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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화와 진주 (마 13: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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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배운 천국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유에 주로 식물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비유에 보석이 등장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지고한 가치를 말함과 동시에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44) 튼튼한 금고나 은행이 없었던 그 시대는 귀중품을 안전하게 보관해 둘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집은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보물을 집안에 두면 도적이 쉽게 구멍을 뚫고 훔쳐갈 수 있었고, 전쟁의 위험도 많아서 약탈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아무도 몰래 자기 밭에 보물을 감추어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나 사고로 주인이 갑자기 죽으면, 보물은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모른 채 묻혀있게 됩니다. 주인 없이 묻혀 있는 보물을 밭에서 발견하는 일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비유는 초등학교 바른생활에 실릴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의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면 오히려 반대되는 이야기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헌책을 구입했는데 책갈피 사이에서 숨겨둔 비상금 수표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책방 주인에게 돌아가 돌려주며 말합니다. “저는 책을 산 것이지 이 수표를 산 것이 아니니 이 수표는 당신 것입니다.” 책방 주인이 대답합니다. “저는 책을 판 것이지 수표를 판 것이 아니니 그 수표는 당신 것이지요.” 주로 바른 생활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행하면 오히려 복이 된다는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바른생활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몰래 숨겨두었다가 밭을 구입하는 것은 비양심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접할 때, 다소 불편함을 느낍니다. 당시 랍비 율법에도 일군이 밭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캐내었을 경우, 보물은 밭주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은 윤리를 가리키거나 법에 대해 말하기 위하심이 아닙니다. 부자 되는 비결을 가르쳐주려함도 결코 아닙니다. 그런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비유가 주고자 하는 참 뜻을 바르게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비유에서 또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점입니다. 소유를 어느 정도 남겨뒀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몽땅 팔아서 밭을 산 것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불편합니다. 바로 이 불편함들 속에 비유의 의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재산을 몽땅 헌금해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주로 이단집단이 그런 방식으로 해석할 것입니다. 이 비유는 많은 헌금을 바치면 그 만큼 많은 보물을 얻는다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보화 비유의 초점은 하나님 나라를 진정으로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데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과 그것을 진정으로 발견한 사람이 보여야 할 반응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이 비유의 목적입니다. 비유의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다” 포기하면서도 오히려 “기뻐하여” 그렇게 합니다. 보기에는 평범한 밭이지만 그 밭에 값진 보화가 있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여 있다고 했습니다(골 2:3).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8-9).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진정으로 발견한 사람은 그 만큼 이 땅의 삶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에 등장하는 많은 순교자들이 혹독한 핍박과 고난을 겪고, 마침내 사자 굴에 던져지며 화형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진실로 발견한 사람은 세상 나라와 하늘나라에 양다리 걸치지 않습니다. 자기 소유의 일부를 챙겨두고 나머지만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의 소유 전부를 드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몽땅 헌금을 드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중세 시대에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모든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수도사로서 청빈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본받을 점이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수도사처럼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됩니다. 또한 성경은 재물의 소유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참 된 성도도 얼마든지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죄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치 않는데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의 참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 8:18),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출 36:2).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소유물뿐만 아니라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 마음의 지혜, 심지어 생명까지도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의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그분이 내 모든 소유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주인이심을 다시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동안 내 것으로 생각하여 움켜쥐고 있던 소유권을 다시 원주인이신 예수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내가 모두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내 소유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재물도 사용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재능도 사용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지혜도 사용합니다. 더 이상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 노래하며 마음대로 살지 않고, ‘내 인생은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삽니다.

이렇게 모든 소유권을 주님께 양도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진주비유도 보화 비유의 주제를 반복합니다. 같은 성격의 비유를 두 번 반복하는 것은 강조하기 위함이지만, 강조점은 각각 다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45-46)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경우는 밭과 함께 각종 보화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진주장사는 달랑 진주 하나만 얻습니다. 이 비유는 제자가 자신의 모든 소유권을 포기하고 얻게 되는 유일한 보상이 하나님 나라 그 자체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음으로서 이 땅에서 잘되고 성공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비유는 상당히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는 그만큼 천국이 절대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페르샤만에는 좋은 진주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진주 장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진주는 고대 사회에서는 매우 값비싼 물건이었는데, 고대 기록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의 어머니에게 150만 데나리온짜리 진주를 선물했고, 클레오파트라는 2,500만 데나리온짜리 진주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까, 일당을 5만원으로 계산하면 클레오파트라는 요즘 시세로 1조 2천 5백 억짜리 진주를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 진주 한 알이라면 기꺼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 나라가 클레오파트라가 소장했던 진주 한 알만 못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내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 분의 통치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것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조치가 있는데, 바로 내 모든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전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1조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도 있어서 클레오파트라의 진주를 몇 개씩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정찰 가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소유 전부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마 19:23). 천원 가진 사람이 소유권 이전하는 것보다 천억 가진 사람이 소유권 이전하기가 아무래도 힘들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절대적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천 원짜리 한 장 드리는 것도 아깝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먼 미래에나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화 비유를 통해서 어떤 이는 그 나라를 발견하고 그것을 지금 소유하려는 과정 중에 있음을, 그리고 진주 비유를 통해서는 이미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이 있음을 암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청중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는 어떤 과정에 있는지를 살펴보게 하셨습니다.

보화와 진주 비유는 과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과연 진정으로 그 가치를 발견한 사람다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점검하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의 절대적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 (최 동 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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