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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말이 기적을 만든다! (막 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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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광교회는 2005년 9월 현재, 국내 25개 교회와 국외 17개 교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중 군산노회 소속 보광교회가 있는데요, 일전에 그 교회를 담임하시는 고규상 목사님께서 저에게 귀한 선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박필 교수가 지은 작은 책, <당신의 말이 기적을 만든다!>인데요, 이미 2년 전에 출판된 책이었습니다만, 과문한 탓에 저는 이번에 처음 접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해서 오늘은 한가위 선물로 받은 책, <당신의 말이 기적을 만든다!>의 내용에 많이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가위 연휴를 이용하여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박필 교수 지음, 국민일보사 출판, <당신의 말이 기적을 만든다!>입니다.

어느 노(老) 목사님의 체험 한 토막으로 말씀 마당을 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지금은 은퇴하신 어느 목사님께서, 신림동 달동네에 사시는 할머니 집사님 댁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사시는 그 할머니 집사님은, 파출부 생활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분이셨습니다. 심방을 가보니 추운 겨울인데도 연탄을 들이지 못했는지 방은 냉골이었습니다. 언제 도배를 했는지 낡고 우중충한 방안은 으스스하기까지 했습니다.

먼저 심방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할머니 집사님은 목사님께 무언가를 대접하려고 부엌으로 나가셨습니다. 그 사이 목사님께서 방안을 둘러보다가 벽에서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혹시나?> 하고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정말 수표였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진짜 수표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수표에 적힌 금액이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액수였던 것입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집사님, 이것이 왜 여기 붙어 있습니까?> <아, 그거요? 별 거 아니에요, 그것 보다 목사님, 이것 좀 잡수세요!> 다급해진 목사님, 재차 물으십니다. <아니, 집사님, 지금 먹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조금 있다 먹을 테니, 이게 왜 여기 붙어 있는지 먼저 설명해 보세요!>

그러자 할머님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십니다. <아, 그거요, 지난 해 할머니도 없고, 자식들은 모두 바빠서 병간호를 하지 못하는 어느 할아버지가 있어서, 제가 그 분 병 수발을 들어드렸거든요. 그런데 이 분이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제 손에 저것을 쥐어주면서 고맙다고 하지 뭐예요, 그런 뒤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분이 주고 간 선물이라 버리기도 뭐해서 기념으로 벽에 붙여 둔 거예요.>

재산이 많은 어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이 할머니의 정성에 감동하여, 수표를 한 장 남기고 간 건데, 할머니는 이 종이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하셨던 거지요. 수표에 대하여 무지한 탓에 추운 겨울에 연탄도 때지 못하는 처지이면서도, 여전히 파출부 일로 끼니를 이어가면서도, 그 엄청난 돈을 그냥 그렇게 붙여 두고 살았던 거지요. 수표의 가치를 몰랐기에, 부자였으나 거지처럼 살았던 거지요.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이미 받아 놓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문제는 많은 자녀들이 이 권세를 벽에 붙여 둔 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에게 엄청난 권세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 채 어렵사리 살아가는 자녀도 많습니다. 마치 엄청난 액수의 수표를 벽에 붙여두고 추위에 떨던 그 할머니처럼 말입니다. 해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권세를 발견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 주신 권세를 발견하는 순간, 우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요,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수표의 가치를 발견한 순간 할머니의 인생이 달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 2
오늘 주신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 가운데 특히 <말의 권세>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니다. 마가복음 11장 12절을 보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에서 나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중이군요. 13절을 보니,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가시더니, 다음 순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절,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여기서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사람이 아닌 나무에게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우리는 나무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나무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통념이요 상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무에게 말을 하고 계십니다. 무슨 뜻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말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나무에게만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파도에게도 말씀하셨고, 바람에게도 말씀하셨고, 또 사탄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여호수아는 심지어 태양을 향해서도 말을 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말의 지배를 받습니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은 우리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합니다.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마음과 생각이 결정되고, 마음과 생각이 결정됨에 따라 그 사람이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좌우하는 것, 바로 말입니다.

해서 세속의 소리를 주로 마음과 생각에 담아두는 사람, 세속적인 사람이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로 마음과 생각에 담아두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 곧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부모에게서 주로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자란 아이, 대개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반면에 부모에게 긍정적인 말을 듣고 자란 아니, 대개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세속의 소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섞어서 듣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부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말을 적당히 섞어서 듣는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 대개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긍정도 아닌 것이, 부정도 아닌 것이, 늘 이리 갈까 저리 갈까를 놓고 갈등하고 번민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현상의 출발점엔 인간의 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도 말의 지배 아래 살아갑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이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13절의 후반부,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그랬습니다. 무화과 열매가 없었던 이유는 아직 제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요,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셨던 것일까?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당연히 열매가 없는 나무에게 이건 너무 혹독한 처사가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단초가 14절 맨 뒤에 나옵니다.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자체를 질책하거나 저주하시기 위해 일련의 행동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 하셨나? 그것은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그리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신 후, 다시 그 길로 내려오시는데, 저희가 아침에 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해서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21절,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이 대목에서 논리적 순차에 따르면,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실 것으로 예상하게 됩니다. <이 나무를 잘 보아라, 이 나무는 열매가 없어서 저주를 받아 죽었다, 너희도 열매가 없으면 이같이 저주를 받아 말라 죽으리라!> 그런데 우리 예수님, 예상을 깨시고, 전혀 다른 차원에서 말씀하십니다. 직접 들어봅니다. / 11:22-23 / (읽기)

거기 23절의 첫 대목을 보시면, <진실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정말 중요한 말이니 잘 들어두라는 유대 식 강조어법인데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께서 진실로 하신 말씀의 내용입니다.

내용인즉, 23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겁니다. 정말 뜻밖의 말씀입니다. 경고성 메시지를 주실 줄 알았는데, 엄청난 약속의 말씀을 주시니 말입니다.

한 마디로 누구든지 산을 보고 바다로 들어가라고 말하면서, 그대로 될 줄을 믿기만 하면, 그대로 된다는 겁니다. 진실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예수님, 이 말씀을 믿게 하시기 위해 무화과나무 사건을 활용하셨던 거군요.

여기서 우린 <말>이 갖는 <권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새삼 발견하게 되는데요,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말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둘째 말의 권세는 <누구든지> 가지고 있다, 셋째 그 말의 권세를 의심치 않고, 믿기만 하면, 그 말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다, 그 말의 권세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 말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여기서 남는 문제는 23절에 나오는 <누구든지>라는 말 속의 <누구>가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는 누구를 말하는 걸까? 신앙생활 많이 한 사람? 은사 많이 받은 사람? 능력 받은 사람? 큰 직분을 맡은 사람?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 대체 <누구든지>의 누구는 누구일까?

답은 간단합니다. 말 그대로 <누구든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단, 한 가지 옵션이 있으니, 23절의 맨 뒤,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않는 자>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이미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 주신 말의 권세 또한 자연히 소유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에겐 말의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 3
문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권세가 주어져 있는 건 확실한데, 그 권세를 사용하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주신 권세를 가지고 큰 능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권세를 주셨는데도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대통령의 권세를 주어도, 그 권세를 사용하는 능력은 대통령 마다 차이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권세란 운전면허와 같은 것이군요. 일단 운전면허증을 갖게 되면 나는 차를 운전할 권세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운전면허증을 가졌다고 해서 누구나 다 운전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면허증을 가진 사람 중에도 운전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권세는 있는데 능력은 없는 경우이지요.

그렇습니다. 운전면허증만 가지고는 운전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만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신 권세를 가지고 그에 걸 맞는 능력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요한 질문인데요, 오늘 주신 본문에서 세 가지 처방을 받으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믿고, 마음에 의심치 말라!

11:22 / (읽기) / 하나님이 주신 말의 권세를 가지고,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간단합니다. 다른 수식어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럼요, 말의 권세를 통해 능력을 발휘하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하기만 하면 그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이지요. 우린 이 말씀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정말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갈대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믿지 못하고 자꾸 의심한다는데 있습니다. 어제는 잘 믿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도무지 못하는 군상들,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가나안 복지를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정탐꾼을 보냈더니, 그 중 열명은 탐지했던 땅을 악평하며, 저들에 비하면 우린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비하까지 하면서, 도저히 저들을 이길 수 없다는 의심의 말들만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고 질책하셨습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함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결국 저들은 엄청난 권세를 주셨건만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불신으로 하나님을 멸시한 대가이지요.

해서 오늘 주신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절의 맨 뒤,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말라!> 믿고 의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일단 믿었으면 끝까지 믿을 것이지, 중간에 의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기서 왜 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그 정확한 원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건 내 마음에 의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은 의심입니다. 의심으로 믿음이 온전치 못하기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겁니다. 의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니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의심으로 인해 내 입술에서 나가는 말에 권세가 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의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세례 요한의 잉태를 예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때 사가랴는 천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말을 하고 맙니다. <나도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 이 일을 어찌 알리요?!> 우리에게 아들을 낳을 가능성은 없다는 거지요. 믿을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러자 하나님은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사가랴의 입을 막아 벙어리가 되게 하십니다.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라,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 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눅1:20)

왜 하나님은 그를 벙어리로 만드셨을까? 더 이상 불신의 말을 내뱉지 못하게 하시려고, 더 이상 의심의 말을 쏟아놓지 못하게 하시려고, 왜? 자칫하면 불신의 말이 하나님의 역사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의 입을 봉해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도 능력을 발휘하기 원하십니까? 내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하는 말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말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 인간적인 판단에 치우쳐 하나님을 불신하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심이란 믿지 못하는 마음, 그래요, 마음이 문제예요, 내 마음이 문제예요, 왜 같은 마음 가지고 믿지 못하십니까? 믿으면 능령자요, 믿지 못하면 벙어리인 것을 우리가 이미 아는데, 왜 믿지 않고 의심하십니까? 부디 마음으로 믿어 의심치 아니함으로 말한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능력 있는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라!

11:24 / (읽기) / 주님의 두 번째 처방도 매우 간단합니다. <기도하고 구하라!> 무엇이든지 구할 것이 있으면 입술을 열어 기도하라는 거지요. 여기서 우리는 말의 권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잘 보십시오,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을 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러면서 주시는 말씀, 너희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라는 겁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로 가르치니, 너희도 나에게 말로 구하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린 주님과 말로 통하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말, 곧 기도에 엄청난 권세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4절의 맨 뒤,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가 말씀드리기만 하면, 내 말로 주님께 간구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다 이루어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진심으로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정말 내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그대로 다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까?

그런데 왜 나의 기도에는 능력이 나타나질 않습니까? 왜 내가 하는 말에는 권세가 실리지 않습니까? 말은 그렇게 많이 하는데, 그 말을 통해 나타나는 능력은 한도 없습니까?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받은 줄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4절 보니, 우리 주님,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받은 줄로 믿고 구하면, 그대로 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내 기도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은 받은 줄로 믿지 못하기 때문인 거지요.

그렇습니다. 나의 말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 역시 나의 약한 믿음에 있습니다. 기도는 하는데 속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구하기는 하는데 속으로 이미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받은 줄로 믿고 구하면 주신다 했는데도, 우리로 믿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방해 요소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원망과 불평입니다. 가나안 복지를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저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불평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은즉, 저들을 멸하리라!>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인 동시에, 나에게 주신 말의 권세를 깨부수는 행위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달고 사는 사람, 결코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왜? 그 마음에 이미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받은 줄 믿고 구하면 주실 터인데, 원망하고 불평하느라 이미 받는 축복 까지 다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에, 하나님은 저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성 주변을 돌라 하셨던 것입니다. 불평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지 말라는 거지요. 원망으로 기적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그럼요, 내 입에서 기도 대신 불평과 원망이 나오려고 할 땐 오히려 침묵을 지키는 쪽이 좋습니다.

# 4
존경하는 여러분, 나의 말은 기적을 일으키는 말입니까? 나의 말은 생명을 살리는 말입니까? 나의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말입니까? 나의 말은 능력을 발휘하는 권세 있는 말 맞습니까? 금년 한 해, 나는 나에게 주신 말의 권세로 어떤 기적을 일으키며 살아왔습니까? 내 자녀들의 인생에 어떤 축복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까?

우리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 15:7)

또한 우리 주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놀라운 일을 행하시려고 이미 창세전부터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입을 열어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며,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구하기만 하면, 우리 앞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한가위, 당신의 말이 우리 가정의 기적을 만듭니다. 한가위 송편을 빚듯 권세 있는 말로 기적을 빚어내는 축복받은 한가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장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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