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족장들의 감사 (출 3:15-18, 살전 5:16-22, 눅 17:15-16 )

  • 잡초 잡초
  • 284
  • 0

첨부 1


1.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한 여인이 자기 남편을 팔겠다고 하는 신문 광고를 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주말만 되면 골프다 사냥이다 해서 계속 외출만 하니 이 부인은 속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이런 남편은 팔아치우는 것이 상책이다” 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사가는 사람에게는 사냥개, 사냥총, 골프기구는 보너스로 그냥 끼워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흥미로운 광고를 보고 편지를 하는 사람, 전화를 하는 사람이 한 6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60명 가운데 “내가 당신 남편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많은 전화와 편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사냥가고 골프 다니는 남편이라도 있으면 고마운 줄 알아라. 당신은 남편 없이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서러운 일인지 아느냐? 괜히 그러지 말고 있을 때 잘해라” 또 “그런 남편이라도 바람 안 피우면 감사한 줄 알아라. 바람피우면 그보다 얼마나 골치 아픈지 아느냐?” 그런가 하면 “복에 겨운 소리 작작해라. 나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남편과 헤어졌는데 그 후 혼자서 자녀들을 양육할 때 남편과 헤어진 것을 수도 없이 후회했다”. 전부 이런 내용들이었다는 것입니다(혹 여러분 가운데도 남편 방매할 생각 가졌으면 일찍  버리는 것이 옳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5년도 서부 추수 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일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연례행사이기 때문에 해마다 추수 감사절을 맞으면서도 아무런 감격조차도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1년에 한번씩 감사절을 지키는데도 이렇다고 한다면 평소 우리들의 삶에서 정말 감사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는 참 어려운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불치병 난치병으로 평생을 병원 생활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말 심각한 병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오늘 우리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 불감증”이라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과 삶에서 감사가 살아져 버린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내용은 우리 주님께서 열 사람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놀라운 치병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나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아십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그 병을 “천형(天刑)” 즉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나병환자로서 유명한 한하운(韓何雲)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피를 토하면서 지은 이런 시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 꽃과 나비가 /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 성한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울부짖는 그 이면에 그들은 전혀 사람취급은 커녕 짐승보다 못한 저주스런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천형의 인생을 살아오던 나병환자 10명이 우리 주님을 통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그러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유대인들이니까 맨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고쳐주신 분을 먼저 찾아가서 사례해야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한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었습니다.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전체의 1/10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 감사불감증의 현장 그것이 바로 나의 자화상이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다시 돌아와서 감사하는 이 사마리아 사람을 향하여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고 찾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 계십니까? 사마리아 사람처럼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하십니까? 아니면 유감스럽게도 주님이 찾으시는 “그 아 홉사람”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죄 용서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로 인 치심을 받은 것,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리라”고 하는 약속을 받은 것,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고 기도 응답을 약속 받은 것, 그리고 저 하늘나라 영광을 약속 해주신 것....이 모든 일들이 저 나병환자가 고침 받은 것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말 엄청난 은총아닙니까? 이런 축복받은 인생이 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숨쉬고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이며 기적입니까? 여기 감사가 넘쳐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중세기 때 저 유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이라고 하는 방대한 저술을 통하여 가톨릭의 교리적 기초를 놓은 사람입니다. 어느 날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토마스야, 너는 나를 위하여 큰일을 하였구나. 무슨 상급 받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여, 다른 어떤 상급보다 주님 당신을 원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신 것,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이신 것, 성령님께서 나의 보혜사 이신 것...이보다 더 큰 은총과 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 더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본질적인 감사가 넘치는 사람에게 “(그밖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을 당하여 「족장(族長)들의 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감사 즉 선택에 대한 감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한 곳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근처의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건너 저쪽에 살면서 다른 신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 판매상이었다고도 합니다. 예나 이제나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더러운 죄악이 따라 다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대상이었던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오직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주의 혈통에서 선택했습니다. 멸망의 땅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축복의 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인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는 말씀은 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아브라함보다 더 복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복을 주겠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너는 복덩이”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이 아브라함이 멀고 먼 여행 끝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맨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창12:7에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다”고 했다.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복에 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신 은총을 인하여 아브라함처럼 감사의 제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먼저 제단부터 쌓은 아브라함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새 성전을 건축하는데 그 일을 가장 소중한 일로 여기고 적극 참여하고 헌신하는 일이 바로 아브라함의 제단과 방불한 줄 믿습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이 거룩한 역사에 참여하는 여러분에게도 하늘 문을 여시고 복에 복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2. 이삭의 감사 즉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외아들로 하나님의 큰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창26:12-13에 보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삭은 농사하여 백배의 수확을 얻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주변에는 이삭을 해치려는 수많은 적들이 진치고 있었습니다. 이삭으로서는 도저히 그들과 더불어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공들여 쌓은 탑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삭의 하인들이 우물을 팠으나 블레셋 사람들이 강제로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이런 도전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삭의 생존 자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삭을 이 죽음의 위협에서 지켜주시고 건져 주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나중에 블레셋 왕과 군대 총사령관이 이삭을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고 하면서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이 놀라운 은총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의 생명, 건강, 가족, 재산 할 것 없이 모든 것은 여러분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고 또 지키신다고 하는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알 때 어찌 감사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과연 이삭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안심하고 자기 살 집을 지었습니다. 일마다 때마다 구원해 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야곱의 감사 즉 축복에 대한 감사입니다.

야곱은 원래 이삭의 쌍둥이 아들이지만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서 내려오는 가문의 축복은 자연스럽게 맏이인 에서에게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야곱은 이 장자의 축복을 그렇게 사모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 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야곱을 두고 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형을 속이면서 까지 장자의 명분을 가로챘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장자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 야곱은 정말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오늘 우리로서는 야곱의 이런 발버둥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2천년 역사에도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숱한 고난을 즐겨 받은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믿지 않는 에서같은 사람들이 볼 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내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인데 장자 명분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했듯이 오늘 세상 사람들은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이것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아는 야곱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을 때 저와 여러분은 “아멘”하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리하여 야곱이 20년 객지 생활에서 응답받고 승리자가 되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된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기도는 하늘에 상달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신 주께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여기 우리의 넘치는 감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오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선택, 이삭의 구원, 그리고 야곱의 축복을 인하여 감사로 주께 제단 쌓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 오동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