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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으로 이어지는 묵상 (시 119:9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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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복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복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복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그 복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릅니다. 무조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복이라고 생각하고, 부귀영화를 지금 더 크게, 더 많이 누려야 복이라고 생각하고, 건강하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시1:1-2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증거합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있으면, 복있는 상태입니다. 시119편 기자도 동일하게 그 복을 누리고 있다. 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9절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묵상은 나를 명철하게 만들어서 모든 스스보다 승하게 합니다. 이것이 묵상의 위력입니다.

  시편기자가 묵상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진정으로 복있는 사람이 되려면 ‘묵상’이란 단어부터 알아야 합니다. ‘묵상’이란 무엇인가? 성경을 읽는 것이 묵상인가? 성경말씀을 듣는 것이 묵상인가? 묵상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묵상이란, 내게 혹은 우리(공동체)에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듣는 것이요, 그 분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신 하나님,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도 여전히 다가오시고 있는데, 그 다가오시는 하나님에게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요, 그 분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바로 그 하나님의 다가오심을 듣고 계십니까? 그 분이 나와 친밀히 교제하기 위해서 내 마음을 문을 두드리시고 있는데, 그 소리를 날마다 듣고 계십니까? 계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내게 다가오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통로, 과정이 묵상입니다.

  우리가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친밀한 교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Gary Thomas의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Sacred Pathways)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설계하신 나만의 영성을 찾자는 시도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영성의 아홉까지 색깔을 열거한다. 1. 자연주의 영성 2. 감각주의 영성 3. 전통주의 영성 4. 금욕주의 영성 5. 행동주의 영성 6. 박애주의 영성 7. 열정주의 영성 8. 묵상주의 영성 9. 지성주의 영성

  이렇게 하나님의 다가오심, 하나님의 임재를 묵상하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2가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쉬임없는 기도생활이요, 다른 하나는 매일매일 말씀의 세계에 깊이 빠지는 일입니다.
  묵상의 길 1: 쉬임없는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쁘고 분주한 가운데서도 쉬임없는 기도생활을 통해서 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셨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들으시고, 아버지와 아들로서 친밀한 교제를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영력이 충만하셨습니다.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라’ 쉬임없는 기도생활을 당부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쉬임없는 기도생활을 함으로, 자신들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듣고 언제나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여서 풍성한 축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쉬임없는 기도생활로 자신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늘 경험하면서, 풍성한 영적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쉬임없는 기도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는 일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소원, 바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바램대로 살고 있습니까? 그 바램대로 해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풍성히 이루어집니다.

  묵상의 길을 가기 위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헨리 나우웬은 [기도의 삶]이란 책, 여러 곳에 강조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다. 기도야말로 꼭 필요한 것 한가지이다(눅10:42). 기도란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다.” “기도의 필요성, 쉬지 말고 기도해야할 필요성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보다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에 근거한 것이다...... 기도를 시작하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그리스도 없는 복음과 같다.”

  기도생활에는 결코 ‘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쉼’없이 계속 이어져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쉼’없이 계속 한다는 말은,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면서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그 분께 가까이 나아가는 마음으로, 그 분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을 뜻합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에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나, 공부할 때나, 집안에서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할 때도 쉬임없는 기도생활을 계속 이어져나가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관여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일로 생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언제나 경험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묵상의 길 2: 매일매일 말씀의 세계에 깊이 빠져야 합니다.
  시편119편 기자는 매일매일 말씀의 세계에 깊이 빠졌습니다. 97절이 그 증거입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사람이 도박이나 마약에 한 번 빠지면, 거기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말씀에 한 번 빠져도 마찬가지인데, 물론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것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매일매일 말씀의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103절 말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지금 나에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달게 느껴지십니까? 꿀보다 더 달게 느껴지십니까? 말씀에 깊이 빠진 사람에게도 ‘거룩한 중독 현상’이 나타납니다. 담배에 중독이 되고, 술에 중독이 되면, 하루라도 그것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에 깊이 빠진 사람은 하루라도 성경을 읽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집니다. 거룩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도 지금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있으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나에게 다가오시고 나와 친밀히 교제하기를 원하는데, 그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려면, 그 중요한 통로가 되는 것이 말씀입니다. Ken Gire “그 분의 다가옴은 말씀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다가감은 들음으로 시작된다.”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풍성한 말씀만큼 역사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정반대로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풍성히 임할 수가 없고, 나중에 영적으로 심히 빈약해지고 피폐해집니다.

  예수전도단 창립자인 오대원(David E. Ross) 목사님은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묵상은 단지 우리의 배고픈 영혼을 채우기 위해 이따끔씩 행하는 한 순간의 행동이 아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풍성히 거하시게 하는 과정이다”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과연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합니까? 너무 풍성해서 툭 터지면 쏟아져나올 것처럼 풍성합니까? 내 안에 말씀이 풍성하면, 사단이 내 안에 침투할 틈이 없습니다. 설혹 들어온다 하더라도 말씀의 검에 찔려서 그 자리에서 다 사망입니다.

  지난주간 동신교회 청년부 집회를 인도하면서, 청년에게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청년들이 말씀에 너무 빈약합니다. 청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풍성하게 채워져 있으면, 그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세상을 이길 수도 있고, 어떤 시험과 유혹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말씀으로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새벽기도하는 것도 좋고, QT하는 것도 좋고, 길거리 말씀묵상하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짧은 시간이라도 말씀의 세계에 깊이 빠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허드슨 테일러라는 훌륭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스물다섯살부터 중국 선교에 뛰어들어서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선교사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러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다. “나의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일이겠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보람되고 행복해지게 마련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 연주자들은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자기 악기를 조율합니다. 이상이 없나...... 만약 연주회가 다 끝난 다음에 악기를 조율한다고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아니 오늘 하루를 일종의 연주로 생각하면서, 오늘의 연주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언제 조율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루를 시작하는 첫시간, 짧고도 깊은 말씀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 영혼을 조율할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적어도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또 승리하게 됩니다. 참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예배 한 번의 말씀듣는 것으로 살려고 하고, 나머지 6일동안은 성경책을 덮어놓고 삽니다. 그러니 그 영혼이 얼마나 피폐하겠습니까? 말씀이 풍성하지 못하니 시험에도 잘 들고, 그 안에 사단이 제집 드나들듯, 우리 영혼의 정원을 망가뜨려고 훼손시켜 놓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려야할 말씀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묵상의 길로 오늘 2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1. 쉬임없는 기도생활, 2. 매일매일 말씀에 빠지는 일. 이 두가지를 날마다 실행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를 수 있게 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순간순간 풍성하게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묵상의 길을 날마다 걸어가면서, 더불어서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묵상이 삶으로 반드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는 묵상이 살아있는 묵상이 되게 하려면, 세상 속에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영성이 되게 하려면, 개인적으로 하는 묵상이 삶으로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묵상은 경건하게 해놓고, 삶은 따로 하면, 그 묵상은 거짓된 묵상이요, 아무런 쓸모없는 묵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할 영성은 이렇게 묵상의 삶이 수반된, 실천적 영성이 되어야 합니다. 곧 묵상이 계속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묵상과 삶을 이원화시켜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이원화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아니 그렇게 기도많이 하는 분이, 그렇게 교회에 오래 다닌 분이 그럴 수가 있단말야?’ 오늘날 한국교회가 변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다. 교인들이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공부, 제자훈련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기도원마다 부르짖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패하고,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삶으로 이어지는 묵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영성이 위대했던 것은, 그 분의 영성은 묵상의 삶이 수반된, 실천적 영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매일매일 깊은 묵상의 시간이 있었고, 동시에 그 묵상이 삶으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그 분만의 독특한 실천적 영성, 깊은 묵상으로부터 나온 삶의 방식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낮춤입니다(빌2:5-8). 둘째는 사랑입니다(요13:34). 셋째는 섬김입니다(막10:45, 요13:34).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모습이 드러나야만, 우리의 묵상이 온전한 묵상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묵상입니다. 기도는 한다고 하는데, 말씀을 매일 읽는다고 하는데, 삶 속에서 낮춤이 없고, 사랑이 없고, 섬김이 없으면, 묵상은 이기적인 묵상이요, 따라서 하나님의 풍성한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의 가장 큰 행복이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매일매일 깊은 묵상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낮은 섬김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사소한 일에서부터 남을 섬기는 기회를 가질 때...... 제자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묵상으로 끝나지 않고 그 것이 삶의 현장으로 이어져서 실천이 되어질 때, 그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로렌스 형제라는 분은 프랑스 가멜 수도원 30년간 그 수도원 주방일로 남을 섬기면서, 그 어느 곳에서보다도 주방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임재를 경험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삶으로 이어지는 묵상’을 통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풍성한 임재를 경험하는 은혜가 계속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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