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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느 때에, 무슨 징조가” (눅 2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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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하거나 어느 유명한 학자를 초청하여 간담회를 할 때에, 그 질문할 것을 미리 서면으로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질문들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꼭 대답할 필요와 가치가 있는 질문들만 골라서 답변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즉 그런 경우에 채택되지 못하고 답변을 받지 못한 질문들은 그 대통령이나 교수가 그것들을 그리 중요하지 않거나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본문 5절부터 7절의 기록하기를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성전을 떠나려 할 무렵에 어떤 사람들이 그 성전이 아름다운 대리석과 특별한 장식들로 꾸며진 것을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느닷없이 그 화려한 성전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는 멸망의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으며 그 일 있기 전에 “무슨 징조”가 있겠느냐고, 두 가지 질문을 예수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질 정도의 날이란 것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종말의 날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라고 물었다고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두 가지 질문들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어느 때”에 대하여는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으셨지만, 그 대신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몇 가지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 징조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겪을 일들이기도 했으며, 또한 오고 올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종말이 오기 이전에 각자의 생애를 통하여 겪게 될 징조들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해 주기로 선택하셨던 질문, 즉 세상 끝날이 이르기 전에 ‘무슨 징조’들이 나타날 것인지를 함께 상고하면서, 주님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를 다시 한 번 일깨우고자 합니다.

  1. ‘미혹하는 이단의 등장’이 종말 이전에 나타날 징조입니다.

  8절로 11절에 기록하기를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가까움을 보여 줄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제일성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에 대하여 거짓 꾀임을 당하거나 파선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진짜로 중요한 것은 종말 이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문제 그 자체보다도, 그 어떤 일이 벌어지든지 간에 신자가 자기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신앙을 미혹하는 일들은 우선 ‘가짜 메시아’들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칭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자신이 “내가 그로라”라고, 즉 자신이 바로 ‘재림한 메시아’라고 주장하며 신자들을 미혹할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때가 가까왔다”고, 즉 ‘세상 종말이 곧 임박했다’는 말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예언은 바로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소위 ‘감람나무’ 혹은 ‘동방의 계명성’으로 자처하면서 자신이 바로 재림한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역시 그런 사교 교주들은 우후죽순처럼 곳곳에 등장하고 있으며 끝내 그 추종자들과 함께 집단 자살극을 벌이는 일까지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단들의 대표적인 특성은 항상 “때가 가까왔다”는 말로 그 추종자들을 위협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곧 망한다.’는 말은 특히 종교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미혹하는 데에는 가장 효력이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자들일수록 특히 ‘난리와 소란의 소문, 민족 간의 내전, 나라 간의 전쟁, 지진, 기근, 온역 등의 천재지변’ 따위가 있을 때마다 그런 사건들을 자기네가 주장하는 재림 일정 시간표에 억지로 뜯어 맞추어 넣어 그럴싸하게 꾸미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단의 미혹에 빠져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면서 “내가 바로 재림 구주다.”라고 소개해야 될 정도라면, 그 사람은 결코 진짜 예수 그리스도일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위를 동반하시고 세상 어느 사람에게나 한 눈에 재림주이심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우주적으로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그처럼 구차한 모습으로 오실 리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아무 날 아무 시에 세상 끝이 온다.”라는 따위의 예언을 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누차 강조하신 것처럼 “하늘의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을 자기는 안다고 하는 것이니, 재림주이기는커녕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이단임에 분명한 것입니다.
  비록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무서운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세상의 종말의 날자와 직결시켜 계산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이런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혀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세의 징조를 말씀해 주시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직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또한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는 세상 끝이란 공포의 멸망이 아니라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새 생명이 시작되는 날이니 그런 가짜 메시아들의 위협이나 하늘과 땅의 무서운 일들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활개를 치며 온갖 헛된 종말론을 유포할 때, 바로 그런 모습이야말로 당신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나타날 징조라고 예언하신 예수님의 경고를 상기하면서, 할 수만 있으면 택자까지도 넘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는 사단의 꾀임에 결코 미혹당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참된 신자에 대한 박해’도 종말 이전에 나타날 징조입니다.

  12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 전에” 또 일어날 징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참된 신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박해인데,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이단의 미혹보다 먼저 찾아왔었습니다.
  “너희에게 손을 대어”라는 말씀이 바로 신자들에 대한 육체적인 박해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회당” 앞에서 재판을 당하기도 했고 “옥”에 갇히기도 하며 채찍과 돌에 맞는 형벌까지도 당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박해는 육체적 고통의 극한인 “죽음”에까지 이르는 것이었으며 또한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정신적 고통의 극한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박해를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받기도 했고, 또는 “임금들과 관장들” 즉 세속권력으로부터 당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으로부터 배반당하고 넘김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서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얼핏 비슷해 보이는 종교인로부터 시작하여 불신 세상 정권들까지 가세하는 가운데, 육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온갖 종류의 박해들을 참된 신자들이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징조가 있을 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박해당하는 일이야말로 진짜 예수신자 됨이 드러나는 기회이며 오히려 불신자 앞에서 참된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구재(말하는 재주)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는 말씀은 신자가 그런 경우를 당하면 곧바로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그 신자의 입술과 마음에 변명할 말을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예수님 믿는 믿음만을 확실히 지키고 있으면 그런 사람은 그 언제 어떤 자리에 서게 된다 하더라도 그 신앙을 고백하고 변증하고 전도할 말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순교적인 신앙자세만 지키고 있으면 성도는 어떤 박해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는” 주님의 보호를 받게 되며, 그런 “인내로 영혼을 얻는” 완전한 구원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실로 얼마나 뜨거운 격려의 말씀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까?
  사단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면 할수록 더욱 발악을 하면서 참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이 참된 개혁주의 기독교신앙은 가톨릭으로부터는 계속 이단으로 정죄당하고 자유주의자들로부터는 무식하다는 비판을 더욱 맹렬히 당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신자들은 추석 때에도 제사 지내지 않는다고 혈육들로부터 온갖 욕을 다 들을 것이고 회사의 술자리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왕따를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실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신자들이 불신가족들과 사회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교회가 불신 과학자들로부터 조소를 당하고,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대신에 세속 권력자들로부터 탄압을 받는 일들만 늘어가게 될 때 결코 실망하거나 약해져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이 전 세계적인 지지를 받는 일은 예수님 재림 이전에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참된 신앙을 사수하고자 하는 교회는 반드시 절대다수의 종교인들로부터는 항상 ‘공회’ 앞에 세움을 당하고 여론의 비난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속히 다시 오실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기다리는 신자에게는 반드시 ‘한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예수님께서 단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께서는 참된 신자와 교회가 안팎으로 핍박당하고 미움받는 일은 당신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항상 있을 대표적인 징조라고 미리 일러주시면서, 그런 와중에서도 오직 ‘너희의 인내로 너희의 영혼을 얻으라’고 뜨겁게 격려하고 계십니다.
  세상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세어질 사단의 박해는 참된 예수 신앙, 참된 진리를 지키는 교회와 성도라면 당하게 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서, 세상 사회의 비난 앞에서도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떳떳하게 신앙을 변호하며 주변 사람들의 미움 앞에서도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지켜 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끝까지 자신의 영혼을 지켜내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각 시대에 일어나는 재앙’도 세상 종말 이전에 나타날 징조입니다.

  20절로 24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주후 70년경에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의하여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주후 66년경에 유대인들 중 일부가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 운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처절한 항쟁을 벌였지만 결국 로마의 강력한 진압에 의하여 전멸하게 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사망자 즉 “칼날에 죽임을 당한” 자가 백십만 명, 포로된 자 즉 “이방에 사로잡혀 간” 자가 구만 칠천이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가 남긴 숫자는 좀 과장되었을 가망성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실로 비극적인 종말이었음을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예루살렘의 멸망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큰 환난과 진노”로써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날이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 일부 유대인들은 그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성으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적군이 닥칠 때 본능적인 반응은 보다 안전해 보이는 예루살렘 성 안으로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성 안에 있다가는 다 멸망당할 것이니 성밖으로 피신하라고 일러 주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했을 때, 예루살렘에 있던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을 탈출하여 요단강 건너편에 있던 ‘펠라’라는 곳으로 피신하여 화를 면했었습니다.

  그런 예루살렘 멸망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는 마치 세상 종말과 직결되는 사건 정도로 보일만 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당하고 선택받은 민족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떼죽음을 당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큰 종말의 징조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근시안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부분적인 심판의 날이었지, 결코 온 세상 전체의 끝날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종말은 “이방인의 때가 차는 날” 즉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든 택자들의 수가 채워지는 먼 훗날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도, 각 세대의 사람들은 바로 자기네 시대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세상 종말과 직결시키려는 시도를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그야말로 세상 종말이 임박한 명백한 증거라고 믿었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처럼 착각했던 로마 제국이 야만 이민족의 침입 앞에 어처구니없이 무너지게 되었을 때, 서기 1000년이 다가올 때,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며 인구 삼분의 일을 죽였을 때, 일이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 세기 말에 지나갔던 ‘1999년 7월’ 중에 태양계 행성의 어떤 이상변동으로 인하여 세계 종말이 올 것이라고 했던 소위 ‘노스트라담스의 예언’은, 지난 수백 년에 걸쳐 그 달이 오기 직전까지 숱한 신봉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 사람들은 바로 자기 시대에 꼭 종말이 올 것처럼 보이는 이와 비슷한 징조들을 계속 보고 겪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부분적인 심판으로 여러 가지 재앙이나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생기게 하시는 것을 두고 무조건 자기 시대에 반드시 종말이 올 것이라는 증거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그런 재앙을 만나게 될 때, 자신과 가족과 자기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이 없는지 돌이켜 보고 회개함으로써, 앞으로 진짜 최후의 심판이 임하게 될 때를 위하여 대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도 반드시 구원 얻을 것을 확실히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런 부분적인 심판과 재앙 중에서도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국난이나 재앙이 당장 내 눈 앞에서 일어나도 결코 속단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되는 그 순간에 이르게 될 때까지 오직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만을 굳게 붙들고 결코 놓치지 않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은 종말에 대하여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는 질문과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먼저 나타나겠습니까?’라는 두 가지 질문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질문 즉 종말의 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 대신에 두 번째 질문 즉 종말 이전에 반드시 일어날 징조들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때’에 대하여서 아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그것이 분명히 가치가 없는 질문이며 필요 없는 대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신 종말의 징조들은 꼭 ‘재림 직전’에만 일어날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보다도 바로 이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들었던 제자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부터가 이런 징조들을 그들 생전에 하나도 빠짐없이 직접 겪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혹하는 말들, 신앙을 억압하는 박해, 그리고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당하는 재난들 - 이 모든 것들은 사실상 바로 어느 세대, 어느 신자나 겪을 수 있는 종말 징조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말의 징조들이란 한 신자가 그 어느 시대에 살더라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모든 시대에 사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스스로 깨어서 예수님 재림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일 년 전, 혹은 한 달 전에 반드시 일어나게 될 한 가지 특별한 징조를 말씀해 주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그 징조 한 가지만 예의주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징조가 보이지 않으면 자기 신앙생활에 해이해지고 방심하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신자라면 모두가 겪게 될 일반적인 징조들을 특별히 더 강조해서 예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시기가 어느 때가 된다 하더라도 사람이 예수님 재림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단 한 번, 오직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뿐입니다.
  설사 예수님 재림이 앞으로 1000년 후로 확정되어 있다 손치라도,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재림 준비하는 데에는 그 1000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전에 예수님 재림 준비 확실히 못 해 놓으면 죽고 나서 무덤에 묻힌 상태에서는 그 날이 천 년 아니라 만 년이 남아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 재림이 서기 몇 천 년에 되든지 그것과는 조금도 상관없이,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들은 ‘내일 내가 죽게 될지도 모르니’ 오늘 예수님 재림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고, ‘오늘 예수님 재림할지도 모르니’ 지금 이 순간에도 깨어서 예비하고 있어야 할 뿐인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예수님 재림이 아직 멀었구나.’라고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은 과거이든지 현재이든지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아예 존재하지 않도록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들 중에서 ‘어느 때’에 대하여서는 전혀 대답해 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대답해 주실 필요가 없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만약 대답해 주신다면 그것은 재림 준비를 제대로 하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대학교의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퀴즈’를 줍니다.
  이 퀴즈란 무슨 수수께끼가 아니라, 그 학기의 교과 내용이나 학생들이 읽어야 할 책의 내용 대하여 부분적으로 자주 치르는 짧은 시험을 말합니다.
  그 중에 어떤 교수는 그런 퀴즈를 매 시간마다 주는데, 이런 경우에는 그 교수의 수업이 있기 전날마다 항상 퀴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또 어떤 교수는 퀴즈 주는 날을 무작위로 골라서 자기 마음대로 불규칙적으로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즉 어느 날에 퀴즈를 치르게 될지 학생들로서는 알 수 없는 경우에 그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교수님의 눈치를 살피고 그 어떤 암시와 행동거지를 보면서 다음 시간에는 퀴즈를 낼 것 같다 혹은 안 낼 것 같다 하고 온갖 추측을 다해 보는 것이 좋은 자세이겠습니까?
  아니면, 수업이 있을 때마다 그날 퀴즈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항상 퀴즈 시험 준비를 갖추고 수업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는 것입니다.
  퀴즈 나오는 날을 예측하려고 하는 학생은 분명히 낙제할 것이고 언제든지 퀴즈 치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만 ‘A’학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 준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오실까?’ - 여기에만 온갖 신경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예수님 재림 준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거나 잘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재림 징조가 지금 내 눈앞에, 지금 내가 사는 시대에도 이처럼 곳곳에서 뚜렷하구나.’ - 이렇게 긴장하고 깨어 있는 성도만이 ‘자기 등불에 기름을 채워 넣고’ 주님 맞이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신자로서, 천국의 혼인 잔치에 틀림없이 들어갈 수 있는 성도입니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많은 천재지변의 종말 징조들 앞에서도 ‘두려워 말라’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신자와 교회가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종말 징조들을 당하게 될 때에도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라’고 또 주님께서는 우리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진짜 바로 믿고 잘 섬기는 성도는 예수님 언제 오시더라도 항상 변함없는 신앙으로 그 주님 맞을 준비만 더욱 철저히 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믿는 것을 오도하고 미혹하는 이단들, 우리의 지키고 있는 것을 욕하고 미워하는 박해자들, 우리의 잡은 것을 흔드는 온갖 환난과 재난 중에서도, 세상 종말 이전에 꼭 ‘이런 것, 이런 징조들이 먼저 있어야 할 줄’로 알고 이 신앙 끝까지 잘 지킴으로써 예수님 재림을 영광 중에 함께 맞이할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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