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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롬 7: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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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바람이 불고 있다.
건강 강좌나 건강 식품이나 건강 요법이 있다면 모두 다 필사적이다.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을 가리켜 요즘은 웰빙족이라 부르지만 어떤 누구도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도 자기의 몸을 건강하게 돌보아야 하고 높은 산과 언덕도 단숨에 뛰어올라가고 튼튼해서 병에 걸리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될 강건함은 겉사람이 아니고 속사람의 강함에 있다. 왜냐하면 겉사람은 결국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고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존재로 사라지지 않는 영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외침을 보라.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겉사람을 위해 연습하는 것에 대해 아주 부정하지는 않는다. 약간 유익이 있다. 허나 범사에 유익한 것은 경건이라고 한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드는 것이 경건이기 때문이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야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고 약속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고후4:16을 보라.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하였다.
고후4:18을 보라.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잠깐 밖에 안되는 육체의 사람을 위해 돈과 정력과 시간을 들여 단장하려 한다면 영원한 속사람, 보이지 않는 은혜와 사랑과 기업을 누리는 내면의 사람을 위해 더욱 애를 써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면,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성령으로 마음의 변화를 받자.
겉사람을 꾸미기가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들기보다 더 중요한 줄로 알고 산다면 생각을 바꾸고 회개해야 한다.
벧전3: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의 값진 것이니라" 하였다.
지금가지 우리들이 속사람, 영의 사람을 위해 살지 않았던 이 어리석음을 돌이켜야 한다. 강건한 크리스챤이 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거듭남이다. 물과 성령으로 인해 거듭나야 마음이 바뀐다. 육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나 거듭나면 마음이 바뀌어 영의 사람의 성장과 강건함에 관심을 갖게 된다.

둘째, 말씀으로 내면의 마음의 구조를 알자.
크리스챤이 되기 이전의 사람은 육의 사람이다. 육의 사람이란 죄에 종노릇하는 육신의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의 신체를 가리키는 육체는 몸이라고 표현하자. 겉사람, 몸이 나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팔, 다리, 목, 가슴이 문제가 아니다. 죄에 사로 잡혀 사는 육신이 문제다. 빌3:18∼19 그 육체의 삶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이다. 육체의 인간은 육체의 일만 행한다. 갈5:19을 보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그래서 육체의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거듭나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성령의 거듭남으로 영의 사람이 된다. 크리스챤은 몸을 가지고 살지만 육의 사람이 아니고 영의 사람이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므로 크리스챤이란 영의 사람이고 영의 사람은 다른 말로 산 자의 겉사람과 구분하여 속사람을 위해 사는 자이다.
이렇게 사람은 겉으로 볼 때 육체를 지닌 몸의 사람이지만 마음의 구조는 두 가지이다. 즉, 죄를 짓고자 하는 육체의 삶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영의 삶이다.

셋째, 마음으로 갈등과 쟁투가 치열한 것을 수용하라.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으면 항상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크리스챤은 혼란에 부딪친다. 어느 순간까지 거듭남의 기쁨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자의 감격이 있다. 그러나 곧 육체의 소욕이 영의 사람의 소욕을 가로막고 나선다. 그 이유는 아직 우리가 몸, 즉 겉사람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몸을 뒤집어 쓰고 사는 우리는 두 마음의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두 마음의 대적이 있기에 원하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없기에 갈등과 쟁투가 생기는 것이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기 원하고 영의 사람이 갓난 아기를 벗어나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이 치열한 갈등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나의 힘으로는 곤비하고 전력으로 아무 것도 이겨낼 수 없다.

오늘 본문 롬7:15을 보면, "나의 행하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나니 곧 원하는 이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이렇게 크리스챤이 되면 오히려 역할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극복하지 못하면 내면의 질서가 어수선하게 되어 속사람이 약해지고 무능한 크리스챤이 되는 것이다.

일단 갈등의 치열함을 정상으로 보라. 롬7:19∼20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신앙생활은 이런 면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이다.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이것이 두 마음이 공존하는 형상이다. 즉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살고자 하는 것과 동시에 이 속사람의 마음의 법과 싸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로 사로 잡아가는 현상이다. 즉, 롬7:25에 기록된대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충돌이다. 이것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 애쓰면 탄식 밖에 나오지 않는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무능한 크리스챤, 곤비한 크리스챤, 아무 것도 승리하지 못하는 크리스챤이 생기는 이유는 이 두 가지 사람의 싸움을 내 힘으로 이기려 하기 때문이다.

넷째, 크리스챤은 영적 승리를 위해서 성령을 좇아 행하라.
겉사람도 건강하면 잘 넘어지지 않는다. 약하면 등산하다가 낙오하고 약하면 싸워볼 생각도 못하고 먹힌다. 강자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러나 속사람이 강하면 영의 사람이 강건하게 되면 언제나 승리하게 되고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된다. 우리는 이제부터 겉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니 육신에 져서 사는 육체의 삶을 완전히 패배시키기 위해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크리스챤이 되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며 영적 무능병을 고치는 길이다.

엡3:16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승리의 생활은 성령으로 강건하게 되는 데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자. 성령을 의지하면 예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게 된다. 자신의 힘으로는 육체의 일만 나타나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크리스챤의 성품이 나타나지 않는다. 돌배나무는 아무리 애써도 돌배 열매가 맺는다. 참배 열매를 위해서는 품종 접붙임을 해야 한다. 나의 노력을 중단하고 오직 성령을 의지하자.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하면 예수의 성품이 나타나고 죄를 박살내고 말 것이다. 육체의 일을 이기려고 육체의 힘을 사용할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을 의지하라. 어두움을 물리치려면 빛을 비추면 되듯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성령게 순본하고 의지하면 능력을 주시어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들어 주고 쟁투와 갈등을 일으키는 육체의 소욕은 물러간다. 성령을 의지하라는 것은 다른 말로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것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니라" 하였다. 성령으로 행할 때 성령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생각하게 하시고 초자연적인 힘을 주셔서 능력있게 주를 섬기며 거룩한 열매가 가득하게 된다. 그것이 속사람이 강건하게 된 모습이다.

다섯째, 속사람이 강하게 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마음은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기 위해 마음에 돋아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의심의 잡초, 게으름의 잡초, 유혹의 잡초를 제거하자. 다른 말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안테나에 녹이 나는 것을 막도록 훈련이 필요하다.
맥도날드는 영적인 힘을 넓히기 위해서
1)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라.
2)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라.
3) 사색과 묵상을 하라.
4) 예배를 올바르게 드리고 중보기도를 하라.

그리하면 영적인 힘을 넓히게 되고 마음의 내면이 질서있게 가꾸어진다. 맥도날드는 시간 관리의 문제, 지성의 훈련-듣고 읽고 공부하는 것-안식과 쉼의 도구가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영적 성장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속사람을 강하게 하는 이 충고를 따르자.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의 사람이 되었으되 성령을 좇아 행하지 못하고 훈련을 게을리 함으로 우리가 영적 골다공증 환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훈련을 위해 말씀을 듣는 훈련, 말씀을 일고 묵상하는 훈련을 위해 열심을 내야 한다. 훈련을 게을리 해서 성령의 인도에 둔해지고 패잔병이 되면 곤고한 인생 밖에 되지 않는다.

여섯째, 예수로 감사하라.
바울은 갑자기 감사한다. 롬7:24에서는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고 탄식하지만 롬7:25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한다. 왜냐하면 내 마음의 법으로는 죄와 싸워 무능한 패잔병이 되지만 롬8: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신다.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신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 성령의 인도에 삶을 맡기는 자, 열매 없는 무능함도 끝장이 난다. 괴로움도 끝장이 난다. 율법의 요구도, 마음의 갈등도 끝장난다. 예수 안에서 정죄함도 없고 생명의 성령의 법의 차원에서 육신에 거하는 죄를 벗어 던지게 했기 때문이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사과가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나 새는 날아 오른다. 그것을 또 다른 법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 해방시킨다. 어느 누구도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된 사람을 대적할 수 없다.(롬8:31) 송사한다.(롬8:33) 정죄할 수 없다.(롬8:34) 그는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기에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항상 넉넉히 이기는 크리스챤이 된다.(롬8:37) 신앙의 천하장사가 된다. 그래서 감사해야 한다. 갈등이 있을 때 승전의 길이 있으므로 성령의 인도에 예민하도록 안테나를 세우는 영적 생활의 훈련을 열심히 하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한 경건의 훈련의 반복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김 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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