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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릎으로 세워지는 교회 (행 1:12-14,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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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집에서 교회 오는 길에 공터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인없는 땅처럼 버려져 있어서, 차들이 주차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거기에다가 채소도 심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건물이 세워졌는데, 아주 멋있는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사실상 네모반듯한 땅도 아니고 좁아서 거기 건물이 세워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지어놓고 보니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짓기까지는 예산을 꽤 많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갈수록 건물도 그만큼 좋게 지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강남 역 주변에 높은 빌딩들이 하루게 다르게 세워지고 있는데, ‘참 많은 돈을 들였겠구나’ 첫 번째 들어오는 인상이 그렇습니다. 요즘은 교회를 하나 제대로 지으려고 해도 보통 수십억이 들어가고, 신도시에 조금 크게 짓는 교회는 백억원 이상은 보통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진정으로 돈으로 세워지는가? 물질이 없으면 세워질 수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작은 상점보다는 현대식으로 건축해서 편리한 시설을 갖춘 백화점을 찾아가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작은 교회보다는 수십억, 수백억원을 들여서 지은 교회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차시설, 교육시설이 잘 되어 있는 교회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서 빨리 큰 교회를 지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게 해야 하는가?
    큰 교회에 대한 꿈도 좋지만, 그런 꿈을 갖기 전에 먼저 ‘교회는 진정 무엇으로 세워지는가’에 대한 바른 지식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교회가 무엇으로 세워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에 대한 가장 바르고 정확한 이해는 교회가 처음 생기던 때, 초대교회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예수님을 좇던 제자들, 여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최초의 교회의 형태였습니다. 1:13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한 번 머리 속으로 이 때의 장면을 그려보십시요.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1:15에 의하면 모인 무리의 수가 120명이나 되었는데, 그들이 전혀 기도에 힘썼을 때, 오순절 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무리 가운데 성령님이 강력히 임했습니다.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서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지면서 각 사람 위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회개의 역사, 교제의 역사, 전도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온전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졌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무릎으로 세워졌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20명의 무리가 모여서 기도한 곳은 한 집의 다락방입니다. 그렇게 넓은 장소가 아닙니다. 요새는 집에 다락이라는 것이 따로 없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다락이라는 것이 있어서 안쓰는 물건을 보관하기도 하고 창고처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렇게 넓은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 곳에 120명이 모일려면 얼마나 비좁았겠습니까? 선풍기는 물론이고 에어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려니, 다리를 펴고 기도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했을 때,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임하고, 성도들이 성령충만해서 자기 죄를 다 회개하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사랑으로 떡을 떼고, 삼천명이 회개하고 제자가 되는 전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2:41).
    진정한 교회는 오직 무릎으로 세워집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으면, 그 때부터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성령님이 앞장서서 일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릎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릎꿇을 생각은 하지 않고, 능력 탓만 하고 있고, 장소 탓만 하고 있고, 예산 탓만 하고 있고, 사람 탓만 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이 도와주실래야 도와주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성령님만이 세우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오직 무릎으로 하는 자에게만 역사하시고, 무릎으로 하는 교회만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우리의 무릎을 제일 먼저 검사해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교회를 세울만한 무릎인가? 야고보는 ‘낙타 무릎을 가진 사나이’란 별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으면 그런 별명이 붙었겠습니까?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그의 무릎이 낙타처럼 굳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야고보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중요시했는지는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낙타무릎으로 온전히 무장했기 때문에 영적인 분별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행 15장 예루살렘 교회에서 회의할 때, 야고보는 조리있는 언변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청파동에 삼일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전통적인 교회였지만, 지금은 젊은 청년들이 많이 모입니다. 그 교회가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로 부흥하게 된 주된 원인은, 바로 목사님과 청년들의 무릎에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야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탄식하면서, 모이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가운데, 초대교회 같은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전병욱 목사님의 ‘낙타무릎’이라는 책에서도 그 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되었는데, 교회부흥의 비결은 오직 무릎으로 기도하는데 있었습니다.
    부산 수영로교회를 담임하는 정필도 목사님이 신학생 시절, 개척해서 전도사로서 사역할 때, 하루는 어느 집사님이 와서 대뜸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전도사님, 예배당에 교인들이 꽉 차기를 바라십니까?” 그래서 눈을 크게 대답했습니다. “아이구,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당연히 꽉 차기를 바라죠.” 그러자 그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물이, 기도의 눈물이 여기에 차야 예배당이 찬답니다. 교인을 채우는게 그렇게 힘든 거랍니다.”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목사님은 예배당을 눈물로 채우는 목회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교회는 오직 무릎으로 세워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역에 임해서 수많은 응답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교회가 성장해서 새성전 부지를 놓고 기도할 때는, 부산 복음화를 위해서 사흘동안 교인 전체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50만 성도를 보내주소서!” 바다를 매립한 땅에 무릎을 꿇고 비전을 가지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 그 땅을 선물로 주시는 응답을 체험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다시 세워질 때는, 오직 무릎으로 세워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기초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오직 무릎으로 기도하는 성도들, 오직 무릎으로 기도하는 청년들, 오직 무릎으로 기도하는 청소년들, 오직 무릎으로 기도하는 어린이들이기를 소원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성도들이 눈물로 예배당을 채우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새벽기도회가, 브니엘기도회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무릎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차야 합니다. 목사가 ‘새벽기도합시다’ 한 마디하면, 모든 성도들이 만사를 제치고 새벽성전의 자리를 지키고, 무릎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br>
&nbsp;&nbsp;&nbsp;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연약한 교회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어떤 세파에도 끄떡하지 않는 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조금도 미동하지 않는 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계를 복음화하고 대한민국을 복음화하고 서울도성전체를 복음화하는 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서울중앙교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능하면 ‘대한민국중앙교회’, ‘세계중앙교회’라고 해도 되지만, 우선 서울복음화를 위해서 그렇게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뜻을 크게 품었으면, 그에 합당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서울중앙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새벽무릎’이 되어야 합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나와서 울부짖어 기도도 해보고, 눈물로 기도도 해서 예배당 바닥을 눈물로 적셔야 합니다. 아파서 못나오고, 힘들어서 못나오고, 피곤해서 못나오고, 집안에서 반대해서 못나오고, 멀어서 못나오고...... 그렇게 때문에 믿음도 자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은 만큼 믿음도 자라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응답은 당연히 없습니다. 신앙의 감격적인 기쁨이나 체험도 당연히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약해지고 시험에 들고 분쟁에 휩싸이는 것은, 그 안에 무릎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새벽무릎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릎이 너무 부실합니다. 조그만 시험이나 어려움이 와도 교회가 흔들흔들합니다.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고린도교회처럼 분파가 형성이 되어서 서로 분쟁합니다. 그러니 교회가 성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서울중앙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신다면 새벽무릎으로 그 사랑을 증명해보이십시요. ‘새벽기도는 내가 안하던 것이니까 그것까지는 굳이 할 필요없다’라는 고정관념을 깨십시요. ‘나는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십시요. 그러면서 새벽무릎을 통해서 주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십시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습니다. 거룩한 야성을 가지고 새벽무릎으로 헌신하는 종들이 되어보십시요. 무릎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구하는 모든 것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stand-by가 되어 있는데, 우리가 무릎을 꿇지 않는 것, 이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 때나 오늘이나, 무릎으로 헌신하는 사람, 새벽무릎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축복하시는데, 누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아무개 장로님, 아무개 권사님, 아무개 집사님, 아무개 교우님...... ‘내가 새벽무릎이다’ 왜 나입니까? 내가 먼저 은혜를 받아야 남도 섬길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축복을 받아야 남도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은혜를 받지 못하는데, 어찌 남을 도울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남이 기도하지 않을 때는, ‘저 분이 기도를 해야할 사람인데 기도를 왜 안 하나?’ 판단할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만큼 복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냥 불쌍히만 여기시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십니다. 스스로 안할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셔서 그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나도록, 그래서 억지로라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드실 날이 옵니다. 그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기도하면 할수록 확신하는 성경구절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시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 울며 씨를 뿌리러 나아가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기쁨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 변화와 성장이 없는 이유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릎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확신하십시요. 눈물을 흘리는 사람, 무릎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으로 추수하게 됩니다.
    이번 30일 헌신새벽기도회는 참 중요한 시간입니다. 창립 3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교회가 부흥하느냐 아니면 정체하고 쇠퇴하느냐, 우리 교회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 아니면 예전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느냐, 그 관건이 이번 기도회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사생결단하고 기도회를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인도하다가 도중에 쓰러지거나 그만 두는 일이 없도록, 뜨겁게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쓰러지면 영광이라고 하는데......그리고 전교인이 자신의 기도의 자리를 채우셔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눈물이 예배당 안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도한 자리에 무릎을 꿇은 흔적이 보여야 하고, 그 무릎꿇은 자리가 깊이 패여야 합니다. 그 깊이 패인 자리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 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도록 고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대인은 속도와 빠름을 좋아합니다. 차량에 네비게이션을 다는 것도 목적지까지 정확히 그리고 빨리 가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네비게이션은 ‘새벽무릎’입니다. 오직 무릎으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오직 무릎으로 교회를 세워가시고, 무릎으로 헌신하셔서 주님을 최고로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충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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