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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이란 출구 (시 5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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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회원으로 계시는 한 목사님이 간증을 하는데 시골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하며 기도를 하는데 뒷좌석에서 어떤 권사님이 목청 높여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뒷좌석에서 기도하는 권사님의 기도 내용을 들었는데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내용인즉 "주여, 풋내기 전도사를 내보내주소서, 우리 교회에서 쫓아내주소서" 얼마나 밉고 얼마나 보기 싫은지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격을 당하고 미움을 받는다. 그래서 괴롭고 탄식하며 식음을 전폐하게 된다. 여기 시편 기자의 탄식도 사람으로 인한 괴로움임을 알게 된다. 사람들의 압제가 있다.(시55:3) 그래서 아픈 마음이 있다.(시55:4) 두려움과 떨림이 있다.(시55:5)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하는 이 사람은 답답하여 출구를 찾는다. 피할 곳이 없겠는가? 그래서 시55:6을 보니 광야로 도망하려 한다.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 이 시편 기자가 얼마나 쉼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저는 실로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로 날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편 기자는 누구인가? 바로 다윗이다. 다윗의 괴로움이 극심한 것은 그 공격자들이 본래부터 원수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시55:12 원수가 책망한다면 참을 수 있다. 미워하는 자가 미워한다면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 다윗의 아픔이 되고 원수 노릇하는 자들은 바로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1. 친구들이었다.
시55:13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사람이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친구의 배반이다. 나하고 상관없는 자들이 나에게 가시 노릇하고 덤벼든다면 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정을 나눈 친구가 나를 넘어뜨리려 한다면 견딜 수 없는 미움이 되고 시험이 된다.

2. 의논하는 동업자들이었다.
시55:14上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여기 원수가 된 이들을 본래 한패거리였다. 생각을 서로 나누던 동지들이었다. 같은 목적을 향해 뛰고 달리고 사귀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원수가 되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동업의 뜻을 품고 자본금을 내고 일하다가 원수된 자들을 많이 보았다. 우정도 있고 뜻과 생각이 맞아서 재미있게 의논하고 의기투합했는데 결국 갈라선다. 서로의 약속을 저버리고 이기심의 노예가 되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데 신경을 쓰기에 결국 불신이 생기고 뇌물만 챙기고 배신의 결과가 오게 된다. 그래서 원수가 되고 밤잠을 못자고 괴로워한다. 동업자가 배반자가 되는 것, 그것이 사람의 무서운 죄악성이다. 사람이 본래 그런줄 모르니 믿었다가 발등 찍히고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3.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자들이었다.
시55:14下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신앙이란 친척보다 친구의 의리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만든다. 신앙이 서로 통하여 함께 예배하는 하나님의 집으로 다니는 것은 어떤 사람의 관계보다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이 믿음을 나누는 자가 원수가 되어 괴롭히는 압제자가 된다. 믿음을 앞세운 자에게 배반을 당하고 사악한 위선을 맛볼 때 그 아픔이 어떤 것이겠는가?
가까운 군포지방의 어느 목사님의 간증인데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 한 사람이 와서 등록을 했는데 전자 음향 전문이라고 한다. 금을 스피커 뒤에 붙히면 전파 잡음을 잡는다고 해서 금을 가져다 붙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더란다. 그래서 금덩어리를 금은방을 하시는 장로님에게 연락해서 갖다 붙히니까 어영부영 왔다갔다. 하더니 금을 갖고 도망갔더란다. 금을 다 잃어버리고 믿겠다는 한 사람에게 사기 당하고 나니 너무 괴롭고 밉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정말 다윗의 경우처럼 가까운 사람, 우정을 나눈 사람, 신앙의 사람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일들이 많다. 나는 아산 재단의 정몽헌 씨를 생각해본다. 그는 왜 현대사옥 자기 사무실에서 유리창 밖으로 뛰어 내려 자살을 하였는가? 아마도 자기와 함께 일한 사람들 모두 다 후원자가 되고 편이 되어 주리라 믿었다가 정치인들부터 나 몰라라 하고 등을 돌린데서 온 배반감, 버려진 아픔,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짊어지도록 만드는 상황의 압제를 못 이겨 하룻밤 사이에 몸을 날린 것이 아니겠는가?

괴로움이 극심하면 그 괴로움에서 탈출하는 출구로 자살을 택한다. 술, 담배, 약물로도 해결되지 않기에 날개를 달고 달아나고 싶은 도피의 마음이 죽음의 길을 택하게 한다. 세상 사람들의 괴로움은 결국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다윗은 친구, 동지, 같은 신앙인에게 배반을 당했다. 그래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앙의 능력 때문이다. 세 가지로 표현된 신앙이 그의 삶의 위기에서 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화재 사건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출구를 찾은 사람은 살 수 있었다. 다윗을 견디게 한 신앙의 출구는 무엇인가?

첫째, 기도할 수 있는 무릎이다. (시55:1)
시55: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기도할 수 있는 자는 삶의 실패자가 아니다. 기도가 계속되는 한 그 사람의 삶은 변화와 회복 앞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이른 자이다. 그러나 기도할 수 있는 한 그의 마지막 가능성이 끝난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이어진 전화선이다. 모든 것이 끝장났어도 기도가 있는 한 하늘에 비상벨을 울릴 수 있다.
기도할 수 있는가? 아직 포기할 단계가 아니다. 다윗은 기도할 수 있기에 삶의 내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도하자. 기도하는 자는 오뚜기같은 신앙의 사람이 된다.

둘째, 구원의 소망이다. (시55:16)
시55: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시편 기자인 다윗은 소망을 지니고 있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을 아는데 어찌 소망이 넘치지 않겠는가?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구원받는다는 소망은 어떤 무서운 환경도 이겨내게 만든다. 빅터 프랭클린이란 사람은 히틀러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사람이다. 그는 로고테라피라는 의미요법을 제창한 사람인데 살아야 할 의미, 뜻을 지닌 사람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수용소 생활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용소 안에서 살아있어야 할 의미가 없는 사람은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기에 병들고 약해져서 가스실로 보내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고난 속에 있으나 하나님이 건져주신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나의 괴로운 신음소리를 듣고 계시는 분이기에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다. 이 작은 것이 소망의 줄이 되어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에 초인간적인 인내심으로 견디어낸다. 소망은 기독교의 믿음과 사랑과 함께 주어지는 덕이다.

롬15:13에 기록된 소망의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 소망은 무한정, 기약없는 환경 속에서도 기다리게 하는 힘이다. 우리가 스레트 야적장 아래서 지나면서도 장마비가 사무실에 뚝뚝 떨어지지만 왜 신나고 즐거운가? 그것은 새로운 집, 정말 멋있게 만들어질 집이 기다리고 있는 소망 때문이다.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우리는 슬프지 않다. 두어 달이면 입당을 하는데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새 생명 축제로 입당할 터인데 소망스러운 것뿐이기에 힘들지 않다.

셋째, 주를 의지하는 신앙이다. (시55;23)
시55:23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편 기자의 신앙은 분명하다.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운명은 단명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이 괴로움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따라서 자신의 결단은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데 있다. 오직 주님, 오직 주님만이 내 의지할 분이다. 의지해야 할 주님이 있는 다윗은 요동치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는데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기자인 다윗은 기도와 소망과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 모든 두려움과 괴로움을 이겨냈다. 오늘 우리는 시편을 읽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삶 속에서 겪는 모든 괴로움이 다윗의 괴로움이고 내가 죽고 싶은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신 것이 바로 신앙이기에 그렇다.
금번 맥추절에는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위기와 절망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는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하자. 고통 속에서 구원의 소망이 있음을 감사하자. 의지하는 믿음이 있음을 감사하자. 돌이켜보니 다윗이 지닌 신앙의 세 가지 요소들이 우리들에게도 있지 아니한가? 그래서 넘어지지 않고 이 자리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출구가 있는 자들이다.

바울은 고후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망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다. 이는 흙덩이같은 인생이지만 질그릇에 지니고 있는 보배의 능력 때문이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어떤 핍박과 거꾸러 뜨림을 당하는 일을 만나도 괴로움을 딛고 승리한다. 신앙은 금보다 귀한 보배이다. 일곱 번 넘어질 일이 생겨도 여덟 번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사람, 그 오뚜기같은 삶은 신앙으로 되는 것이다. 이 약하고 약한 종이를 보라. 그러나 이 나무판을 의지하는데 강해질 수 있다. 우리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소망을 가지며 의지하는 믿음이 있는데 쓰러질 이유가 없다.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구를 떠나고 싶은 괴로움이 있다하더라도 들으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자. 신앙의 출구가 우리 믿는 자에겐 분명히 있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나가는 출구가 있어요, 포기하지 않아요" 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김 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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