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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회자를 돕는 손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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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스라엘은 아말렉의 공격으로 출애굽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때에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수아에게 나가 싸우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마치 혼자 살기 위해서 홀로 산으로 올라간 것처럼 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민족을 배신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그 명령에 이의를 제기했습니까? 아론과 훌이 안된다고 브레이크를 잡았습니까?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세를 도와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목회자를 돕는 손'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一) 목회자가 안정이 되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가 안정이 되도록 협력했습니다. 그들은 돌을 가져와서 모세를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곁에 서서 모세의 들린 손을 한쪽씩 잡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가 더 힘들겠습니까? 아론과 훌이 더 힘들겠습니까? 당연히 아론과 훌입니다. 서서 남의 팔을 잡고 서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불안과 불투명 속에서 목회하게 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혹자는 목회자가 항상 그런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호주의 의사 테일러 박사는 "목사 살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목회자에 관한 연구 보고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이 건강이 몹시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 목사살해의 원인을 3가지로 지적했습니다.

첫번째는 "과로"라고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너무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교인들로부터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압박감)"입니다. 이것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목사님을 지지해 줄 수 있는 협력자들이 많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번째는 과다한 업무로 인한 "운동부족"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테일러 박사의 연구 논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회자는 불안정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성도들이 지나치게 목회자에게 주는 압박감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습니까? 성도는 목회의 지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사도 Paul에게도 많은 반대자들이 있었습니다. Paul이 반대자들로부터 받은 괴로움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반대자들은 그를 헐뜯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만 있었다면 천하의 Paul 사도인들 어떻게 이겨냈겠습니까? 그러나 갈 4:15보면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는 할 수만 있으면 눈이라도 빼어줄 정도로 Paul 사도를 도왔습니다.

빌립보 교우들은 혹시 Paul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까 하여 자주 헌금을 보내주었습니다. (빌 4:14,16) 이런 목회자의 협력자들이 있었기에 사도 Paul이 사역을 묵묵히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가 목회자의 사랑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듯 목회자도 성도들의 사랑으로 새로운 힘을 얻는 줄로 믿습니다.

(二) 균형있게 협력해야 합니다.

아론과 훌이 지도자 모세를 도울 때 단독 플레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중심으로 좌우에 서서 모세의 팔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목회자의 좌우에서 보조역할을 했다. 다른 사람의 역할을 시샘하지도 아니했고, 평가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가 중심에 서보겠다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슬그머니 자기 몫의 일을 유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협력자의 모습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꼭 목회자만 중심에 서고 나는 보조역할만 해야 되는가? 또 다른 사람 보고 불만을 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불평이 생깁니다. 원망이 생겨납니다. 순종치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에서 무엇을 맡았든지 맡은일에 충성하십시오.
잠 25:13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비록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맡은 일에 성실하십시오. 빛이 나지 않는 일이라도 충성 하십시오. 그것이 목회자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입니다.
사도 Paul은 오네시보로를 칭찬했습니다. 딤후 1:16-17에 보면 "원컨대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잘 기억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위대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Paul사도가 옥에 갇혔을 때 자주 찾아와 잔심부름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Paul사도는 오네시보로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였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목회자를 시원케 하는 사람입니까? 특별한 일을 해야 목회자를 시원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세상의 명예나 권력의 기쁨을 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잘 나오고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할때 기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 맡은 직분에 자리를 잘 지키면서 아론과 훌처럼 목회자가 피곤하고 어려움에 처할 때 손을 잡는 일에 서로 균형있게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三) 변화없이 협력해야 합니다.

미국 종교뉴스가 '미국 목회자들의 좌절'의 이유들 중 제 1위가 "성도들의 신앙생활 중단"이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자라면서 교회 나오지 않을 때, 목회자와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날 때, 교인들 서로 싸우고 교회를 떠날 때 목회자들은 좌절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를 돕고 목회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목회자와 끝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골교회 목사님이 개척을 해서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그런데 교인 하나가 사사건건 반대를 했습니다. 교회 건물 짓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건축하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른 교회 교인들도 헌금하고 가는데 이 사람은 전혀 헌금하지 아니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쯤되면 얼마나 목사님의 마음이 상하겠는가? 여러분 같으면 속이 상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은 차라리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헌당예배를 드리는 날 목사님은 오히려 그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목사님이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겠습니까?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직분 완수하며 목회자를 도와 주의 일에 충성하는 성도들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겠습니까?
아론과 훌이 모세에게 협력한 마지막 고마운 요소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는 일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최후에 승리를 거둘 때까지 끝까지 모세 곁에서 모세의 두 팔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훌륭한 믿음이요, 헌신이요, 고마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훌륭합니까? 그들은 실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버텨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목회자와 함께 교회를 섬기고 주님의 일에 충성합시다.

(결론)
세상에는 독불장군이 없다. 목회자도 목회를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협력하는 성도들이 있을 때 목회를 대과없이 완수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에 가장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협력자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신천교회를 목양할 동안 안정된 상태에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협력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 사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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