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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입은 자 (룻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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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인생이 됩시다.”

  요즘 시중에 번역되어 출판된 책 중에 죠이시 윌리암스라는 사람이 엮어서 낸 책인「절대적인 믿음으로 성공한 여자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현재 미국 국무장관을 지내는 곤돌리자 라이치의 간증도 실려 있습니다.
  죠이시 윌리암스는 이 책에서 자신이 인생에서 경험했던 끔찍한 기억들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불행은 16년 이상 지속되던 결혼 생활의 파경이었습니다. 
  1999년 어느 더운 여름 날, 윌리암스는 리치몬드에서 그의 집이 있는 버지니아 주까지 차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결혼의 파탄이 가져온 그녀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거부당한 고통, 장래에 대한 불안 등이 그녀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고 더우기 썰렁한 집에서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기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주님 저는 도저히 혼자 밤을 지새울 수 없어요. 너무 무서워요. 주님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곤 무심코 기독교 방송 스위치를 눌렀는데, 마침 찬송이 끝나고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말씀이 정말 필요한 분을 위해서 제가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성경은 욥기 11장 14절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곧 네 환란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할지며, 두루 살펴보고 안전히 쉬리니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리리라』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의 말씀이 그녀의 마음  속에 평안을 주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들으며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고백하며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의 영혼에는 치유와 소망이 가득 흘러 넘쳤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그 후 그녀는 재혼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빌리그레함 전도협회에서 귀한 사역을 감당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든 고통을 당하더라도 욥의 고통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욥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욥기 42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마지막 장이 바로 42장입니다. 42장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노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고백합니다. 욥기 1장, 2장에서는 욥이 당하는 엄청난 고통들이 열거되지만, 욥기의 마지막 장인 42장에서는 욥의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지고 새로운 회복과 역전의 인생이 주어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고난 속에 있더라도 욥기 42장을 기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가위 주일에 ‘인생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역전의 인생이 되려면 우리는 복음의 소식을 들어야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인생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역전의 인생이 되려면 회개하고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1장은 돌아오라는 말이 8번이나 반복해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역전의 인생이 되려면 잃은 것보다 남은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미 떠나간 것, 잃어버린 것, 그런 것에 관심 쓰지 마십시오. 아직 내게 남아있는, 내가 붙들 수 있는 것, 내게 주어진 것, 남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전의 인생이 되려면 마지막으로 지혜롭게 선택하셔야 됩니다.
  룻은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결혼생활이 파탄 나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과부로서 생애를 살아가야 되는 엄청난 비극가운데,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모압 여인이 유대 땅에 돌아온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대한 차별이 몹시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룻의 고백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입니다. 어머니가 거하시는 곳에 나도 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은 매우 처량했을 것입니다. 과부된 시어머니, 과부된 며느리의 귀향.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그러나 베들레헴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귀향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룻의 처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차별받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겐 남편이 없습니다. 경제적인 방법이나 어떠한 생계의 수단이 전혀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더구나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가진 돈이나 어떤 재물도 전혀 갖지 않은 그런 모습. 거기다가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해야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 룻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 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에베소서 2장 11절 이하에 보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오늘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들은 바로 이와 같은 처지 속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룻에게 새 인생의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은혜를 사모하면서부터인 것입니다. 2장을 유심히 읽으셨다면, 은혜라는 말이 무려 3번이나 반복되어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볼까요?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아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허락을 받는 과정입니다. 그냥 생계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이삭을 줍겠나이다, 누구 밭에 가서든지 허락을 받으면 내가 거기서 이삭을 주워서 이제 생활을 책임지겠다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중간 부분에 "나는 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즉, 룻이 보아스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방 여인인 나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아 주십니까라는 말씀입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아멘! 오늘 룻은 보아스에게 은혜입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녀는 은혜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는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은혜’라는 말을 참 자주 씁니다. ‘목사님! 저는 은혜 받았어요.’‘이번 부흥회 때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부어주시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는 받을 자격이 없어요. 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 죄를 묻지 않으시고, 내 죄를 다 사해주셨어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선물, 즉 이것이 은혜입니다. “나는 구원받을 조건이나 자격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선하게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거저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 선물.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이 일해서 얻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건강, 육체, 재능, 여러분이 일해서 번 것입니까? 돈 주고 사셨나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 거저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랑하는 은사와 재능, 여러분이 돈 벌어서 산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거저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다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 룻은 아무런 받을 조건이나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은혜가 부어지게 되고,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입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먼저, 은혜를 입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2절 말씀을 한 번 더 읽겠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아멘.

  룻은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주우러 나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추수 후의 이삭을 줍는 일은 허락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객이나, 고아나, 과부나, 이방인에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추수 후에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주을 특권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 판에 이삭 좀 줍는 일은 당연히 허락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의 동정법입니다.
  이제 룻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삭을 주워서 연명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나그네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룻은 이 일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삭을 주우려면 굉장히 힘들 것입니다. 허리를 굽히고 땅을 살피면서, 땅을 주시하면서 종일 이삭을 주우려면 얼마나 허리가 아프겠습니까? 참으로 겸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룻은 자신을 낮췄습니다. 겸손으로 그는 자신을 띠 띄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났는데, 그 땅 주인인 보아스에게 큰 절을 하면서 감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입으려면 먼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은혜란 물과 같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반대로 교만한 자를 배척하십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나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공로 없는 사람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으려면 먼저 겸손한 자리에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은혜를 입으려면 보아스를 만나야 됩니다.

  3절 말씀을 읽습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아멘.
  지나가다가 좋은 밭이 있어서 이삭을 줍는데, 그 밭이 하필이면 자기의 친족이고 유력한 자인 보아스의 밭이더라는 것입니다. 유력한 자라고 표현되어 있는 보아스는 꽤나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집안이 망하게 되면 그 집안을 대신 책임질 친척이 필요하게 되고, 그 친척이 망한 집안 사람들을 돌봐주는데 룻과 같이 친 아버지도, 남편도 없는 여인은 친족과 결혼하게 되고 그에게 보호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자격이 있는 친족사람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연히’라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밭으로 룻을 인도한 ‘필연’입니다. 그 곳에서 룻이 보아스를 만남으로써 그녀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그녀를 통해서 놀라운 가문이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룻과 보아스의 만남같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때 우리들의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오늘 룻은 밭에 나갔습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의 장소인 밭은 오늘날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한 영적 생명을 거두는 추수 밭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영적인 추수 밭인 교회로 오셔야합니다. 말씀이 있는 곳, 예배가 있는 교회로 나오셔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역전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시작되고,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끝나며,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남으로 끝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남편과 아내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좋은 직장 동료를 만나고, 사업의 파트너를 만나고,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었고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양치는 목자였지만, 시내산 떨기나무 풀숲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출애굽을 이끈 지도자로 변신된 것입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세계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좋은 만남을 사모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남으로 인생이 바뀌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내가 너희를 만나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에서 인생의 역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시작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은혜를 입으려면 떠나지 마셔야 합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아마 룻은 나이가 젊었던 것 같습니다. 아기 없이 남편이 결혼하자마자 세상을 떠났으니 젊은 부인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보아스는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라고 한 것으로 보아 중년 이상의 나이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계속 머물러 은혜를 받았듯이, 우리도 은혜를 입으려면 교회를 떠나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땅인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에 감으로 그들의 인생은 실패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허락없이 떠나면 안됩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그 밭을 떠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곳에서 이삭을 줍게 하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룻은 그 밭에 머물렀기 때문에 보아스와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추수 밭인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마다 우리는 주님과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머물러야 교제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부부란 함께 머물면서 한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함께 영원토록 교제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하룻밤 자고 평생 헤어져 산다면 교제의 기쁨과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머물러야 합니다.
여러분이 부산으로 이사를 간다든가 어쩔 수 없이 옮기게 되는 경우는 있겠지만 가능하면 섬기는 교회를 옮기지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키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룻이 오늘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내일은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주웠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녀는 그러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신교회를 통해서 예수님과 늘 교제하는 삶을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권사님이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이 분의 성격이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들면 교회를 조금 섬기다가 옮기고, 또 섬기다가 옮기고 해서 20년 동안 15번을 옮겼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옮긴 교회에 등록하기가 미안해서, 15번째 교회에서는 다녀 보고 등록하려고 한달동안 등록을 하지 않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불행하게도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가족들이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어느 교회에 가서 장례를 부탁해야 될지 모르겠더랍니다. 마지막 교회는 등록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14번째 교회에서 가서 부탁하니 “그분은 이미 우리 교회를 떠나셨는데요.”라며 거절을 했답니다. 결국 주위에서 보다 보다 안타까운 나머지 마지막 한 달 나갔던 교회에서 와서 장례를 치러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일생동안 신앙생활 하다가 이런 꼴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어느 교회를 나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한 교회에서 동일한 영의 양식을 먹으며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봉사하며 내 신앙의 삶을 정리해 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오늘 룻은 보아스의 밭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축복을 입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은혜를 입으려면 축복을 누려야만 합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주었고, 룻은 그것을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먼저 보아스는 룻에게 보호의 복을 주었습니다. 네가 여기에서 떠나지 말고 여기에 머물면, 내 종들이 너를 잘 돌봐줄 것이며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녀를 보호해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아무도 위로해 주지 못하는 이방 여인 이었던 룻은 보아스에 의해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성경 13절을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룻에게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많은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그것을 다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네 마음을 다 아시고 너에게 축복해 주실거야.”라며 그녀를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위로와 격려가 늘 필요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란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요한 계시록 7장 17절을 볼 때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거기에는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란 놀라운 예언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보아스는 교제의 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늘 14절 말씀에 보니 식사할 때 룻을 자기 자리에 초청해서 함께 음식을 나누었고, 자기가 준비해 온 풍성한 식탁을 펼쳐놓고 마음껏 먹게 하였으며, 남은 것은 싸 가지고 가서 시어머니를 봉양하게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식사하면 빨리 친해 질 수 있듯이 식사는 것은 교제의 의미가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와의 교제의 복을 누렸듯이 ‘예배 끝나고 빨리 점심 먹고 가야지’라는 생각은 마시고, 성도들과 교제를 위해 식사하면서 옆 분들과 인사도 나누시고 서로 대화하며 교제의 복을 누리십시오. 여러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과 늘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보아스는 룻이 배불리 먹고도 풍성하게 남을 만큼 공급의 복을 나눠 주었습니다. 또 일하는 자들에게 명령해서 이삭을 많이 주워서 시어머니를 잘 공경하도록 룻이 따라오면 한줌씩 빼어 일부러 땅에 놓으라고 했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 시편 기자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란 고백과 빌립보서 4장 16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란 말씀처럼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히 공급하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공급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공급까지도 하나님은 풍성히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 분에게서 공급의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방 여인이었고 모압 여인이었지만, 인생의 역전을 이루며 회복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안식과 평안과 새 생산의 기쁨을 제공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5절 이하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리라.”란 말씀처럼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하게 룻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처지와 형편이 너무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는다면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가문이 달라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은혜를 사모하며,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교제한다면, 우리에게도 그런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늘 함께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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