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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 (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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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 되면 매스컴에서는 올해의 국내외 최대 뉴스가 무엇인가 하고 그해 최대의 뉴스를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새천년을 맞이했을 때에는,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최대 뉴스를 찾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 전체에 있어서 최대 뉴스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고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이 오신 날이 세계적인 명절이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오신 때를 역사의 기점으로 삼아 B.C와 A.D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그 가치를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유럽의 한 상인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느 마을에 머물렀을 때 선반위에서 광채를 발하고 있는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상인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저 돌멩이는 누구의 것입니까?”“저것은 내 아들이 산에서 주어온 것입니다.”상인은 주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내가 좋은 장난감을 하나 줄테니 저 돌멩이를 내게 주지 않겠소?”주인은 선반에 놓인 광채 나는 돌멩이를 주면서“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제 아들도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주인은 상인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주인은 그것이 값비싼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 상인은 그 보석을 가지고 와서 보석상에게 12만 5천 달러, 한화로 약 1억 5천만 원에 팔았습니다. 지금은 수백만 달러 즉 수십억 원을 호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진정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여기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 땅위에서의 풍성한 축복과 삶의 행복이 있습니다. 성공의 지혜가 공급됩니다. 삶에 영광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이 귀한 진리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하셨으며 또“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태복음 13:44-46)하셨습니다. 어떠한 대가를 지불 하더라도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것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실까요?

1.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보았다”라는 말은 특수 용어로써 눈으로 똑바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어른들을 뵙거나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을 볼 때에는 눈의 시선이 양복의 윗단추 두 번째 위치 정도에서 머물러야 예의 바른 태도였습니다. 똑바로 쳐다보거나 응시한다는 것은 불손한 태도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서양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 마주 쳐다보며 눈빛을 보고 얼굴 표정을 읽어가면서 말해야 의사소통이 더 잘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본문에서“보았다”라는 의미는 멀리서 보았거나 우러러 본 것이 아니라, 뚫어지게 똑바로 보았다는 특수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 있고, 똑바로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이고, 그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이며,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눈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확실하게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토록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보았더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단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허물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본 제자들의 눈에는 영광만이 가득했는데, 가까이서 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대제사장의 눈에는 허물진 자, 살려둘 가치가 없는 자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예수님은 아무 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시간 낭비로 여겨집니다. 순종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은 자유의 속박 같아 보입니다.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는 사람의 생각은 그것이 아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함을 압니다. 나의 생명의 주님, 내 삶의 행복의 근원이신 주님, 내 삶의 승리의 근원이 되심을 압니다. 이 주님을 통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을 받아 누립니다. 이 주님을 통해 세상을 이기는 지혜와 용기를 공급 받습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을 힙 입고 살아갑니다.

널리 알려진“벤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고대 로마시대에 살았던 한 유태인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그린 작품입니다. 복수를 하려고 칼을 들고 날뛰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그 손에 칼이 떠나고 원수를 사랑으로 받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자는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이며, 문학의 천재이며, 터키 대사를 지낸바 있는 류 윌레스(Lew Wallace)입니다. 그의 생각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거짓말을 믿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이 저렇게 거짓 신화에 속고 있는데, 내가 연구를 해서 예수의 부활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거 하므로 거짓의 굴레를 벗겨주고자 다짐했습니다. 윌레스는 그의 친구인 무신론자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과 함께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확증할 수 있는 논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반박 논문을 쓰기 위해 그는 성경을 많이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진실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논문 제1장을 마치고 제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고“주여! 예수님은 나의 구주입니다. 나의 구원자입니다.”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확실성에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있은 지 2주후,“벤허”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부제는“그리스도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소설은 1880년 출판과 동시에 200만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 쓰인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저술 가운데 가장 위대한 소설, 가장 위대한 영화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세상은 어떻습니까? 멀리서 바라보면 그곳에 행복이 가득해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거기에는 공허함만 가득할 뿐입니다. 실망뿐입니다. 이 생생한 간증을 전도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 솔로몬이 세상에서 행복을 찾고자 그의 권력, 그의 지식, 그의 지혜, 그의 재산 등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행복을 찾았고, 즐겼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 행복이 가득해 보였습니다.“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여호와의 동산이 아니라 불행과 실패와 멸망의 자리였습니다. 롯은 그곳에서 아내와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그의 후손은 대대로 불행의 늪에서 허덕여야만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그 유명한 탕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인 아버지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간다면 참 자유롭고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돌아온 것은 가난과 멸시와 천대와 후회뿐이었습니다. 그는 거지의 몰골로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젊은 아들을 둔 어머니가 아들에게 타이릅니다.“주일을 잘 지키고, 성경대로 착실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니?”“아니요 나는 내 방법대로 살고 싶어요.”이처럼 아들은 언제나 반대를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교회를 멀리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옷 몇 벌을 챙겨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나면서 어머니께 하는 말이“더 이상 갇혀있고 싶지 않습니다. 성경이다, 교회다. 다 싫어졌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겠습니다. 자유롭게 살겠습니다!”하며 집을 떠났습니다.

집을 떠나는 아들의 등을 향해 어머니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정 떠나려는 너를 붙잡아 둘 수는 없구나. 그러나 너는 나의 간곡한 부탁 한마디는 꼭 기억하고 가거라. 너에게 언제인가, 답답한 시간이 오거든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되는 시간이 오거든, 너는 너의 어머니가 부르는 하나님을 찾아라 나는 너를 위하여 기도하겠다.”
집을 떠난 아들은 주색잡기로 방탕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한편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는 한 밤도 잠자리에 누워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침대 옆에서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집을 나가 아들은 방탕이 자유로 알았고, 방탕 속에 즐거움과 만족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공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방황하던 아들은 삶의 허무를 느끼다 못해 끝내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어느 여관방에서 준비한 권총으로 가슴을 겨누었습니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 순간, 그의 귓전에 어머니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 답답한 시간이 오거든, 모든 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거든, 너는 너의 어머니가 부르는 하나님을 찾아라!” 순간 아들은 권총을 땅에 떨어뜨린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소리 높여 울부짖는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의 하나님이시여!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나를 도와주옵소서! 나를 살려주옵소서!”
밤이 새도록 울부짖었습니다. 날이 밝자, 그는 어머니가 계진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후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가 훗날 세계적인 대전도자요 신학자요, 설교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곧 미국이 자랑하는 토리 목사입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았던 독생자의 영광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가득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며 정성을 다해 섬기면, 그리스도의 찬란한 영광의 후광이 내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태양빛을 받은 달이 밤하늘에 빛나듯, 내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 증거가 성경의 위인들이며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어부 베드로가 그토록 영광이 가득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한 영광의 후광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세상을 움직인 각 분야의 위인들입니다. 정치, 과학, 군사, 예술, 사업(워싱턴, 링컨, 처칠, 레오날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세익스피어, 헨델, 뉴턴, 에디슨, 카네기, 록펠러, 아이젠하워, 멕아더.)등을 총 망라해서 두드러진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영광의 후광이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자 사람의 몸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가득하십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주님의 영광이 내 삶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본문은“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셨습니다. 은혜란 값없이 받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 사함을 받으며 구원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으면 그 결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마음과 생각과 인격과 생활이 변화됩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무질서에서 질서로 전환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 사랑을 받은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될 자격이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구약성경 이사야 1:2~3에 말씀하시기를“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배은망덕하여 짐승만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한 성악가가 개 한 마리를 사랑하며 키웠습니다. 그 개는 주인이 성악 연습을 할 때마다 옆에 앉아서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성악가는 나중 크게 성공해 많은 레코드를 취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개는 더 이상 주인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거리를 방황하던 개가 한 레코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레코드 가게에서 주인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개는 축음기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죽은 주인은 나타날 리가 없고, 개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주인을 기다리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이익에 따라, 감정에 따라 조석지변이 아닙니까?
또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성경은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을 알되 하남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쓰로 지혜 있다하니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21-22)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썩어진 모습을 또 달리 말씀하시기를“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행사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글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로마서 3:11-18)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나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로마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는데 너무 풍년이라서 잉여 농산물을 누구에게 주거나 버리지 않으면 인플레로 나라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귀한 농산물을 지중해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러는 중 팔레스타인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남는 농산물을 그냥 주었습니다. 이 귀한 농산물을 공짜로 받아먹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고마운지“그라치아! 그라치아!”라고 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공짜로 받는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구원이 그렇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그렇고,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삶이 그렇습니다. 모두가 은혜입니다. 은혜충만입니다.

또 한 가지“진리가 충만하더라.”하셨는데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14:6)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타락했습니다. 범죄했습니다. 참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완전한 사람 전혀 흠과 티가 없으신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가 되십니다. 그분의 생각, 그분의 말씀, 그분의 삶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야할 삶의 기준, 삶의 참된 이치 즉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지키기 위해“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시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왜 구원이 필요한지, 구원의 결과는 무엇이고,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배우며, 묵상함으로써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를 균형을 이루여야 합니다. 은혜는 넘치는데 진리를 모른다면 광신자가 됩니다. 변화를 받았지만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는 아는데 은혜가 없다면, 매사에 자신이 아는 이치를 가지고 판단하고 비평하며, 변화를 받지 못하여 마음이 냉랭하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바퀴와 진리의 바퀴가 균형을 이룬 신앙의 수레를 타고 인생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1895년 겨울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북극의 한 지점에서 노르웨이의 탐험가인 난센이 인류 최초로 북극의 환경을 살폈습니다. 그는 돌로 오두막을 짓고 바다코끼리 가죽으로 지붕을 덮은 곳에서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지냈습니다. 그때 그는 바다의 깊이를 알아보려고 긴 줄을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줄을 밀어 넣어도 바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 날 그는 탐험일기에다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이곳 북극의 바다 깊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같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다.”그렇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가장 간결하게 표현된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16인“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신 말씀입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축복받은 사람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우러러보며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영광된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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