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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욘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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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디서 읽고 메모해둔 내용입니다마는 기도에 대한 글들인데
설교 서두에 3가지만 소개합니다.

  옷을 만드는 것은 재단사의 일이고 구두를 수선하는 것은 구두장이의 일이고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일이다.

  기도는 천국 발전소의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잡는 손이다.

상당히 공감되는 내용들이지요?

이 기도에 대한 말들은... 제가 보기에... 다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며 은혜 받고자 하는 말씀도 기도에 대한 말씀인데
구약 성경 요나서(書)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요나서(書)..하면 선지자 요나가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살아난
흥미있는 이야기가 씌여진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마는
사실 요나서(書)가 말하는 핵심, 하나님의 메시지는 그것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어려울 땐 기도해야 하고
특히 위기를 맞았을 땐 더욱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한다고 하는 것이
요나서(書)의 핵심 주제라는 것입니다.

요나서(書)는 갈릴리 지방 출신 선지자인 요나가
당시 이방 제국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라는 도시는 심히 타락하여
하나님은 요나라는 선지자를 파견하여 멸망을 예언하게 하였지만 다행히도
이 타락의 도시 니느웨는 요나의 그 회개의 메시지를 받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다 회개하여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전체는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부패하여 망하기 직전의 사회가 주로 어떤 사회인가 하면
경직된 관료주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타락한 사회
성윤리가 타락하여 성문란도 문제되지 않는 홍등 사회 
거짓말이 밥먹듯 통용되는 거짓된 사회
뇌물이 정치 경제 교육 모든 부분에서 보편화된 뇌물 사회
그리고 이 모든 부패상을 보면서도 지적하지 못하고 나팔불지 못하며 심판치 못하는
정의가 사라진 불의한 사회라고 역사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고 호령하며 그렇게 휘황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자랑하던 나라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그 이면들을 살펴 보면
바로 이러한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어렵게 이룩한 그 문화와 문명을
교만과 방탕, 거짓과 뇌물, 문란과 무질서, 부정과 불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다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적쟎이 보여주는 역사들이 바로 그런 역사들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바르게 살면
그 나라가 좀 오래 가고 백성들도 행복하게 살게 되지만
그렇지 않고 잘 믿으며 살지 못하고 바르게 살지 못하면
하나님은 처음에 인내심을 가지고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뉘우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으면 반드시 손 보았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선지가 요나가 활동했던 시기는
이스라엘 나라가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했던
다윗과 솔로몬 왕국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통일왕국 시대를 지나 비록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다시 회복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았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 중에는 강대국이 있었는데
그 강대국은 앗수르라는 나라였습니다.

이 앗수르는 당시 살만에셀 3세가 통치하고 있었고
수도는 니느웨였는데 이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습니다.

이 니느웨는 현재의 세계지도로 보면 이라크 영토 내의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또 가까이에는 터어키 국경도 접하고 있었던 접경 도시로서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최강의 나라의 최대의 도시였으며
영향력으로도 세계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성경에 니느웨가 처음으로 언급된 경우는 창세기 10:6-12 말씀으로서
니므롯이 앗수르로 나아가서 니느웨를 건설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이 말씀을 보면 니느웨라는 도시는 셈이나 야벳의 후손이 세운 도시가 아니라
함의 후손이 세운 도시로서
함의 후손 중에서 세상의 처음 영걸이며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묘사된 니므롯이 세운 도시가
바로 니느웨라는 도시였다는 것인데
그만큼 니느웨라는 도시는 역사가 깊은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처음 영걸이며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묘사된 니므롯이 세운 도시였기에
수도로서 과히 손색함이 없는 도시였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도시를 향해 어느 날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요나서(書) 1장 2절 말씀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그러나 이상하게도 요나는 하나님의 이 엄중하고도 중요한 메시지를 듣기는 들었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엉뚱한 다시스라는 곳!!
정반대 방향으로 추진하여 가게 됩니다. 

만일 정상적이라면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어야 옳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곧장 니느웨로 가서 그대로 외쳤다.
  그러나 니느웨 백성들은 도무지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아니면 니느웨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고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이렇게 전개 되었어야 정상적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전개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엉뚱한 다시스로 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 바로 요나서 1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요나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엉뚱한 다시스로 가려고 했을까 이 점이 궁금증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왜곡된 특권의식과 편협한 국수주의 때문이 아닐까
일부의 주석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일부의 주석학자들은
그동안 이스라엘과 니느웨 사이의 생긴 정치적 적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그대로 말씀 전하고
그들이 만일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인데
이 정치적 적대감이 그들이 그렇게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에!!
아마 가라는 니느웨로는 가지 않고 엉뚱한 방향인 다시스로 가려 하지 않았나
이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엉뚱한 길로 가는 요나의 앞 길에 극심한 풍랑을 일으켰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나서(書) 1장 4-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 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풍랑은 백성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되어 모두가 고생하게 된 것은
요나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하며 회개해야 할 요나는 감각이 없습니다!!
모르고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래도 그렇게 풍랑을 일으키시는 가운데
또 길을 예비해 놓으시는데 그것은 큰 물고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다는 점점 흉용해져만 가고(1:11)
사람들은 있는 힘 다하여 살아보려고 안간힘 다 쓰고 있는데
정작 알아야 하고 뉘우쳐야 하며 회개해야 할 당사자는 모르고 있는지 딴청피우고 있는지
어려움 가운데 허둥대는 사람들과는 달리 배 밑창에서 계속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선장은 이 현장을 발견하고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게 됩니다.

  아니, 지금 사람들은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리지르고 있는데
  당신은 이렇게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고 있어서야 되겠소?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오?
  당신도 어서 일어나 당신의 신에게 부르짖어 보시오!!

감정을 절제하고 타이르듯 말하고는 다시 갑판 위로 올라와 보았으나...
풍랑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이러다가는 모두가 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점점 험악해져만 가는 풍랑
이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됩니다.

  틀림없이 이 어려움은 자연적인 재해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심한 풍랑이 있을 수 있나...
  아마 우리 중의 누군가 심한 죄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함께 받게 되는 징벌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죄인을 찾아내기로 하고 제비뽑기를 시작합니다.
한 명, 두 명.... 숨 죽이며 죄인을 찾는 제비 뽑기를 실시하는데...
결국.... 요나가 뽑히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제비뽑기 하다가 결국 요나가 뽑힘 당하는 그 순간의 요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 얼굴이 어떠했겠으며 그 모습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웠겠습니까?
아마도 요나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아,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요나는 깊이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심각한 풍랑을 맞은 이 상황, 이 모든 환란은
  다 내 탓입니다!! 다 나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십시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요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요나가 탄 배가 극심한 풍랑을 겪고 있는 그 문제의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요나는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그 문제에 정직하게 대면하기 시작합니다.

만일 요나가...

  비록 제비가 뽑히기는 뽑혔지만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나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했거나 아니면...
  이 문제는 다 우리 모두의 문제 때문이지 나 혼자만의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거나 발뺌했다면
아마 그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며 시간도 더 오래 걸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일어나자 정신 차려야할 때 때를 놓치지 않고 정신차렸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그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 요나의 훌륭한 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선택하시고 세우시고 지도자로 삼아주셨건만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여 문제가 이렇게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원인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있지 않고
전적으로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사생결단(死生決斷)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바른 태도였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나의 말대로....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됩니다.

사실 요나 자신이나... 요나를 던지는 자들이나.. 다... 그렇게 요나를 바다 한가운데 던지면...
요나는 죽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모든 책임을 질 때!!
죽을 각오까지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자신의 온 몸을 던졌을 때!!
하나님은 요나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성난 파도가 잔잔해지기 시작합니다.
또 사람들의 성난 마음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은 그렇게 온몸을 던져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요나를 위해
긴급히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렇게 되어 문제는 일단 수습되고 일단락 된 것 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풍랑 문제는 곁다리 문제요
정작 풀어야 할 본질적인 문제는 저기 있었는데
그 문제는 아직도 요원한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문제가 새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꼬이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드는데
결코 꼬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장하고 계셨기 때문이었으며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 동안 요나를 큰 물고기 뱃속에 가두시고 철저히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었는데
진정한 회개,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만이 바른 길로 나아간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비싼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으로 선지자 요나를
그를 다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역으로 옮겨 놓습니다.

바로 그 이후의 내용이 오늘 본문인 요나서 3장입니다.

이제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처음처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3장 2-3절 말씀입니다.

  너는 어서 일어나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서
  내가 일러준 말을 그대로 선포하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이제 요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라는대로
40일이 지나면 역사와 전통을 가진 니느웨 성도 무너지고 말 것을 선포합니다. 4절입니다.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사실 요나가 맨 처음부터 이 일에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이유는
우리가 그 속은 정확히 몰라도 아마 그들이 만일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면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짐작도 해보았었는데... 혹시나 했던 것은 역시나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요나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귓등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다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그리고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5-9절 말씀입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왕은 체면이고 뭐고... 다 접었습니다!!
지금 나라 꼴이 엉망이고 곧 망할 것 같은데 체면 차릴 때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살리는데 온 힘을 쏟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과 함께 그동안의 잘못을 진실로 뉘우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하여 그들이 힘써 부르짖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러한 은혜를 베푸시는데... 본문 1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요나 이야기는 재미있는 동화가 아닙니다!! 전설도 아닙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시대 속에서
이 민족 위에,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 위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임 정 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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