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물이 포도주로 (요 2:1~11)

  • 잡초 잡초
  • 402
  • 0

첨부 1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는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기적”이라고 말합니다. C.S 루이스는 기적을 정의하기를“기적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연 질서에 개입하는 사건”이라 했습니다.

성경은 기적으로 가득 찬 책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천지창조를 시작으로 430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는 사건, 탈출하는 과정에서 홍해를 가르고 건너는 사건,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춘 사건, 엘리야의 승천, 그러고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재림에 이르기까지 기적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크리스천은 기적을 믿고, 기적을 보고, 기적을 경험하고, 기적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신앙”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습니다.“신앙”이란“믿는다.”는 말입니다. 뭘 믿습니까? 믿지 못할 일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믿을 만한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요, 이해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성경에 나타난 기적뿐만 아니라, 오늘도 그 기적이 우리들의 삶 속에 일어남을 믿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기적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기적을 보기 위해 힘들게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가냘픈 풀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작은 도토리가 커다란 참나무로 자라는 것,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또 어디 있겠는가?”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기적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 기적 한 가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 기적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처음으로 행하신 것인데, 갈릴리 가나라는 마을의 혼인잔치에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잔치에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들과 함께 초청을 받아 가셨습니다. 잔치는 계속되는데 포도주가 모자라는 난처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시므로 혼주의 딱한 사정이 해결되었습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릴 것은, 본문 4절에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에 대해“여자여”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같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 나타난 표현은“여자여”라는 말의 의미는 왕이 왕후를 부를 때 쓰는 용어로써 여자에 대한 최고의 경어라고 합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여자여”라는 표현을 예수님께서 사생활을 끝내고 공생애에 들어서시면서 단순한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과 한 인간으로 본 견해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양고기가 주식이었습니다. 양고기에 반드시 곁들이는 음료수가 포도주로써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잔치 집에서 주 음료인 포도주가 도중에 모자랐으니, 주인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이 딱한 사정을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본문 11절에“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라고 기록했습니다.“표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쎄미온”이라고 하는데, 이“쎄미온”은“사인”이라는 말입니다. 사인이란 방향표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동에서 서쪽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면, 그것은 화살표 있는 방향으로 가면 무엇이 있다고 하는 표시입니다. 이발소 표시는 원통에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 을 사선으로 그려서 그것을 빙글빙글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것은 외국 어느 나라나 같은 표시입니다. 이것이 사인입니다. 본문의 표적 즉 사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1절의 말씀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또한 믿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자 나타내신 처음 표적이 곧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이 처음 표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一. 예수님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어지만 그 일을 하셨습니다.

4절에“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라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은“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라는 뜻입니다. 남의 자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라는데 그것이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잔치 집의 딱한 사정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멸망 받아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셨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이웃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삶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의 삶입니다. 여러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하여 모른 척 한다면 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기꺼이 봉사하며 희생하는 사람들 까닭에 이 사회는 포근함과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에 삶의 아름다움이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사람의 삶의 형태를 세 가지로 보기도 합니다. 첫째, 거미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노력하지 않고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둘째, 개미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되 자기 자신만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어려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기적인 삶 입니다.
이상 두 가지 삶은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지혜자의 삶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의 삶은 아닙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잔치 집의 딱한 사정을 해결해 주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잠언 19:17에는“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야고보서 2:13에는“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꿀벌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여 저축을 하되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삶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되 빛없이 말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2~4에 말씀하시기를“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하셨습니다.

러시아에서 전해지는 전설입니다. 아름다운 궁전이 있는데“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만 열쇠가 주어져 그 궁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한 소녀는 이 궁전에 꼭 들어가고 싶어서 머리를 예쁘게 빗고 아름답고 깨끗한 옷으로 단장했습니다. 그러나 궁전 문지기는 그것 가지고는 안 되며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새 비법을 발견한 소녀는 길거리로 나가 도와줄 사람을 열심히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늙은 거지를 만나 주머니에 있던 돈을 전부 주었습니다. 그러나 문지기는 열쇠를 주지 않았습니다. 거절당한 소녀는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오다 짐을 잔뜩 짊어진 할머니가 언덕을 오르느라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녀는 할머니를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리고는 문지기에게 달려갔으나 또 거절당했습니다. 크게 실망한 소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그냥 돌아가려고 숲을 지날 때였습니다. 소녀는 가냘픈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사냥꾼이 쳐놓은 덫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녀는 불쌍한 강아지 생각에 자기 자신을 다 잊어버린 채, 그 강한 덫을 손과 발로 온 힘을 다해 벌려서 강아지를 살려냈습니다. 소녀의 손과 발은 찢어졌고 피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치마를 찢어 강아지의 상처를 싸매 주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먹이를 주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궁전 문지기가 나타나서 궁전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소녀는 놀라서 말했습니다. 나는 열쇠를 얻으려고 강아지를 살려준 것이 아닌데요. 문지기는 차분한 소리로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이 열쇠는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남을 돕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보상을 바라고 행해지는 선행도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선행이란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선행입니다. 그것만이 참된 긍휼인 것입니다.

전도서 11:1의 말씀에“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하셨습니다. 비록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긍휼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이며, 우리들이 본받아야할 삶이기 때문입니다. 긍휼을 베풀되 빛없이 말없이 행해야 합니다.

二. 우리의 필요함을 채우시는 주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로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은 지극히 사사로운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사실을 아뢰었고, 예수님은 이 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구원이나 거창한 진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가정문제, 국가문제, 우주의 문제 등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고 또한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과정은 무엇입니까?

1. 포도주가 없음을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없음을 아뢰었습니다. 일어난 문제를 예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룬지 얼마 안 되는 어느 불쌍한 과부가 많은 액수의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큰 낙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가 요금을 이미 다 지불했는데 청구서가 다시 날아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미 치른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요금을 다시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돈은 자기 남편의 장례비로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영수증을 찾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수금원이 그 과부의 집을 방문하여. 만일 그녀가 며칠 안으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법정에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바로 그 때 나비 한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습니다. 이걸 본 그녀의 어린 아들은 그것을 잡아 학습 과제물로 쓰려고 그것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이 그것을 잡으려 하자 나비는 소파의 등위에 내려앉았다가 그 뒤로 기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소년은 그 무거운 가구를 혼자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수금원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가구를 밀어 재끼자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집어든 과부의 눈은 기쁨과 흥분으로 동그랗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수증이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신 반면 예쁜 꽃을 만드신 세심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들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0:29~31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그 사정을 기도로 아뢰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태복음 21:22)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본문 5절에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말하기를“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여섯 개의 빈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신비로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전 반드시 믿음과 순종을 확인하십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28:1~6에“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마치 병원을 찾아간 환자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치료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무엇입니까?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밝히신 축복의 약속이며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때로는 우리의 상식이나 우리의 형편과 맞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 두 사람이 성 프랜시스를 찾아 왔습니다.“원장님, 우리는 훌륭하신 선생님 밑에서 신앙을 배우고 수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이 수도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그 때 프랜시스는 한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채소밭에 데리고 가서 채소를 다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했습니다. 잎을 땅에 묻고 뿌리는 하늘을 향해 심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한 청년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프랜시스가 시키는 대로 거꾸로 심었습니다. 잎을 흙 속에 묻고 뿌리를 위로 향하게 다 심었습니다. 다른 한 청년은 똑똑한 청년이었습니다.“아하, 프랜시스가 신앙은 좋고 인격은 훌륭하지만 농사짓는 데는 무식하구나. 배추를 심으려면 뿌리를 흙에 묻어야지, 잎을 흙 속에 묻고 뿌리를 위로 향하게 심으면 죽지.”그래서 그는 불순종하고 모두 바로 심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프랜시스원장이 왔습니다. 거꾸로 심은 청년에게“자네는 합격일세. 오늘부터 우리 수도원에 들어오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심은 청년에게는“자네는 자격이 없네. 불순종하는 자는 우리 수도원에 필요 없네.”하며 내쫓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새로운 교훈은 순종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순종을 방해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경험이나 상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분야 밖의 분이십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물은 언제나 수평을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나 터를 닦을 때 수평기를 가지고 확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물은 언제나 수평을 유지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바다는 어떻습니까? 그 거대한 물이 지구를 감싸고 원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습니다. 그대로 믿고 수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일이, 복된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하기를“순종은 이적보다 낫다”라고 했습니다.

3. 예수님을 초청한 것입니다.

본문 2절에“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혼인잔치에 초청했다는 것입니다. 손님을 대접할 포도주가 부족하여 난처한 입장에 처한 그 잔치 집에 예수님이 계신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 당황스러운 상항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문제 해결이 있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채워져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제자들이 어느 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노한 풍랑을 헤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배 아래층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일어나신 예수님께서“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마가복음 4:39)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곳에 병 고침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8:16~17에“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곳에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언제나 어디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갖가지 문제들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시험문제에는 해답이 있듯, 인생의 문제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린도후서 3:17에“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하셨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섬기며 갈아가는 사람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하셨습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성령으로 우리들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내 마음 가장 귀한 자리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이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되 온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절대 복종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끊임없이 내 형편의 문제를 주님께 기도로 아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의 삶 속에 기적으로 나타나 승리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행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귀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익 로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