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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원에 들어가라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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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이 운전하면서 길을 가다보면 접촉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겪고 쓴 간단한 글을 있어 읽어본 일이 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승용차를 운전하여 출근하는 길에서 있었던 사고를 경험한 한 사람의 글이었습니다.  길을 가는데 옆 차가 바짝 붙여지나가면서 승용차의 문짝을 찍 긁어놓았습니다. 그는 차를 멈추었습니다.  상대편 차를 운전하던 젊은 부인이 허겁지겁 내리더니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여성이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아직 운전에 서툴러서요. 변상해드릴게요" 그 여성은 바로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그 여성은 자기의 차 앞바퀴 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진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틀 전에 산 새 차인데 이렇게 찌그러뜨려 놓았으니 남편 볼 면목이 없다며 계속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도  그녀가 참으로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사고 보고서에는 운전면허증과 보험 관계 서류 등에 관하여 상세히 적어야겠기에 여러 증빙 서류를 담은 운전석 옆의 사물함을 열어 한 봉투를 꺼내주었습니다.  "이건 저의 남편이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필요한 서류들을 담아둔 봉투예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또 다시 울먹였습니다.  그런데 그 서류들을 꺼냈을 때 맨 앞장에 굵은 펜으로 다음과 같은 커다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보, 만약 사고를 냈을 경우에 꼭 기억해요.  내가 가장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남편의 글이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이 사람이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예,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중심의 가치관을 버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한 사람의 영혼입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참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오늘 읽은 16절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세상적인 가치나 기준을 놓고 보면 나중 된 자는 언제나 나중에 서게 됩니다.  먼저 된 자는 먼저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일은 시간적으로 먼저 오거나 일찍 온 것 때문에 단순 비교로 어떤 특권이 주어지거나 서열이 메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 늦게 왔어도 늦은 것이 아니요, 일찍 왔어도 이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포도원에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마태복음19:27에서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이 때 우리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28-30) 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주님께 충성하시는 여러분, 무엇을 좀 받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 배를 받고, 상속한다는 말은 주님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요, 나중에 가서 그런 은총이 있으면 좋고 그런 보상이 없어도 우리의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의 비유에서 말씀하는 것은 구원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있다는 것과 인간적인 선후나 우열의 차이가 없이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포도는 맛이 좋고, 당도가 많아 초가을의 과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우리 포도는 그 맛에 있어서 세계 어느 나라의 포도보다 뛰어납니다.  특별히 서해안 일대의 포도는 하루에도 늦은 시간까지 햇볕을 받아 당도가 뛰어나고 상품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이스라엘도 지중해성 기후에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좋은 포도를 재배하고 세계 제일의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포도를 많이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좋은 포도를 수확하려면 할 수 있는 한 하루라도 햇볕을 더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두면 물러지고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수확할 때에는 하루, 이틀 사이에 일제히 수확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는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오늘은 줄거리를 말씀드리고, 이 비유가 주는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포도원을 경작하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포도원에 일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주인은 인력시장이 서는 장터에 가서 일꾼을 불러 포도원으로 들여보냈는데, 그 사람과 하루의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합의하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하였습니다.  한 데나리온이란 돈은 로마의 은돈으로 군인과 일꾼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란 해뜰 무렵인데 오전 6시경을 말합니다.  주인은 일꾼들을 데리고 그의 포도원에 돌아와 이런 저런 일들을 명하고 또 다시 인력시장이 서는 장터에 나가보니 오전 9시경이었는데, 그 때도 몇 사람들이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일을 하러 포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들과는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 하였으니, 꼭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인도하고 또 장터에 나가보니 낮 12시가 되었는데,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포도원에 들여보냈고, 다시 오후 3시에 나가보았는데, 여전히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주인은 오후 5시가 되었을 때에 장터에 가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주인은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날이 저물어갑니다.  이스라엘에서 일꾼의 품삯은 당일로 지불해야 되었습니다.  일꾼들이란 하루 벌어 하루 먹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기에 임금을 체불하거나 여러 번 나눠주면 살아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신24:15에 "그 품삯은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먼저 일꾼들의 입장에서 말씀이 주는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님은 천국을 설명하시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포도원 주인의 사정, 마음, 입장, 포도원 주인의 심정이나 그가 한 처사와 같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에 들어간 일꾼들이 이른 아침에 다함께 들어갔다고 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는 들어온 시간대가 가지가지요, 그 차이가 분명하고 어떤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6시경에 들어와 12시간 일한 사람과 마지막 한 시간 정도 일한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일찍 들어온 사람은 할 말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온 사람보다 더 받아야 하든지 아니면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에게 적게 주어야 공평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므로 상처받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인간관계에는 언제나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평가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상담학과 심리학에서는 교류분석(TA: Transactional  Analysis)이란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1958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에릭 번(Eric bern)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교류하는지를 연구한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 A와 B란 사람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긍정과 부정은 4가지의 태도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 "교류분석"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인 사람으로, 다른 사람과도 긍정적인 교류를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성격이 좋습니다. 이런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인데,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 부정적인 교류를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교류를 보내는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사람인데,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교류를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만 가지고 대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염세주의자가 되고, 항상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한 맺힌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자기는 태어나서는 안될 시대에 태어났고, 정말 태어나서는 안될 집에 태어났으며,  내가 못 사는 것은 잘 사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이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가지고 함께 좋아하고 기뻐할 수 있을 때에 우리 자신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일찌감치 일거리를 찾았으니 감사합니다. 빈둥거리며 놀다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일하고 돈 받아 돌아가니 감사합니다.  주인이 한 데나리온 준다고 하고는 약속을 깨뜨리고 이런 저런 핑계로 임금을 깎으려고 하는 판에 이 주인은 약속한 대로 정확하게 한 데나리온을 주니 감사한 일입니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도 가정을 가진 사람인데, 오늘 후한 주인을 만나서 그들도 하루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벌어 가지고 가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생각해도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도 감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이렇게 나에게도 긍정적으로 다른 사람도 긍정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처신하고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IMF 이후에 생긴 말들 중에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태백"이라는 말입니다.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는 직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50대, 40대, 30대 연령을 표현하는 다른 말도 있어도 가장 마음 아픈 것은 20대 청년에게 붙이는 "이태백"이란 말입니다.  청년 실업이 50만, 60만이라고 하니, 이 나라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십대의 한참 일할 청년들의 태반이나 놀고 있다는 말로 "이태백"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일하고 있습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넉넉하게 살아가지는 못해도 일할 자리가 있고, 불러주신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주인의 입장을 깊이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반드시 그 넉넉한 성품,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주인을 만나보고 가셔야 합니다.  여기 주인은 하나님의 한없이 넓고 크신 성품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행한 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사랑할 대상으로 대하시고 있습니다.  너는 늦게 와서 한 시간 일했으니, 1데나리온의 1/16인 한 앗사리온이나 받아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포도원 주인은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적인 경영이론을 도입하여 사람을 놓고 손익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일하였느냐, 일한 만큼 주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와 그의 가족이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하루 일한 성과를 가지고 사람을 평하는 것이 아니라, 일꾼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을 대할 때에  노동가치나 상품가치로 대하지 않고, 생존가치와 존재가치로 대하시는 것에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일한 값으로 품삯을 주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라고 생계비로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포도원 주인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하늘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시고 포도원에 들여보내시는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포도원을 들어가는 것이 한 데나리온 받을 것 때문에 좋아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르시고 포도원에 들어오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버렸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장터에 나가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은 먼저 유대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이방인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셨고, 불러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유대인을 부르시고 그치신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때로는 제사장을 세우시기도 하고,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오전에 나가서 죄인들을 부르시고 구원의 자리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시고 있습니다.  뜨거운 대낮에 주인이 어디를 다닐 것입니까?  그래도 장터에 나가 아직도 일거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지 보시고 있습니다.  이제 해가 넘어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 그래도 장터에 나가서 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보시고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시간 남았을 뿐인데, 사람을 고용하면 손해가 된다느니, 아니면 일한 만큼 적은 돈을 주려고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어둡고 캄캄한 무지의 세계를 살면서 방황하던 우리 한국 민족도 마지막에 한 시간 남겨놓고 불러주셨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몰라주고 일꾼으로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마지막에 은혜로 불러주셨습니다.  오늘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하시는 것은 은혜 베풀어주실 이유를 삼기 위하여 불러주신 것입니다.  일하였으니 돈을 주신 것입니까?  포도원에 들어왔으니 돈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으로 부르시고 초청하시는 음성에 순종하여 왔을 때에 구원하여 주시고, 하늘나라를 상속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구원하러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한 시간 남겨놓고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대낮에 뜨거운 햇볕을 마다하지 않고 장터로 길가로 나가시면서 사람을 부르시고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른 아침에 들어온 일꾼이 가졌던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가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공로가 있는 사람이요, 먼저 온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먼저 온 사람이었지만 나중 되고 꼴찌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결정적인 잘못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다는 공로의식, 채권자 의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도 이와 같이 은혜의 동산에 먼저 왔으면서도 나중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채무자가 아닙니다. 우리로부터 빚지신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의당 갚아주어야 하고, 우리는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위하여 무엇인가 조금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은혜요, 감사한 일입니다. 

  "먼저 온 자들이 더 받을 줄 알았더니"라는 말씀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회가 어지럽게 되고, 하나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의 하나인 것은 이런 채권자 의식입니다.  사람은 힘써 수고한 만큼, 헌금하고 봉사한 것을 알아주지 않을 때에 괴롭습니다.  이곳이 세상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한 시간 남겨놓고 부름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말뿐입니다.  보상을 바라고 일하지 말고,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일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뜨거운 심정을 본받아 아직도 장터에서 배회하고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고 불러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데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파하여야겠습니다.  우리들이 한 영혼을 구원하려 전도할 때에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전도의 주권은 100% 주님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한 시간 남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장터로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영혼 구원하시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의 포도원에 들여보내야 합니다.  영생을 주시기를 작정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제 9월과 10월에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포도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가서 사람을 불러와야 합니다.  행13:48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증거하면 되고 예수님만 자랑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우리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라고 하면 세계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어린 소녀의 피고름을 닦아주며 치료하는 테레사 수녀를 방문하였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들,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시기심이 생기지 않습니까?  정말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 때에 테레사가 이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정말 위대한 봉사와 섬김의 정신입니다.  시기할 것 없고, 질투할 것도 없고, 다만 섬길 뿐이지,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쳐다보고 구경할 여유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불러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지, 어떤 보상도 생각 없습니다. 얼마동안 일했다는 생각도 가지지 마십시오.  오직 불러주신 것을 은혜로 알고 마지막 한 시간 생명 다하여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성 홍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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