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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기할 수 없는 하나 (눅 1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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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가운데는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죄인이 있습니다. 탕자가 되었어도, 하나님을 등 뒤로 하고 세상에 가서 인간적으로 살고 죄에 빠져 괴로워하다가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죄인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문을 열고 밤이나 낮이나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죄인은, 스스로는 절대로 죄 가운데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죄인이 있습니다. 이런 죄인들을 위해서 목자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예수님은 2000년의 세월을 거쳐 여기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권고합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이처럼 하나님은 한 영혼도 포기하지 아니하시며 끝까지 찾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여인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왜 이 여인은 잃어버린 동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1.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동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노우에 가오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에 근대화를 가져다 준 명치유신의 주역으로 일본의 외무대신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중대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중에 난데없이 나타난 괴한들의 습격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맞고 또 칼에 찔렸던지 온몸에 성한 곳이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업혀 온 그는 형에게 애원을 했습니다.
"형, 난 이제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어. 차라리 나를 죽게 해준다면 이 엄청난 고통은... "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절박하게 호소하는 동생은 자신을 안락사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으로서 사랑하는 동생을 어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머뭇거리는 형을 향하여 동생은 거의 들릴락말락하는 소리로 애원을 했습니다.
마침내 형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서슬퍼런 일본도가 형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온몸의 힘을 칼끝에 모으고 힘껏 동생의 목을 향해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어머니가 동생의 피투성이 몸뚱아리에 몸을 던졌습니다. 가까스로 칼이 어머니의 몸을 피했습니다.
결국 형은 어머니의 애절한 부탁을 받아들여 동생의 소원을 들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이노우에는 의사들의 정성어린 치료와 어머니의 간호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근대화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인도 포기하고 이웃의 많은 사람이 포기했을지라도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이노우에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한 드라크마는 한 데나리온에 가치를 가진 금화입니다. 한 데나리온의 가치가 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데 우리 돈으로는 약 5-10만원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돈의 가치로만 따진다면 큰 돈이라면 큰 돈이고 작은 것이라면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전은 돈의 가치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풍속에는 한 남자가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값을 치르어야 하는데 금화 10개를 모아서 고리를 만들어 선물로 주어야 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된 여인은 그 동전으로 묶인 고리를 머리에 쓰는 장식(세메디)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돈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남편과의 사랑의 언약이 담긴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의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사랑의 진표를 가진 선물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은 밤을 새도록 찾고 찾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는 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한 영혼의 가치가 너무 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형상으로 낮아지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이 살게 하신 내 생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생명, 잃어버린 한 영혼도 포기할 수 없으며 또한 포기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꼭 찾아내고 말아야 합니다. 그 안에 그 무엇보다 귀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 나설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이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귀한 생명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한 영혼을 찾아 나서는 사랑과 열정이 여러분 가운데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 하나님의 기쁨에 함께 참여하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척에 가면 후진해수욕장이라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 해수욕장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습니다. 사실 아기자기하고 가족단위로 가서 해수욕을 즐기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특히 그곳은 조개도 많이 나옵니다. 동해에 있을 때 동료 목사님들과 6월6일이 되면 꼭 바닷가에서 하는 일이 있었는데 조개를 긁는 일입니다. 한쪽에서는 삼겹살을 굳고 주어온 조개를 구워먹으면서 하루를 가족들과 지냅니다.
사람들이 후진해수욕장을 찾지 않은 이유를 삼척시가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름이 후진해수욕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름을 바꿔서 삼척해수욕장이라고 부릅니다.

하루는 아이들과 모래사장에서 축구시합을 했습니다. 경기를 끝내고 저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모래사장에서 무엇을 잃어버리면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찾은 이유는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었던 확신의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제가 축구를 한 곳은 해수욕장 전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제 핸드폰에 전화를 걸면 소리가 날것이므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의 집은 그리 큰 집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이 동전을 잃은 곳은 집안이었고 여인은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찾을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자신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확신이 선 일에는 자신감이 있고 보다 더 큰 일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확신을 가지십시오. 잃어버린 영혼을 꼭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고자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발견하고 찾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감을 갖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서시기를 바랍니다.

3. 찾고자하는 마음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가 쓴 『Why not the best?』(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는 과거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자기 교회의 전도 집회를 10년 동안 참가했었다고 합니다. 매년마다 전도 집회가 열렸는데 그때마다 14가정을 꼭 책임지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그 전도 집회에 참석했으니까 140가정을 전도한 것입니다. 매우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나는 10년 동안 140가정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예수 믿은 사람도 있다'라는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66년도에 주지사로 출마를 하여 선거운동을 하였는데, 3개월 동안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주지사에 당선된 뒤 그의 마음에는 부끄러운 가책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위해서는 3개월에 30만 명을 만나보면서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14년 동안 겨우 140가정에게 복음을 전하였다니... 이것은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여인은 동전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끝없는 모래사장에서 찾는 것도 아닙니다. 근처에서 찾으면 되고 집안에서 찾으면 되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여인은 찾고자하는 마음이 강렬합니다.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찾고자하는 마음은 사랑이며 열정입니다.
여인에게는 동전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사랑이 있습니다. 열정이 있습니다.
그 사랑과 열정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책임감이며 사명의식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한 영혼을 찾고자하는 갈망, 강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이 갖고 있는 물질적인 가치 때문이 아닙니다. 그 영혼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시기까지 구원하신 그분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내게 주신 사명 때문입니다.
그 사명은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찾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인은 두 가지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첫째는 등불을 준비했습니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동전은 어두운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을 밝혀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춰보면 틀림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한 영혼을 찾기 위해 우리도 등불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등불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8: 12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또 요 9: 5에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의 빛이로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한 영혼을 찾고 살리려면 빛 되신 예수님을 비추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이 비추이는 곳마다 어둠과 죄악 속에 숨어있던 영혼들이 건짐을 받고 생명 얻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온 세상의 어두움을 물리칠 것입니다.
그 빛이 나를 비추어주셨습니다. 내게 있던 어두움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어두움에 있지 않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빛이 있습니다. 이제 그 빛을 다시 어두움을 향해 되비추어야 합니다. 아직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어두움에 방황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내 안에 있어야 할 빛,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뜨거운 영혼의 향한 열정이며 사랑입니다.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결단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뜨거운 마음입니다.

둘째는 집 안을 쓸며 구석구석 찾았습니다.
어느 어두운 구석에 박혀있든지 모릅니다. 그래서 온 방 구석구석을 씁니다. 혹시 쓸면서 빗자루에 걸려 댕그렁하는 소리를 들으려 애섰습니다. 모든 신경을 한곳에 집중했습니다. 지금 여인에게는 모든 관심이 동전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내일 밝을 때 찾을 수 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내일 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당장 그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남편에게서 받은 가장 귀한 사랑의 징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잃어버린 것은 곧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시도 남편과의 사랑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충분히 이해해 줄지 몰라도 여인 스스로가 자신에게 용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의 모든 신경을 한 곳에 집중하고 귀를 기우리며 최선을 다하여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는 성도들의 관심과 집중은 곧 기쁨을 얻게 할 것입니다. 
불을 밝히고 집안 구석구석을 쓸며 야단법석을 떨며 찾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 한사람에게 관심과 열정을 쏟아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 한사람을 살리시고 구원하시려고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경제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생명의 가치를 그 사람이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기쁨을 보십시오. 여인은 그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모든 이웃들과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잔치를 열며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잃었던 한 영혼을 찾는 하나님의 기쁨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인이 기쁨을 감추지 못한 그 이상의 기쁨이 한 영혼을 찾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스바냐 3장17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베푸시는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잃어버려진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두움에서 방황하며 그늘진 곳에서 묻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어두움에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구석구석 샅샅이 살피고 한 영혼이라도 더 찾아내야 합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 찾았을 때 여인이 맛보았던 그 기쁨을 우리 성도들이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이요 천국의 기쁨입니다.
본문10절이 그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전도를 하면 우선 전도한 내가 기쁨이 생겨납니다. 전도 받은 그 사람에게도 기쁨이 생겨납니다. 교회에 기쁨이 생겨나고 하늘의 사자들에게도 기쁨이 생겨납니다.

찾는 기쁨, 하나님의 기쁨, 천국의 기쁨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귀한 생명입니다.
꼭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찾고자하는 강렬한 열정의 마음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는 성도들의 관심과 집중은 곧 나의 기쁨, 교회의 기쁨, 첮국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 우리가 찾아서 구원해야 할 전도 대상자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올 가을에는 모든 성도들이 한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전도하여 영혼구원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천국의 기쁨을 맛보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사람만 전도하자. 딱 한사람만 전도하자.
2005년 9월11일 주일낮예배

주여, 잃어버린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자하는 강렬한 열정과 사랑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관심 갖고 집중해야 할 전도대상자를 붙여주시옵소서.
(이 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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