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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동체 2- 새로운 사람 (고후 5: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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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복음 성가 “할 수 있다 하신 주”를 작곡한 장욱조 목사님, 그분은 현재 일산 한소망교회 선교목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는 작곡가로 데뷔하여 <기다리게 해놓고> 등 여러 곡을 작곡하여 히트를 쳤고, 1980년 초 “고목나무” 로 인기가요 1위를 7주째 차지한 인기가수였습니다. 그런데, 조용필이 등장하여 뜨기 시작하자, 그의 인기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상 살기가 싫어졌고, 죽고 싶어졌습니다. 처가의 지원으로 가라오케를 열었으나 망했습니다. 그러던 1986년 4월 22일 저녁, 그의 아내가 “여보, 나 친구 따라 교회 가보렵니다.” 고 했습니다. 원불교 신자인 그의 부인이 교회로 나간다니? 너무 빚에 쪼들리고 힘들어 고생하던 중 예수 믿는 친구를 만나서 위로받고 마음이 녹아진 것입니다. 부인이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평안을 얻고 은혜받아서 좋다며 당신도 은혜 받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난 나중에 늙어서 갈 테니까 애들하고 먼저 가.”
그런데도 그의 부인은 한 번만 따라가 달라고 졸랐습니다. 한 번만 이라는 조건을 달고 따라갔습니다. 교회의 따뜻한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인기가 떨어지고 나면서 처음 받아보는 친절과 웃음과 배려들에 마음이 녹아났습니다. 처음 1년 동안은 은혜 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머리로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란 걸 알게 되었고, 내가 진짜 죄인이란 것이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예인 선교단을 따라 태안반도에 찬양집회를 갔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을 하는 중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정말 나같은 죄인을 위해 하나님이 외아들 예수님을 주셨다는 그 은혜가 그렇게 감사하고, “내가 정말 죄인이구나” 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는 하나님을 알고만 있었지, 믿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부터,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예수님 가신 그 길을 따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믿음이란, 자기 목숨까지 내놓고 하나님 앞에 맡기지 않고는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부터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걸렸습니다. 가요계는 은퇴했어도 밤무대를 다니며 돈은 벌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이게 부담이었습니다. 밤무대만 서면 하나님의 임재가 딱 끊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새로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 나 술집에 나가 먹고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책임져 주십시오.”
이 기도를 기다리셨다는 듯,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교회, 저 교회로 복음 간증자요 전도자로 보내셨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해외까지 다니며 지금은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2. 한 사람이 새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머리로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눈물로 감사, 감격하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은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그의 삶이 바뀔 때, 비로소 새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무대에 나가던 사람이 더 이상 밤무대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면을 비롯한 삶의 전 분야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산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마음의 중심이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삶의 주인이 바뀌는 획기적인 변화입니다.

15절은 새로운 사람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이 다음에 나올 말씀을 성경을 보지 않고 말하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다른 이유를 제시합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과 이유와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삽니까? 누구를 위해 삽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십시오.
왜 이 일을 하여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합니다.
어떻게 하여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라고 하셔서 합니다.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았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위하여 살고, 예수님이 하라는대로 순종합니다.
내 삶의 절대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돈, 사업, 성공, 출세, 인기, 명성, 권력, 행복- 이런 것들은 다 부수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치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왜요? 그 분은 나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치의 변화, 삶의 변화를 가리켜 회개라고 합니다. 인생의 목적과 이유과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이것이 새로운 삶입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즉시 그 삶에 혁명적인 변화가 왔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이제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남의 것을 빼앗았던 것은 네 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온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전부인 지극히 값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당시 시중가격으로 300 데나리온 정도, 오늘날 화폐로는 약 2000만원 정도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사랑한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한 순간에 수천만원을 포기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2000만원 이상의 가치를 발견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살게 되었고, 예수님 때문에 내가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욱 귀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진심으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예수 밖에는 없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존귀한 분으로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말씀대로 무조건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16절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여기의 “육체대로” 란 말은 “세속적인 가치관대로” 란 뜻입니다. 새로운 사람은 세속적인 가치관을 갖고 사람을 대하지 않습니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 돈 많은 사람, 재능 많은 사람,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모나 가진 것으로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니, 모든 사람이 귀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섬길 줄 압니다.

4. 그러면, 우리들 중에 이런 고민이 생길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왜 나에겐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가?’ 
아마 다음의 네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첫째는, 진정으로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일른지 모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거나 스스로에게 속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분을 잘못 믿고 있거나 자기 방식대로 믿고 있습니다. 신약시대 때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믿었습니다. 종교적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분들입니다.
만약 우리 중에 이런 분들이 계신다면, 자기방식대로 믿는 자기중심적 삶의 태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주인 되심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착하게 살고, 복받기 위한 정도로만 알고 믿는 경우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분에 대한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목회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최우선에 둡니다. 부모, 형제, 처자식, 자기 목숨- 다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위하여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는 소유권을 주님께 이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소유권은 없고 사용권만 있음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몰라서 못했다면, 이런 분들은 이제 바로 깨달았으니 그대로 행하십시오.

셋째로, 예수님의 주인되심에 복종하며 사는 본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교육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로서만은 아니됩니다. 그 이상입니다. 봐야 합니다. 보여주어야 합니다. 본을 보고 따라하는 것입니다. 바로 모델링 교육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양해하고 들으십시오. 제 아들은 여름에는 집에서 사각 팬티 차림으로 있습니다. “아무리 집이지만, 어떻게 팬티 차림으로 있냐? 런닝 셔츠도 입고, 바지도 하나 걸쳐야지.” 라고 하면, “아빠도 그랬으면서.” 라고 합니다. 제가 옛날에 그랬거든요.
자식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저를 비롯하여 먼저 믿은 성도 여러분의 책임이 무겁습니다. 우리가 후배 신앙인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줍시다.
많은 성도들이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잘 믿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성도들이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을 보며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며 사는 성도들의 간증을 들으면 부러워하고 그렇게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렇게 살지 못할 때 좌절하며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이런 분들은, 훌륭한 믿음의 선배를 멘토로 모시고 자주 만나십시오. 그분의 본을 따라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이유는 고의적으로 주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도 아니고, 본이 없어서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 알지만, 가족이나, 재물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봉사하고 헌신하지만, 자기가 정한 선을 넘지는 않습니다. 그 선을 포기하라고 하면, 분노를 터뜨리고 대듭니다. 이런 분이 계신다면, 믿음이 좋은 다른 성도들의 기도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모든 것을 주님 앞에 과감히 내려놓으십시오.

5. 미국의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 에서,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나는 위대한 경지를 목표로 삼기에 충분한 그 무엇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
“나는 끝까지 추진력을 갖고 훈련과 노력을 기울일 만한 그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여러분, 위대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열정을 쏟고, 그 경지에 이르도록 계속 훈련하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위대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분은 참 좋은 그리스도인이야. 저 교회는 참 좋은 교회야.” 라는 정도 갖고는 아직 새로운 사람, 새로운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정도를 넘어 위대한 그리스도인, 위대한 교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러분,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살기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바로 이런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들의 모임, 그분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청산교회가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 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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