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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동체(3)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고전 1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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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아오신 성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번 추석명절이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명절 때마다 머나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을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게 살과 피를 주셔서 몸을 이루어주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나는 뗄래야 땔 수 없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를 낳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셨습니까?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당신은 잡수실 것 없는데도, 자식은 굶기지 않으셨습니다. 명절 때, 당신은 새 옷을 사 입지 않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반드시 새 옷을 한 벌쯤 사주셨습니다. 평생 고생하며 한 푼, 두 푼 절약하여 자식의 학자금, 결혼자금으로 쓰셨습니다. 손자손녀를 보시고는, 지난 날 자식에게 다 못해주었던 것이나 때로는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 생각나시어 사랑스런 손자손녀들에게 마음껏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부모님, 당신은 일평생 저희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부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느끼는 것이 효(孝)라고요.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병드셔서 귀찮게 여겨질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 이것이 불효입니다. 부모님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하고 있다면 효자요 효녀입니다. 이번 추석명절에는 다시 한 번 우리 부모님의 무게를 느껴보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저는 두 주 전부터 공동체란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새로운 사람들의 모임이다.
오늘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란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교회 공동체를 몸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2절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청산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청산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청산교회 성도 여러분과 저는 다 그 몸의 지체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특성 세 가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는 하나입니다.
12절에서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이다” 고 했습니다.
어떻게 청산교회 성도들이 한 몸이 될 수 있습니까?
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느니라.”
요즘 말로 바꾸면, 경상도 사람이나 전라도 사람이나, 이북 사람이나 이남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다는 말은 한 성령을 마음 속에 모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청산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분 성령을 모시고, 그 분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청산교회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입니다.
간이 몸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간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 어느 성도도 우리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우리와 함께 붙어 있는 한 몸입니다.

둘째로, 교회의 각 지체는 다양합니다.
14절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몸의 각 지체는 그 기능이 다릅니다. 손은 물건을 쥐고, 발은 걸어다니고, 코는 냄새맡고, 귀는 듣고, 갈비뼈는 내장을 보호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집사님과 박집사님이 다릅니다. 옆의 성도님이 나와 같지 않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릅니다. 정치적 신념이 다르고, 이데올로기가 다릅니다. 기도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봉사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17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옆의 성도들이 다 나 같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비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다르게 만드신 목적이 있습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섬기게 하셨습니다. 손을 발을 섬기고, 발은 손을 섬깁니다. 귀는 눈을 섬기고, 눈은 귀를 섬깁니다.
그러므로, 다 나 같지 않음을 감사하십시오. 서로 섬겨주고 도와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셋째로, 모든 지체가 존귀합니다.
21절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여러분, 몸의 지체 중에 쓸데 없는 게 어디 있습니까?
‘나는 청산교회에서 별 쓸모 없어. 신세만 지고 폐만 끼치는데’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른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카톨릭 신부이면서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던 헨리 누엔, 그는 교수직을 벗어던지고, 정신지체장애인공동체에 들어가 아담이란 25세 청년 지체 장애인을 섬기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가 쓴 책 <영성에의 길>을 읽어보면, 아담이란 청년을 섬기면서 얼마나 은혜를 받고, 평안을 얻었는지 이렇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에서도 가장 연약한 사람이다. 그는 말을 할 수도 없고, 혼자서는 옷을 입고 벗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산책을 할 수도 없으며, 많은 도움이 없이는 먹을 수도 없다. 그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단지 가끔 눈 맞춤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등은 뒤틀렸으며 팔과 다리의 움직임은 심하게 비틀어졌다. 그는 심한 간질로 고통받고 있다..... 이렇게 심한 장애를 갖고 있는 청년이 수많은 외부인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인간의 왜곡된 모습을 느끼게 하는,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쓸모없는 피조물인 이 청년이, 나의 가장 귀중한 동료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 아담은 내게 그가 누구이고,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아담과 함께 오래 머물수록, 나는 그가 책이나 학교나 교수가 결코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을 가르쳐주는 자상한 선생임을 더 확실히 알게 된다.”

그는 아담을 통하여 “우리를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마음이요,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은 우리 모두 가운데서 가장 연약하지만, 의심할 바 없이 우리 모두로 하여금 가장 강력한 유대관계를 이루게 하는 인물이다. 아담 때문에 항상 누군가가 집에 있다. 아담 때문에 그 집에는 조용한 리듬이 있다. 아담 때문에 침묵과 고요의 순간이 있다. 아담 때문에 늘 애정 어린, 친절한, 부드러운 말들이 있다. 아담 때문에 인내와 오래 참음이 있다. 아담 때문에 늘 서로에 대한 용서와 치유의 공간이 있다. 그렇다. 아담 때문에 우리 가운데 평안이 있다.”(헨리 누엔, 영성에의 길, p.34-44)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연약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계시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능력을 얻고 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 주님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하여 우리는 평안을 얻고 있습니다.

22-25절 “이 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스스로 연약하다고, 가난하다고 생각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약한 자를 존귀하게 들어 쓰시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는 존귀합니다.

3. 이런 경험이 한 번 쯤은 다 있을 것입니다.
시멘트벽에 못을 박는데, 왼손으로는 못을 쥐고, 오른 손으로는 망치를 쥐고 못을 쳤습니다. 힘차게 내려쳤는데, 못이 빗나가면서 왼손 엄지를 쳐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아픕니까? 순간 왼손의 남은 손가락들이 왼손 엄지를 둘러 감쌌습니다. 왼손 엄지를 내려친 가해자 오른손은 어떻게 합니까?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미안한 나머지 재빨리 몸 뒤로 숨습니까? 이것 저것 따질 겨를도 없이 빨리 달려와 왼손 엄지를 감싸쥡니다. 그러면, 다친 왼손 엄지가 어떻게 합니까? 달려오는 오른손을 뿌리치면서 “저리 비켜, 병주고 약주는 거야.” 라며 도움을 거절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친 자신의 손가락을 내밀고 치료를 의탁합니다. 오른손은 정성껏 약을 발라주고 싸매줍니다.
이게 바로 몸의 유기적 관계입니다. 몸의 지체들이 이토록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공동체인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소중합니다.
자기 일에 너무 몰두하다보면,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건 잘못입니다. 당신이 하는 그 일이 내게 절대로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게 공동체입니다.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시는 분들은 교사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봉사하는 동안 내 자식들의 신앙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니 그들의 도움이 없이 어떻게 내 자식을 키울 수 있겠습니까?
교사 선생님들은 여기 성가대원들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이분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하여 부른 찬양을 통해 우리의 예배가 얼마나 영감있는 예배가 됩니까? 다른 부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윌리엄 바클레이 목사님의 주석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봉사는 하나님과 꼭같은 자리를 차지한다.”
심장이 박동을 멈추면, 다른 모든 기관이 건강해도 더 이상 살지 못합니다.
다른 기관이 다 건강하여도, 기도가 막혀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모든 지체는, 모든 봉사는 나를 살아있게 하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하나님처럼 존경해야 합니다.

26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는 이처럼 모든 고통과 영광을 함께 느끼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 승천한 이후, 이 세상에 더 이상 몸으로는 계시지 않습니다.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뭔가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할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아이를 가르치려면, 그를 가르칠 선생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려면, 그를 치료를 의사나 성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그 말을 해줄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의 시를 잘 묵상해보십시오.

“그에게는 손이 없으나, 우리의 손이 오늘 그의 일을 하고,
그에게는 발이 없으나, 우리의 발이 사람들을 그의 길로 인도하고,
그에게는 목소리가 없으나, 우리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그가 어떻게 죽으셨는지 말해주고,
그는 도와줄 수 없으나, 우리의 도움이 사람들을 그에게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손이 예수님의 손이요, 우리의 발이 예수님의 심부름하는 발이요, 우리의 입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입이요, 우리의 손은 예수님의 자비로운 손인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들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들입니까?
영광스런 예수님의 몸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요한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인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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