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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에 대한 순종의 열매 (전 2: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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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의 수고 속에서 일 자체가 주는 심령의 낙이 최고의 행복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다스림의 복을 받은 인간의 삶은 주로 네 가지의 외형적인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첫째는 “배움”으로서 자신이 다스려야 할 사역의 준비 과정이며, 사역의 일부입니다. 둘째는 “일”로서 다스림의 사명을 직접 감당하는 사역입니다. 셋째는 “휴식”으로서 다스리는 사역에서 손을 멈추는 것입니다. 넷째는 “놀이”로서 사역적인 목적이 없는 활동입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 네 가지 활동의 순환입니다. 인간의 삶의 평강은 이 네 가지 활동의 정상적인 순환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늘날 네 가지 활동이 정상적으로 순환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대개 어느 한 영역에 치우칩니다. 사역은 없이 평생 배우기만 하는 사람, 자신의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사람, 일하기를 싫어하며 긴 휴식을 취하는 사람, 각종 놀이로 인생을 채우는 사람 등, 어느 한 영역에만 치우친 비정상적인 삶의 모습들입니다. 이것은 모두 그 일에 대한 기대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기대가 너무 크거나, 기대에 매여 살거나, 기대를 포기하거나, 기대가 전혀 없는 경우 등입니다.

어떤 일을 행한 후에 돌아올 결과에 대한 기대는 이처럼 인간의 활동에 다양한 영향을 미칩니다. 결과에 대한 기대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주신 일반 은총입니다. 사람들은 결과를 기대하며 성실하게 일합니다. 결과에 대한 소망의 능력으로 현실의 수고와 고난을 견딥니다. 지나간 모든 수고를 잊고 감격스럽게 그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그 기대가 “배움-일-휴식-놀이”의 정상적인 순환 속에 있는 기대라면 행복한 인생을 인도하는 기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생을 유지하며 누리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과의 기대는 충족될지라도, 그 기대가 “배움-일-휴식-놀이”의 정상적인 순환 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한 인생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그 결과를 얻기까지의 인생 여정에서 “배움-일-휴식-놀이”의 순환 속에 담겨진 각종 관계와 즐거움들이 포기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생은 결과의 기대가 일의 목적이고, 인생의 목적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결과의 기대에 속박된 사람들의 결말입니다.

그래서 장년으로 접어드는 사람들의 고백 속에 담겨진 인생의 아쉬움들, 외로움들을 자주 듣습니다. 자녀들을 세상 속에서 훌륭하게 키워 놓고도 그 자녀들과의 관계 단절 속에서 신음하는 소리들을 듣습니다. 일의 기대했던 결과를 얻고도 그 결과를 통해 행복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소리를 듣습니다. 반면에 큰 기대도 없이 매년 반복되는 일상의 순환들 속에서도 행복을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소리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이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창 1:28에서 사람들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다스림”의 복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다스림의 결과를 복으로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일의 다스림 자체를 성취로 느끼며 행복을 누립니다. 하지만 인간중심의 삶은 일의 결말을 통해 얻는 결과를 성취로 느끼며 행복을 찾습니다. 인생의 황혼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러한 두 삶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일 자체가 복이며 인생의 성취이고, 그 일의 결과는 새로운 성취를 향한 이정표입니다. 그 결과가 인생이 아닙니다.

일의 결과에 대한 기대는 “배움-일-휴식-놀이”의 순환을 견인해 가는 동력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 기대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결과를 통해 서로를 비교하며 평가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평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평가를 위한 결과에 매여 사는 인생이 되게 합니다. 결국 악하고 불행한 인생의 악순환의 고리에 빠집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인생을 바라보며 전 2:24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은 일상의 삶입니다. 일의 결과가 아닙니다. “심령의 낙”은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즉 일 자체가 성취이며 행복입니다.

2. 심령의 낙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주어지는 순종의 열매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행복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먹고 마시는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과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의 낙을 누리는 것이 인간의 수고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열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을 선물로 받을 수 없는 인생은 수고만 할 뿐 그 열매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 없다면, 아무리 수고해도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심령의 낙을 누릴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전 2:10-11에서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인생을 진단하였습니다.

인간이 마음에 원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수고하였을지라도 결국은 그 수고가 헛되다고 고백합니다. 솔로몬은 그 이유를 전 2:18-23에서 밝힙니다.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은 그가 수고한 결과가 그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고, 그의 후손이나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하여 그 결과에 대한 기대를 성취하였지만 그 성취를 누리는 대상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남은 것은 풍요로운 삶과 심령의 낙이 아니라 수고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수고의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열매입니다. 즉 어떤 일의 결과는 “수고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한 기대는 자신의 수고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결과에 대한 기대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복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열매가 심령의 낙입니다.

순종의 열매는 최종적인 결말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스림의 사역을 감당하는 매 순간마다 임하는 열매입니다. 순종의 결과에 대한 기대는 “배움-일-휴식-놀이”의 정상적인 순환을 이루어 갑니다. 수고의 결과의 기대는 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결과에 매여서 비교와 경쟁 속에서 곤고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상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결과를 기대하며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배움의 기쁨과 일하는 기쁨을 누리며, 휴식과 놀이의 즐거움을 누립니다.

어떤 일의 결과를 수고의 열매로 아는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의 곤고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도달할 수 없는 큰 기대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과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쉼도 없이 그 기대에 끌려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 기대에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자책하며 인생의 종말을 재촉할 수도 있습니다. 그 기대를 포기하고 현실도피적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기대에 도달하고도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여 정신적인 질병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의 결과를 순종의 열매로 아는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의 기대는 하나님께 맡겨진 기대이므로 방황하지 않습니다. 그의 기대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일한 기대이므로 남들과 비교하며 경쟁하지 않습니다. 그의 기대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며, 일의 목적도 아니기에 그 기대에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그 기대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좌절하거나 도피하지 않습니다. 그 기대가 성취되기 전이나 성취된 후에도 변함없이 행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기만 하면 그 결과가 다양하게 평가될지라도 하나님은 그 순종을 받으시며, 우리에게 순종의 열매를 주셔서 먹고 마시는 풍요로운 삶과 수고 가운데서도 심령의 낙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도 빌 1:20-21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순종의 열매로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된다면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는 심령의 낙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인용하신 일에 관한 비유들에서도 일의 열매가 수고의 열매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서 순종의 열매임을 암시하셨습니다. 마 20:1-16의 포도원 품군의 비유에서 3, 6, 9, 11시에 일하러 온 모든 품군들에게 똑 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셨습니다. 마 25:14-30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5, 10달란트 가진 자 모두를 동일하게 칭찬하셨습니다.

3.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심령의 낙을 주신다.

포도원 품군들 중 일찍 일한 사람들은 일을 통해 심령의 낙을 복으로 누려야 했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일당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기대한 수익보다도 주인의 칭찬을 통한 심령의 낙이 중요했습니다. 모두 순종의 열매들입니다. 솔로몬도 전 2:25에서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라고 하였습니다. 원문은 “그분께서 주시지 않고서야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한 삶과 심령의 낙이 최고라는 고백입니다.

전 2:26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령의 낙을 누리는 비밀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 순종의 열매를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순종의 열매를 받아 누립니다. 그 열매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 뿐만 아니라 “죄인들”이 쌓아 놓은 “수고의 열매”까지입니다.

여기서 “기뻐하시는 자, 기뻐하는 자”라는 단어의 원 뜻은 모두 “좋은(토브) 사람”으로서 “죄인들”의 대칭개념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쓰인 “하나님께서, 하나님을”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는 비록 연약하여 실수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와 희락으로 이루어지는 풍요로운 삶과 심령의 낙을 누리는 인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받아 누리는 첫째 은혜는 “지혜(호크마)”로서, “관찰, 경험, 반성에 의해 얻어지는, 적절한 생활에 대한 지식과 감정”입니다. 둘째는 “지식(다아트)”으로서 “모든 지혜를 종합한 것”입니다. 단순히 그 현상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존재 이유와 상호관계를 알며, 그것의 도덕적 교훈과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까지 깨닫는 것입니다. 셋째는 “희락(씸하)”으로서 “하나님으로 인한 행복의 결과로서의 기쁨과 환희”입니다. 넷째는 그가 수고하지 아니한 “수고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인간의 능력과 수고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인간의 수고들을 바라보며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결론짓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수고의 열매를 통해 이것들을 잡으려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풍요한 삶과 심령의 낙은 그러한 수고의 열매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로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순종의 열매입니다. 행복한 일의 성취는 순종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대의 관심은 일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일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서 있는 것이 최대의 관심이어야 합니다. 모든 일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로서 그 일을 대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행할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모든 일의 결과를 기대할 때마다 자신의 수고의 열매를 기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기대는 자신의 수고를 높이려는 교만으로 나타납니다. 그 기대한 결과를 손에 넣을 때마다 심령의 낙은 멀어집니다.

우리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로서 순종의 열매를 기대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자로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열매를 기대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담당해야 하는 일이 세상적인 평가에서 다양하게 나타날지라도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로서 그 일 가운데서 지혜와 지식과 희락뿐만 아니라 그 일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풍성한 삶들까지도 하나님께로부터 순종의 열매로 받아서 누립니다.

예수님은 눅 19:11-27에서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눅 19:17에서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이 종에게 주어진 것은 수고의 열매가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순종한 열매입니다. 우리는 현재 아주 작은 일을 담당하고 있을 수도 있고, 매우 중요한 거대한 일을 감당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의 중요성이나 크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지 않는 일은 아무리 세상에서 명성과 부귀영화를 얻는다 할지라도 “바람을 잡는 헛된 것”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수고의 열매로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순종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일하는 것 자체가 성취이기 때문에 일의 결말과 관계없이 일 속에서 심령의 낙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역을 위한 “배움-일-휴식-놀이”의 모든 과정에서 심령의 낙을 누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김 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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