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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약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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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욥기서 8:7절에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 중의 하나는 시간이 갈수록 창대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시작은 아주 미약했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 결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풍부한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년이 되었을 때 그는 믿음의 영적 성장을 통해 엄청난 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는지 창세기 24:1절 말씀에는 하나님께서“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6:14절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고,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그 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삭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26:12-13절에는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은 어떻습니까? 그가 형 에서의 눈을 피해 고향 땅을 떠날 때 그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 올 때 그의 손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가득하여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우리는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로서 우리가 매일 마다 매 주마다 매 달마다 매년 마다 번성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복이 바로 번성의 복입니다. 진실로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번성의 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번성을 원하시고 잘되기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그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갈라디아 3:3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이렇게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영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크게 번성했던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그 교회 주에서 가장 큰 교회가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아시아 지역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교회가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바울도 그곳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사역자들이 그 교회의 성도들을 양육했습니다. 그들을 가르친 사람들을 보면 유명한 지식인이요 신학자였던 아볼로 선생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제자 디모데 선생도 그곳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사도 요한 선생도 그곳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들입니까? 얼마나 믿음의 본이 되는 선생님들입니까?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그들이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좋은 선생이 있어도 믿음은 스스로가 성령 안에서 서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실패한 인생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은 것에 있습니다. 좋은 믿음 훌륭한 믿음이란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1:22절에는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거짓말쟁이라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이 다 천국의 백성이 아닙니다. 주님이 정말 나의 주인이라면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종이 바로 진정한 종이며, 참된 청기지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까? “가까이 하라”는 말은 “가까이 다가오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우리 모두가 가까이 다가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첫째로 우리는 세상과 벗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다스리는 악한 세계 죄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육신의 것을 벗어 버리고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5-8절 말씀에 보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육신을 좇는 것을 사망의 권세를 따라 죽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고, 불안과 근심과 걱정의 세상에 매달려 끊임없이 달려도 뒤 돌아 보면 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허무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각들입니다. 야고보서 3:14-1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인생이 번잡스러고, 시끄럽고 다툼이 많고 요란스러운 것은 우리들이 육신의 정욕에 붙들려 세상과 벗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처럼 지혜가 충만한 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왕이라도 이기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자 문제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의 육체적인 정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과 벗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열왕기하 11:1절의 말씀에 보면 그가 “이방의 많은 여자를 사랑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방의 암몬 여자도 사랑 했습니다. 에돔 여자도 사랑했습니다. 시돈 여자도 사랑했고, 헷 여자도 사랑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혜와 권력과 명예와 물질을 여자를 유혹하는 일로 보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여자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면서 인생의 육체적인 쾌락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가 취한 여인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11:3절 말씀에 보면 후비가 700명이었고, 빈장이 30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전도서 7:28절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보면 솔로몬이“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일천 여자 중에서 자신을 만족시킨 여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언제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바알과 아세라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죄악된 육신의 일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넘어야 할 파도가 많은 것은 두 주인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피 묻은 죄악의 손을 씻으십시오. 두 마음과 두 주인을 섬기는 인생에서 벗어나십시오.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내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나는 세상과 벗되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살겠다.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복되게 하고 형통하게 할 것입니다. 진실로 8절의 말씀처럼 회개의 눈물로 손을 씻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이 형통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겸손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인이 왜 멸망의 길을 갔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까? 노아 시대의 백성들 이 왜 홍수로 멸망하였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 블레셋 사람들에게 목이 잘렸고, 그 잘려진 목이 잘려진 시체를 벧산이라는 성의 성벽에 못 박아 둔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가인이 멸망의 길을 간 것도 노아 시대 사람들이 홍수로 멸망한 것도, 사울이 비참하게 죽은 것도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버리지 않는 그 교만함이 그들을 멸망의 길로 몰아 간 것입니다. 마귀가 그들의 목줄을 조이고, 개 끌고 가듯이 멸망의 길로 끌고 간 것입니다.

  솔로몬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그 길을 돌이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도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회개를 촉구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의인 10명조차 없었습니다. 노아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사무엘 선지자가 악한 영에 붙들린 사울 왕을 향해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났다”고 했겠으며,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5절에는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이 시기하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그 말씀을 무시하고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간다면 이것이야 말로 큰 인생의 교만함입니다.

  이처럼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45:2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내 앞에 두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우상숭배요 인간의 교만함입니다. 우리는 오직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나를 도울 자가 없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길을 여실 분이요 문제 해결자라고 고백해야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만이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반석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목자로 삼고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돈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어도 안 됩니다. 남편이 여러분 가정의 목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자녀가 여러분의 우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남자 친구, 여자친구가 목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우리의 목자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하나님 외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분명히 10절에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인생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인생의 자랑 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자랑거리는 남편도 아닙니다. 아내도 아닙니다. 자식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들의 자랑거리요 오직 우리는 하나님만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낮추고 그분을 높이십시오. 이것이 여러분 인생을 형통하게 할 것입니다. 자녀 복되고, 여러분들의 인생의 문이 열리며, 손을 대는 모든 사업에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면 마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시험을 합니다. 교회에 오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환경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갑자기 남편이 반대하기 시작합니다. 평소에는 좋기만 하던 시부모들이 반대하기 시작합니다. 뜻하지 않게 아이들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경제적인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잘 믿게 되자 마귀가 욥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욥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습니다. 마귀는 경제권으로 시험을 했습니다. 그에게서 모든 물질을 빼앗아 갔습니다. 마귀는 그에게서 자녀를 빼앗아 갔습니다. 마귀는 그 아내에게 악한 마음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선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갑자기 병들어 나약한 욥을 향해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마구 욕을 합니다. 그러나, 욥은 결코 뒤로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침륜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경제적인 고통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아내가 욕을 하고 저를 해도 오직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자녀들이 갑자가 죽었을 때도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육신이 심한 질병에 걸려 온 몸에 고름이 나오고 터져 가려움으로 기왓장으로 그의 몸을 긁는 처지가 되었어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하나님에서 그가 멀어지도록 유혹해도 그는 온전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다가 서 있었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집요하게 우리를 시험하는 영입니다. 이런 시험이 올 때 우리는 결단코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어둠에 영에 붙들려 침륜에 빠져도 안 됩니다. 교회에 다니다며 믿음의 생활을 하다 보면 갑자기 마음에 실망감이 올 수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로 인해 갑자기 마음에 시험이 들 수도 있고, 목사님의 말씀이 가식이나 거짓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외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이는 다 마귀의 역사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마음에 시험의 바람을 집어넣고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시험하는 영이요 어둠의 영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에게 이러한 시험이 올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오직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73:28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이제부터 결심하기 원합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가까이 하겠다. 이것이 나에게 큰 복이 될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 그분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한 용 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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