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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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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과 여름은 나무의 신장을 키우는 계절이라고 하면 가을은 나무의 굵기를 키우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나무는 주로 1년 두번쯤 거름을 줍니다. 봄과 여름 사이에는 나무의 신장을 위해서 거름을 주고 여름이 지나면 곧 바로 가을 거름을 주는데 이것은 가지의 굵어짐을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을엔 여름못지 않게 나무에 물을 주어야 하고 수형을 잡기 위해서 감아놓은 철사걸이도 풀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제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설교를 하는지 어려분들은 이미 감을 잡았을 것입니다. 쇠약하고 가느다란 나무에 거름을 주어서 나무의 가지가 굵어지게 하는 것처럼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른 우리의 심령이 살이 오르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그발강가에서 비통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중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신에 이끌리어 어느 골짜기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에스겔은 무수히 많은 뼈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뼈란 죽은 시체가 썩은 뒤 남은 것입니다. 따라서 뼈는 죽어 있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뼈들이 심히 말랐다는 것은 이 뼈들이 완전히 생명력을 상실한 상태임을 말하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뼈가 골짜기를 메울 만큼 많다는 것은 온 백성들이 죽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에스겔이 본 뼈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하나님백성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 속에서 죽은 자와 방불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백성들도 역시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살아나리라. 회복되리라. 잘 되리라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에스겔이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이 환상을 통하여 우리들 자신을 한 번 돌아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돌아보고 우리 민족을 한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환상이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깨달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1. 마른 뼈들은 무엇입니까?

  골짜기의 뼈들은 오랫동안 햇빛과 바람에 노출되어 있어서 그 뼈들은 완전히 말라 있었습니다. 매장되지도 못하고 밖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보기에도 흉칙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매장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인습이고 사자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인습이나 예의를 차릴 여력도 없었습니다. 산자도 죽은 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골자기의 마른 뼈들은 죄악된 이스라엘 백성이며, 그들은 죄악의 결과로 포로가 되었고, 이젠 전혀 소망이 없는 백성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 있는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완전히 마른 뼈다귀와 같았습니다. 이 마른 뼈들은 다시 연합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육체를 다시 형성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시 살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마른 뼈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겠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린 성도를 상징합니다. 열심을 잃어버린 영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영성을 상실한 채 이 세상 골자기에서 뒤궁굴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영적으로 회복 불가능에 빠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곧 마른 뼈들인 것입니다.
  소망없는 나그네길을 가는 사람들, 비젼도 없고 꿈도 없이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마른 뼈와 같은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날 생명력이 없는 무기력에 빠져 있는 교인들과, 형식에만 매여 있어서 변화할 줄 모르는 교회들이 바로 마른 뼈들과 같은 교회인 것입니다.
  빠른 뼈들은 남에게 혐오감을 주며,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마른뼈와 같은 인생입니다.

  오늘날도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른 뼈들과 같이 영이 죽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의 육성을 좇아 살아가는 육은 살았으나 영은 마른 뼈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나 자신이 이와  같은 사람은 아닌지 깨달아 각성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마른뼈와 같은 성도들이 한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다른 교회의 교인들은 어떠하든지간에 우리 성도들만은 건강하고 윤택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우리는 무엇에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뼈처럼 되고 만 것은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포로생활은 비참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참으로 진리 안에서 자유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예수를 영접하고 영적인 노예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몇푼의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육성에 사로잡혀 사는 육신생활의 포로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유언 속에 자기가 죽으면 손을 묶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풍습으로는 수의의 긴 소매 속에 손을 가리고 허리에 묶게 되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손을 묶지 말도록 유언한 것은 모든 조객에게 빈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의 손은 많은 민족을 정복하고 많은 나라를 굴복시킨 손이었습니다. 노획한 재물과 노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죽으면서 거지와 다를바 없이 빈 손이 된다는 것을 죽은 뒤에 실감 있게 교훈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하난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며 왕같은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얽메여 포로 생활을 하지 말고 노예 근성을 온전히 버리고 자유인이 되셔야 합니다. 여러분,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셔야 합니다. 억지로 하시면 노예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나는 우리 교우들이 노예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자원하여서 일하고 자원하여서 기도하고 자원하여 섬김과 봉사를 하는 그런 교우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3. 마른 뼈들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1%의 가능성도 없는 이 마른뼈들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질문에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에스겔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의 대답은 다소 조심스러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조심스러운 대답이 무엇입니까? 바로 에스겔의 대답입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실이 이 대답이야 말로 애매한 대답입니다. 확신이 없는 대답입니다. 차마 불가능하다는 말은 못하고 하나님이 아십니다라고 애매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예, 살수 있습니다." "아멘"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아멘"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뼈들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면 살아나리라고 대언하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명령대로 대언하자 뼈들이 서로 합쳐지고 힘줄이 생기며 살이 붙더니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상징은 죽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되살아날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을 의미합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은 그 자신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환경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에 달려 있습니다.

  히4:12절 말씀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말씀입니다.
  (암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고,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마른 뼈들이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본문 5절에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생기로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셨고 14절에서는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으로 말미암아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신을 충만하게 받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만이 진정한 통치자임을 인정할 때에만이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4. 되살아난 뼈들은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살아난 뼈들은 오합지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뼈들로 있을 때에는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보잘것없는 것들이었으나 하나님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 되살아나자 곧바로 모든 적을 대적할 수 있는 크고도 힘 있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 상징은 중생한 성도의 무리가 악의 세력을 능히 무찌를 수 있는 하나님의 군대가 될 것을 암시해 줍니다.
  진리로 거듭나지 못한 성도는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심히 마른뼈와 같습니다. 마른뼈처럼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살아난 성도만이 하나님의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의 신으로 살림을 받은 성도만이 하나님의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마른 막대기든지
  내가 지렁이 같든지
  내가 벌레 만도 못하든지
  내가 죄인 중에 괴수든지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른 막대기인 아론의 지팡이를 하나님께서는 싹이나게 하셨습니다. 지렁이같은 야곱을 하나님은 위대하게 쓰셨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귀하게 쓰십니다.  바울은 죄인중에 괴수였지만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 쓰여질 때 힘있는 큰 군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회복 불가능한 것을 보고 마른 뼈와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회복 불가능할 만큼 부패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속에도 회복 불가능할 만큼 영적으로 쇠약해지고 죽은 자와 방불하게 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회복의 비젼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신을 충만히 받아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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