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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일군이 필요합니다 (마 9: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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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3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매우 바쁜 생활을 하셨다.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의 3대 사역
1)가르치심 - 모든 성과 촌의 회당에서 가르치심,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김춘근장로님(캘리포니아주립대교수, JAMA대표, Jesus Awakening Movement of merica) 페퍼다인대학에서 열강 - 최고 교수상 - 도전과 변화.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 - 진지하고 자상하면서도 열정적인 순회 강의.

2)천국복음 전파 - 전도, 교육은 변화와 성장이 목표지만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작업.
막1:35-38,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바로 전날도 예수님은 하루 종일 바삐 일하셨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찾아왔을 때 전도하기 위해 다른 마을로 가셨다. 영혼 구원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피곤하셔도 예수께서 오신 목적을 놓치지 않으셨다.

3)병고침 - 치유사역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사람들의 관심은 사실 병고침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적은 병고침이 아니다. 병고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복음전파가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며 능력임을 증거하신 것이다. 이 사역을 통해 백성들과 친밀해질 수 있었고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적주의 신앙인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치유의 역사를 믿는 사람이다. 믿는 자에게 이런 은혜가 임할 것이다.

이 세 가지 사역은 예수님의 주된 사역이며 이 사역의 궁극적 목적은 영혼 구원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피곤하고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는”(눅19:10)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결코 잊으신 적이 없다.

1.무리들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36절)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예수님 주변에 모여온 무리를 보시면서 민망한 마음이 드셨다.
“민망히 여기시니..” - 불쌍히 여기심 - 헬라어의 의미, “창자가 뒤틀리다.” 마음의 아픔을 육체적 고통을 표현한 용어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와 같은 심령의 고통을 느끼신 이유는 무엇인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유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자 없는 양의 입장이 어떠한가?
겔34: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몇 해 전에 가출한 중학교 여학생이 다방의 직업여성이 되어 있었다. 그 어린 학생은 이미 몸과 마음이 다 상해 있었다. 기자가 지금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부모님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돌아갈 수가 없다고 했다. 많은 남성들 - 아버지뻘, 삼촌 뻘되는 남자들이 그 어린학생을 쾌락의 도구로 삼았지 불쌍히 여기지는 않았다.

당시 유대백성들에게 목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제사장, 회당장, 율법사, 서기관 같은 목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목자가 아니었다.
에스겔 선지자의 멧세지
겔34: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 잘 만나는 것이 복이다.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알고 정신차려 목회하려고 한다. 목자장이 되신 주님의 마음을 민망스럽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율법과 전통을 준수할 것을 강요했다. 백성들의 신앙을 형식주의 외식주의 신앙인으로 만들었다. 신앙이 그들에게는 족쇄가 되어 짓누루고 있었다. 유대의 목자들은 양들을 방치하는 삯군 목자들이었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고생하며 유리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은 심령의 고통을 느끼신 이유다.

2.문제 제기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두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1)추수할 것이 많다.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은 일거리 많아서 부담되기도 하지만 기회도 되는 것이다. 만약 반대로 추수할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IMF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9년도 어느날, 허집사님 공장에 갔더니 직원들이 할 일이 없어서 장기두고 있었다. 월세 전기료 인건비 합해서 매월 약500만원이 그냥 지출되는 상황이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던 일이 생각난다.
최장로님네 공장도 한 때 어려울 때가 있었다. 게다가 철판이 넘어와서 한 쪽 다리 골절상까지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공장을 정리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공장을 신축하고 잔치 벌이던 날, 장로님 동생 최재삼씨가 내게로 와서 “목사님 일거리가 너무 많아 쉴 틈이 없는데 주문이 좀 덜 들어오게 기도 좀 해주세요.” 즐거운 비명으로 알아 들었다. 일감이 없어서 쉬는 것이 좋은 게 아니다. 힘들어도 일감이 많은 것이 좋은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들이 많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이 많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없다고 한다.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고함소리가 소란한데 우리는 잘 듣지 못하고 있다. 아니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들으려고 한다.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일어났던 사건. 부둣가를 걷던 남자가 줄어 걸러 넘어져 바로 바닷물로 빠졌다. 그 때 바로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배의 갑판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젊은이가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도 외면했다. 결국 그 남자는 익사했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그 선원이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하게 대처한 사실에 분노했고, 결국 그를 고소했다. 법원의 판결 결과는 무죄였다. 이유는 “내키지 않는 일은 거부할 수 있고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닫혀져 있다. 그래서 종종 지하철 승강장에서 추락한 사람을 구해준 학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영웅시 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세상은 점점 개인주의 이기주의화되어 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일에 무관심해 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저주와 멸망에서 건져 냄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죽어 가는 영혼들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다. 눈을 들어 추수할 영혼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그런 영안이 열리기 바란다.

2)일꾼이 적다.
전3:1-2,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추수할 시기를 놓치면 농작물을 버리게 된다. 피땀흘려 지은 농사를 일꾼이 없어 버린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미국의 교회개척사역자인 닐콜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부족한 것은 재정이 아니요, 주차장 부지나 전도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부족하다고 정확히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추수할 일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학교육을 받은 교역자들이나 교회에서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추수할 일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그럴 듯한 이유를 들이대도 주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전도대원들을 모집하느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 전도부장인 박재규집사님과 VIP초청주일에 관해서 의논하다가 역시 고민에 빠졌다. 이 전도행사에 팀웍을 구성할 멤버들을 찾는데 사람들이 없었다. 직장인, 초신자, 노인들 빼고, 이렇게 저렇게 빼다 보니 정말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입니다. 추수할 일꾼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기도하라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추수할 일꾼이 없다고 푸념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방법이다. 예수님께서도 추수할 일꾼을 얻기 위해 먼저 기도하셨다.
눅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전도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도에 대한 무관심이다. 전도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영혼을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

예수님께서도 전도할 사람을 위해서 하루 밤 철야하셨다. 그 기도는 하룻만에 응답되었다.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단 하루만이라도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어떻게 응답하시겠는가?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1.예수님의 관심에 나의 관심을 맞추는 것이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의 생활은 육신적으로 피곤할 만큼 분주했다. 그래서 틈이 나면 휴식을 취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쉬셨고, 심지어 흔들리는 뱃머리에 기대어 주무시기도 했다. 그러나 그분의 중심적인 사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예수님의 사역은 영혼구원, 생각도 영혼구원, 목표도 영혼구원이었다. 전도중심적 삶이었다.

회사에서 사원은 사장의 경영 방침에 따라 충실할 때 인정받고 승진하는 것이다. 회사 일에 불충실하고 사장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한다면 그는 머지 않아 퇴직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받기를 원하면서 예수님의 계획과 사역에 무관심한 신자가 응답을 받을 수 있는가? 만약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 “넌센스”다. 지혜로운 성도는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나는 피곤하고 시간이 없으니까 나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복을 받을 생각도 안하는 것이 좋다. 예수님의 관심에 여러분의 관심을 맞추라.

2.영혼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성경주석가 메튜 헨리목사,
“기독자의 최고의 연민은 영혼에 대한 연민이다. 그것은 최고로 그리스도와 닮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배은망덕 - 은혜를 배신하고 덕을 잊어버림. 성도는 구원받은 은혜를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영원한 저주와 형벌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억한다면 다른 영혼들에 대하여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에 구원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전도대상자가 없다고 투덜대기 전에 먼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라. 그리하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3.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추수할 것이 많은 것을 보고 일꾼이 부족한 것을 인해 안타까워 하는 농부처럼처럼 추수할 일꾼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내달라고 무릎을 꿇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교회 안에 추수할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4.일꾼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에는 12제자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부탁하시고 그리고 이어서 바로 제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내어 보내신다. 추수할 일꾼들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자들이다.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었다.

교회 안에 여러 직분이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이 많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결국 영혼구원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요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다.

우리는 나의 생활에 젖어 있으므로 인해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잊고 살아간다. 분부해지면 분주해 질 수록, 피곤해지면 피곤해질 수록 영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식어지고 무관심한 가운데에서도 영적인 부담감 없이 살아간다.

나의 모습이 그와 같다면 심각한 영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야 한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태한 나의 신앙을 회복하는 기회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는 기회다. 복받는 기회다.
10월 한 달, 영혼 추수를 위하여 한 영혼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기간으로 삼자. 먼저 하나님 앞에 내가 인도할 사람 VIP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로 시작하라. 기대하며 만나라. 좋은 열매를 얻게 하실 것이
(원 영 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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