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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을 행복하게 살찌우는 핵심 코드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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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도, 국가도 건강해집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도 행복합니다. 교회가 주도하여 먼저 가정을 살려야 합니다. 한국에는 ‘가정’(Home)은 없고 ‘집’(House)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갈수록 추악한 죄악인 성의 타락과 문란, 성 범죄의 증가의 증가와 이혼의 증가로 많은 가정들이 병들어 가고 있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정을 살찌우는 핵심 코드인 ‘감사’ 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바른 신앙인의 덕목이요, 의무요, 행복이 살아있는 가정에는 웃음과 평안이 가득합니다. 감사가 살면 가정과 나라가 건강해지며, 행복이 넘치게 합니다.

가정은 생명이 잉태되어 자라는 곳이고, 안식처이며, 상처를 치유 받는 곳입니다. 가정은 새 힘을 얻는 곳이고, 성숙해져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최대 과제입니다.

분쟁은 빨리 매듭지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가정에서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해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과 나무, 그리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탄생하는 어린 생명의 기적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사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존경과 찬미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게 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육체의 고마움에 대해선 생각해 보았습니까? 당신은 ‘지구에서의 아름다운 휴가’를 즐기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감사는 인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이국땅에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이나 과부가 된 룻의 효도도 감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돈을 바라고, 의무감에 사로잡혀, 남의 눈이 무서워서 효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감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신앙 안에서 자기를 미워하던 형제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근원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나를 통하여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으로 인도하셨다는 감사의 마음과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과부가 된 롯이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기쁨으로 어머니를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민으로 삼아주셨다는 감사의 마음 때문에 그의 가정은 보아스를 만나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복된 가정을 이루고, 믿음의 가문을 이루었으며, 구원사의 귀한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행복한 가정과 아름다운 사회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감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Wife’(아내)는 ‘Life’(삶)가 될 수 있고, ‘Knife’(칼)가 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Bed time’(잠자는 시간)이 ‘bad time’(나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철자 한두 개의 차이일 뿐입니다.

또한 흥미 있게도 별을 의미하는 ‘star’와 상처를 뜻하는 ‘scar’도 철자 한 개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환경을 저주(Curse)하면 상처(scar)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감사(Thanks)하면 기쁨의 별(star)이 됩니다. 이것은 가장 놀라운 행복의 법칙입니다.

정신의학자 루이스 캐디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을 믿든, 그렇지 않든 자신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할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고 했습니다.

감사야말로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됩니다. 감사는 평범한 식탁을 생명의 잔칫상으로 만드는가 하면, 마음의 분노를 쉬게 하고,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감사하는 순간 하늘의 소망이 열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물을 연구했던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는 물에도 눈(雪)처럼 결정체가 있다며, 물에 베토벤 교향곡 전원을 틀어주었더니 물의 결정이 맑고, 아름답게 정돈된 형태를 보였다고 합니다. 반대로 분노와 반항의 언어로 가득 찬 헤비 메탈 곡을 틀어주었더니 제멋대로 깨진 형태를 띠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감사’나 ‘사랑’ 같은 말을 들려주면 물의 결정이 아름답지만 ‘욕설’, ‘불평’,‘ 비난’ 등의 언어를 들려주면 결정이 흩어지고 찌그러들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영혼은 어떠하겠습니까?

지글러는 “감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있는 장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나는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배우는 중’이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시장에서 곡식을 살 때 모자라게 주는 것 보다 넘치게 주면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우리의 감사도 마지못해 체면 때문에 억지로 하는 감사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넘치게 하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넘치는 감사는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런데 감사가 넘치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가 넘칠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가 넘쳐흘러야 합니다.

골 3;16절을 보면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자밥이 되면서도 감사했고, 캄캄한 카타콤 속에서도 감사했으며, 순교하면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행복의 열매가 됩니다. 어떻게 감사하며 살 것입니까? 여기 감사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조성하고, 살찌우는 핵심 코드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1.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발견해야 합니다.

모든 은혜 가운데 감사할 줄 아는 은혜가 최고의 은사입니다. 성령 충만은 곧 감사 충만 입니다. 성도들이 주를 공경하며 드리는 감사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들이는 거룩한 찬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로마의 위협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늘 성전에 모여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결혼 후 지금까지 차를 알기 전까지는 한 번도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내가 항상 "나는 설거지처럼 쉽고, 재미있는 일이 없어!"하면서 설거지를 도맡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설거지가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런 행동에는 "당신은 세상에 나가서 해야 할 보다 큰일에 신경 쓰세요!"라고 하는 아내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아내의 그런 마음을 읽을 때마다 저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설교 한 줄'이라도 더욱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처럼 식구들은 서로 고마워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적은 일들을 발굴해서 서로에 대한 고마운 감정을 잃지 않는 마음씨가 있을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감사할 때는 진보가 있고, 원망할 때는 퇴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감사하는 생활이요, 감사하는 신앙생활은 진보하고 자라나게 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 불평한 사람은 40년간이나 광야를 배회하면서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감사치 못한 백성은 결국 광야에서 불 뱀에 물리고 열병에 걸려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 은 감사하는 자의 편이시며, 감사하는 자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감사라는 것은 현재 받은 축복을 깨닫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받은 축복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하나님이 감찰하사 계속해서 복을 부어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에 감사하는 자에게 큰 감사 거리를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고, 적은 일에도 감사가 넘쳐 나시기를 바랍니다.

2. 감사를 찾아내야 합니다.

마스 카알라일은 아내의 묘비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40년 동안 아내는 나의 진실한 친구였다. 남편이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건 간에 그 말이나 행동으로 걱정을 끼친 일이 없었다. 그녀를 잃은 나는 생의 빛을 잃은 것처럼 캄캄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난 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회한을 가지기 전에 그가 지금 내 곁에 있을 때 밝은 빛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높여주며, 귀하게 여기며,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때 늦은 후회를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에서 서로 그 기를 살리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식구들끼리 용기 있는 말로 서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때로는 잘못했을 때는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최대한 격려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위대한 성직자 <로버트 레이니>가 사람들로부터 혹독한 비판과 심한 오해를 받아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친구가 그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자네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뎌 내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네." 그러자 베르니는

"아, 그건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난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편안해지거든." 라고 하더랍니다.

아내의 "여보! 힘내세요!"라는 말 한 마디가 남편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남편의 "여보! 내가 다 알아! 너무 고마워"라는 말 한 마디가 산더미 같은 아내의 피로를 다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현대를 가리켜 "더(more)"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돈(more money), 더 좋은 차(more car), 더 큰 행복(more happy)"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 더"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지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밀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뿐이었지만 이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조금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날마다 감사하며 만족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굶어죽는 가뭄과 기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어려움 없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겉옷 한 벌과 가죽 성경 한권 밖에 없었지만 조금도 불평 불만하지 아니하고 항상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절대적 빈곤 가운데서도 가정에서 감사를 찾아내어 감사하고 상대적 빈곤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환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감사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가족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도록 여러분들을 가족이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함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매일의 일상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평법한 일사에서 감사를 계속하다보면 불평과 불만이 치료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되게 됩니다.

크리소스톰은 "죄는 오직 한가지인데, 그것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악임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에 그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우리의 삶 속에 닿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더욱 큰 축복을 받게 되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정에 두 딸이 있었는데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딸은 친정에 오면 어머니에게 항상 입을 벌려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혼수 감이 적다느니, 나를 위해서 해주신 것이 무어냐는 등의 불평과 원망하는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딸은 집에 올 때마다 항상 감사하는 말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불평하는 딸이 오면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귓속말로 모든 것을 감추고 시누이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타일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딸이 오면 시집으로 돌아갈 때에 많은 것을 싸주고, 더 싸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이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풍성히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주신 것도 빼앗아 가시는 줄로 압니다. 쿨리지(C. Collidge)는 "가장 축복받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많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가족과??함께 더불어 나누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가정 행복의 요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가족 전체의 만족의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에 있는 시간의 길이와 행복의 길이가 비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시간이 행복인 셈입니다. 행복은 막연한 기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 투자하는 것이 수입을 올리는 것보다 낫고 가정행복의 기초가 됩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도화지를 한 장 씩 주고 가족의 얼굴을 그리라고 했답니다. 모두 열심히 식구들의 얼굴을 그리는데, 한 어린이가 그 큰 도화지 한 가운데 엄마의 얼굴을 크게 그려놓고 그 밑에는 언니, 오빠의 얼굴을 그리고 끝에 아기 동생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얼굴이 없자 선생님은 동정하는 낯빛을 지으며

"얘 아름아, 너는 아빠가 안 계시는구나, 참 안됐다."라고 하자 그 아름이는

"아빠가 왜 안 계세요? 계세요."

"그러면 왜 아빠의 얼굴은 안 그렸어? 라고 하자 아름이는 도화지 뒷면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뒷면을 보니 큼직한 얼굴이 도화지 뒷면에 그려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름아, 도화지가 너무 작아서 아빠의 얼굴은 뒤에 드렸니?"라고 물어 보았답니다.

"아뇨, 우리 아빠는 볼 수 없는 분이예요. 아침 새벽에 나가시죠. 밤에는 우리가 잠든 후에 오시거든요. 우리가 못 보는 아빠니깐 안 보이게 뒤에 그린 거예요."라고 하더랍니다.

나에게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정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업도 중요하고, 지장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가족에게 시간도 투자해야 합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감사하는 생활은 그것 자체가 벌써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런 연고 없이 지내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가정을 귀하게 여기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성경에 감사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라 했고,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도의 삶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인 것을 믿으시고 우리 가정에 아무런 사고나 어려움이 없는 것읅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모든 것을 감사로 바꾸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뀝니다. 모든 관계에 평화가 깃들게 됩니다.

경제학자 죤 카우스키의 저서 "신생국가의 경제성장"이라는 책에서 그는 "인간들 마음속에는 항상 불만족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는데, 이와 같은 심리를 "상승 기대 혁명의 심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경제생활이 과거에 비하면 괄목한 만큼 성장했음에도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활수준이 나아졌어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상대적 빈곤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비하여 경제수준이 향상되어 절대적 빈곤은 사라졌지만 남보다 못하다고 하는 상대적 빈곤 때문에 불만이 계속 남아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 빈곤을 느끼면서 불평, 불만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소유욕이 있는데, 이 무한한 소유욕을 채우지 못하므로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자기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지만 늘 갈증을 느낄 뿐 이성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인생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난 다음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성들은 자신을 꾸미기를 좋아하는데 "20대에 꾸미는 것은 화장! 30대에 꾸미는 것은 치장! 40대에 꾸미는 것은 분장! 50대에 꾸미는 것은 변장! 60대 이상이 꾸미는 것은 환장!"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그러나 얼굴을 꾸미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맵씨 있게 단장하려는 자세입니다.

밖에서는 호인으로 인정받으면서 아내에게 야박한 남편의 모습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고, 교회에서는 "목사님!" 하고 화사하게 웃으면서 남편에게는 함부로 성질을 내는 아내의 모습도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부부는 아주 가까운 존재이고 편한 존재이지만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정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새에게 가장 중요한 곳, 생활의 근거지는 보금자리입니다. 보금자리가 없는 새는 눈비가 내려도 피할 곳이 없고 평안히 쉴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정을 떠나서 방황하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가정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참 행복도, 평안도 안식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보금자리는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중시하고 지키며, 가정을 중심으로 우리의 인생을 영위하여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습니까? 부부간에도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습니다. 서로 감사하며, 격려하며, 장점을 찾아 칭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에티켓을 지키면서 자기 분수에 맞게 살려는 단정한 모습, 감사하는 모습은 모든 것을 다르게 바꾸어 버립니다.

특별히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죽도록 사랑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이란 예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행복을 주기 위해 죽으신 것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사랑의 의미와 책임의 한계입니다. 우리의 실제 결혼생활에서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편협할 때가 대부분인데 이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아내의 어떠한 실수와 잘못일지라도 감당해내는 ‘책임감’을 말합니다.

즉 아내를 위해 죽음도 감수할 수 있는 사랑과 책임감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남편만이 아내의 실수와 잘못을 용납해주고,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책임을 질 수 있는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지므로 가정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감사로 우리 가정을 바꿔야 합니다. 감사하는 순간 행복한 가정으로 자리매김하는 축복이 임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감사의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있으나마나한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 가든지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고,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를 각 가정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우리가 속한 가정 공동체를 최대한 살리려고 하는 거룩한 감사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말에나 일에나 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일이란 실상의 모든 삶을 뜻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의 삶은 항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마음의 뿌리요, 진정한 감사는 헌신의 삶입니다. 윤리의식이 혼탁이 가정에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은 쉽게 깨질 수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큰 죄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은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교육의 장이며, 동시에 가장 작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가정은 단순한 감정적인 대립이나 세태의 흐름에 따라 깨질 수 없는 신성한 곳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마태복음 5:3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의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구원받도록 전도의 결실이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정이 바로 서지 아니하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ㅂ이 효과를 발휘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수 믿는 가정이 행복해 보여야 이방인들이 교회로 찾아 나오게 될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한 시인은 “주님! 주님은 제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제게 한 가지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이라고 기도를 남겼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주님 앞에 행복한 가정으로 바로 서도록 감사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어 선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감사의 선교사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세상은 안경의 빛깔에 따라서 그 색이 다르게 보이는 법입니다. 검은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검게 보입니다. 그러나 분홍색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분홍빛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행복하게 보입니다. 믿음의 안경을 쓰면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됩니다. 검은 구름에도 햇빛이 비취면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납니다. 근심의 안개, 슬픔의 구름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면 그것들이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죽음을 위해서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죽음이 자기의 자매라고 부르면서 "이 죽음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죽음도 주 안에서의 죽음은 복되고 감사로 변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의 가슴을 감사한 마음으로 꽉 채워줍니다. 믿음이 있을 때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길수록 감사한 마음은 더 많아집니다.

우리 가정의 행복을 되찾고, 유지하며, 더욱 복된 가정을 만들기 위해

큰 것에 감동하고 놀라기보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발견해야 합니다.

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지금 가정에서 감사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기적적인 일에 감사하기보다 매일의 일상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로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만방에 선포하는 감사의 선교사가 되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할렐루야!
(황 영 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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