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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행복한 자 (요 16: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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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우리들은 행복한 삶은 내가 돈으로 살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믿도록 주입되어 왔습니다. 만일 여러 성도들이 좋은 제품을 사들이고, 훌륭한 집에서 살고, 좋은 옷에다가, 자동기어가 달린 고급차를 몰고 다니면서 휴일을 지낸다면 여러분들은 행복한 생활을 한다고 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정도는 이와같은 것이 우리를 기쁘게 할런지는 모르지만 우리 마음속에 깊은 갈망을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자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물질이 정신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는 말과 「물질적인 것은 영원한 것에 기여할 수 없다」는 말을 우리들은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재선 수상이었던 『벤자민 디스랠리』는 그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소년기는 실수였고, 장년기는 투쟁이었고, 노년기는 후회였다”고 술회하였습니다. 행복한 삶을 이루었다고 하는 뒤에 공허한 삶을 말하는 말입니다. 달 표면에 두 번째로 발을 내딛은 사람이었던 『버즈앨드린』은 아폴로 11호 달 착륙작전이 끝난 이후로 정신적 침체와 어두움속에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최고 목표인 달여행을 성취함과 더불어 이면에는 다 이룬일에 대한 우울함으로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이와 같은 공허함과 무의미함은 자신이 정한 목표를 달성한 뒤에 더 이상 갈곳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바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행복한 삶을 경험하기 위한 도구로서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쾌락의 추구는 도구를 이용한 일종의 과학이 될 수 있고, 삶속에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육체적 쾌락을 일삼기 위해서 이 여자에게서 저 여자에게로 떠다니면서 만족을 누리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신념으로 산 전형적인 사람으로 『바이런 경』을 들 수 있습니다. 쾌락을 일삼는자에게 남은 것은 한낱 괴로움과 쓴 맛뿐입니다. 그는 이여자 저여자에게로 떠돌아 다니면서 쾌락을 일삼으면서 살다가 36세의 나이에 다 늙은 노인처럼 되어 죽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생일에 남긴 독백이 있습니다. “내 세월은 노오란 잎파리에 지나지 않으니/ 사랑의 꽃과 열매는 지고/ 벌레와 부패와 비탄만이/ 내게 있어라!”
그러면 행복한 삶은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까? 실망과 좌절만이 인생의 결론입니까? 우리의 삶속에 영혼의 안식을 줄 수 있는 방법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1. 계명을 지키는자가 행복합니다.

컴퓨터라든지 전자제품을 올바르게 사용하려면 사용 설명서를 잘 읽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품을 사용하면서 잘 모를때는 사용설명서를 반복해서 읽고 그대로 실천하면 익숙하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민족들에게는 객관적인 규율체제가 마련되어야 행복합니다. 국가나 회사, 가정,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규율체제가 없으면 불행하게 됩니다. 규율체제라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잇게하는 열결고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잘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방법을 가르쳐주신 계명을 지킬때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계명속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술하고 있고,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말하고 있으며, 죄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적게는 십계명이 있고, 많게는 율법들이 있습니다. 그외에 복음이 있습니다. 계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한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대단한 위력이 있기에 말씀자체를 듣고 깨닭음으로만 해도 괴로움과 고통과 번민을 면하게 합니다. 더욱이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잠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 (시119: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 (시119:165) "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 말씀을 가까히 하는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2. 기도하는자가 행복합니다.

참된 행복은 기도하며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애타게 기다리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간절한 마음이나 뜨거운 소원도 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응답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열심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접촉하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령이 장성하고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기도라는 것은 정욕으로 구하지 아니하고(약1:6),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교만으로 구하지 아니하고(눅18), 의심하지 아니하고(약1:6) 기도하기만 하면 응답되어지게 되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눅11:9-10)
성경에서 우리들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을 때 기도로 해결하여 극복한 사실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두손 들고 기도하여 전쟁에 승리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무기를 싸우는 자들에게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세에 있었던 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일을 당할 때 한나는 사람에게 분풀이 한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도로 바꾸어서 하나님께 그 마음을 물 쏟듯이 쏟아 놓음으로 인하여 응답을 받아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하고 영적 대각성을 일으킨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38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전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생명을 15년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국가의 위기에서 구원한 여호사밧의 기도는 요즘 어려운 시국에서 우리들에게 희망을 갖게 합니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쳐들어 올때에 온 백성들에게 여호사밧은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함으로 인하여 결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민족들이 기도하고 난 후에 무슨일인지 연합군들이 세일산에서 의견충돌이 일어나서 자기들끼리 치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연합군이 싸움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3. 회개하는자가 행복한자입니다.

어떤 흑인 혼혈 소녀가 쓴 《엄나 왜 나만 검어요?》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소녀는 자기의 피부가 검은 것이 너무 안타까와 냇가를 찾아가 거친돌로 피부를 마구 문질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 소녀의 피부가 희어졌을까요?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죄는 강력하기에 어떠한 세척제라 할지라도 씻을 수 없는 것이며, 조금이라도 희게 할 수 없습니다. 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할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회개란 ‘방향을 돌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향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고정축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축으로 할 때 올바른 방향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들의 편협한 사랑이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생각하면 우리들의 기도생활이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생각하면 우리들의 교만이 회게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축이 되어질 때 바른 회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울로 삼을 때 어떤 것이 죄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죄’를 뜻하는 다섯 개의 헬라어가 나옵니다. ①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에는 「하말티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하말티아」라는 말은 사격에서 쓰여지는 말로서 “과녁을 벗어난다”라는 말입니다. 과녁을 향해 쏜것이 빗나가 맞지 못한 것이 하말티아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죄라는 것은 목표지점을 향하여 나가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②「페르바시스」인데 집고 넘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바른것과 부정한 것을 집고 넘어가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든다고 한다면 “내가 바른 길에서 벗어 나가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늘 진리의 편에 서고 있는가?, 내가 정말 진실한가?, 내가 불친절한 말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는가?”하는 질문을 하고 지나가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③「페랍토마」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미끄러진다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미끄러운 어름판에서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지는 것과 같이 의도적이 아니라 순간적인 실수로 인한 죄를 짓는 죄의 항목을 말합니다. 예를 든가고 한다면 기분이 상한다고 해서 참지못하고 순간적으로 덕이 되지 못하는 말을 한다거나, 또는 분노하는 감정의 움직임으로 자제심을 잃어버리는 것들을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④「아노미아」라는 말입니다.「아노미아」라는 것은 나쁜것을 알면서 행하는 것을 말하며,나쁜것을 알면서도 생각하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행치못하는 것과 금하는 것을 알면서도 충동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⑤「오페일레마」인데, 이말은 주님의 기도가운데 쓰여진 말인데 “빗을 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땅히 지불해야 할 것을 지불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사람에게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수행하지 못할 때 죄는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알 때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거미줄에 얽혀 있는 존재와 같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이 거미줄은 더욱 단단하게 조여들 뿐입니다. 누군가가 거미줄을 끊어 주어야 합니다. 이 죄의 그물을 끊어 주실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들은 조용히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무릎꿇고 나약함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였던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며 살아갔던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실수로 인한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알고도 행치못하는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진 것을 갚질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가장 필요한 것을 회개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1:29-31). 우리는 이러한 죄에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할때만이 우리 민족이 살 수 있고, 우리들의 가정과 우리들의 신앙이 살 수 있습니다. 회개할 때 인생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행복한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깊은 질문을 하여야 합니다. 참된 행복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기도하는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자입니다. 세상의 것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니라 참된 것입니다. 오늘 성도의 삶속에 행복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하시니라 " (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 (시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 (잠1: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 (고 신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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