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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고향으로 가는 길 (창 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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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도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하여 각가지 은혜와 은사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이 우리나라의 최대 명절이라고 하는 秋夕입니다.
옛말에 중추가절(仲秋佳節)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추석 명절이 가장 좋은 절기(節氣)라는 뜻입니다. 추석 명절은 우리나라의 민속 명절로서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먹을 것이 풍성하며 인심 또한 풍성한 계절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는 말도 있습니다.

추석(秋夕)은 신라 유리왕 때에 서라벌 6부를 둘로 나누어서 음력 7월15일부터 시작하여 8월 14일까지 즉 추석 전날까지 여자들이 길쌈을 하고 이때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달을 보면서 이날을 즐기고 놀았다는 데서 유래가 시작이 됩니다. 결국 추석 명절은 한국의 길삼놀이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추석은 가위, 가배, 한가위라 불리며 우리나라의 설날, 단오, 추석의 3대 명절중의 하나입니다. 남쪽에서는 설날 다음으로 큰 명절이지만 북쪽에서는 고구려의 유습 때문에 단오절이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지기도 하였습니다. 흔히들 추석이란 우리나라에서만 지키는 명절로 생각을 하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보면 동양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음력 8월15일을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추석 또는 명절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고향입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기를 쓰고 고향을 찾아갑니다. 지난해 추석명절에 어떤 사람은 서울에서 여수까지 가는데 10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고생을 하면서도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그만큼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동물들에게는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사람은 더욱 귀소본능이 강합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나 괴로울 때는 고향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이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도 또는 한줌 재로 변하여 강이나 산에 뿌려진다 해도 역시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귀소본능이 강합니다. 특히 개는 아무리 멀리가도 자기가 간 길은 찾아옵니다. 개들은 길을 가면서 독특한 자신의 냄새를 끼치고 가기 때문에 후각이 예민한 개는 자기의 냄새를 찾아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또 비둘기는 몇 백 리 먼 곳에 가도 자기의 집을 찾아옵니다.
또 강원도 동해안의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부화가 되어 넓은 태평양 바다로 나가 몇 년을 살다가 성장이 되어서 산란을 하려면 자기가 태어난 남대천을 찾아와서 산란을 하고 죽습니다.
호랑이도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굴을 찾아가서 죽는다고 합니다.
인도의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자기들만이 아는 비밀의 장소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고 합니다.

미물의 짐승들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야말로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을 어찌 잊겠습니까? 부모님들이 살아 계시고, 아니면 부모님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고향이야말로 세상살이에 피곤하고 지친 인생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고생을 무릅쓰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평상시에는 5-6시간이면 가는 곳을 10시간이 넘게 걸려서 갑니다. 금년 추석에도 3천만 인구와 1,300만대의 자동차가 고향을 찾아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전 국민의 3분지2가 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벌써 몇 일전부터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들로 인하여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 보도를 들으면서 참으로 명절이란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도 오늘 오후부터는 귀경길이 또 한번 북새통을 이룰 것 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향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내 고향으로 가는 길」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1. 그러면 먼저 고향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고향에 대한 의미)

사람마다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고향이 있습니다. 다만 그 고향에 대한 이미지(Image)와 그 느낌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고향을 동경하고 또 고향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가들이 고향을 예찬하였고 또 많은 가수들이 고향을 노래하였습니다.
시인 김소월은 고향에 대하여 노래하기를

봄이면 곳곳에 산새 소리
진달래 화초가 만발하고
가을이면 골짜기 물드는 단풍
흐르는 샘물 위에 더 내린다
고향을 잊었노라 하는 사람들
나를 버린 고향이라 하는 사람들
죽어서마는 천애일방 헤매지 말고
넋이라도 있거들랑 고향으로 네 가거라.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연을 노래로 시로 문학으로 예술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고향을 의미하는 말로서는 히브리어로 아다마(adamah) 에레츠(erets) 등등이 있고 희랍어로서는 파트리스(πατριζ)가 있습니다.
① 아다마(adamah)는 히브리어 명사로서 성경에서 ‘고토’ ‘본향’ ‘본토’ 등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왕하 17:23절에는 ‘고향’으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② 에레츠(erets)는 히브리어 명사로 ‘나라’ ‘온 땅’ ‘세상’으로 번역된 외에 주로 ‘땅’ 또는 ‘고향’(창24:4, 출18:27)으로 번역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③ 희랍어 파트리스(πατριζ)는 희랍어 명사로서 파테르(πατηρ) 즉 아버지라는 말에서 나온 말로서 ‘본향’ ‘고향’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①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신 말씀 중에 “예수께서 고향으로 가시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고 하실 때 이 말이 쓰여졌습니다.

2. 고향이란 무엇인가?

(1) 고향은 마치 모태와 같은 곳입니다.

어느 침대 회사에서 광고를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어머니의 모태보다 더 편하고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침대가 바로 어머니의 모태와 같이 편안히 잠들게 하는 침대입니다” 라고 광고를 합니다.
고향은 마치 어머니의 모태와도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고향을 사모하고 그리워합니다. 모든 동물들은 귀소 본능(歸巢本能)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고향을 찾을 줄 모른다면야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그래서 인간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동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고향은 소중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고향이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고향의 환경과 전통이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문호(文豪)인 러스킨은 말하기를 “나의 고향은 참으로 자랑 할 만한 곳이다. 나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는 웨스트민스터라는 웅대한 대 교회당이 있다. 여기에는 로맨스가 있고 시가 있다. 그리고 국가와 역사와 종교가 걸어온 발자취가 인상깊게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찌 좋은 이상과 꿈을 주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성장해서 이 험악한 현실의 세계에서 결코 굴하지 않는 그 정신도 결국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의 고향의 환경과 전통이 주는 힘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이다”② 라고 하였습니다.

(3) 고향은 타향에 간 사람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데는 몇 가지 필수적인 환경과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① 우선은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서 지극한 정성과 극진한 사랑으로 사람되게 길러내는 분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②다음으로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교육을 시켜서 건전한 국민으로 성장되게 하는 것이 바로 국가요 나라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있고 나라가 있다고 해서 모두는 아닙니다.
③ 또 하나, 고향이 있어야 합니다. 고향은 졸졸대며 흐르는 시냇물이나 바람에 나부끼는 뒷동산의 풀 한 포기, 그리고 팔베개하고 드러눕던 양지바른 언덕과 친구들과 뛰놀던 보리밭, 그리고 정다운 이웃 사람들, 이런 것들이 한 인격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자기를 성숙시켜준 나라에는 충성을 하면서, 자기를 만들어준 고향에 대해서는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충효 사상(忠孝思想)만을 배워왔지 고향을 위한 덕목(德目)을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멀리 두고 생각만 하는 고향이 아닙니다. 향수(鄕愁)라는 향긋한 말만 껌 씹듯이 하는 것이 고향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절 때마다 고향을 향해 민족이 대 이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고향이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4) 고향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야곱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의 집으로 피난을 가서 살아 온지가 어언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야곱은 이제 고향을 찾아옵니다. 야곱은 대 가족을 거느렸습니다. 재산의 상징인 수많은 오마육축(五馬六畜)을 거느렸습니다. 한 말로 말해서 금의환향(錦衣還鄕)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형 에서는 여전히 동생 야곱에 대한 증오가 변함이 없고 어떻게든지 복수하겠다는 복수심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워 기도함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에 새 힘을 얻고 형을 만났을 때에,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던 에서도 어느 순간에 그의 증오심이 사랑의 마음으로 변하였습니다. 불타던 복수심은 사랑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20년 전의 해묵은 미움과 증오에 대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고향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3. 성경에도 고향을 찾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1)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가나안을 찾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조상 야곱이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7년 대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온지 43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이제는 모세를 영도자로 하여 애굽에 온지 430년 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고향 가나안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습니다.

(2) 야곱은 2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 이삭까지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2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야곱은 가족과 육축을 이끌고 고향을 향해 찾아갑니다.
(창30:25-26)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 나오미와 룻이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의 기근을 피하여 그의 남편 엘리멜렉과 아들 말룐과 기룐과 함께 이웃나라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자부를 얻고 잘 살아보려고 하였으나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온역으로 죽고 뒤를 이어서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할 수 없어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습니다. 금의환향이 아니고 실패하고 망하여서 돌아온 나오미를 고향 사람들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4)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고향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 숭배를 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지 어언 70년이 지났습니다. 70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그들은 다시 고향 예루살렘을 향하여 돌아옵니다. 돌아오면서 그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시126:1-6)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집 떠났던 탕자도 고향 땅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눅15:11절 이하의 말씀에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서 허랑 방탕하여 다 없이 한 후에 그 나라에 흉년이 들고 먹을 것이 없어 죽기 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는 과거의 모든 허물과 죄는 모두 불문에 붙이고 그 아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4.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의 야곱이 고향 가는 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야곱이 하란 땅의 외삼촌 집에서 20년이란 세월을 보낸 후에 고향을 찾아옵니다. 그의 처자들과 종졸들을 거느리고 우양과 육축을 이끌고 고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야곱의 고향 가는 길은 어떠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야곱은 고향을 늘 사모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어 에서가 죽이려 하자 외삼촌이 살고 있다는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루스 광야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밤 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함께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에 야곱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습니다.
(창28: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과의 이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언제나 고향을 갈 수 있을까 항상 고향을 사모하였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야곱은 고향을 사모하는 마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2) 야곱은 열심히 노력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 하였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습니다. 그 20년 동안 야곱은 열심히 노력하여 어느 정도 성공도 하였습니다. 그는 처자식과 종졸들을 앞세우고 우양과 육축을 거느리고 고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야곱이 함께 한 무리는 큰 떼를 이루었습니다.

(3) 야곱은 형의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정성껏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추석 명절이나 다른 명절 때에 사람들은 선물을 합니다. 선물이란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기쁜 선물이라야 합니다. 야곱은 그의 형을 위해서 정성껏 선물을 준비하여 보냈습니다.
(창32:13-15)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잠18:16)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선물을 받은 에서는 야곱을 향한 분노가 사라졌습니다. 복수심이 사랑의 마음으로 변하였습니다. 할렐루야!!

(4) 야곱은 밤새워 얍복강 나루에서 기도하여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습니다.

얍복강 나루에서 야곱이 천사와 함께 씨름을 한 사건에 대하여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어쨌든 간에 야곱은 이곳 바로 얍복강의 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불명예스러운 야곱이 아니라 새롭게 새 출발하는 이스라엘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5) 그 결과 형 에서와 화해가 이루어 졌습니다.

20년 동안 반목과 멸시와 증오와 저주로 살아온 형제간의 사이가 하룻밤의 기도로서 사랑과 화해와 용서의 사이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바로 얍복강의 기적입니다. 에서의 마음이 변화된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환도뼈가 위골이 되도록 끈질기게 간구하는 야곱의 밤새운 기도의 결과가 이와 같은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1) 우리들의 주변에는 고향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차량 행렬은 고속도로를 메우고 또 국도를 메우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명절 준비를 하느라고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고 싶어도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북에다 고향을 둔 실향민입니다. 그래도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찾아뵈올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신 분도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살아생전에 극진한 효성으로 효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2) 오늘의 성도가 찾아갈 고향은 어디입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세상이 결코 영원히 살 곳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비단 그리스도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불신자들도 자신들의 생명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이 언제 종말이 올 것인가에 대하여는 아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는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와 같은 세상이요(벧전2:11)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세상(약4:14)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영생의 세계가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 영생의 세계에 갈 준비를 하는 단계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요14: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다 하늘나라의 고향을 찾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 공명, 영화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고향에 집착하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는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상상도 못할 하늘나라의 축제가 있을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3) 우리들에게는 더 좋은 고향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히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계22:1-5)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 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도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에서는 3천만 명이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가용차로 가고, 어떤 사람은 고속버스로 가고, 또 어떤 사람은 기차로 가고, 또 어떤 사람은 비행기로 배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가 찾아가야 할 진정한 고향은 이 땅에 있는 고향이 아닙니다. 자동차 타고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는 고향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은 나그네길
이 세상은 나그네길 나는 다만 나그네
나의 집은 저 하늘 저 너머 있고
천사들은 하늘에서 날 오라고 부르니
나는 요 이 땅에 있을 맘 없도다
이 세상 이 세상 나의 집은 아니요
우리구주 머지않아 다시 오시네
천사들은 하늘에서 날 오라고 부르니
나는 요 이 땅에 있을 맘 없도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빌3:20) 믿고 날마다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천성을 향하여 한 걸음씩 앞으로 달려나가야 합니다.
절대로 낙심은 금물입니다. 낙심하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좌절하지도 말고, 우리의 영원한 고향, 우리 주님이 예비해 주신 천국을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전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임 영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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