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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받은 여인, 라합 (수 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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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역전의 연속이다. 이겼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넘어지고 졌다고 절망하던 사람이 오히려 일어선다. 기생 라합은 실로 밑바닥 인생의 여인이었다. 무엇을 하다가 기생집의 주모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노리개감으로 여기는 천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생 라합은 여리고 도성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군대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 받은 날 멸망을 피하고 구원 얻는 여인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여인, 모든 자들과 함께 멸망 받지 아니하였다. 라합은 자기 자신만 건짐 받은 복된 여인이 아니었다. 기생 라합은 자기와 관계된 가족과 모든 것을 살려내었다.

수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와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라" 라합은 자기 가족들만 살린 것이 아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는 하나님 백성의 무리에 속하게 된 것이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을 나눠준 통로로 쓰여졌는가? 더욱 더 나아가 라합은 예수의 족보를 이어가는 은총의 여인이 되었다. 마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룻기에 나오는 룻의 남편이 된 보아스가 바로 라합의 자녀인 것이다. 라합은 천한 기생이었으나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시는 족보에 올라가는 사람이 되었다. 라합은 한 시대에만 쓰여진 인생이 아니다. 눈물과 한숨의 삶을 살아야 했던 라합이 기생의 자리를 박차고 놀랍고 경이로운 복의 인생이 되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생 드라마이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약한 자가 강한 자가 된다. 천한 자가 귀한 자가 된다. 무용한 인생도 유용한 인생이 된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삶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이다. 믿음이 있으므로 기생 라합의 마음 속에 들어온 믿음이 운명을 바꾸고 미래를 바꾸고 신분을 바꾸어 놓았다. 히11:31을 보라. 여호수아 본문의 이야기의 초점을 믿음으로 표현한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믿음이 있어서 그는 하나님의 정탐군들을 영접하고 접대했던 것이다.
믿음이 중요한 보화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방 여인에게 믿음이 생겼는가?

첫째, 하나님의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믿음이 생겼다. (수2:10)
정탐군이 자기 집에 숨어들어 왔을 때 하나님의 정탐군을 숨겨둔 라합은 이렇게 말한다. 수2:9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수2:10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오아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라합은 하나님의 군대가 승리의 군대며 그 군대의 소식을 들을 때 가나안 땅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의 것이 된다는 것을 내다보았다. 하나님의 군대의 승리의 소식 앞에 마음이 녹아 내린 라합,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확신했다. 라합은 다가오는 위기의 발자국 소리 속에서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그 들려지는 소식 앞에 라합이 결단할 수 있는 것은 존귀하신 하나님을 믿고 행동하는 일뿐이었다.
믿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사건과 주변 정황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승리의 이야기, 하나님이 심판하는 이야기, 하나님이 죄를 벌하시는 이야기, 그리고 심판의 이야기, 여러 가지 들려오는 그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비웃지 아니할 때 믿음이 생긴다. 이제 세상의 것의 소유자보다 믿음의 소유자가 되자.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였다. 들려지는 말씀을 귀담아 들으라. 말씀이 믿어지기만하면 하나님이 믿어지고 축복의 인생이 될 수 있다. 남도 구원하는 인생이 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편이 되는 행동하는 믿음이 되었다. (수2:4)
수2: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여리고를 다스리는 왕의 군사들은 정탐군을 찾아내려고 라합에게 달려왔지만 라합은 하나님의 군대의 정탐군을 지붕 위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기고 위기를 피하게 하였다. 이것이 라합이 하나님 군대를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삶의 미래를 위해 오늘을 선택하는 행동이 믿음에서 나온 결단이었다. 들려오는 말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된 라합은 행동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므로 그의 믿음이 형식이 아니고 산 믿음임을 나타내었다. 하나님의 정탐군을 평안히 선대함, 그것이 멸망과 구원받음의 길에서 구원의 길을 붙잡은 라합의 섬김이었다. 라합은 참 중요한 위기의 순간을 올바르게 선택하였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고 볼 때 믿음의 눈으로 자기 선택의 행동을 결정했으니 믿음의 열매는 저를 복의 여인으로 구원한 것이다.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된다. 믿음이 있다면 교회의 편에 서고 하나님의 사람의 편에 서고 세상 사람을 위해 일하려는데서 돌아선다. 세상 왕의 명령을 따라 살고 세상 군졸들의 비위에 맞추어 사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또 확실한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되지 못한다. 믿음의 행동이란 언제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 편에, 교회의 편에 서는 일이다.

셋째, 하나님의 군대가 제시한 약속을 심판 날까지 붙잡는 믿음이 되었다. (수2:13)
라합은 정탐군을 선대하여 숨겨준 후 자신의 부모를 살려주는 약속의 표를 구한다. 수2:13에 보면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하나님의 군대의 정탐군들은 약속을 준다. 수2:18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약속한다.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보낸 후 그 구원의 표가 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단다.(수2:21)
창문에 매달은 붉은 줄, 그 붉은 줄이 무슨 힘이 있는가? 하나님의 군대의 함성보다 강한가? 손에 잡고 있는 병기보다 강한가?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보다 강한가? 사실 붉은 줄은 아무 힘이 없다. 그러나 그 붉은 줄에 얽힌 약속이 힘이 있는 것이다. 붉은 줄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심판할 군대와 그 군대를 믿고 도와 준 믿음의 사람의 약속이다. 약속을 믿는 표이기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 약속의 표라는 것이 능력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군대는 여리고 성을 진멸하는 날, 그 라합의 집은 살려두었다. 라합의 집은 이스라엘의 진영에 두어 살게 하였다.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 심판의 발자국 소리,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함성 소리, 도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 그 소리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끝까지 약속을 붙잡는 믿음이 복 받은 여인이 되게 하였다. 믿으니까 붉은 줄이 매달려 있는 한 멸망되지 않을 것을 신뢰하기에 라합은 성이 무너지는 가운데도 1. 기다렸다. 믿음은 구원의 날을 끝까지 기다리게 한다. 하나님의 군대를 기다렸다. 2. 요동치 않았다. 시46:2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이처럼 믿음은 요동치지 않게 한다.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군대가 두렵지 않기에 그렇다. 3. 감사하게 된다. 붉은 줄을 믿는 믿음의 결국은 곧 구원이다. 보배로운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자는 감사 밖에 더 다른 방법이 없다. 지금 내 환경 속에서 감사가 없다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구원의 결국을 보는 자가 되는데 무진장 감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믿음은 방황의 끝이다. 헛된 것을 위한 시간 낭비의 끝이다. 무너질 세상, 여리고를 위해 사는 것도 끝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편이 되게 한다. 믿음은 목적을 분명하게 한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 되면 미래를 향해 행동한다. 그래서 쓸모 없다고 업신여김 받은 사람도 멋진 인생이 된다. 믿음의 사람이 되면 버림받은 인생 - 그 여자는 틀렸다 - 멸시받은 인생도 위대한 인생이 된다. 노리개감 인생이었던 기생 라합이 믿음을 가질 때 축복의 통로가 되었듯이 삶의 역전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소식을 듣도록 하자. 말씀의 소식, 복음의 소식, 교회의 소식, 생명을 얻은 소식을 듣고 전하라.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의 승리의 소식이 서수원 지역에 들려지게 하라. 퍼지게 하라. 죄에 승리하고 어두움에 승리하고 성도들의 이기는 소식이 아파트에, 다가구 주택에, 빈민촌에 들려지도록 하라. 그것이 전도다. 그것이 새 생명 축제이다. 방송 선교요 문서 선교이다. 구원 얻을 사람은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극동 방송에서 오목천 교회가 방송에 나가니까 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가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말씀을 들려주자.
33세난 니콜슨은 강간 혐의로 구속 재판을 받는데 재판장, 속기사, 두 명의 보조원, 모두 네 명을 죽이고 탈주하였다. 그리고 지하실 집으로 숨어 들어간 새벽 2시에 다섯 살 난 딸을 기르는 젊은 과부 여인이 출근을 하기 위해 나설 때 이 흉악범 니콜슨은 아이 엄마를 윟ㅂ하여 집으로 들어간다. 총에 맞아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아이 엄마는 침착하게 말을 하였다. "내가 죽으면 다섯 살 난 아이는 누가 기를 수 있느냐?" 하면서 서재의 책을 펴서 일곱 시간동안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은 뜻이 있으시지만 우리가 그 뜻을 찾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은 그대를 뜻이 있어 내 집에 보내셨다. 뜻을 찾으려 보내셨다. 왜 여기 오게 되었는가? 스미스라는 이 여인은 남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면서 당신은 뜻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였다. 결국 이 흉악범은 일곱 시간동안 들려주는 책의 이야기를 통해 살기 등등한 총을 버리고 경찰소에 전화하였다. 자수하여 잡혀가겠다고 투항하였다. 사건이 종료된 후 TV 방송국에서는 스미스라는 여인이 도대체 무엇을 들려주었을까 그리고 그 들려준 이야기가 적힌 책이 무엇일까 라며 질문할 때 하나님의 뜻이 담긴 책,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설교하였다고 말을 한다.
스미스 여인은 전도를 한 것이다. 인간은 창조의 목적이 있으며 왜 사느냐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차근차근 들려준 것이다. 그 때 말씀을 들은 살인범은 자기의 방황의 이유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는 총을 버린 것이다. 믿음이 들어오니 살기와 폭력과 미움이 녹아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들어오니 목적이 생겼다. 쓰레기 인생이 아니라 자신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믿음의 존재임을 알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는 기생 라합의 축복을 보며 내가 라합의 믿음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함을 결단하자. 그리고 복음을 들려줌으로 가장 위대한 사랑을 나눠주고 이 시대 속에서 라합과 같은 축복의 여인을 출현시키자. 9월 25일 새 생명 축제의 날 두 사람을 데려오는 일을 위해 7시간이 될지라도 끝까지, 70시간이 될지라도 열심히 복음을 들려주는 사람이 되자.
(김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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