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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니엘 마인드 (단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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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든지, 수학을 잘 못하든지 간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늘 계산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계산기를 들고, 이것 더하기 저것에 빼고 나누고 곱하고 그렇게는 하지 않지만, 우리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 머릿 속에 계산을 다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것도 몇 시에 일어나야 얼마 동안 준비하고 얼마 동안 걸어서 몇 시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 하에 알람 시계를 맞추고 잡니다. 어디를 가야할 때도 그곳에 가려면 교통편이 어떻게 돼서 승용차로 가게 되면, 기름값이 얼마쯤 나와서 너무 돈이 많이 드니까 버스로 가게 되면, 차비는 얼마가 들어서 승용차로 가는 것보다는 얼마를 절약할 수 있고, 시간은 얼마가 단축되겠다는 그런 계산 속에서 교통편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사귈 때도 뭔가 내게 유익이 될 것 같다는 계산이 서면 그 사람과 사귀려고 하고, 별 도움 될 일이 없다는 계산이 나오면 그 사람은 아예 외면해 버리는 것도 머릿 속으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의식을 하든지 못하든지, 늘 계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시대는 이런 계산을 잘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그저 순진하고 성실한 사람을 선호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바보라고 말하면서, 요즘은 오히려 이해타산이 빠르고 약삭 빠르게 잔머리 잘 굴리는 사람을 더 선호하고 그런 사람에게 세상사는 지혜가 있다고 칭찬을 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정말 계산할 줄 모르는 세상물정 모르는 한 바보가 나옵니다. 바로 바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계산할 줄을 몰랐습니다. 다니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고 마시지 않고, 채식과 물을 마시겠다고 했습니다. 포로로 잡혀와서 콩밥 한끼라도 안 굶고 잘 얻어먹으면 그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콩밥이 아니라 왕이 먹는 최고급 부페식을 먹지 않겠다고 거부했습니다. 누구는 마시고 싶어도 없어서 못 마시는데, 왕실 최고급 포도주를 마시는 것도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얘기가, 우리는 채소나 먹으면서 살기로 결정을 했으니까, 그렇게 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환관장에게 얘기를 했다는 것 역시 전혀 계산할 줄 모르는 행동입니다. 환관장은 어떻게 하든지 왕의 명령대로 해야지 포로의 소원이나 들어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왕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포로의 소원이나 들어주다가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데, 그런 자기 직속상관에게 그런 어려운 청을 했습니다.

  당연히, 환관장은 그 청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환관장이 계산해봐도 그건 전혀 계산이 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상식적인 계산으로 고기도 먹고 골고루 잘 먹어야 얼굴에 기름기도 좀 흐르고 보기에 좋은 얼굴이 됩니다. 그렇게 환관장이 부탁을 거절하니까, 다니엘이 다시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10일 동안만 우리가 채식을 하게 해주셔서 다른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과 비교해서 얼굴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비교해 보고 얼굴이 상해서 혼날 것 같으면 그때에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은 죽여도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에서도 다니엘은 전혀 계산할 줄 모르는 바보라는 것이 확연히 나타납니다. 계산할 필요도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그건 밑지는 장사입니다. 10일 동안 야채나 먹다가 얼굴에 윤기가 없고 얼굴이 좋지 않게 되면, 10일 동안 맛있는 음식도 못 먹다가 10일 만에 처형당할 수 있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결국 자신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는 뜻을 정했는데, 미래에 죽게되든지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런 것은 계산하지 않고, 분명한 것은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다니엘은 왜 그랬겠습니까? 정말 다니엘은 계산할 줄 모르는 바보였기 때문에 그랬겠습니까? '다니엘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니엘은 본문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계산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는 분명히 바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바보는 바보인데, 그에게는 남다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다니엘처럼 그렇게 계산하지 않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니엘처럼 그렇게 무계산적이고 무모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라, 너무 똑똑해서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세상에 익숙하고, 이해타산적이고 약삭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똑똑한 대신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해서 그쪽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성공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늘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당신 예수 믿으십니까? 믿으십시오. 안 그러면 지옥갑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다녔습니다. 심지어는 사장님에게도 "당신 예수 믿으십니까? 믿으십시오. 안 그러면 지옥갑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다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로 그 사람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회사에서 짤리게 될 거라는 계산식이 우리 머릿 속에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계산할 것도 없이 그 회사에서 아주 낙인 찍힌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급도 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말단 직원으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회사가 어려워져서 직원의 수를 줄여야만 했습니다. 그러자, 전도하느라 사장님에게도 이미 찍힌 그 사람이 단연코 퇴직자 명단 1순위에 올랐습니다. 저 양반 예수에 미쳐서 살더니 진급도 못하고 평생 말단으로만 살다가 결국 저렇게 짤리게 된다고 다들 혀를 찼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 회사 사장님이 그 사람을 자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신 예수 믿으십니까? 믿으십시오. 안 그러면 지옥갑니다." 이 말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을 자르면 아무래도 내가 지옥에 갈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도저히 자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말단직원으로 오래 있으면서 그 회사의 업무에 대해서 그 사람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그 사람이 그 회사의 중진급 인사로 오히려 승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세상 사는 지혜를 이미 많이 얻어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고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계산이 다 나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것도 공부를 잘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그래서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어야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라든지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그래야 또 집안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고, 그래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에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주일에 가게 문을 닫으면 하루 수입이 얼마인데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는 계산 때문에 주일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습니다. 주일에 가게 문을 닫으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그래도 그만큼, 오히려 그 이상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게 문을 닫는 사람은 이제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져 가는 것 같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게 되면, 내가 시간적으로 얼마나 손해봐야 하고,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힘들고, 물질적으로도 아이들에게 간식 사주느라 돈을 쓰면서 손해 봐야 한다는 그런 계산이 되니까 그 누구도 교사로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런 세상적인 계산 속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적인 모습이 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세상적인 계산을 더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가 아니라, 계산을 믿는 계산교 신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주일에도 가게 문을 닫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주일에 문을 닫음으로 인해서 손해보게 되는 만큼의 금액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수 없을 거라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주일성수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 그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우리의 계산식을 더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태권도 5단쯤 되는 아주 운동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겁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평소에는 난 당신이 참 믿음직스럽고 듬직하다고 말하면서, 밤에 잠을 잘 때는 도둑이 들까봐 무서워서 문을 꼭꼭 잠그고도 너무 무서워서 잠이 안 온다고 한다면 남편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참 섭섭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평소에는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나의 산성이시라 고백을 하면서 기도를 하다가도, 평소에는 내 계산식을 더 믿으며 살고, 어려운 일 앞에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무시하고 두려워서 떨고 있다면,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냥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 믿습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가 세상적으로 계산하는, 세상의 계산식은 버리고, 하나님의 계산법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한 곡예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줄을 걸치고 외줄타기로 폭포를 건넜습니다.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곡예사는 사람들에게 왔던 길을 다시 줄을 타고 되돌아가겠다고 하면서 물었습니다. "제가 다시 줄을 타고 돌아갈 수 있을 거 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당신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사람을 업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은 그렇게도 해낼 겁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성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곡예사는 "그렇게 저를 믿어주신다면, 한 사람만 나와서 제 등에 업히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누가 업혔겠습니까? 아무도 업히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꼭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산해 봤을 때, 그래도 만에 하나 실수할 수 있는 거고, 폭포에 떨어지면 분명히 살아남기 힘들 거라는 계산을 하기 때문에, 곡예사를 온전하게 믿지 못하고, 자신을 맡기지 못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적인 계산을 통해서 얻은 답을 보면서 '아무리 하나님이라지만, 그래도 내 경험과 계산에 비추어 봤을 때는 이렇게 해야지, 어떻게 하나님 말씀대로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 손해를 보게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맡기지 못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정말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계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고, 얼마나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지 못하는 불신앙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니엘과 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은 계산하지 못하는 바보였습니다. 자신이 정한 뜻으로 인해서 미래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계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보였지만, 하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혹시,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할지라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만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적인 계산을 할 줄 몰라서 차라리 바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신뢰하는 그런 다니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원래 전자계산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계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채식만 했는데도,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되고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고,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열 배나 더 낫게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은 세상적으로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계산식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적인 계산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자들이 아니라, 다니엘처럼, 이미 세상 속에서 익숙해 있는 우리의 타산적이고 약삭 빠른 계산을 버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산식을 믿고, 온전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다니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7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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