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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앞에서 본 홍해, 뒤로 본 홍해 (출 14:26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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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허리케인과 댐의 붕괴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집을 잃는 대재난이 일어났다. 수 만명의 사람들이 체육시설에서 난민 생활을 한다. 뉴스에서 이렇게 인터뷰를 한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인데,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라인데 어떻게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나는 인터뷰를 미국에서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나름 데로 세계 최강이라는 의식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고 할찌라도 자연의 재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동남아에서 일어난 쓰나미의 재해나,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재난의 비참한 상황은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위기에 처해있을 때에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본문의 말씀을 보자. 열 가지의 재앙이 끝나고 어렵게 어렵게 출애굽을 하게 되었다. 몇일 길을 가는 중에 바로왕의 마음이 다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군대를 이끌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애굽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바로는 자신이 하나님인 것을 온 세상에 분명히 드러내려고 하였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가는 도중에 뒤에서 애굽의 군인들이 쫓아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 졌다. 빨리 이 백성을 이끌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앞에 홍해가 놓여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난리가 났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 주셔서 홍해가 갈라지고, 홍해를 건넌 후에 그들은 뒤로 돌아서서 홍해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분명히 앞으로 본 홍해와 뒤로 본 홍해가 다르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는데 앞에 놓여진 홍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보는 홍해와 뒤로 보는 홍해가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면 어떻게 다른가?
먼저, 앞으로 본 홍해는 분명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앞에는 홍해가 막혔지, 뒤에는 애굽의 군인들이 쫓아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다. 우리 앞에 놓여 진 홍해가 있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 한다. 어떤 사람이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암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밀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러 간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두려운 생각이 들겠는가? 마치 홍해가 앞에 놓여져 있는 것 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가득하게 된다.

중요한 시험을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드는가?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의 딸은 성악을 전공하는데 입학시험을 선생님 앞에 서기만 하면 얼마나 떠는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에 놓여진 홍해는 두려움을 준다.

그 다음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불평한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 앞에 홍해가 있으면 이제는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 죽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을 보라. 앞에 놓여진 홍해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앞에 홍해가 놓여져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생각은 “이제 끝이로구나.” 이제는 내가 살 길이 없구나. 이제는 내가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홍해를 열어 주셨다. 맨 땅으로 건너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자, 이어서 애굽의 군인들이 뒤 따라서 홍해를 건너고 있었다. 그들이 한참 건너오는 중에 홍해가 닫혔다. 애굽의 군인들이 홍해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에 뒤로 바라본 홍해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앞에서 본 홍해는 두려움이요 이제는 끝이 났다고 생각하였지만, 뒤로 본 홍해는 완전히 다른 홍해이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신다. 하나님이 정말로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인도하신다는 확실한 고백이 그들에게 있었다. 홍해는 무엇인가?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일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산 증거가 되었다.

우리 교회가 전에 있던 곳에서 이 곳으로 이전하기 까지를 생각하면 홍해를 건넌 느낌이다. 처음에 교회 이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참으로 기뻤다. 너무나도 좋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렇게 엄청난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마음이 들었다. 마치 앞에선 바라본 홍해와도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전하고 성전도 다 짓고 봉헌하고 나니 마치 뒤로 홍해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앞에서 본 홍해는 두려움이었지만, 뒤로 본 홍해는 하나님이 살아서 일하고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증거가 되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곁에서 인도하고 계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증거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앞에서 바라본 홍해는 이제 여기에서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로 본 홍해는 분명히 달랐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보호 방법이었다. 그 많은 애굽의 군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러 올 때에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삼으셨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40일이면 빨리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길을 해안을 따라서 가는 짧은 길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블레셋이 버티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갈 가능성이 있어서 그 쪽으로 길을 택하지 않으셨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은 무기로 무장한 군인들에게는 방어할 태세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무기로 중무장한 애굽의 군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로잡았더라면 그들은 꼼짝없이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아셨기에 애굽의 군인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 주셨다. 그것도 그렇게 두려워하던 홍해를 통해서 말이다.

이같이 같은 홍해이지만, 앞에서 보는 홍해와 뒤로 본 홍해가 분명히 다르다. 앞에서 본 홍해는 두려움이요, 이제는 정말로 내가 끝났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홍해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뒤로 본 홍해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인도하고 계시는 흔적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계시는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 여러분들의 앞에 놓여진 홍해가 무엇인가? 지금 그 홍해를 바라볼 때에 두려운 마음이 든다.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내가 여기에서 죽는구나. 이것이 바로 나의 운명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에서 본 홍해와 뒤에서 본 홍해가 다르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그 홍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요,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가야하는 그 길은 예수님 앞에 놓여진 홍해와도 같았다. 얼마나 예수님도 괴로우시면 될 수 있는 데로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소서. 이렇게 기도하셨겠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사건을 바라볼 때에 이것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다. 우리를 죄에서, 죽음에서, 살려내시는 증거가 되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증거가 되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그 십자가는 마치 앞에서 본 홍해와 같다. 그러나 부활 하신 후에 우리 모두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뒤로 보는 홍해와 같다. 앞에서 보는 홍해는 두려움이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뒤로 본 홍해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증거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 앞에 놓여진 홍해가 무엇인가? 얼마나 두려운가? 나는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나는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홍해 때문에 내가 보호받고 내가 산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에게도 앞에서 본 홍해가 뒤에서 보는 홍해로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모세의 믿음이 있었다. 모세가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두려워 말라.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리라. 모세의 이러한 믿음이 홍해를 갈랐다. 다윗의 이러한 믿음이 골리앗을 물리쳤다. 스룹바벨의 이러한 믿음이 큰 산이 평지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앞에서 본 홍해는 모두가 두려운 것이었다.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하는 그런 홍해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리라. 이렇게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으로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읽어야 한다. 모세가 바다 물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서 전진 명령을 내렸는가? 아니다. 아직도 홍해에는 물이 찰랑 찰랑 차고 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나가라는 전진 명령을 내렸다. 분명한 것은 모세가 바닷물이 열린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앞에 분명히 물이 있었지만 앞으로 나가라는 전진 명령을 내린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이었고, 이러한 모세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나타났다.
사랑하는 성도여! 앞에 놓여진 홍해 때문에 얼마나 두려워 하는가? 앞에 놓여진 홍해 때문에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는가? 모세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소원한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리라.” 이렇게 믿었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닷물이 그대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진명령을 내리게 하였다. 결국에는 온 백성이 홍해를 건너게 되었다.

앞에서 본 홍해는 두려움이요 이제는 끝이 났다고 생각되는 홍해이다. 그러나 뒤에서 본 홍해는 하나님이 인도하신 살아있는 증거요,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나를 보호하시는 증거가 되었다. 앞에 놓여진 홍해 때문에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늘날 나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리라.”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홍해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홍해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곽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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