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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거하심, 홀로 거하심 (눅 5: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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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육적인 몸을 가지고 살지만 특별히 영적 존재이다. 예수님은 마4:4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전인적으로 잘되어야 한다. 영이 잘되고 마음이 잘되고 육신이 잘되어야 한다. 요한3서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기원은 균형 잡힌 행복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영, 혼, 육 전체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생활이 필요하다. 그 기초가 두 가지이다. 즉, 일만해서도 안되고 종일 쉬기만 해서도 안된다. 1) 쉼 없이 일만하면 일의 보람이 없고 능률이 없다. 일이 보람이 있는 것은 안식의 날, 멈춤의 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 쉬기만 해서도 안된다. 쉬기만 하면 안식의 기쁨이 없고 쉬는 것 조차 형벌처럼 느껴질 수 있다. 휴식하는 날이 신날 수 있는 이유는 일을 하며 땀을 흘릴 수 있는 그 다음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하고 휴식하는 그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전제 조건이다.

하나님은 이 인간의 구조를 아시고 여섯째 날까지 일하시고 하루동안 모든 사람이 안식하는 법을 계명으로 명령하신 것이다. 출20:1∼7 말씀에 나오는 십계명 중 제4계명을 보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신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니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복음의 시대에 살면서 안식일을 주일로 지킨다. 구원을 완성하신 날,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을 안식일의 완성으로 성수한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주님께 예배하는 일을 하며 안식한다. 즉, 주님의 일은 영혼을 기쁘시게 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고 영혼을 강건케 하는 것으로 주일은 영혼의 풍성을 위한 날인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인생은 주일 성수하는데서 시작된다. 엿새 동안 일하는 사람이 예배를 드리는 삶을 통해 전인적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향한 안식일의 법, 인간 행복의 법은 예수님의 삶 속에서 이렇게 나타난다.
일하시는 예수 - 사람들과 함께 거하심.
유식하시는 예수 - 한적한 곳에 홀로 거하심.

두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창조의 안식일을 성수해야 하지만 안식일의 주인되신 에수님의 삶의 모습을 좇아 일하며 안식함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행복한 삶을 포기한 채 사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쉰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쉰다는 것이 내 사전에 없다는 사람들이다. 쉼을 불행의 조건으로 아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쉬는 것은 노는 것이 아니다. 쉬는 것은 다음의 일을 잘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그러나 쉬는 것을 노는 것으로 착각하고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병든 자화상이다. 끊임없이 일이 계속되어야 하고 일 속에 파묻혀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고 사는 사람은 일 중독증에 걸린 환자이다. 영적인 하나님의 법으로 볼 때 바쁘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단의 계략이다. 이는 말씀의 법을 어기고 사는 사람이며 쉼 없는 일은 능률도 저하되고 결국 일을 하는 사람 자신도 병들게 만드는 불행의 달음박질이고 사로잡힌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일하는 예수, 그리고 휴식하는 예수, 다른 말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 사람들을 떠나 홀로 거하시는 삶이다.

막1:35 "예수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내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하였다. 예수는 홀로 있으려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이다. 새벽 시간 전에 일어나신 예수님은 한가하셨는가? 아니다. 모든 병자와 모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온 동네 문 앞에 모였고 막1:34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셨다" 하였다.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이란 만 가지 병을 지닌 만인을 고치는 일을 한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며 사람들을 통해서 땀을 흘리신 것이다. 그러며 이때가 언제인가? 막1:32 "저물매 해질 때에" 라고 하였다. 만인의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와서 주님이 고치는 일을 할 때가 저녁 시간인 것이다. 그 때부터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니 한밤 중이 되도록 밤늦게까지 일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 거하신 예수는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나가셨으니 기도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막6:31에 가서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너무도 분주하였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분주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사람들과 함께 거함을 강조하지 않으신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한적한 곳, 따로 홀로 있을 곳을 제시하여 주신다. 쉬라는 권고를 하시는 것이다. 눅6:12을 보라 예수는 사람을 택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자기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신다. 홀로 있으면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철야 기도의 시간은 혼자 거하시며 하나님과 의논하는 주님의 퇴정, 퇴수회의 모습이시다.

오늘 본문을 보라. 주님의 함께 거하심과 홀로 거하심은 반복된다.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고치셨을 때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져 나간다. 사람들의 허다한 무리가 말씀을 듣고 병의 나음을 얻고자 모여들었다. 그 때 예수는 눅5:16에서 홀로 거하심의 길을 간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더라.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의 삶을 닮아야 한다.

첫째, 일이 많아도 시간이 없어도 분주해도 사람과 함께 머물러야 함에도 홀로 있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홀로 있음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함인 것이다.

둘째, 홀로 있는 다음에는 다시 사람들과 함께 거하는 일을 시도해야 한다.
눅5:17 예수님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섞여 있으시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의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함께 하여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신 것이다. 홀로 있음은 다시 사람들 속에 함께 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는 것은 사람들 속에 어울리기 위함이다.

셋째, 이렇게 함께 있는 것은 홀로 거하려는 것이 따라야 되고 홀로 거하시는 예수님의 삶은 함께 사람들과 거하려는 것이 따라 오는 것이다.
더불어와 홀로는 뗄 수 없는 건강한 삶의 구조이다. 홀로 거하기가 없이 친교를 원하는 사람은 공허한 일과 감정에 빠진다. 반면 친교 없이 홀로 거하기를 행하는 사람은 자기 도취와 절망에 빠진다. 그러므로 함께 지내는 일을 의미 있게 하려면 홀로 있기의 고요함을 찾아야 하고 그리고 평안하게 홀로 있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삶을 찾아야 한다. 이 둘은 행복한 삶의 비결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두 가지 삶이 예수님의 방식이요 습관인데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과 뒤섞여 희희낙낙하고 친교하고 땀흘리는 일을 잘하지만 조용한 곳을 찾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참된 행복, 건강한 삶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 그것은 바쁠수록 기도하는 삶, 기도하기 위해 홀로 있는 삶을 습관화하는 일이다. 영적 생활에 대해 너무도 무관심하여 주님의 보여주시는 삶을 거절한 우리를 돌이키는 것이다.
기도하기 위해 홀로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바쁘다는 것을 내세우지 말라.
바빠요, 시간없어요, 일해야지요...그것은 다 핑계이다. 바쁠수록 멈추어서야 한다. 눅10:40 분주한 마르다가 주님께 칭찬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멈추어서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칭찬을 듣는다. 일이란 오늘 해도 내일 또 있다. 죽는 날까지 있다. 그러므로 바쁘다고 내세우는 것은 자랑할 것이 아니다.

2. 자투리 시간, 틈새 시간을 사용하라.
엡6:16 "세월을 아끼라" 하였다. 시간은 관리하기 나름이다. 시간 관리가 기도 생활의 필수이다. 출근할 때, 자동차가 기다릴 때, 퇴근길에,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 다음 일을 기다리기 전 그 틈새나는 조각 시간은 홀로 있으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순간 기도를 하라. 홀로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된다. 주어진 24시간, 그 시간의 틈은 언제든지 있다.

3. 고요한 장소를 준비하라.
눅5:16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서"라고 하였다. 어디로 갈 수 없을 때 집의 어느 한편에 누구든지 홀로 가서 앉아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다. 거기에 의자를 갖다놓고 혼자 있게 해 준다. 교회의 건물 내부에도 홀로 있기 원하는 자들이 거하는 장소를 마련한다. 집을 지을 때 묵상의 방을, 홀로 있기의 방을 설계한다. 이제부터 한적한 곳을 마련하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이다. 기도로 교제하는 곳이 되게 하라.

4. 하던 일을 중단하라.
눅5:15∼16 예수님은 모여오는 사람을 두고 뒤로 물러갔다. 기도하러 가셨다. 홀로 있으면서 기도하려면 하던 일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 하던 일에서 멈추어서라. 일은 내일도 모레도 기다린다. 평생해야 된다. 그 돌아가는 틀에서 멈추어서라. 돈버는 기계가 돌아가든 상관말라. 물러서면 된다. 기도하는 곳에 갈 수 있고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

5. 기회를 놓치지 말라.
고후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였다. 여름은 휴가의 계절이다. 직장마다 회사마다 일주일씩 휴가를 준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러나 휴가가 쉼이 되지 못하고 지치고 피곤한 시간들이 된다. 그것은 영적 훈련의 기회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집중적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의 사간, 집중적으로 말씀을 듣고 자연과 말씀과 사건을 묵상하는 시간, 이런 시간을 위해 휴가를 사용하라.
기회를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수련회에 가면 조용한 곳, 한적한 곳으로 갈 수 있다. 거기서 영혼도 전환되고 마음도 몸도 재충전 될 수 있다. 남자들은 담배도 끊을 수 있고 방언도 받고 변화받을 수 있다. 일년에 한번 교회 수련회에 악착같이 참여하자.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며 내면을 오직 하나님의 음성으로 채울 수 있다. 거기에서 당신의 영혼은 변화되고 당신의 휴가는 가장 가치있게 사용될 것이다. 반드시 또 일하는 일터 속에서 힘차게 다시 돌아와 많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어울리게 될 것이다. 뛰어난 지도자, 리더쉽을 가진 사람은 기회를 보는 자가 아니다. 단연코 기회를 포착하고 그 기회에 뛰어드는 사람이다. 은혜 받는 기회, 변화 받는 기회, 성장하는 기회, 이 기회를 사용하라.

나는 학창시절 수련회에 갔다. 산상 성회시 정영문 목사 집회 인도를 했는데 폭우 속에서 은혜를 사모하였다. 기도하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물 위에서 자고 있었다. 그 때 그곳이 산기도의 장소가 되었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수련회 덕분이다. 거기서 예수의 이름으로 마음껏 울고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은혜를 기회를 포작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만나려 하자.
찰스 피니는 법률가로서 하던 사무일을 뒤로하고 숲으로 갔다. 한달 동안 산으로 가서 자신의 영혼에 구원을 갈망하였다. 은혜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홀로 거하기를 할 때 성령을 받았다. 회심하였다. 수련회를 기도하는 기회로 삼아 함께 어울리는 삶이 복되고 윤택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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