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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발견하라 (사 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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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기도>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 땅 대한민국에 4계절을 주셨음에 감사 드립니다.
무더위는 지나가게 하시고 선선한 바람의 새 계절을 느끼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국제적으로는 원유 가격이 폭등하고, 대형사건 사고가 빈번하며…
국내적으로는 정치적인 불안을 보이고 믿고 따를 지도자를 찾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만 섬깁니다.
요동하는 사람의 소리에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 예배를 통해 새 힘 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함께 예배드릴 수 없는 이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셔서,
외국과 객지에 나가 있어도, 병상에 누웠어도,  군대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은혜를 체험케 하옵소서.
부족한 종을 강단에 세우신 하나님!
말씀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낙심자가 일어서며,
영육간에 병든 자는 치유 받는 능력의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9월의 주인공이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장래를 알 수 없습니다.
9월에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옆의 분과 "9월에 만나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엔 절망적인 큰 일들이 많습니다.
폭발 사고도 있었고, 해일로 전세계가 놀랐고, 전쟁과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큰 태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 지 조차 파악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남쪽에서도 나비(태풍)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계속 되고 있지만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범사에 감사하며
"할 수 있다, 해 보겠다, 해 보자, 좋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으로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답게 믿음의 말을 하며 9월을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삶에는 목적이 있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났다가 밥 먹고 잠이나 자다가…
흘러가는 세월에 얹혀 살다가 죽는 짐승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인생은 먹고 살다가 때 되면 죽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만, 그 분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다가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합니다.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결국 그렇게 살다가 절망 속에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삶의 목적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방향을 모르고 뛰는 사람과 같습니다.
42.195km를 뛰는 마라톤 선수가 아무리 건강하고 잘 뛴다 해도
결승점을 모르면서 뛴다면 열심히 뛰더라도 그 결과는 헛고생이 되고 맙니다.
 
삶의 목적이 없다면
배우는 것도, 출세하는 일도, 돈을 버는 것도… 모두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아는 일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아무렇게나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 때에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지으셨는지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이 말씀은 우리 삶의 방향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삶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구체적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 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We were Planned for God's Pleasure.)
 
노아의 때는 죄악이 극에 달했던 시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사람들은 온통 죄짓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죄를 지어도 감각이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주목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노아였습니다.
창세기 6장 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그러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죄 짓고 살 때 노아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 쏙 들었다'는 말입니다.
(Noah found favor in the eyes of the Lord)
 
사람은 눈에 띄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연애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만 자신의 눈에 띄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괜찮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마음에 들어하신 것은
남자와 여자가 맘에 들어 하는 것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노아는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 눈에 들었고,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좋아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창세기 6장 22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창 6:22)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모두 "다" 했습니다(Noah did everything!).
배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은 노아는 충분히 의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 노아는 비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홍수가 오기 전에는 이 땅의 모든 물은
  하나님께서 지면의 샘을 터 뜨려 주셨기 때문입니다.(창 2:5~6)
2) 배를 짓는 일은 120년이나 걸렸습니다.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나도 비는 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미친 사람"이라는 비난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방주를 짓는 일은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겠습니까?
4) 수많은 동물들을 방주에 들이고 돌보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everything)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부분적으로 포기하거나 미루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다 순종했기 때문에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 들은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분적으로 순종합니다.
그러나 "다"는 아닙니다. 자기 머리로 이해된 것만, 자기가 편한 대로 순종합니다.
연말이 되면 교역자들이 내년에 일꾼을 세우기 위해
이 사람, 저사람 기도하며 생각해 본뒤 일을 맡기려 하면…
어떤 성도들은 "기도해 보고 하겠습니다"라고 미룹니다.
얼마나 평소에 기도 생활을 많이 하기에
교역자들이 기도하고 정해서 일을 맡기는데 "기도해 본다"는 말로 거절합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데
하나님께 기도해 보고 한다면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겠습니까.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하지, 기도해 보긴 뭘 기도해 봅니까.
어떤 분은 "Amen" 해 놓고도 시침을 뚝 뗍니다.
기둥교회 성도들도 '아멘' 하고 시침을 뚝 뗍니다.
여러분이 아멘 한 대로 살고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가 아니라 자기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이해되는 것만 적당히 하려고 합니다.
 
-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 교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예배를 꼭 드려야 하느냐는 분들이 있습니다.
- 예배는 드리지만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느냐는 분들도 있고
- 십일조는 드리되, 직접 봉사는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교회 목사님께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그 교회에서 고생스러운 일을 해야 될 일이 있어서
  생활도 안정되어 있고 시간에 구애 받지 않을 만큼의 여유를 가진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봉사를 부탁했더니 '아멘'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수고하는 여선교회 회원들을 위해
  간식비를 가지고 격려하기 위해 갔더니 모두 낯선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 띠는 두르고 일을 하는데 그 교회 여선교회 회원들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일용직 근로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돈을 거두어 사람을 사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돈은 냈는 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봉사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가 아닙니다.
- 봉사는 하되, 성경공부는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말로는 잘합니다. 찬양도 잘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라고…
  그런데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공부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 알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연말에 임원을 선출할 때
  에서 공부를 했는지, 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고자
  배우는 자리에 있었는 지 알기 위함입니다.
 
부분적인 신앙, 부분적인 순종을 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에 너무나 많습니다.
노아의 때에도 대충하는 사람, 부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다" 순종했기 때문에
자신도 살고, 가족도 사는 "온전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눈에 "쏙" 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눈에 드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 되도록 지음 받았을 뿐 아니라

2.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We were Formed for God's Family.)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했고
고린도후서 6장 17~18절을 보면 
  "…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7~18)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 좋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받는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산입니다.  성경은 거듭거듭 우리에게 "유산"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4: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1:7)
'유업(inheritance)'은 조상으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사업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이기에 유산이 있습니다.
어떤 유산이 있습니까?
첫째,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로 유업을 이을 자로 살게 됩니다.
1) "그의 은혜" (롬 5:15)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오늘 구원받았음을 아는 은혜가 넘칩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롬 5:15)
2) "지혜" (약 3:17)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하늘의 지혜로 승리케하십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약 3:17)
3) "능력" (고후 13:4)
    때때로 세상은 낙심케 하지만, 고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부활의 능력으로 천국의 소망으로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후 13:4)
4) "자비" (엡 2:7)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배반하는 사랑, 한계가 있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시는 에너지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엡 2:7)
이 밖에도 셀 수 없는 하나님의 유산이 있습니다.
 
둘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1)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살전 4:17 / 5:10)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살전 5:10)
 
2) 완전히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처럼 될 것입니다.(요일3:2 / 고후3:1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3) 모든 아픔, 죽음, 그리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4) 우리는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5)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벧전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벧전 5:4)
 
그러므로 현재 얼마 더 있다고, 더 없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할 일을 바르게 하고
우리의 삶의 목적을 정확히 깨닫고 그 삶의 목적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가장 예쁜 자녀, 가장 많은 유산을 주고 싶은 자녀가 어떤 자녀입니까?
부모님께 "예!" 하는 자녀, 순종하는 자녀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께 '예'(Yes)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르트는 손자가 말을 배우는 모습을 통해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손자에게 말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 라는 말부터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싫어서 고개를 흔들면서도 입으로는 '예'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때 바르트의 머리 속에 성령 충만한 자의 대답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 싫어도 '예'하는 고백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면서 그는 고린도후서 1장 19~20절의 말씀을 상기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Yes)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Amen)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19~20) 
 
힘이 들고 어려워도 "아멘 아멘" 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고 "예"하는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 되도록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을 뿐 아니라

3.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We were Created to Become Like Christ.)

사람들은 자녀가 아버지를 닮을 때
'부전자전'(父: 아비 부, 傳: 전할 전, 子: 아들 자, 傳:전할 전)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시흥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첫날 저녁 설교를 하고 나오는데 어떤 분이 저를 붙잡더니
"혹시, 혹시… 고용봉감독님하고 무슨 관계가 있으세요?"라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네, 제가 아들입니다"라고 했더니
"어쩐지, 닮았네"라고 하시며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겠죠. 제가 아버지를 닮지 누구를 닮았겠습니까.
 
자녀가 부모의 모습을, 행동을 닮았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이 저를 닮았다고 하면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좋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다"(창 1:31)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닮아야 하는데 닮지 않습니다. 성장해야 하는데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요3:16)
그러나 영적인 성장은 우리가 노력 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힘쓰라"는 말씀이 8번 나옵니다.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눅12:58)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13:24)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14:19)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3)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2:15)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4:11)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1:5)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3:14)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이 말씀대로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고, "분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변화"(transformed)의 헬라어 원어는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입니다.
이 단어는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변화'를 이야기할 때 사용합니다.
번데기가 번데기로 있으면 죽은 것입니다.
번데기가 껍데기를 깨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변화될 때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세상 삶의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해 가는 중에도 뜻하지 않은 장애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포기하고 머물러 버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엡 4:13) 까지 이를 수 없습니다.
누에도 나비가 되려고 껍질을 깨는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태어난 본성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노력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변화되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태어난 성품대로 사는 것,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닮아 가기 위해 본성을 억누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아유, 내가 참자, 참는다'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 방법대로, 세상 즐거움 따라 사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는 갈등의 순간이 많습니다.
주일 성수하는 것도 그렇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그렇고…
부부간에 화목을 위해 애쓰고, 가정의 평안을 위해 참고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형제끼리 화목하기 위해서도 애써야 합니다.
예수 믿어 교회에서 만난 사람과도 평안하기 위해
참고 견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시험보고 들어온 것 아니고…
성격 테스트 해 보고 들어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부 제각각인 사람이 모여 하나되는 방법은… 자신이 깨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2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콩자루 같은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메주 같은 교회입니다.
콩자루 교회는 잘 모여 있고 개성 강하게 제 모양을 갖추고 있어 보여도
자루가 찢어지면 제각기 흩어집니다.
메주 교회는 콩들이 으깨져서 콩모습은 사라지고 뭉쳐진 상태이기에
한 덩어리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쉽게 갈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둥이라는 교회에 있는데 콩 째로 있습니까?
아니면 메주가 되기 위해 자신을 깼습니까?
성격이 별나신 분들, '나는 나니까, 나는 원래 성격이 이래서…'라고 하는 분들은
여전히 콩으로 남아 있는 것이고
나를 깨 버리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자처하신 분들은 메주가 되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면, 어울리려면… 나를 깨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콩자루 집안이 있습니다.
가족들 각자 콩이 되어 제각각인 가정, 하나되지 못한 가정이 콩자루 집안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메주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족들 서로 덮어주고, 이해하고, 감싸주며, 자기를 부수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면 아까운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2000년에 Amsterdam에서 영국의 유명한 Cliff Richard라는 가수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고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포기'(Give up)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 주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지 않고
"하나님 내 원대로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기둥교회가 진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둥교회는 내 뜻대로 '다'(everything)한, 내 마음에 드는 교회다"라는
칭찬 듣기 원합니다.
기둥교회는
"예배드리는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교회"로
"삶의 목적을 알고 목적을 성취해 가는 복된 성도가 모이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나도 살고, 가족도 사는 것입니다.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돈을 왜 버는 지, 번 돈은 어떻게 써야 하는 지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바르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 둘째 아들은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태어났고,
지금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방학에 왔다가 지난 주에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다른 때에는 할아버지나 제가 주는 용돈을 받아 쓰다가 돈이 남으면
제 엄마에게 주면서 용돈으로 쓰시라고 하며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봉투에 용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십일조, 건축헌금, 감사헌금, 벽에 붙은 아이들>이라고 구분해 놓았습니다.
벽에 붙은 아이들은 '생명살리기' 대상인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현재 258명의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먹이고
공부시키고 있고, 그 사진이 교회벽에 붙어 있습니다.>
 
저는 돈을 구별하여 헌금한 것을 보고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무엇보다, 돈이 있다고 다 자기가 쓰는 것 아니고
어떻게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세상 삶도 땀흘려 일하여 얻은 소득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에게 베풀며, 자신도 윤택하게 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삶, 하나님 마음에 합한 가정생활, 사회생활 어려울 것이 뻔합니다.
부부되고/부모되고/자녀되고/형제되는 것…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세상살이가 어렵습니다.
대통령만 못해먹겠다는 세상이 아닙니다.
백성도/남편도/아내도/가장도… 못 해먹을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세요.
삶의 목적을 위해 이겨야 하기에 승리하자는 것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 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We were Planned for God's Pleasure.)
2.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We were Formed for God's Family.)
3.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We were Created to Become Like Christ.)
 
그러므로 힘이 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따라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노아와 같은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삶의 목적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연약한 저희들을 붙드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잘했다 칭찬 받는 자리에 모두가 주인공'이 되도록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땀흘려 얻은 물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신일 목사, 2005년  9월  4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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