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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교훈 바른 말 (딛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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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디도서는 바울이 동역자인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개인서신이고, 목회서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디도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디도는 영어로는 티투스(Titus)인데 이 디도와 거의 같은 때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회사에서는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티투스, 혹시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로마의 장군입니다.(Flavius Sabinius Vespasianus Titus)
아주 유능하고 유명한 장군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 베스피아누스도 잘 알려진 장군입니다.
이 디도 장군이 기원후 70년 9월 8일에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습니다.
디도 장군은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하나도 남지 못하게 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귀중품들을 다 로마로 옮겼습니다.

그 때는 '로마 장군 디도'하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전도자 디도' 하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로마 장군 디도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들도 디도를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파괴했으니 좋게 생각하겠습니까?
디도 장군은 나중에 로마의 황제가 되어 기원후 79년에서 81년까지 로마를 다스렸습니다.
저 유명한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을  바로 이 황제가 세웠습니다.
콜로세움이라고 하면 건축물로서는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수없는 검투사들이 서로 싸우다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사람과 맹수의 야만적인 혈투가 벌어졌습니다. 관람객들은 그것을 보고 좋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콜로세움은 인간성의 타락과 잔인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잊지 못할 것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곳에서 맹수들에게 찢기며 순교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전도자 디도는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디도는 디모데와 같은 비중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도서는 디모데전서와 후서의 축약본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1장 4절을 보세요. 바울 사도는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의 참 아들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얼마나 아름다운, 얼마나 향기 나는 이름입니까?
얼마나 명예로운 이름, 부러운 이름입니까?

우리는, 내가, 내가 하는 일이 '지금 어떻게, 얼마나 알려질까?'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내가 하는 일이 뒷날 어떻게 알려질까?‘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갈림길처럼 내 앞에 놓이면 뒷날에 오래, 아름답게 향기롭게 알려지는 쪽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른 교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절을 보세요.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며

또 “바른 말”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8절 앞부분을 보세요.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바른 교훈”은 “건전한 교훈”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신약성경에 이 말이 스물한 번이나 나옵니다.
아까 말씀드린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열다섯 번 나옵니다.
중요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바른 교훈 바른 말을 중심으로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첫째, 우리는 어떤 말을 들을 때 ‘이것이 바른 교훈 바른 말인가?’ 판단하며 들어야 합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방송에서 ‘바른 말 고운 말’ 이런 프로그램을 흔하게 대합니다.
이런 제목, 또는 이와 비슷한 제목을 가진 책들도 많습니다.
여기에서 바른 말 고운 말은 정확한 말, 격조 높은 말, 이런 뜻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바른 교훈 바른 말은 ‘바른 말 고운 말’ 이런 경우보다 범위가 넓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가 무겁습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은 우선 디도서 1장 10절과 11절에 나오는 것들, 그레데 섬의 좋지 못한 지도자들이 하는 말들과는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말들을 했습니까?
먼저 불순종하고 헛된 말, 거짓말을 했습니다.
10절을 보세요.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할례파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을 바리새적 영지주의자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순종하는 말, 참된 말, 알찬 말, 내실성이 있는 말, 진실한 말, 이런 것들이 바른 교훈 바른 말입니다.

이번 주 남자 속회 공과의 제목이 ‘그런즉 아멘’입니다.
이번 주 공과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나 ‘예’와 ‘아멘’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와 ‘아멘’은 순종과 긍정을 표현하며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긍정이요 항상 가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부정과 불가능이 없다고 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에는 또 불순종이 없습니다. ‘아니오’와 ‘노멘’이 없습니다.

11절에서는 그레데의 잘못된 지도자들은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깨끗한 이익, 부끄럽지 않은 이익, 더 나가서는 손해가 되더라도 마땅한 것을 가르치는 것, 이것이 바른 교훈 바른 말입니다.
마땅하지 않은 것들을 가르치면 가정들이 온통 무너지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가정들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말, 가정에 힘을 줄 수 있는 말, 이것이 바른 교훈 바른 말입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은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핵심적인 가르침입니다.
나중에는 신앙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표준으로 삼아야 할 교리들을 요약한 것이 되었습니다.
「공동번역성서」는 이 “바른 교훈”을 “건전한 교리”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바른 교훈 바른 말은 교회의 귀중한 유산입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을 때, 이것이 과연 바른 말 바른 교훈인가 가리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라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욥기 34장 3절과 4절에서 엘리후는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을 가릴 수 있는  귀가 제 구실을 하는 귀입니다.
우리에게는 정의를 가려낼 수 있는 능력, 무엇이 선한지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이 말이 바른 교훈 바른 말인가?’ 이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으면, 또 그것을 분별하려는 노력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젖 신자에 머물게 됩니다.
젖 신자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오래하면서도 깊은 교리를  깨닫지 못하는 신자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3장 2절에서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거, 칭찬하는 말입니까? 꾸짖는 말입니까?
꾸짖는 말이지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복음의 초보적인 믿음에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야단치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성도들을 ‘솜사탕 성도’라고 부릅니다.
솜사탕은 달콤하고 먹기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영양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솜사탕 들고 다니는 거, 그거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출석하던 교회에 연세 많은 중진 남자 권사님이 계셨는데 이 분은 그 날 목사님이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를 해도 거기에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으면 아주 심하게 불평하셨습니다.
오늘 설교 형편없었다고 혹평을 했습니다.
어쩌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하나 들어가면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정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그 때 담임목사님, 나중에 감독회장을 하시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분인데 그 분은 설교에 옛날이야기 넣는 일이나 남의 비위를 맞추는 일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로 말이 좀 많았는데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13절에는 젖을 먹는 자는 어린 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밥이라는 말 대신에 단단한 음식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성도들, 밥을 먹는 성도들, 단단한 음식을 먹는 성도들, 장성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말을 들을 때 ‘이것이 바른 교훈 바른 말인가?’ 식별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 지식, 내 경험,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식별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성경을 ‘정경’이라고도 하는데 정경은 ‘캐논’이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정경은 자〔尺〕라는 뜻입니다.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배우는 가운데 그런 능력을 갖게 됩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힘써 배우는 가운데 ‘이것이 바른 교훈 바른 말인가?’ 식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힘써 해야 합니다.

제가 왜 듣는 일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둘째로 말하는 일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의나 토론을 하는데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좋은 토론자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유익한 내용, 공감이 되는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1절에서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교훈은 물론 바른 교훈입니다.
이 말은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이 복음을 선포한 임무를 맡았습니다.”(새번역)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나에게는 바른 교훈 바른 말을 선포할 임무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임무가 있습니다.

2절을 보세요. 바울은 디도에게, 늙은 남자들에게는 절제, 경건, 신중, 믿음과 사랑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세요. 늙은 많은 여자 성도에게는 행실을 거룩하게 하고 모함하지 말고  술의 종이 되지 말라고 말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세요. 젊은 남자들에게는 신중하도록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경망스럽게 행동하지 말고 혈기부리지 말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디도는 지금 그레데라는 섬에서 목회하고 있는데 그레데 사람들의 윤리수준이 아주 낮았습니다.
1장 12절에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라는 말이 있는데 그대로였습니다.
여자들 가운데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 술의 종이 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그런 그레데인들에게 바른 생활을 하도록 바른 교훈 바른 말로 가르치라고  디도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이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레데인들은 이 말 들으면서 ‘아, 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반발하고 비웃을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뭔데!’ 하고 팔을 걷어부치고 나올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힘써 하라고 바울은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을 향해, 이 사회를 향해 바른 교훈 바른 말을 과감하게 말해야 합니다.
지금 이 사회가 윤리적으로 얼마나 타락해 있습니까?
그레데섬의 디도 이상으로 힘써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하기에 힘써야합니다.
우리 말 가운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사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온건한 생각을 가진 다수는 침묵하고 과격한 생각을 가진 소수가 목청을 높이는데 있습니다.
온건한 생각을 가진 다수가 침묵하는 것은 수구주의자이다, 보수주의자이다, 기득권자이다,  이런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비겁한 일입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대신 이단들이 일어나서 큰 소리를 합니다.

이단이 무엇입니까?
제가 이번 수요일에 러시아에 출장을 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다음 화요일에는 로스토프 시에 있는 개신교회들의 러시아인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하루 종일 강의를 하게 됩니다.
전에는 그곳에 가면 한국 선교사들이 연합으로 운영하는 로스토프 연합신학원이 있어서 거기에서 강의를 했는데 이 신학원은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그 신학원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서 연합으로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습니다.
그곳의 교역자들이 요청하는 것이 목회자론, 교회 성장의 이론과 실제, 동방정교회 또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차이, 그리고 이단식별법에 대한 강의입니다.
그것을 보고  ‘아, 그곳에서도 이단 문제가 큰가 보구나!’ 짐작해 보았습니다.
전에 로스토프 연합신학원에서 강의할 때도 이단 문제를 한 번 다룬 일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의 개신교회에는 어떤 이단들이 있는지 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단에 대한 원칙적인 것을 말하고 한국의 이단들을 소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단에서 이(異)는 다르다는 뜻이고 단(端)은 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끝이 다르다’ 시작은 같은데 끝이 다른 것이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끝이 다르다는 것은 어느 한 가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또 처음에는 비슷해 보이는데 끝에 가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까 다른 것이 이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단들은 대부분 그렇지요. 웃으며 접근하는데 끝에 가서는 험악해집니다.

이단의 원래 의미는 바른 교훈 바른 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 일반적으로 이단이라고 알려진 인사들이 잠실 실내체육관이나 어디 넓은 곳들을 빌어서 집회를 할 때 왜 거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그런 풍조가 크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아, 교회가 바른 교훈 바른 말을 좀 더 힘써 외쳐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하기에 힘써야하겠습니다.
이 사회에 그런 목소리가 더욱 커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자기가 속한 단체에서 그렇게 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셋째, 바른 교훈 바른 말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7절을 보세요.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7절과 8절을 「표준새번역개정판」으로 읽어 드립니다.

그대는 모든 일에 선한 행실의 모범이 되십시오. 가르치는 일에 순수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책잡힐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십시오. 그리하면 반대자도 우리를 걸어서 나쁘게 말할 것이 없으므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을 보이는 것이 가장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시청각교육입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을 많이 하고 본을 보이지 못하는 것보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을 조금하고 본을 많이 보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심인곤(沈仁坤)이라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연세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하신 분입니다.
청교도 시인 밀턴에 대한 강의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정년 은퇴한 다음에 천안 부근에서 은거생활을 하셨는데 십 여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희 교회 원로목사이신 김찬국 목사님과 김동길 교수님이 이 분에게 배웠는데 두 분이 가장 존경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심인곤 장로님이라는 말을 두 분에게서 들었습니다.
이 분은 일제 때는 평안북도 선천에 있는 신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교사들은 학교에 있지 못하게 했습니다.
심인곤 장로님은 나는 신앙양심상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쫓겨 나와서 학교 근처에서 신을 수선해주는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그 앞을 지나면서 ‘아, 신사참배를 해서는 안 되는구나! 우상에게 절해서는 안 되는구나!’ 더 잘 배웠을 것입니다.
더 감동적으로 배웠을 것입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다니엘이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가 셋이 있었는데 다니엘이 그 가운데에서도 선임총리였습니다.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이 다니엘을 미워했습니다.
포로민족 출신이 대제국 바벨론에 들어와서 자기들 위에 앉아서 왕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니꼬웠겠습니까?
그들은 다니엘을 고발하려고 여러 가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까 그레데 사람들은 윤리수준이 낮았다고 했습니다.
낮아도 보통 낮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레데 사람’이라고 하면 ‘거짓말쟁이’ 이렇게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저 사람, 그레데 사람처럼 말 하네’ 하면 ‘저 사람 거짓말 하네’ 하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바른 교훈 바른 말을 가르치려면 말보다 본을 보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3절에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때가 온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도 볼 것은 봅니다.
보다보면 영향을 받게 되고 따르게 됩니다.

9월은 교육의 달입니다. 다음 주일은 기독교교육진흥주일입니다.
교사들, 7절과 8절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자신이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자기가 종종 교회에 빠지면서 학생들을 보고 교회에 빠지라고 하면 학생들이 그 말을 듣겠습니까?
자기가 늦으면서 학생들에게 늦지 말라고 하면 학생들이 그 말을 듣겠습니까?
가르치는 일에 순수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책잡힐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교육을 진흥시키는 효과적인 길입니다.
그렇게 하기에 힘쓰는 교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속장님들과 속회인도자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4절을 보세요. 늙은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을 잘 가르치게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에게 남편과 자녀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디도가 직접 젊은 여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것보다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도록 지도해서 그 나이 많은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하면 젊은 여자들이 말을 잘 듣고 그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
디도가 직접 그렇게 했으면 ‘당신이 뭘 알아?’ 했을 것입니다.
속회의 인도자들, 속장님들, 이 사실을 잘 알아야합니다.
때로는, 아니  많은 경우에 교역자들이 가르치고 말하는 것보다 속회의 인도자들과 속장님들이 가르치고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큰 것을 봅니다.

제가 어느 학교에서 기독교개론을 강의하고 있는데 지난 주일에 가르쳐야 하는 것이 디지털사회와 교회였습니다.
디지털이, 컴퓨터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야간 강의인데 클래스에 나이 많은 학생이 몇 있습니다.
그 가운데 40대 후반으로 지역의 어느 금융기관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분에게 그 전 시간에 미리, ‘직장에서 컴퓨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발표해 주십시오.’ 부탁했습니다.
그 분이 나와서 발표하는데, 제가 강의할 때는 형편없이 떠들던 학생들이 아주 조용하게 잘 듣더군요.

속회 인도자들과 속장님들은 현장의 목회자, 생활 속의 목회자이므로 말로도 가르쳐야 하지만 생활 속에서, 현장에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속회 인도자들이 속회 며칠 전에 교육을 받으며 잘 가르칠 준비를 하는데 그 교육을 마치는 기도를 할 때 ‘지금부터 며칠 동안 이 내용대로 살아서 힘있게 잘 가르치게 하여 주옵소서’기도합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하기에 힘쓰면 어떻게 됩니까?
10절 뒷부분에 그 답이 있습니다.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빛난다는 것은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 바른 말을 하기에 힘쓰고 그 본을 보이면 불신자들이 ‘아, 복음이 보석처럼 귀한 것이로구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을 들을 때 바른 교훈 바른 말을 가려서 듣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은 말을 해야 하는 임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알고 힘써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의 본을 보이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해서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이 빛나게 하는 일에 앞장 서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 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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