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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쟁이 그쳤더라 (수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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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요한1서 5장 13절에서 그 기록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다시말해 성경이 기록되어진 것은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허락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는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 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5장 2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이 우리를 얽어매고, 속박하고 심판하기 위한 율법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주고자 하나님이 친히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정리해서 살펴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다시말해 축복해주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갈렙의 이야기인데, 이 기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하는 것은 바로 갈렙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축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는 것입니다.


  전쟁이 그쳤다는 것이 축복입니까? 당시의 상황 속에서 전쟁이 그치는 축복만큼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었고, 이로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물리쳐야 그 땅에 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을 이동하면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성을 쌓고 성벽이 일차적으로 그들을 보호해주는 곳에서 거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거기에다 군사들이 이동하면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힘이 되지 않는 여자와 어린아이들도 함께 이동하면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언제 적들이 침범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정식 군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하는 전쟁이기에 늘 긴장하며 살아야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갈렙에게 이러한 긴장이 사라지고 전쟁이 그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고의 축복이 임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리고 이어 13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도 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 말씀하듯이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대를 우리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오늘 갈렙이 받은 축복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전쟁 속에서 두려워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갈렙은 어떻게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축복받은 갈렙의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을 본받아 우리도 전쟁이 그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주님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이 자리에 나와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갈렙의 삶이 결단되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갈렙이 받았던 하나님의 축복, 전쟁이 그치는 평화의 축복이 함께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는 갈렙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삶”입니다.(9절)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갈렙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약속은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정탐꾼으로 선발되어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성실하게 믿음으로 보고한 갈렙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갈렙은 지금 그 약속을 기억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히 그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행하시고 그로인해 오늘 전쟁이 그치는 축복이 갈렙에게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한 것은 바꾸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셨습니까? 물론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이 약속의 말씀 중에 진정으로 내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고 암송하고 늘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소망으로 떠올리는 말씀을 말입니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창세기 12장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라는 약속을 받았고 믿음으로 그 약속의 성취를 맛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창세기 28장에서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라는 약속을 받고 성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도 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고 후에 자신을 판 형들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이렇듯 약속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읽기에 열심을 내고 듣기에 열심을 내며 전함으로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드는 삶. 이 삶 속에 약속의 성취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8절 말씀은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갈렙의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좇았다”는 말씀은 갈렙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보고하는 내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보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 땅이 좋았더라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13장과 신명기 1장에 가나안 정탐의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두 부분의 말씀을 잘 읽어보면, 하나님이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낸 목적은 그 땅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보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한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 얼마나 비옥하며 풍요로운지,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크고 강성한지, 또 그들이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말입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곳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도 가나안이 하나님의 축복의 땅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신명기 1:25에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까지만 말했으면 좋았는데, 거기에 인간적인 생각을 넣어서 우리는 그들과 비교하면 메뚜기 같기 때문에 올라가서 싸우면 지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였고, 이 인간적인 생각이 하나님의 노를 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땅이 좋더라 까지만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히 좇는 모습입니다. 보라고 하는 것만 보고, 하라고 하는 것만 하면됩니다. 거기에 인간의 합리성을 들먹이며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삽입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정적인 생각을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말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만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좇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본 그대로 행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 만을 기억하고 좋아가는 삶 그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외칩니다. “내 나이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좀더 좋은 땅에서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하는 모습이 바로 갈렙의 모습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모습, 이러한 모습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전쟁이 그쳤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 이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축복은 다음과 같은 모습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둘째, 온전치 좇는 자에게 주십니다. 셋째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삶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게 채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kwj1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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