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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위대한 생애 (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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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삶”을 소개하겠습니다. “난 그런 별난 삶에는 관심 없어요. 힘드니까요.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대범한 사람인가요? <백만장자 마인드의 비밀>이란 책의 내용입니다. “돈은 내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말하는 사람은 다 돈이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돈을 원하지만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하고요, 또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돈이 안 생긴답니다.

고3학생이 “성적은 내게 중요하지 않아요” 하다면 실력은 다 알아본 것이지요? 성적이 안 중요하다면 뭐가 중요한가요? 고3에게 인격인가요? 살면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자신이 없다는 말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삶도 그래요. 멋지게 그리고 훌륭하게 살려는 의욕이 없다면 무엇에다 관심을 쏟고 있나요?

위대한 삶을 원해야 합니다. 대충 살기엔 너무 아까운 게 우리의 생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셨어요.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다음 세상의 모양이 나옵니다. 또한 잘 살수록 이 세상에서도 더 잘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위대한 삶을 원하세요. 여기 두 위대한 삶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아무도 할 수 없고요 또 다른 하나는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1. 아무도 못 따라할 위대한 삶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살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을 대신 짊어진 것이었어요.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그 삶을 살아주셨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슬픔을 많이 겪었으며 고통을 아는 자라.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비극적인 삶 보기를 싫어합니다. 가난하고 아프고 슬픈 이야기 싫어해요. 하지만 누군가 내 대신 그렇게 했다면 다릅니다. 내가 잘못해서 당할 일들을 어떤 분이 대신 당했다고 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누가 그랬으며 어떻게 값이 치러졌는지 자세히 연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람 되신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어떻게 가져갔는지 알아야 해요.

그분은 천하게 외양간에서 났습니다. 가난해 공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죽도록 노동 했어요. 소외당한 이들, 특히 문둥이, 맹인, 장애인들을 고쳐주었습니다. 멸시받던 세리들, 불결한 창녀들을 고치고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을 당했고, 제사장들에게 고발 당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침 뱉고 밟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억울함 당하고 발가벗겨 죽을 때 아무도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명을 구하고 병고쳐주고 사랑해준 그의 죽음을 보고만 있었어요. 슬픔의 사람이었고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었어요. 살인강도로 취급당했고 더러운 형틀에 못 박혀 모두에게 버림 받았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다 고개를 돌렸고 하나님도 그를 버렸어요.

이것이 왜 가장 위대한 생애입니까? 모두에게 버림 받고 지옥에 던져진 게 왜 위대합니까? 그렇게 해서 인류가 마셔야 하는 저주의 잔을 대신 마셨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을 완성합니다. 아무도 이 일을 해 낼 수 없습니다. 함으로 위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내 죄를 다 가져가고 벌을 대신 받고 병도 가져갔다는 선언입니다.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세상에서 고통하는 모습은 곧 나의 모습입니다. 내가 당할 것을 그가 대신 당한 것입니다. 저가 창에 찔리고 못에 박힌 것은 내가 당할 내용입니다. 좀 다른 모습으로 당할지는 몰라도 여전히 찢기고 쓰라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죄인인 내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가 내 대신 당했다고 한다면 내가 당할 것은 이제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2. 나도 할 수 있는 위대한 삶

이렇게 분명한 선언을 보면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아요. 그 내용을 내것으로 삼아서 주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대로 믿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죄의식이 일어나고요 아직도 내 통증은 그대로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여기에서 믿음이 요구됩니다. 그가 내 대신 했다고 하는 데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난이 나를 두들기고 병과 장애와 통증이 나를 짓밟습니다. 그래도 내가 할 말은 하나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내 모든 죄를 가져갔음을 믿습니다. 내 가난을 가져갔습니다. 내 병을 가져갔습니다. 내 장애와 약함을 가져갔습니다. 온 인류 앞에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그가 가져갔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나를 위해 하신 일들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경험보다도 사회의 통념보다도 과학자나 의사의 말보다도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할 때 믿음은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현실의 경험이 짓눌러도 말씀을 붙잡는다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세상보다 더 크고 더 강한 질서 속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신비한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비한 인도를 보고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의 왕이었습니다. 그의 티없고 깨끗한 거룩한 몸으로 나의 저주스런 삶을 살아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사라지고 죄인의 운명만이 그에게 덮어씌워졌습니다. 이제 그는 내게 요구하십니다. “내가 내 몸으로 네 삶을 살았다. 네 삶은 참 저주스런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건 결국은 수치요 더러움이요 영원한 멸망이었다.”

“이제 네 몸으로 나의 삶을 살고 싶다. 네 몸으로 내가 살아야했던 왕으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네 자신을 복되게 하고 세상을 비추며 네 모든 재능을 다해서 최상의 삶을 만들어야 한다. 짧은 삶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려면 나에게 맡겨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힘을 주겠다. 나의 생명과 능력과 영광으로 네 삶을 비출 것이다.”

여기에서 나도 살 수 있는 위대한 삶이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몸으로 살아준 나의 생애가 위대한 생애였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룬 것입니다. 지옥을 깨뜨리고 나왔습니다. 인류역사상 아무도 그 속에서 나온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사탄을 향해 죽음을 향해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이제 그 분이 내 몸을 통해 산다면 또 다른 위대한 삶은 시작됩니다. 선택하면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나 대신 살아주신 그 고마운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힘을 이용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고귀한 목숨을 버리신 그분을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나를 지배하도록 바치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합니다.

들판에 집이 두 채 서 있었습니다. 크고 웅장한 집 그리고 작고 못생긴 집이었습니다. 큰 집에는 부자들이 파티를 열었습니다. 작은 집에는 아무도 안 갔고 폐허가 되었지요. 어느날 왕이 들판에 사냥을 나왔습니다. 비가 쏟아지자 작은 집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후로 왕은 그 집을 별장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입장은 정 반대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3. 위대한 삶을 선택하라

작은 집은 생각합니다. “나는 작고 못생겼어. 아무리 왕이 들어와도 그 상황은 변하지 않아. 나는 여전히 작고 쓸모가 없어. 왕이 들어오니까 더욱 더 창피하게만 느껴지는구나.” 이것이 오늘날 많은 신자들의 상태입니다. 자기 속에 들어오신 하나님 아들은 주목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족함만 바라봅니다. 과거에 못한 것 지금 못하는 것만 봅니다.

무엇이 집을 영광스럽게 합니까? 훌륭한 외모와 쓸모입니까? 아니면 왕의 존재입니까? 아무리 잘 생겼어도 도둑이 차지하면 도둑 소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들을 모신 왕궁이요 성전입니다. 무엇이 집을 존귀하게 합니까? 부자들 권력자들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입니까? 서양에는 오래된 집이 많습니다. 괴테나 와그너를 모셨던 집이요.

우리도 훌륭한 왕궁이 되고 성전이 되려면 왕이신 예수를 늘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교회에 열심히 옵니다. 교회 일에 앞장섭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청결하게 한 것과 같아요. 모든 축복 받는 인물들은 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전을 사랑했어요.

훌륭한 왕을 모신 집은 늘 이웃에게 베풀고 봉사합니다. 신자로서 훌륭한 집은 하나님 앞에서부터 훈련이 시작됩니다.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인사하고 격려합니다. 예배 마친 다음에는 잠시라도 교제에 참여합니다. 대화하고 격려할 사람을 만나세요. 일 맡으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가정과 직장과 사회로 우리의 사랑은 퍼져나갑니다.

이러한 삶이 작은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큰 것입니다. 그렇게 헌신하는 마음을 키우면서 평생을 보낸다면 참으로 위대한 생애가 됩니다. 예수를 모신 사람은 이러한 삶을 살도록 모든 힘이 공급됩니다. 그 살을 믿고 해보세요. 그렇다면 나 자신이 또 하나의 예수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내 삶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주위를 비추는 등불이 됩니다.

말씀을 보세요. 옛 나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동시에 내 죄도 형벌도 저주도 죽었습니다. 가난이나 병이나 문제도 죽었어요. 아직 보이고 경험되어도 죽은 겁니다. 저주받은 무화과가 시퍼렇게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같아요. 믿으면 효력이 나타나요. 이제 나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입니다. 옛 나, 약하고 추한 나와 단절시키세요.

이제 내가 내 몸으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안에 영으로 계십니다. 나는 왕을 모신 왕궁입니다. 그분의 모든 좋은 것이 다 내안에 있습니다. 외모나 배경에 상관없이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주장하면 또 효력이 나옵니다.

신자에게는 두 종류의 삶 밖에는 없어요. 내 몸을 통해 예수와 함께 만드는 삶이 하나이고요, 다른 하나는 그냥 내 힘으로 신자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앞의 것이 위대합니다. 뒤의 것은 너무 힘들고 효과도 없어요. 예수와 함께 만드는 위대한 삶은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더해줍니다. 내 몸으로 하나님 아들 삶을 삽니다. 기대치를 높이세요.
(김 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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