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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기도하라(Ⅳ) (마 6:13, 약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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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기도하라(Ⅳ)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 (마 6:1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1. 우리는 매일 매일 시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생은 곧 시험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학교 학생들에게는 일정한 기간의 시험이 있지만, 인생의 삶은 끝 없는 시험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시험 중에는 인격의 시험, 도덕의 시험, 신앙의 시험이 있습니다.
살아 숨쉬고 있는한 언제나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시험을 당했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 40일 기도한후에 시험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매일 시험에서 낙방하지 않아야 함이 당연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할 때 모두 <말씀>으로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지력이나 지식으로 시험을 물리칠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제한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 해도 도덕적인 면에서 시험에 넘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배우지 못한 사람보다 더 부도덕한 행위들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 시험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2. <시험>이란 말의 뜻을 바로 이해 하여야 하겠습니다.
 헬라어 원어로 시험이란 말은 ‘페이라스모스’입니다.
 이 말은 두 가지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 하나는 훈련(test)이란 뜻이고,
 다른 하나는 유혹(temptation)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는 목적이 분명히 다릅니다.
<훈련>이란, 더 성숙하게 한 단계 올려놓기 위함이고,
<유혹>이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한 단계 내려앉도록 더 망하게 하려고 함에 있습니다.
한 단어 속에 이렇게 상반된 뜻이 들어있는 이상한 단어입니다.
우리 말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위기(危機)라는 말입니다.
위기(危機)란 말은 <위험(危險)>이라는
<위>와 <기회(機會)>라는 <기>가 함께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들 말합니다.
이 ‘페이라스모스’라는 말을 원어의 뜻대로 풀이해 보면,
긍정적인 의미의 훈련과, 부정적인 의미의 유혹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시험은 훈련의 시험이고,
사탄의 시험은 유혹의 시험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 야고보서 1:13절에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말하는 <시험>이란 <유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혹>하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유혹은 사탄이 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단계 더 올려놓기 위하여 테스트(test)를 합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였던 시험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은 그를 더욱 축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고보서1: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런데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시험도 참아내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바로 이런 때에 사탄도 함께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 이 두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욥이 당한 시험을 보면서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죄로 인하여 당하는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믿음을 믿고 있었기에 사탄의 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내 종 욥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는다’ 하니까,
사탄이 뭐라고 하였습니까?
‘그에게 오늘까지 자손과 재물과 명예의 번영의 복을 주었기 때문이지 그것을 도로 찾으면 욥도 별 수 없을 것이다’고 할 때, ‘아니다, 내 종 욥은 그렇지 않다’고
‘그의 생명만 건드리지 말고 한번 시험해 볼테면 해 보라’고 하여 당하는 시험이었습니다.

3. 그러면 시험을 만날 때 어떻게 그 시험을 통과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시험(temptation)하지 않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죄로 떨어져 죽게하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 우리를 유혹하는 시험은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 사탄은 우리를 죄 가운데로 빠져들게 하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 엄밀한 의미에서 사탄의 시험도 하나님이 모르고 있는 시험은 없습니다.
 위에 욥의 경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기를 기대하였으나,
하나님은 욥이 그 시험을 통하여 더 성숙한 한 단계 올라설 것을 원했기 때문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더 굳게 하려고 하였고, 사탄은 욥의 신앙을 파괴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에덴 동산의 경우에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악과 나무를 아예 없었더라면 죄도 없었을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신 것은 인간을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한, 낙원에서 살도록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바로 이 나무를 통해 죄에 빠지도록 유혹거리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선하고 아름답게 만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고 부정적인 말로 유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먹되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으로 참으로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는 유혹의 어법입니다.

직장에서나 어떤 모임에서도 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을 해도 꼭 꼬이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화목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깨어져 나갑니다.
그것이 바로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의 아비는 사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라는 기도의 본 뜻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 일이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는 유혹이 되지 않게 해 주소서’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감리교 초창기의 지도자이며 18세기 대신앙부흥운동의 기수였던 휫필드는 사탄의 상투수단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사탄은 가까이만 보게 하여 조금씩 절망의 수렁으로 인도한다.
둘째, 사탄은 교만의 도수를 조금씩 높여주다가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셋째, 사탄은 편안하게 해서 마음을 놓게 했다가 갑자기 습격한다.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본능을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인하도록 유도하는 유혹을 한다는 말입니다.
 그것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이었습니다.
 그것이 성전 꼭대기에 뛰어 내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 그것이 천하만국의 영화를 보여주며 절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이 세가지 유혹은 우리 인생 삶에서 넘어갈 수 있는 모든 유혹이 다 들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인도해 가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시편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편 119: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편 119:161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모두가 <말씀>으로 이겨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시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이건, 하나님의 업그레이드 시험이던 시험 자체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터널을 잘 말씀으로 빠져나오기만 하면, 더 큰 축복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약 5:13 )
신앙생활에서 시험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시험이 올 때 말씀으로 극복하면 그것이 도리어 합동해서 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찬송가 359장에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라고 우리는 찬송을 부릅니다.
찬송가 그대로 시험이 오나 겁내지 말고 그 시험을 통하여 도리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김 이 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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