히틀러의 명령이다 뛰어내려” 하니까 “하이 히틀러” 하고 뛰어내렸답니다. 일본 사람에게는 “천왕폐하의 명령이다 뛰어내려” 하니까 “쏘데스까” 하며 뛰어내렸습니다. 프랑스 사람에게는 “낙하산을 타고 뛰어 내리는 모습이 멋있지 않습니까” 하니까 뛰어내렸습니다. 미국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뛰어내리니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야하지 않겠오?” 하니까 즉시 뛰어내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사람이 남았는데 기장이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뛰어내리는 것은 공짜요!”그랬더니 즉시 뛰어내리더랍니다. 각 나라의 민족성을 비웃는 이야기이지만 살길을 두고도 뛰어내리는 순종이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순종은 우리에게 기적과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순종을 명하십니다.
일 주일의 첫 날인 주일을 나에게 드리겠느냐? 네 소득의 첫 열매인 십일조를 내게 드리겠느냐?
네 마음과 몸을 나에게 헌신하겠느냐? 하고 묻고 계십니다. 이 시간 이 말씀을 들으시고 아멘 하며 양과 같은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셔서 언제나 참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비둘기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레1:14)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홍수의 징계를 내리셨던 하나님은 노아에게 비둘기의 입에 감람나무 잎새를 보내셔서 인생과의 평화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무지개로 인생들과의 불화를 평화로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들에게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가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 비둘기를 드리라는 영적인 뜻은 평화를 만드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한 삶을 살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예물을 드리는 것이 되어집니다. 평화를 만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4)

이스라엘에 나발이라는 사람의 집에 양의 털을 깎는 날이 왔습니다.
이 날은 마치 농사짓는 집의 타작하는 날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농장 주변에 다윗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 다윗의 군대가 주둔하므로 주변의 나쁜 이들이 이 근방에 얼씬대지 않아서 나발은 다윗의 군대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나발의 집에 결실의 날이 왔으므로 소년 병사를 보내어 먹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이 병사들을 모욕하고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다윗이 노하여 군대를 이끌고 나발의 향하여 떠났습니다. 나발에게는 아비가일이라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은혜를 입은 다윗에게 박대한 사실을 알고 놀라서 자신이 먹을 것과 선물을 챙겨서 다윗의 진영으로 떠났습니다. 중간 지점에서 다윗과 아비가일이 만났습니다. 아비가일은 말에서 내려 절하며 남편의 실수를 용서해달라고 하며 가지고 온 먹을 것과 선물을 내어놓았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보고 진노를 풀고 그 선물을 받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아비가일은 불화를 화평으로 만드는 여성이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축복을 받습니다.
나발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너무 놀라서 병을 얻어서 죽고 결국 이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어 왕비가 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할 때에 성전 안에서 방망이나 철연장 소리가 나지 않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이 명령을 지켜 모든 돌을 다른 곳에서 다듬어서 성전에 가져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왕상 6:7)

무거운 돌은 가능한 대로 가까운 곳에서 다듬어 성전에 쌓아야 일이 능률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먼 곳에서 다듬어 성전에서는 시끄러운 철 연장 소리가 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전에는 평화와 은혜로운 소리만 있어야 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즉 교회에서는 쇠로 돌을 쪼는 소리 같은 불화와 싸움과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비둘기를 드리면 참 예물이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그리고 평화를 이루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아침에 생각하며 우리 모두 평화를 만드는 참 예물이 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물로 이 한시간 귀한 예배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고운 가루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 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2:1-2)

하나님이 제물로 명하신 고운 가루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고운 가루로는 무엇이든지 만들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영적으로 고운 가루가 되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뜻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덩어리가 있는 가루로는 못 만드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운 가루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뜻은 이 시간 나를 부숴서 겸손한 자가 되어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드려지는 산 제물의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내 자존심과 죄악의 속성들을 부숴뜨리시고 하나님 손에 모든 것을 맡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근모 박사는 대학교 총장이며 집사님입니다.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신장염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장을 주어서 이식수술로 그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런데 오랜 투병으로 학교엘 나가지 못한 아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느 날 자동차를 몰고 나가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겨우 살아났지만 그 후로도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낙심한 정근모 집사님에게 한 권사님이 권면하였습니다. “집사님 아들보다 집사님 걱정을 하세요 이런 일이 아들에게 일어난 것은 집사님이 거듭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정 집사는 자신이 대학교 때 세례를 받고 지금까지의 신앙생활로 집사가 되었지만 거듭나고 성령체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정 박사는 경기고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1년 만에 검정고시로 서울대 입학, 미국 유학 2년 만에 박사학위, 24세에 MIT공대의 교수, 27세에 프링스턴대 교수, 32세에 KIST 초대부원장을 맡는 실패 없는 삶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나 되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의 권면으로 느낀 점이 있어서 마침 교회에 부흥회가 열려서 거듭나는 은혜를 사모하고 참석했지만 아무런 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주 주일낮 예배에 안내위원으로 봉사하고 말씀을 듣는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며 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 예배를 마치고는 통곡하는 회개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몇 주간의 통회와 자복 속에 어느 날 하나님은 정집사에게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너는 네 아들에 대해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그래서 정 집사는 “감사는 제 아들이 내게 해야지요 내가 신장도 주고 저를 낳아 지금까지 키우고 아픔을 가지며 그를 키웠는데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너는 지금껏 아들을 짐으로 생각하고 살지 않았느냐? 네가 지금껏 짐으로 생각했던 아들을 통하여 나를 찾고 나를 만나 구원의 은혜를 얻지 않았느냐?” 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한국 최고의 엘리트 정근모 박사는 자신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고운 가루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짐인 줄 알았던 아들이 바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음을 생각하고 그 아픈 아들에게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회개하고 온가족이 구원의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의 짐이었던 아들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아들은 그 후에도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성장하여 지금은 곳곳에 다니며 자신에게 섭리하신 하나님을 간증하는 신앙 인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소처럼 헌신하는 자세로, 그리고 양처럼 순종하는 자세로, 그리고 비둘기처럼 평화를 만드는 자세로, 그리고 고운 가루처럼 완전히 부숴진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셔서 참 예물을 우리 주님께 날마다 예배 시마다 봉헌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 우 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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