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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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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1. 오늘 성경 본문은 예수 믿기 전 우리의 모습을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 여섯째 날에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너무
            나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그
            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시며 이렇
            게 말씀하셨습니다.
              (창2:16-17)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
            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간교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은 결국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먹지 말라
            는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사람(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
            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고 형벌을 선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거룩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졸지에 한 줌 흙이 되고
              말았습니다. 흙은 생명이 없는 무생물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이 선고된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코에 생기, 곧 성령을 불
            어넣어 생령, 생명체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성령
            이 떠나버렸습니다. 생명이 되는 성령이 떠나버리므로 인간은 사람의 모양은 지니고
            있지만 흙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오늘 본문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사람
            은 껍데기는 사람의 모양이나 이미 죽은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은 생명의 근
            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 바
            로 영적인 죽음인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죽은 시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생명
            의 동산 에덴 밖으로 내다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허물>은 ‘하지 말
            라는 것을 행하는 것’을 뜻하고, <죄>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상숭배하지 말라’는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허물>이고,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바로 <죄>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는 모두 하나님 말씀에 불
            순종하는 불법입니다. 이러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예수 믿는다 할지라도 불법하는 자들을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르는 사람, 예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떠난 사람은 이미
              죽은 인생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예수를 믿을지라도 신앙생활을 미지근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
            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는 것은 미지근한 것은 예수님 입맛에 맞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입맛에 맞는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뜨겁게, 기도를 해도 뜨겁게, 전도와 봉사를 해도 뜨겁게, 예배도 뜨겁게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데는 얼음장같이 아주 차겁고 냉
            정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에브라임 지파를 가리
            켜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라고 불렀습니다.
              “(호7:8)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이로다.”
              “뒤집지 않은 전병”은 한쪽은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타버렸고, 다른 한쪽은 전혀 익
            지 않아서 전혀 먹을 수 없는 전병을 말합니다. 부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지만
              아직 반항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제 입맛에 당기는 것만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키지 않는 성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전병인데
            뒤집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겠다고 하는데 온전히 드리지 못
            하고 한쪽만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3:3,4)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
            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신앙생활에 배워 아는 것은 많은데 입만 살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을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성화된 것 같은데 몸과 생활은
            성화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성도 같은데 가정이나 사회에 나가서는
              예수의 흔적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예수 믿는 성도인데
            혼자 있을 때는 마귀 종노릇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낮에는 밀가루를 팔고
            밤에는 검댕을 파는 사람과 같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긴 받았는데 골고루 받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은 많이 보는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 기도는 많이 하는데
            전도 봉사하지 않는 사람, 예배를 드리기는 드리는데 오직 주일 낮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을 말합니다. 자신이 아직 뒤집어지지 않
            은 전병이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없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여 뒤집
            어지는 전병으로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성도가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이어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의 삶을 오늘 성경은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
            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의 삶은 첫째, “이 세상 풍속을 좇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상
            풍속은 각종 우상숭배, 음양사상에 따른 사주, 관상, 궁합 등의 미신들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사할 때 손을 본다든가, 혼인을 정하는데 사주 궁합을 보고, 장례를
            할 때 풍수지리설을 따르고, 출산까지도 사주팔자에 맞추려고 하는 행위, 심지어 어
            느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을 뽑는데 관상까지 본다는 등 온갖 종류의 미신적인 풍속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말이나 신년초가 되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있는데 바로 토정비결 등 각종 운세를 접하게 되는 점쟁이집들입니다. 지성을 자랑
            하는 대학로까지 ‘점집’이 성행하여 대학로의 또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굳히고 있습니
            다. 각종 매체를 보면, ‘오늘의 운세’에서 시작해서, 사주, 토정비결, 관상, 궁합, 해몽,
            택일, 작명, 수험운세, 전생, 애정운, 직장운 등등이 올라 있습니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퓨전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점쟁이
            를 찾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봐도 불신자들이 역술가를 찾
            아가는 비율이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점쟁이를 찾는 비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
            다. 불신자들이 무속인이나 점쟁이를 찾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 마저 그
            런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무속신앙과 기독교신앙의 차
            이를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속신앙의 초점은 인간이 자신은 변화되지
            않으면서 신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이기적인 나’가 있습
            니다. 나의 욕망이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 비는 것입니다. 점
            쟁이들을 찾아서 시험, 결혼, 이사, 재물운 등등에 대해서 점(占)을 보면 처음에는
              대부분 고개를 흔듭니다. 현재상태로는 시험에 합격할 수도 없고, 승진할 수도 없고,
              지금 사귀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액운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찾아간
              사람은 얼굴이 잿빛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근심을 가지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액을 막는 아주 비싼 부적을 사면 된다든지, 큰 굿을 하면 된다고 대답합
            니다. 그렇게 귀신을 달래야지만 가는 길에 막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점쟁이를 찾는
            사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강도이든, 사기꾼
            이든, 병든 이기심에 똘똘 뭉친 사람이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이든 아무
            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직 초점이 귀신을 달래서 자기 소원만 성취하면 되기 때문입
            니다. 혹시 점쟁이를 찾아가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니까 정말 형
            편없이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더 진실하고 바른 삶을 살며,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며,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고 싶은데 거기에 알맞은 부적 하나만 만들어 주십
            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시거나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의 몫이지 무속 신앙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앞
            에서 나 자신이 변화되고 성숙하는 것, 뒤집어져 골고루 익은 전병과 같이 되는 것이
              초점입니다. 자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초점입니다
            . 첨단 과학을 뽐내는 21세기에도 결코 따라가지 말아야 할 “세상 풍속들”이 오히
            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점집이나 철학관을 가기 위해 굳이 다리품을 팔지
            않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앞에 앉아 몇 번의 클릭으로 토정비결을 보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이렇게 세상 풍속을 따라 살게 하는 배후에 공중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는 영, 곧 마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만 합니다.”(살전5:22)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의 생활” 두 번째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
            하는대로 사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삶의 내용은 성경은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갈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은 이렇게 정욕과 욕심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을 내어 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
            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사업이 너무 잘 돼 너무 바빠서 예배드릴 시간이 없다는 사람, 하는 일이 너무 바빠
            서 전도 봉사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을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는 사람 등, 그래서 하
            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알 바 아니고, 자기 욕심만을 챙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받
            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보다 “자신의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사는 사람을 가리켜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솔로몬은 “(전2: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
            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노라.”며 자신의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며 살아보았습니다. 사업을 크게 일으켜 수많은 종들을 거느
            려 보기도 하고, 저 푸른 초원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살아보기도 하고, 인생을 즐
            기려 전용 극장을 짓고 톱 가수 등 수많은 엔터테이너들을 전속으로 두기도 하고,
            수많은 처첩들을 거느려보기도 하는 등 눈과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해보지 않은 것이 없
            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내린 인생의 결론은 피곤하고 헛되고 헛되다는 허
            무함밖에 없었습니다.(전2장)
              노아의 아들 중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주지 않고 드러냄으로 저주를 받은 아들
            이었습니다. 이 함의 후손 가운데 니므롯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반역하다’는 뜻인데
              그 이름대로 대대로 하나님을 반역하며 자신의 명성과 세속적 야망에 가득 찬 사
            람이었습니다. 남을 섬기기보다는 남을 지배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즐겼고 영토확장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자 큰 도
            시를 건설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기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힘,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며 내세우는 배교자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세운 것이 그 유명
            한 바벨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같은 인간이 세운 바벨탑이 허무한 것임
            을 깨닫도록 언어를 혼잡케 하여 니므롯의 후손들을 온 지면에 흩어지게 만들었습니
            다. 인간의 욕망과 야심이 모두 헛되다는 깨우친 것입니다.
              몇 년 전 남 캘리포니아의 거대 도시인 로스엔젤리스에 일명 ‘인간 파리’라고 불리
            우는 사람이 왔었습니다. 그는 날짜를 정하여 큰 백화점 건물의 표면을 맨손으로 기어
              올라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해진 날이 되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백화점 주위
            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그 ‘인간 파리’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 보
            이는 묘기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를 보기 위해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곡예사는
            느리고 조심스럽게 백화점 건물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창턱에 매달렸다가 튀어나온
            벽돌로, 그리고 다시 배내기(벽 윗부분에 장식용으로 두른 돌출부)로‥‥ 그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는 분명히 보통 사람으로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으며
              인간의 한계와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인간 파리’는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잡을 만한 것이 없는지 좌우를 살폈습니다. 머리 위에 그의 몸을 지탱해 주기에 충
            분할 것 같은 무언가 단단한 물체가 보였습니다. 그는 곧 그것이 매끄러운 벽면에서
            삐어져 나온 퇴색된 벽돌, 혹은 회색의 돌 조각이라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그는 그
            돌출부를 향해 손을 뻗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
            었습니다. 그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든 운명을 자신의 날렵한 동작 하나
            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는 목표물을 정확히 겨냥하고 순간적으로 파리처럼 몸을
              날려 그것을 짝 움켜잡았습니다. 다음순간, 그의 몸은 관객들의 공포에 질린 눈
            앞에서 땅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움켜쥔 손에서 나온 것은
            거미집이었습니다. 그가 분명히 단단한 암석이나 벽돌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은
            말라 비틀어진 거미집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니므롯처럼 세속적인 명성과
            부귀를 찾는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질과 명예 등 세상적인 것
            들을 추구하며 그것을 삶의 최고 가치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마치 거미집을 붙들고
            사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 풍속이나 육체의 욕심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
            로 사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케 역사하는 마귀의 종노릇하는 생활
            입니다. 마귀와 함께 하는 삶의 최후는 멸망과 지옥뿐입니다. 과거에 이렇게 살았던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게 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3.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본문 5-6절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여러분을 살리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다시 말해 부활해서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말
            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믿게 하시고, 흙에 지나지 않았던 우리
            에게 생명의 영, 성령을 불어넣어 살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분은 부활 생
            명을 지니게 되었고, 여러분을 영광스러운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부귀영화
            , 그 어떤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에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취득해서 하나
            님 나라 시민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비교해서 열등감으로 살 것이 아니
            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긍지를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 이렇게 된 것이 모두 “긍
            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산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여러분의 생명
            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 구세주로 고백하며 살아계
            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여러분을 살리신” 목적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하나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자 함입니다. 썩어져가는 구습과 세상 풍속을 좇아 육체의 욕심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죽은 성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
            므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며 사는 생명 넘치는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미식축구 워싱턴 레드 스킨스를 이끌던 분이 아주 유명한 코치, 조 깁스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은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분의 간증입니다. 친구가 집에서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저녁 어둑어둑할
              무렵에 들어오다가 보니까, 자기 개가 집 앞에서 하얀 동물을 씹고 있는 것이었습니
            다. 순간적으로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집 바로 옆집에 애완용 동물
            로 토끼를 기르는데, 혹시 이웃집 토끼를 씹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
            니다. 너무 당황해서 얼른 토끼를 빼앗아 부엌으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고 막 씻었
            습니다. 비누로 씻고, 그 다음에 향수를 뿌리고,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을 기다렸다가
              어둑해진 다음 토끼를 가지고 뒷문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옆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토끼장을 들여다보니까 토끼장이 비어 있었습니다. “아! 틀림없이 이 집 토끼였
            구나! 휴~.” 하고서 토끼를 원 위치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는 자는
              둥 마는 둥 그 날 밤을 지내고, 그 이튿날 일터에 갔다가 궁금해서 조금 일찍 돌
            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웃집으로 가서 토끼장 옆을 서성거립니다. 시침 딱 떼고,
            그냥 토끼장 근처로 왔다 갔다 하는 거였습니다. 마침 이웃집 주인이 나왔습니다. 그래
            서 “안녕하십니까? 별 일 없으십니까?”하고 인사했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웃집 주인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3일 전에 자기집 토끼가 죽어서 토
            끼 공원묘지에 데리고 가기 전에 우선 임시로 뒤뜰에다 잠시 파묻어 놓았는데 어떤
            놈이 그 토끼를 파내 가지고 목욕을 시키고 비누칠을 하고 향수까지 뿌려 가지고
            거기다가 원위치 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조 깁스가 그 얘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그
            냥 죽어있는 시체에 비누칠하고 향수뿌리는 정도로 구원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렇게 한다고 죽은 토끼가 살아납니까? 시체에 비누칠하고 향수 뿌린다고 시체가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류같은 고운 몸을 단정히 올리는데 / 뒤단장 옥비녀와
            은죽절과 / 앞치례 볼 것 같으면, 밀화장도 옥비녀와 / 광원사 겹저고리 제색 고름
            에 태가 난다.”는 춘향전의 한 대목처럼 조선 시대 여인이 각족 보석과 옥장신
            구로 화려하게 치장했던 칠보단장시키고 공들인다고 해서 영적으로 죽은 시체가 살아나는
              것 아닙니다. 영적으로 죽은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세상의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
            은 오직 예수 믿게 하여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불어넣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삶
            의 최고 가치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다 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의 생활 두 가지를 간단히 설명하세요.
              ●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동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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