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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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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광고의 시대입니다.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TV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버스를 타도 그렇고, 전철을 타 봐도 광고의 현란함이 우리의 눈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길을 가다보면 온통 벽면이 광고 투성 입니다. 심지어는 전신주나 신호등에도 쪽지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청소하는 분들이 하루 종일 물을 묻혀서 불린 다음 긁어내면 밤사이에 덕지덕지 또 도배질을 해 놓습니다. 그런데 광고 내용을 보면 참 아리송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옛날에는 광고라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도록 직접적인 문구와 표현들을 사용했습니다.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무엇인지 알 정도였지만 요즈음은 많이 생각하게 하는 광고가 시장을 장악합니다. 듣는 것만 가지고는 도대체 무슨 광고인지를 모릅니다. 이제는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듣기만 해서는 통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시대에 따라 광고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화장품 광고를 한다고 합시다. 옛날 같으면 “아00 화장품!”,“쥬00화장품!”하면서 반 콧소리에 에코우가 들어가는 소리로 직접적으로 한마디 하면 그게 가장 큰 광고의 효과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화장품 광고 문구를 들어 보실래요.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난다.”묘한 상상을 자극하여 기억하게 하는 성공한 화장품광고입니다. 그러더니 언젠가는 한창 버스 옆구리에 <선영아! 사랑해>라고 커다랗게 써 붙이고 다니는 광고도 있었습니다. 그걸 볼 때 마다 ‘그 누군지 사랑고백 한번 요란 벅적 자근하게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마 여자분들 가운데는 생각하기를 ‘나도 한 번 저렇게 확실하게 프로 포즈 한번 받아 봤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남자 입장에서 보면 여자들은 남자들과 다른 좀 요상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제대로 프로 포즈를 받고 싶다는 것이 대부분 여성들의 심리라고 합니다. 제대로 된 프로 포즈란 장미꽃을 한 다발 사서 갖다 바치면서“나와 결혼 해 주신다면 한 평생 그대만을 위해 이 생명 다 바치오리다.”그러면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면서 떨리는 손으로 장미꽃을 받아들며 남자의 가슴에 수줍은 듯이 가서 안기면 이게 일이 성사 되었다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남자들은 안 그렇거든요. 제대로 된 프로 포즈라는 게 따로 있는지도 몰라요. 좋으면 “나는 당신이 좋소. 나와 결혼합시다.”그거면 끝입니다. 이게 <감정의 동물>인 남자와 <감성의 동물>인 여자의 차이입니다. 대체로 여자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나 그 자극에 의해 변화를 느끼는 감성(感性)에 살고 남자는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즉 감정(感情)에 삽니다. 그래서 부부가 결혼해서 살다보면 가끔씩 아내의 불만이 뭐냐 하면 멋있는 프로 포즈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결혼을 한 게 어딘가 모르게 손해 본 것 같다는 것이고, 남편은 나름대로 할 바를 했기에 당신을 얻었다고 시치미를 뚝 뗍니다. 자, 어쨌거나 광고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버스에 대문짝만하게<선영아 사랑해!>하고 사랑고백 해 놓은 문구가 무슨 광고인가 했더니 인터넷 사이트 광고였다는 것을 알았을 땐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만하면 성공한 광고입니다. 또 있습니다. 한 때 가로등이나 전신주에 거의 빠짐없이 나붙었던 광고문구입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초록아 돌아오라!>는 문구였습니다. 저는‘누군가가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애타게 찾나보다 그런데 강아지가 저글을 읽을 줄이나 알까?’만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답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것이 김치냉장고 광고 였다면서요?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초록빛 김치를 색깔이 변함없이 그대로 잘 보관하는 성능 좋은 김치냉장고라는 말인지... 아직도 그것이 왜 김치냉장고 광고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효과를 노린 것이든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지게 하는 데는 성공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감성과 감정에까지 호소하며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이성에 침투시키고자 하는 이 광고라는 하는 것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더 찾기 위한 영업전략 입니다. 내 기업에 이윤을 가져다 줄 그 한 사람이 필요해서 결국은 그 많은 비용과 예산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온통 사람을 찾습니다. 물건을 사 줄 사람을 찾고, 물건을 팔아 줄 사람을 찾고, 나와 결혼을 할 사람, 그래서 평생토록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만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사람을 찾습니다. 일할 일꾼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유익을 끼칠 만한 사람을 언제나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저는 요즈음 잠을 잘 자지 못할 지경입니다. 새해에 일할 교회의 일꾼을 임명하는 일이 너무나 벅찬 짐으로 저에게 다가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가 필요로 하고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새해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져야하는데 그 일이 쉽지 않습니다. 고민하다가 성경에 초대교회의 집사를 세우는 이 본문을 택하여서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표준을 얻고자 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초대교회에 사도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복음 외적인 일들로 인하여 본래의 사명인 복음전파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외적인 일들>이라 함은 과부를 구제하는 일이었는데 당시 본토 유대지방을 떠나 외국에 흩어져 살다가 돌아 온 경건한 유대인들을 <헬라 파 유대인>이라 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교회가 구제해 주어야만 생활할 수 있는 딱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파 유대인>을 우선적으로 구제하다보니 <헬라 파 유대인>들이 밀려서 구제에서 제외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자연적으로 헬라 파 유대인들은 원망을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에 매여서 사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복음전파에 진력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사도들이 이제 교회의 대소사를 주관 할 일꾼들로 일곱 집사를 선출하여 공정하고 효과적인 봉사와 구제를 하도록 합니다. 즉 일곱 집사라는 일꾼을 세우게 된 동기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우리가 주목해야합니다. 왜 입니까?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일치에 큰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문제없는 교회가 있을 수 없겠지만 문제 해결의 근본책은 이런 희생과 양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은 첫째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요, 둘째가 희생하며 봉사하는 일꾼들의 일치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만인에게 열립니다. 내가 보상 없이 봉사하면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가 즐겁습니다. 내가 내 본연의 자리만 잘 지켜도요 교회는 충분히 아름답게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이미 총회를 가진 기관도 있는 줄로 압니다만 내가 맡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귀찮아서 떠맡긴 게 절대로 아닙니다. 나를 골탕 먹이려고 세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일단 세워 주었으면 따라야 합니다. 협력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가 모두 제 위치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직무를 떠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누가 그리스도인인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인지를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한 마디로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3절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 가운데 처음으로 집사의 자리에 오르는 기쁨을 차지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십시오. 배경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줄 잘 서 있다가 차출된 것도 아닙니다. 처삼촌을 잘 만난 것도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요, 둘째로는 사람들에게도 칭찬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만 믿음 있는 척해도 안 되고 사람들에게만 잘 보여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요,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잘 이루어야 훌륭한 일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이 쉬운 것 같고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진심으로 칭찬 받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주는 게 쉽습니까? 받는 게 쉽습니까? 여러분, 뭐든지 그렇습니다만 주는 게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받는 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느냐의 문제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뭐든지 받는 것을 좋아하고 받기를 원하면서 삽니다만 실상은 주는 게 더 쉽고 속이 편합니다. 여러분, 원망이 어디에 있느냐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주는 자에게는 원망이 없습니다. 받는 자에게 원망이 있습니다. 주는 사람은 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주는 사람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할말도 없고요. 꼭 받는 사람 편에서 말은 더 많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구제를 해도 그렇습니다. 주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거저 주는 것으로 잊고자합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 쪽에서 많으니 적으니 왜 제때에 주지 않느니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받을 자격도 인격적 준비도 안 된 사람들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원망을 잘 하는 사람은 평생 구제나 받는 체질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토록 받는 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말없이 받을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칭찬이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할 때는 이만한 자격이 있다는 말이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가문이 신통치 않아도 괜찮습니다. 학문이 좀 모자라면 어떻습니까? 세상은 가문 따지고 학문 따집니다만 그러나 그런 조건이 결코<성령과 하나님의 지혜>를 능가 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누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일꾼 될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 나라의 진실한 일꾼입니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이미 새 일을 맡은 자들이나 앞으로 교회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으실 분들이나 무엇이든지 성령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 하려면 너무나 힘만 들 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모든 사람들 앞에 칭찬 받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김 철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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