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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긍정에서 '더 강력한 긍정'으로 (눅 18: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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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여리고 가까이 오실 때의 일입니다. 한 눈 먼 사람이 길가에서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외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8절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과연 이 소리가 예수님한테 들렸을까? 지금 예수님 주변은 몰려든 군중들로 인해서 대단히 혼잡하고 시끄러운 가운데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 귀에 들렸더라도, 그저 여러 소음들 중 하나로 들렸을 것입니다.

    더욱이 말도 안되는 소원을 말하니, 앞서 가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그 눈 먼 사람을 꾸짖었습니다. 책망했습니다. 39절 “잠잠하라” 보통 사람 같으면, 여기서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눈 먼 사람은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소외를 당한 계층이었기 때문이요, 또한 극단적인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몰매를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잠하라’ 이 말 속에는 일종의 협박 비슷한 뉘앙스가 깔려 있었습니다. ‘조용이 안해. 왜 너까지 난리야? 조용히 안하면 가만 안둬!’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또 다시 똑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 눈 먼 사람은 달랐습니다. 누가 자기에 뭐라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히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39절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눈 먼 사람은 조금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첫 번 째 외침과 두 번 째 외침을 굳이 구별한다면, 첫 번 째 외침은 보통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긍정’ 정도였다면, 두 번 째 외침은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긍정’이었습니다.

    주변의 방해가 거세지면, 사실상 그 ‘긍정’조차도 사라지기 쉬운데, 이 눈 먼 사람의 경우는 주변의 방해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그 ‘긍정’이 오히려 더 강력해졌습니다. 눈 먼 사람이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을 막상 만나니까, 예수님이 자신의 질병을 고쳐주실 수 있는 확신이 더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반대와 핍박에 부딪혔어도, 뒤로 주춤하거나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력한 긍정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눈 먼 사람의 첫 번째 외침은 ‘예수님, 당신은 나를 고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도였다면, 두 번째 외침은 ‘예수님, 당신은 반드시 나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 기회는 없습니다. 이번에 꼭 나를 고쳐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을 향한 마음의 태도가 그 짧은 순간에도 큰 변화를 보였습니다. 눈 먼 사람은 강력한 저지선을 뚫고, ‘긍정’에서 시작해서 그 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긍정’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바로 이런 눈 먼 사람의 ‘강력한 긍정’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데려 오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눈 먼 사람이 가까이 오자, 그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41절) 예수님의 질문은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이었습니다. 눈 먼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큰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눈을 떠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몰라서 그렇게 질문하신 것이 아니라, 그 눈 먼 사람의 마음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내게 나아왔는가?’ 긍정적인 마음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마음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인가? 요즈음 어느 개그맨이 ‘대충, 그까짓 것 뭐’란 단어를 유행시켰는데, ‘대충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나왔는가, 예수님이 확인해보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 때 눈 먼 사람이 단호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41절) 사실 이와 다르게도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저를 보시면 다 아시지 않습니까? 알아서 해주십시요. 제 아픈데를 고쳐주십시요. 예수님이 못고치시면 무슨 다른 방식으로라도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요’...... 그렇지만 눈 먼 사람은 오직 한 가지만 말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은 ‘예수님은 전능하신 주님이시니 분명히 나를 고치셔서 눈을 떠서 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눈 먼 사람은 더 이상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두 번째 외칠 때부터 강력한 긍정의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왔기 때문에, 예수님을 100% 믿고 의지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긍정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의지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보시고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42절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가 아니라, ‘눈 먼 사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있는 직후, 눈 먼 사람은 곧 눈을 떠서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예수님을 좇게 되었습니다(‘제자가 되었다’). 그 장면을 목도한 백성들도 다 놀라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건은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병자를 찾아가서 고치신 경우가 아니라, 예수님을 향해 다가온 사람들 중에서 특별한 태도로 다가온 병자를 고치신 경우입니다. 예수님이 눈 먼 사람을 고쳐주실 수 있고 구원하실 수 있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그 눈 먼 사람의 긍정의 마음이었습니다. 방해에 굴하지 않고, 더욱 더 강력한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했을 때, 예수님이 기쁘게 보시고 감동하시고, 그 믿음대로 치유의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눈 먼 사람처럼 오늘 우리도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은혜받는 양상은 다르지만, 우리 역시 은혜 받기 위해서,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주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눈 먼 사람처럼, 지금의 긍정보다 더 강력한 긍정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미지근해서는 안됩니다. 더욱 강력한 긍정의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서 더욱 강력한 긍정의 자세로 나아가는 사람은 적어도 다음 2가지 마음을 가집니다.

    1.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열정을 가집니다.

    눈 먼 사람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병이 불치의 병이라는 불리한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저 분이라면 반드시 내 병을 고칠 수 있다’라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불타는 열정이 사람들의 꾸짖음과 방해를 무릅쓰고 계속 예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눈 먼 사람이 가진 외적인 조건들로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인간적으로 대단히 불쌍한 사람이었지만, 그 열정만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사람이었습니다. 불꽃같이 타오르는 그의 열정이 예수님의 시선을 멈추게 했고, 그의 병을 고치고, 구원받는 축복에 이르게 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성공, 효과, 능력의 필요조건은 열정이라고 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 회사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2005년 3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뽑은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11년째 지킨 사람, 영국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즈]가 선정한 2004년 존경받는 세계의 비즈니스 리더 1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어느날 어떤 기자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죽은 후에도 남을만한 성공이 무엇이냐?”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나 출세나 명예가 아니라 열정이다” 역시 빌 게이츠다운 말입니다. 그의 성공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목표에 대한 불꽃같은 열정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에 눈길을 끄는 한국인 의사가 한 명 있는데, 재활의학과 수석 레지던트로 일하는 이승복씨입니다(39살). 그가 단순히 세계 최고 병원의 수석 레지던트이기 때문에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는 단 한 명 뿐인 사지마비 장애인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사지마비 장애인이면 환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는 지금 분명 의사입니다. 본래는 체조선수였는데 사고로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장애와 불행과 고난을 딛고 마침내 기적같은 삶을 창출해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장애를 이길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나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으십니까? 빌 게이츠 회장, 이승복 의사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여러분은 그 이상도 해내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은 그들보다 더 큰 일도 해내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에는 전능하신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한 가지 목표에 대해서 뜨거운 열정을 가지셨던 것처럼, 사명에 대해서 불꽃같은 열정을 가지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우리 안에 진정으로 모시고, 그 분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면, 우리도 그렇게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열정이란 단어가 그리스어로는 ‘신은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있다면, 우리가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고,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열정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을 향해 긍정의 자세로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된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행동합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목표가 정해졌으면, 그 목표를 향해 ‘반드시 된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과연 그 일이 될까? 안될 것 같은데...... 옛날에도 해보니 안되던데...... 안될꺼야’라는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반드시 된다’라는 적극적인 사고로 임해야 합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자신감의 향상을 위해서 몇 가지 충고를 제시했는데, 이런 것들입니다. “앞자리에 앉아라. 똑바로 쳐다보고 대화하라. 약간 빠른 속도로 걸어보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보자. 큰 소리로 웃어보자. 외모에 신경을 써라. 자신을 격려하자” 이중에서 첫 번째, 적극적인 사람은 대부분 앞자리에 앉습니다. 앞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적극성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교회 예배당에서도 보면, 일찍 와도 꼭 뒷자리에 앉는 분이 있는가 하면, 늘 자기가 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맡아놓은 것도 아닌데...... 대체로 적극성을 가진 사람은 앞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늘 앞자리에는 못앉는다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삶 속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된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하면 된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어떤 목표가 제시 되었을 때, 더 이상 우물쭈물 하지 말고, ‘반드시 하면 된다’는 적극성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눈 먼 사람에게는 다른 눈 먼 사람들과는 달리 이런 적극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가면 반드시 내 눈은 고친다’ 반드시 된다고 믿고 예수님 앞에 나아갔을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사단은 우리 곁에 와도 자꾸만 부정적인 사고를 주입시킵니다. ‘해도 안된다. 하나마나다. 안될게 뻔한데 왜 자꾸만 하려느냐. 하지 마라’ 사단의 방해전략이 심해질수록, 그럴수록 우리는 ‘반드시 된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 기도할 때, 여러분 이름을 한 번 크게 외치시고 ‘반드시 된다’를 외치시기 바랍니다. ‘김충현, 반드시 된다’ 뭐가 되는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그 것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면서, ‘반드시 된다’를 외치고 나아가면, 반드시 됩니다. 미래의 꿈을 품고 기도하든지,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든지, 질병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든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든지, ‘반드시 된다’를 외치고 나아가면,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한영혼 전도! 반드시 된다’ ‘평생 100명 전도! 반드시 된다’ ‘교회부흥! 반드시 된다’ ‘성전건축! 반드시 된다’

    제가 서울중앙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된다’는 말보다는 ‘안된다’는 말을 훨씬 더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게도 많은 혼돈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자꾸만 안되는 상황으로 전개될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저를 서울중앙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을 떠올리면서, 기도하면서 ‘반드시 된다’를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되어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아무리 안되는 상황이 닥쳐도 ‘반드시 된다’를 외치고 나아갈 것입니다. 특공대 스타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실 때는 긍정에서 더 강력한 긍정으로 나아가셔서, 눈 먼 사람에게 임했던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 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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